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게하는 힘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다. 사랑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사랑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고 할 정도로, 삶에서 사랑은 절대적이다. ‘사람’, ‘사랑’, ‘삶’의 어원이 같은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빈센트 반 고흐. 천재였으나 그 역시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엄격하고 권위적인 목사였고, 어머니는 오랜 시간 우울증에 시달렸다. 게다가 여러 명의 동생을 둔 장남이었다. 그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고, 이는 그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몸에 난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덧나듯 마음의 상처도 그렇다. 어른이 되어서도 고흐는 좌충우돌했다. 처음에는 미술상으로, 그다음은 탄광촌의 선교사로 일했다. 많은 직업 중 왜 미술상과 선교사였을까? 고흐 가문은 전통적으로 두 부류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미술상과 목사였다. 빈센트는 아버지를 비롯해 가문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어느 곳에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없었고 사랑을 확인하지 못한 그는 결국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려고 도전한 두 일에서 모두 실패해 상처가 덧나는 꼴이 되었다.
빈센트가 갑작스럽게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바로 동생 테오 덕분이었다. 미술상이었던 테오는 형이 편지지에 그린 그림을 보고 화가로서의 삶을 제안했고, 빈센트는 용기를 냈다. 이 역시 심리적으로 크게 의지했던 동생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사랑을 갈구하던 그는 이름 모를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창녀 시엔을 만나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결심한다. 시엔과 함께 있으면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은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려고 하는데, 빈센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들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극렬히 반대했다. 빈센트 역시 이미 예견했던 일이라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반대가 있었다. 바로 자신을 계속 지지해주던 동생이었다. 그는 또 다른 사랑(시엔)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사랑(테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시엔을 포기하기로 했다. 상처는 더욱 깊어져만 갔다.
빈센트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예술가 공동체였다. 함께 살면서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떠올린 것이다. 이미 파리에는 예술가들의 모임이 있었다. 예술가들은 그곳에 모여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빈센트가 원했던 바는 단순히 작품만을 매개로 마음을 나누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삶을, 사랑을 함께 나누기 원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남겨진 텅 빈 가슴을 채워줄 수 있는 또 다른 가족을 원했다.
공동체를 이룰 첫 대상으로 빈센트는 고갱을 지목했고, 테오에게 이를 강력히 요청했다. 형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테오는 결국 고갱을 형에게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시작된 고갱과 빈센트의 불안한 동거. 빈센트의 예상과 달리 고갱은 차가웠고, 냉소적이었다. 자신의 텅 빈 가슴을 따뜻한 애정과 관심 어린 눈빛으로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둘의 동거는 오래 가지 못했고, 결국 헤어지는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과 다툼 끝에 빈센트는 자신의 귀를 자르게 된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빈센트 하면 정신질환, 정신착란, 발작을 떠올린다. 실제로 빈센트는 스트레스를 크게 받아 불안에 휩싸이면 일종의 발작을 일으켰는데, 정작 본인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빈센트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대뇌 측두엽 기능장애, 정신분열증, 조울증과 같은 진단명이 오르내린다. 당시에는 정신장애에 대해 공통된 진단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상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빈센트의 삶 전반과 감정 상태, 대인관계와 자신을 해치는 행동, 스트레스 상황에서일시적 기억상실을 종합해 보았을 때 ‘경계선 성격장애’가 유력하다. 경계선 성격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감정 기복이 크고,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한다. 대인관계에서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는 갈등이 일어난다. 갈등이 극단에 달했을 때, 특히 상대가 자신을 떠나려 할 때 해리증상을 겪기도 하며 자해나 자살 시도를 하는 경향이 있다.
빈센트 가지 마 가지 말라고
날 두고 가면 난 미쳐버릴 거야
날 두고 가면 난 죽어버릴 거야
경계선 성격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갖게 된다. 빈센트가 미술상으로 일하다가 그만둔 것도, 탄광촌에서 선교사로 일하다가 그만둔 것도 모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고갱과도 그랬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니, 당연히 사람들과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사람들과 마찰을 빚는 것은 사람들이 싫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의 사랑을 거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고,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서다. 그러나 너무나 강렬한 이들을 받아줄 사람, 안정되고 일관성 있게 지지하고 사랑해줄 사람은 많지 않다.
빈센트에게는 그런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동생 테오였다. 테오는 빈센트에게 안식처이자 위로였다. 심리적으로는 부모이기도 했다. 빈센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 6개월 만에 테오도 이 세상을 떠났다. 사인이 ‘마비성 치매’라고 하니 분명 빈센트가 죽기 이전에 발병했을 것이다. 어쩌면 빈센트는 테오가 불치병에 걸려서 결국 떠날 것을 알고는 자신이 먼저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확실한 사실은 빈센트의 정신장애가 무엇이었든 그는 사람들을 사랑했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그의 광기로 모든 것을 평가절하 했지만 테오는 그의 진심을, 열정을, 그리고 고통을 알고 있었다.
테오 빈센트가 어떤 미친 짓을 했는지!
어떻게 귀를 잘랐는지!
어떻게 정신병원에 들어갔는지!
어떻게…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당신들은 ‘어떻게’에만 관심 있습니까?
그러니까 형의 진심은… 그림은…
중요하지 않냐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7호 2014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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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NER VIEW] 진심, 열정, 그리고 고통, <빈센트 반 고흐> [No.127]
글 |누다심 사진제공 |HJ컬처 2014-04-28 4,407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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