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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ANIA TALK] <블랙메리포핀스>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는 재미 [No.131]

진행·정리 | 송준호 2014-10-07 4,949
유쾌한 상상이 빛나는 동화에서 모티프를 빌려와 어두운 버전의 심리 추리 스릴러로 거듭난 <블랙메리포핀스>는 초연 이후 꾸준하게 재공연되며 마니아들을 양산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알쏭달쏭한 인물 간의 심리와 끝내 말끔히 풀리지 않았던 결말 탓에 공통의 애정을 보이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날 모인 마니아들 역시 각자의 해석을 두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나를 매혹시킨 <블랙메리포핀스>€

이친구    전 이 작품에 빠진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동안 대체로 밝은 뮤지컬을 좋아해서 이런 작품을 본 적이 없거든요. 밝고 신 나는 작품은 사람들이 다 같이 ‘와~’ 하니까 몰입이 금방 되는데 어두운 작품은 제 취향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한 번 보고 완전히 빠지게 됐네요. 작품이 어두운데도 퍼포먼스가 많은 게 좋았어요. 
정하영    저는 원래 어두운 작품을 좋아해요. 열광하는 다른 작품도 <쓰릴 미>인데 내용이 굉장히 어둡잖아요. 몰입이 더 잘돼요. <블랙메리포핀스>도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을 다 찾아보고, 공연 보기 전에 모든 걸 외우고 갈 정도였어요. 
이친구    처음 봤을 땐 충격이었어요. 사실 이런 스릴러 뮤지컬이 많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개개인의 특징이 잘 살아있고 배우들도 골고루 다 봤는데, 똑같은 내용이어도 배우마다 다르고 같은 배우도 날마다 다 달라요. 이제까지 아무리 좋아도 세 번 본 작품은 없는데 이 작품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요. 볼 때마다 달라서 안 지루해요.
정하영    사실 전 초연 때는 뮤지컬에 감흥이 없어서 영상만 보면서 만족하고 있는데 재연 때 보니까 딱 제 스타일인 거예요. 노래가 중독성이 있고, 역동적인 건 아니지만 배우들의 동작 하나하나도 다 예뻤어요. 그래서 이번엔 티켓팅 하자마자 그동안 못 봤던 거 채우느라 계속 보고 있어요. 다섯 번 보면 OST 준다고 해서 그러는 것도 있고요. (웃음)
이친구    왠지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 몰입도 잘 돼요. 
정하영    ‘트라우마’나 ‘최면’, ‘나치’라는 키워드가 나오는데, 그런 어두운 소재만 모아놓은 게 신선했어요. 캐릭터나 연출력도 신비감이 드는 게 좋아요. 메리라는 캐릭터가 그런 역할을 했고, 또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음악과 연기가 그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 게 주효했죠. 
이친구    맞아요. 스토리보다도 긴장감을 어떻게 끝까지 유지하느냐가 중요한 작품이에요.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력과 개성이 중요하지요. 가령 한스의 경우 임병근은 좀 더 냉철한 느낌이라면 박한근은 성숙한 얼굴 때문인지 노련한 느낌이 있어요. (웃음) 헤르만은 차이가 커요. 서경수는 대드는 느낌이 가장 강하고, 배두훈은 용납은 못하지만 형이라 참는다, 이런 느낌? 송원근은 유들유들하죠.
정하영    임병근과 서경수로 처음 봤는데 둘이 정말 호흡이 잘 맞아서 형제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이 작품이 그런 연기 호흡이 중요한 극이잖아요. 배두훈과 박한근은 훨씬 더 와 닿는 조합이에요. 슬플 때 확 무너지고 기쁠 땐 정말 신 나 있는 게 잘 보여요. 



€가슴에 새겨진 순간들€

이친구    회상 신이 중간 중간 들어가잖아요. 그게 오히려 슬픈 분위기를 극대화해주는 거 같아요. 그 장면부터 우는 관객들이 많아요. 노래 가사도 하나같이 슬퍼요. 이 집에 입양되기 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불행했던 과거를 알려주는 곡이라서 기억에 깊게 남았어요. 
정하영    처음엔 한스가 제일 짜증난다고 생각했어요. 큰형인데 동생들을 제대로 챙겨주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계속 보니까 자신이 동생을 잘 돌봐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게 보여요. 헤르만이나 요나스가 ‘다 형 때문이야’라고 할 때마다 한스는 자기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커지는 게 보여요.
이친구    저도 네 명의 아이들이 즐거웠던 과거를 회상할 때 마음이 굉장히 아파요. 그렇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거잖아요. 메리가 자기들을 해코지하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기억이 돌아오면 알게 될 테니까요. 그나저나 메리는 제목이나 첫 장면 그림자극 때문에 역할이 더 클 줄 알았어요. 나중에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데 핵심이 돼서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비중이 적어서 의아했어요. 
정하영    초연 때부터 이 작품이 주목을 받았던 게 개성 있는 무대였어요. 등퇴장을 완전히 하지 않고 주변에 물러나 있다가 자기 파트나 연관된 부분에서만 중심으로 이동해 이야기에 참여하는 방식요. 
이친구    맞아요. 무대 안에 또 하나의 무대가 있는 느낌이 다른 작품과 달라요. 관객들이 무대를 다각도로 보게 하는 것 같아요. 중심 장면을 보는데도 다른 배우들을 보면서 각자가 어떤 심정을 갖고 있고 어떻게 보고 있나 생각하게 해요. 
이친구    그렇게 세밀하게 보다 보면 느끼는 장르도 달라져요. 처음엔 마냥 스릴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스릴러보다는 네 아이들에 얽힌 슬픈 드라마 같아요. 
정하영    저도 막연하게 슬픈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보다 보면 그 외에도 생각이 더 많아지게 돼요. 사람들은 이 작품을 ‘멘붕 뮤지컬’이라고 하는 데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결말이 그 자체가 아닌 거죠. 



€열린 결말에 대한 다른 해석€

이친구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보셨어요? 다른 작품은 해피든 언해피든 정리를 확실히 하고 끝내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어떤 것도 아니고, 끝이 나도 끝난 것 같지가 않아요. 
정하영    맞아요. 현실에서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법정에서 “동의합니다” 하고 끝나니까, 이게 상상인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찜찜한 상태로 마무리된 것 같아요.  
이친구    그래도 전 일단 기억을 찾았다는 결말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봤어요. 아픈 결말이기는 하지만요. 
정하영    전 그 뒤에도 뭔가 이야기가 더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어린 시절로 자꾸 돌아가고 중간에 한스의 혼잣말 신도 있어서 그 맥락을 제대로 이해 못하면 막연하게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전체 그림을 보려면 최소한 두세 번 집중해서 봐야 해요. 
이친구    전 당연히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고 나왔는데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좀 의아했어요. 자꾸 밝은 쪽으로 생각하고 싶어서 그런지. 
정하영    저도 처음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민해보니 아닌 거예요. 메리도 말하잖아요. 위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정교해야 이 조직이 유지될 수 있는지 모르는 거냐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이들을 감시해왔는데, 사건의 전말을 다 기억해낸 아이들을 쉽게 풀어줬을까. 최면을 건 사람도 나치의 한패는 아니었을까.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아이들이 과연 무사했을까. 또 부모조차도 너희를 감시하고 있다는 대사도 있어요. 넷이 만났다는 걸 부모들도 알았을 테고 이들을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죠. 
이친구    메리도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인지 나치의 하수인이었는지 확실치 않은 데가 있으니까요. 단순히 좋은 사람이기보다는 죄책감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정하영    결국 아이들을 지키려고 희생한 건 양심이 있다는 거지만, 화상을 입어가며 아이들을 탈출시킨 것도 결국엔 속이기 위해서 다 계산된 게 아니었나 하는 의심도 들지요. 생각하면 할수록 캐릭터에 대한 평가나 이야기의 결말이 자꾸 바뀌어서 헷갈리는 작품이에요. 
이친구    그렇게 확실하게 정해진 게 없다는 게 배우들에게 장점으로 작용하는 듯싶어요. 해석의 폭이 무궁무진하니까요. 실제로 배우들 자신도 관객과의 대화에서 물어보니 다 다르게 해석하더라고요. 그래도 역시 전 아이들이 다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이 좋지만요. 
정하영    그런 '화이트메리포핀스'도 나쁘지 않네요.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1호 2014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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