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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한국의 빌리들과 전기가 통하다! <빌리 엘리어트> 뉴욕 취재기 [No.80]

글|허선희(The Internationalists Theater Company 소속) |사진제공|매지스텔라 2010-05-11 5,715


프롤로그
If I could explain it, I wouldn`t have to dance it. -Isadora Duncan

 

현대 무용의 선구자인 이사도라 덩컨,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춤을 추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벚꽃이 바람에 눈처럼 날리던 4월의 뉴욕 어느 봄날, 네 명의 한국 빌리들인 지명이, 진호, 세용이, 선우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사도라 덩컨의 말을 떠올렸다.

 

Scene 1. 뉴욕에 내리다

현재 <빌리 엘리어트>를 공연 중인 뉴욕 브로드웨이 45번가에 위치한 임페리얼 극장 앞에서 만난 이 어린이들의 첫인상은 정말 천진난만했다. 예쁘게 배꼽 인사를 하는 이 어린 소년들을 바라보며 이들과 함께하는 에너지가 가득한 즐거운 하루를 예상했다.
뉴욕의 첫인상이 어떠냐는 말에 ‘자유로움’이라 답하는 이 어린이들, 특히 뉴욕의 명물 벌거벗은 카우보이를 보고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개구쟁이의 모습이었다. 너무나 밝고 사랑스러운 이 아이들을 보고 난 첫눈에 반해버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뮤지컬 <라이온 킹>과 <명성황후>에서 활동해 온, 노래와 연기, 그리고 아크로바틱이 특기인 지명이는 길거리 캐스팅되어서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뮤지컬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면서 사람들을 웃게, 혹은 울게 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관객과 직접 호흡한다는 점에서 뮤지컬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의 빌리로서, 뮤지컬 배우의 꿈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 동시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서 기쁘다고 하는 지명이는 그동안은 주어진 춤에 대해서만 연기하곤 했는데, <빌리 엘리어트>를 계기로 다양한 춤을 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단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탭댄스를 추었다는 ‘탭댄스의 신동’ 진호는 이미 많은 방송 출연으로 한국에서는 유명인사였다. 빌리 트레이닝을 통해 처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진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빌리, 꿈을 향한 열정이 멋있는 빌리를 닮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빌리의 모습 안에서 자신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꿈이 경제학 박사라는 진호는 두 가지의 꿈을 꼭 함께 이루고 싶다며 예쁜 미소를 수줍게 보여줬다.
2009년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발레 부문 1위를 수상했다는 세용이는, 5살 때 몸의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발레를 배운 것이 발레와의 첫 인연이라 한다.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을 지원한 것은 무용과 발레에 관심이 많으신 아빠의 권유였지만, 연기와 노래, 탭댄스 등 발레 외 다양한 많은 것을 배우는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어 자랑스럽다고 한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세용이는 관객들에게 멋진 빌리를 보여주기 위해 노래와 연기도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며 각오가 대단했다.
또한 2010년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발레 부문 1위를 수상한 선우는 5살 때 자세 교정을 위해 엄마의 권유로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점점 자신의 마음을 춤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발레에 푹 빠지게 됐다고 한다. 자신의 좋고 싫은 마음의 차이가 발레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는데 그게 발레의 매력이라는, 그걸 벌써부터 알아버린 막내 빌리. 극중의 빌리와 자신은 춤을 사랑하는 점과 춤에 대한 열정이 같아서 너무 좋다고 신나했다.

각각 다른 배경을 가진 아직은 어린 소년들, 하지만 대단한 집중력과 끈기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자신과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점. 춤에 대한 무한한 사랑, 도전과 패기, 그리고 열정이 이들을 하나로 만드는 듯했다. 춤에 대한 얘기와 꿈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눈빛부터 달라지는 이들, 더 이상 어린이 대접을 할 수 없었다.

 

Scene 2. 빌리, 빌리를 만나다

<빌리 엘리어트>를 관람하기 전에 극장 관계자들을 만나서 극장을 함께 둘러보았다. 이 네 명의 어린이들, 눈이 더 초롱초롱 해졌다. 공연 한 시간 전의 극장 안은 막바지 공연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네 명의 미소년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서자 출연진인 발레리나 소녀들이 귀엽다고 난리가 났다. 서투른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수줍게 한국 빌리들에게 인사했다. ‘소녀, 소년을 만나다’의 광경이 펼쳐졌다. 이어서 뉴욕 빌리들이 이들을 찾아왔다. 말이 쉽게 통하진 않지만, 이들에게는 언어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마음으로 느끼는 듯했다. 그날 공연의 주인공이었던 리암 레드헤드(Liam Redhead)는 한국의 빌리들을 만나서 너무 반갑고, 그들의 신이 난 모습을 보니 자신이 더 신난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그냥 무조건 즐기라고, 빌리를 연기하는 동안에는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릴거라고, 그러니까 모든 부분을 더 없이 즐기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연습으로 돌아갔다.

 

Scene 3. 춤을 향한 열정으로 하나 된 세계의 빌리들

공연이 끝나고,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진행됐다. 한국 빌리들을 비롯해, 미국, 호주 등 모든 인터내셔널 빌리들이 공연이 끝난 무대 위에서 서로 웃고 어깨동무하며 사진을 찍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니 이 모든 빌리들에게는 국경을 넘어선 춤에 대한 열정이 통하는 듯 했다. 이들에게 좋은 친구들이 생긴 것 같아 한없이 기뻤다. 피부색, 언어, 나라 등 모든 게 다 다르지만 이들은 빌리라는 캐릭터를 통해 서로를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사실 그들은 그냥 ‘빌리’ 그 자체였다.

 

네 명의 빌리들에게 <빌리 엘리어트> 중에서 나오는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
“빌리들아, 너희는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 들어?”
그리고 혹시 가능하다면 한 단어로 표현해달라고 했다. ‘일렉트리서티(Electricity)’ 노래처럼.
그러자 한 명씩 손을 들고 대답한다. (정말 이럴 땐 아이들 같다.)
지명이는 비행하는 느낌, 세용이는 열정으로 가득한 마음, 선우는 꿈을 꾸는 듯한 느낌, 그리고 진호는 짜릿함이라고.

 

 

 

 

 

 

 

 

 

 

 

 

 

 

에필로그

지명이와 세용이, 진호 그리고 선우와 ‘안녕’ 이라는 인사 대신 한 명씩 꼬옥 안아주면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멋진 빌리로 잘 커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일렉트리서티(Electricity)’를 들으며 이들과 아쉽게 헤어졌다.

 

한국의 빌리들, 이 어린 네 명의 소년들은 자신이 무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지, 이들 가슴 속에서 들리는 소리, 무엇이 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지 다 알고 있는 듯 했다. 이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이미 ‘불’이 존재하고 있었다. 춤을 출 때만큼은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는 동시에, 무엇인가가 그들을 완전하게 만드는 듯 했다, <빌리 엘리어트>에 나오는 가사처럼 마치 귓가에 음악이 들리고, 그 음악을 듣고, 그리고 그들 자신은 사라져 버린 채, 춤을 추는 그들 자신만이 세상에 존재하며,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자유로워지리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0호 2010년 5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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