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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NER VIEW]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 [No.125]

글 |누다심 사진제공 |마스트미디어 2014-02-11 5,037

사랑, 아이를 어른으로

 

 


성당 앞에 버려진 아이

얼마 전 베이비 박스(Baby box)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베이비 박스란 유기되는 아기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철제 박스로,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의 어느 목사님이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분이 베이비 박스를 만든 이유는 교회 대문 앞에 버려진 신생아가 저체온증으로 숨질 뻔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란다. 신생아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면서 베이비 박스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사실 신생아 유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략 100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도 ‘교회 앞에 버려진 아기’가 있었다. 장소는 노트르담 성당이었다. 이 아이는 선천적 장애가 있었다. 외모도 추악했다. 모두가 ‘괴물’이라고 부르면서 싫어하고 꺼릴 정도로 말이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올 만큼 유서 깊고 아름다운 성당에, 모두가 외면할 정도로 추악해서 버려진 아기. 바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인공 콰지모도 인생의 시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가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단 한 사람, 노트르담 성당의 신부 프롤로는 아이를 받아들였다. 프롤로가 콰지모도를 거둔 이유는 마음씨가 따뜻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름다운 성당에 아름다운 종소리를 울리게 할 종지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무 말 없이 골방에 갇혀서 종탑을 떠나지 않고 주어진 각본에 맞춰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무려 13톤이나 나가는 거대한 종을 울려줄 ‘노예’ 말이다. 콰지모도는 이 일에 적합한 종지기였다. 종이 얼마나 무겁든, 얼마나 많이 쳐야 하든 불평하지 않았다. 아니 불평할 수 없었다. 그에게 프롤로 신부는 세상의 전부였을 테니까.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인데 무엇이든 못할까? 어차피 부모에게 버려진 몸인데, 몸이 부서져라 일하지 못할까? 시간이 지날수록 프롤로는 아무 판단도 하지 못하는 콰지모도를 이용해 자신의 욕심만 채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집시 에스메랄다가 나타난다. 여인에게 연정을 품어서는 안되는 신부 프롤로는 자신의 욕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콰지모도에게 납치를 명령한다. 거부할 수 없었던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 납치를 시도하다가 근위대장 페뷔스에게 잡혀서,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콰지모도는 프롤로 신부의 사주 때문이었다 말하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한다. 콰지모도에게는 프롤로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었고, 프롤로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부모와 미분화된 인간

이처럼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구분하지 못하는 심리 상태를 심리학자들은 ‘미분화(Undifferentiated)’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가족, 특히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자녀나 자식의 실패를 자신의 실패처럼 받아들이는 부모가 대표적이다. 가끔 신문을 보면 수능이나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부모와 자녀가 동반자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는 부모와 자녀가 심리적으로 분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화되지 못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콰지모도는 프롤로를 위해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녀가 친구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고 생각한 나머지 직접 자녀의 친구들을 찾아가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나, 평생을 청상과부로 살면서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어머니가 외롭게 지내는 것을 보지 못해 결혼 후에도 아내가 아닌 어머니와 한 방에서 지내는 아들도 이런 경우다.
사실 모든 아기들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부모와 분리되지 못한 상태로 어린 시절을 지내면서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생존하게 된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부모와 갈등을 겪고, 이런 과정을 통해 부모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분리한다. 심리적으로 독립을 한다. 그러나 자녀가 자신의 영향력 아래서 벗어나는 것에 불안을 느끼거나 자녀를 통제하고 착취하려는 부모들은 자녀를 온갖 수단으로 위협하고 협박한다. 폭력과 학대를 가하기도 한다. “내가 널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말한다.
자신의 품을 떠나지 못하게 부모가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자녀 주위에 친구들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경험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지 않을까! 아이들이 사춘기에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사춘기가 되어야 친구에 대한 눈이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친구도 없다면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독립은 요원한 일이다.
콰지모도는 어떤가? 그는 세상에서 철저하게 버림받고 배제당했다. 언제나 바보(광인)로 취급받았던 콰지모도. 바보들의 축제에서 최고의 바보가 되었을 때, 그래서 사람들이 놀리고 조롱했을 때 그는 분개하지 않았다. 정말 행복했다. 그저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 모여 있다는 것, 자신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자신에게 침을 뱉거나 돌을 던지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정말 행복했다. 평소에 얼마나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멸시를 당해야 이런 상황에서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을 통해 독립된 인격체로

이런 콰지모도에게도 한 줄기 희망이 비추기 시작했다. 에스메랄다 납치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형틀에 매달려서 고통을 받는 콰지모도는 물 한 모금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절규하는데,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심지어 프롤로마저 차갑고 잔인하게 콰지모도를 외면하고 만다. 늘 그래왔듯 콰지모도는 혼자였다.
하지만 이때 콰지모도의 마음에 귀를 기울인 첫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에스메랄다였다. 그녀는 콰지모도가 그토록 원하던 물 한 모금을 가져다주었다. 자신을 납치하려 했던 괴물에게 자비를 베풀다니! 추악한 겉모습 때문에 모두가 외면하던 자신의 마음에 손을 내밀다니! 에스메랄다가 콰지모도에게 준 것은 물이 아니었다. 따뜻한 마음이었다. 콰지모도가 그렇게도 갈구했던 관심과 사랑이었다.
콰지모도는 이를 계기로 프롤로와 갈등 상태에 놓이게 된다. 자녀들이 부모와 갈등을 겪으면서 부모를 절대자가 아닌 사람으로 인정하듯 콰지모도 역시 프롤로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겉으로는 신앙을 운운하면서 에스메랄다를 저주하지만 사실은 그녀를 안고 싶어하는 욕망 가득한 남자로, 자신이 저지른 짓을 에스메랄다에게 누명 씌운 후 교수형 대신 잠자리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위선자, 그리고 결국 자신이 가질 수 없어서 에스메랄다를 죽음으로 이끈 사악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풀어주기 위해 집시들을 감옥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탈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에스메랄다는 페뷔스를 살해하려 했다는 누명에, 탈옥 시도라는 죄까지 더해져서 결국 교수형을 언도받는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던 유일한 에스메랄다가, 자신의 양아버지 손에 죽는 것을 목격한 콰지모도는 이 모든 것이 프롤로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자 마침내 자신의 마음에서 양아버지 프롤로를 밀쳐버린다. 눈에 보이는 자신의 추악한 외모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연약한 마음을 알아주었던 유일한 사람, 에스메랄다의 주검을 앞에 두고 그는 절규하고 또 절규한다.

 

춤춰요 나의 에스메랄다  
노래해요 나의 에스메랄다
춤춰요 나를 위해 조금만 더
나 죽도록 그대를 원해요
나 그대와 함께 떠나게 해주세요
그대를 위해 죽는 것은 죽음이 아니죠

 

에스메랄다를 향한 콰지모도의 마음은 프롤로나 페뷔스처럼 단순하고 지극히 이기적인 이성적 감정이 아니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 유일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었고, 감사였고, 환희였다. 이것이 비단 콰지모도만의 이야기일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겉모습 이면에는 더욱 중요한 마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평가받을 수 없고, 평가받아서도 안 되는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니던가!

 

누다심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심리학을 꿈꾸는 이. 심리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누다심의 심리학 아카데미>에서 다양한 주제로 강연과 집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꼭 알고 싶은 심리학의 모든 것』,『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5호 2014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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