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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위키드> 젬마 릭스·수지 매더스 [No.109]

글 |이민선 사진 |김호근 2012-10-09 5,680

 

그린과 핑크의 마법으로 한국을 매료시키다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지 9년 만에, 소문으로만 들었던 <위키드>의 진수를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초연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많은 이들이 기여했지만, 한국 관객들의 <위키드> 첫 경험을 환상적으로 마무리해준 데는 두 주연 배우의 역할이 컸다. 10월 7일 폐막을 앞두고, 매력 넘치는 두 주연 배우들을 만났다.

 


Wicked And I

 

두 분이 처음 <위키드>에 참여했을 때 기억나요?
수지
  난 젬마가 공연한 거 기억나요.
젬마  호주 초연 때, 전 엘파바 스탠바이였어요. 아직 무대에 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작스런 사정으로 두 번째 프리뷰 무대에 올라가게 됐어요. 엘파바는 정말 중요한 역할인데, 저는 가발도 분장도 처음 받아보고 동선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여서 어떻게 공연했는지 정신이 없었죠. 그렇게 토요일 2회 공연과 일요일 낮 공연까지 총 3회 공연을 마친 후, 일요일 저녁에 메인 배우가 돌아왔어요. 전 정말 진이 다 빠져버렸죠. 첫 번째 공연은 뚜렷하게 기억나요. 정말 무서웠거든요. (웃음) 하지만 그 덕에 자신감도 갖게 됐죠.
수지  저도 그때 스윙으로 함께했어요.
젬마  나, 그때 찍은 사진도 있어. (수지  정말?) 그때 네가 선물로 꽃다발도 주고 함께 사진 찍었잖아. 그때 우린 참 어렸어. (일동 웃음)
수지  저도 스윙에 이어 글린다 언더스터디로 참여하다가, 작년 2월 브리즈번 공연에서 처음으로 글린다로 무대에 섰어요. 젬마처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척 긴장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그런데 한국 매체와의 인터뷰라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전 한국에서의 첫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젬마와 다른 캐스트들과 함께 즐기면서, 제대로 된 글린다로서 무대에 선 첫 번째 공연이 아닐까 싶거든요.


많은 배우들이 <위키드>의 주연이 되길 꿈꿀 텐데, 엘파바와 글린다 역에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수지
  두 캐릭터의 보컬 스타일이 달라요. 글린다는 기본적으로 소프라노여야 하지만 낮은 데서 높은 데까지 넓은 음역을 소화해야 하고, 엘파바 노래는 팝 스타일이죠. 역할에 맡는 보컬 타입과 음역을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젬마  엘파바가 노래하는 타입은 시원하게 내지르는 팝 벨팅이에요. 저는 다행히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서 팝 벨팅도 무난히 소화할 수 있었어요. 엘파바의 발성은 매우 까다로운데, 그 테크닉을 배우는 것도 중요했어요. 엘파바가 늘 화가 나 있고 소리를 지르잖아요. 처음엔 저도 무조건 소리를 질렀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간 목소리를 잃기 십상이에요. 다행히 연출가가 어떻게 기술적으로 소리를 질러야 하는지 알려줬고, 그에 잘 따랐죠.
수지  글린다에게 필요한 테크닉이 있다면, 대사를 할 때도 노래하듯이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었어요. 클래식한 보컬과 함께 대사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요구됐죠.


두 분이 주연을 따낸 오디션 성공 비결이 있다면 뭔가요?
둘다
   그건 패키지(Package)죠.
수지  역할에 맞는 음역과 음색, 연기력, 외모 모두 다. 저도 엘파바 역할을 정말 맡고 싶지만, 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난 젬마 같은 목소리나 외모를 갖지 못했으니까요.
젬마  노래를 정말 잘해도 연기 스타일이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한 가지 요소가 아니라 그 역할에 필요한 각각의 요소들이 모여서 패키지를 갖췄을 때 가능한 거죠.


혹시 글린다 역에 금발도 필요조건인가요?
수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가발을 쓰니까요. 하지만 오디션 때 글린다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금발이 도움이 될 순 있죠. 근데 사실 전 오디션을 볼 당시엔, 금발이지만 무척 짧고 펑키한 스타일이었어요. (일동 웃음) 그땐 사람들이 저를 글린다로 보지 않았는데, 머리카락을 기르고 구불구불하게 컬을 넣으니까 점점 여성스러워졌죠.

지금 두 분은 외모만 봐도 글린다와 엘파바 같은걸요. 스스로 엘파바나 글린다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수지
  핑크 핸드백, 핑크 슈즈, 핑크 재킷. 전 글린다를 맡고 나선 모든 게 다 핑크색으로 바뀌었어요. 하하.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글린다 캐릭터도 조금씩 달라질 텐데, 제가 보여주는 글린다는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글린다보단 좀 더 차분하고 현실적인 글린다라고 생각해요.
젬마  전 엘파바 성격과 그다지 비슷한 것 같진 않아요. 싸우려고 하거나 적대적인 성격도 아니고, 전 그냥 털털하고 편한 사람이거든요. 물론 모든 사람들은 비슷한 성격들을 하나씩 공유하고 있겠죠. 하지만 역시 아무리 봐도, 전 글린다보단 엘파바 쪽이긴 해요.


<위키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젬마
   제게 가장 멋진 순간은 ‘Defying Gravity’예요. 가장 스펙터클하고 절정에 다다른 장면이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공연하는 동안, 이 장면이 조금 더 특별했어요. 제가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1막이 끝나고 커튼이 내려간 후 객석에 불이 켜지면, 박수가 멈추고 조용해져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제가 노래를 끝내고 여전히 무대 위에 떠서 내려올 준비를 하는 중에도 박수 소리가 이어지거든요. 1막이 끝났는데도 여운이 이어지는 거죠.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어요. 그 외에 처음에 앙상블과 대치하는 장면이라든가 2막에 엘파바와 글린다가 싸우는 장면도 좋아요.
수지  ‘Popular’도 좋아하지만, 엘파바와 함께하는 장면들이 편하고 재밌어요. 서로를 바라보면서 함께 즐기는 게 좋죠.
젬마   주연이 두 명이라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홀로 주인공을 맡으면 외롭고, 책임감도 더 무겁게 느껴져요. 저흰 둘이라서 무대에서 에너지를 주고받고 서로 이해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엘파바와 글린다는 서로를 만나서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됐잖아요. 오랜 시간 <위키드>와 함께하면서 두 분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젬마
   나이를 먹으면서 좀 더 성숙하고 현명해졌겠죠. 그래서 연기할 때 표현이 좀 더 깊고 풍성해지는 걸 느껴요. 그리고 제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완벽한 공연, 완벽한 배우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여전히 더 배워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매일 받는 노트도 잘 받아들이고 고쳐야만 또 성장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전과는 다른 거죠.
수지  오랫동안 공연하면서 상대 배우가 많이 바뀌었어요. 각각의 배우들마다 연기 스타일이 다르니, 제 연기도 함께 달라졌어요.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이 달라질 때마다 그들을 통해서도 많은 걸 배우게 되더라고요. 호주, 싱가포르에서의 글린다와 지금의 글린다가 또 다른 모습일 거예요.

 

 

 

Traveling Witches

 

<위키드> 한국 공연이 끝나 갑니다. 무척 좋은 성과를 냈는데, 한국에서 공연한 소감과 곧 한국을 떠나는 기분이 어떤가요?
수지
  한국에서 공연해서 무척 좋았어요. 관객 반응도 정말 환상적이었고요. 매일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줘서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들을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에요.
젬마  한국에서의 경험은 정말 신나고 흥미진진했어요. 전 <위키드> 공연에 4년 넘게 참여했어요. 제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는데 끝난다니 아쉬워요. 서울 공연이 끝난 후의 공연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멤버들도 많아서, 섭섭하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좀 복잡하네요.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겠지만, 한국 관객들은 특히 열정적으로 반응하죠. 이들의 호응을 실감해보니 어떻던가요?
젬마
  한국은 워낙 조용하고 예의 바른 나라라고 들어서, 관객들이 이렇게 열정적일 줄은 몰랐어요.
수지  호주에서 관객들이 <위키드>를 무척 좋아했지만, 한국에서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예상치 못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뮤지컬을 사랑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혹시 기억에 남는 관객이 있나요?
수지
  네, 있어요, ‘우맨’이요. 하하. 자주 공연장에 와서 늘 큰 소리로 ‘우~’ 하고 소리치며 환호해주셔서 우리 사이에선 무척 유명한 팬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자주 찾아와서 응원해주고 대기실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려주는 팬들 모두 정말 다정하고 좋은 분들이었어요. 한국 관객들은 무척 공손해서, 이게 다른 데서는 느끼지 못한 한국인만의 정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하러 오기 전에 한국의 뮤지컬 문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요?
젬마
  <위키드>의 협력 안무가인 엠마가 <캣츠> 투어 공연 때 한국에 온 적이 있어요. 그녀가 한국 뮤지컬 시장이 굉장히 크고,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좋아하고, 아주 많은 공연이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대학로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죠.
수지  저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7분여 동안 여섯 개의 다른 공연 광고들이 돌아가는 걸 보고 놀랐어요. 호주에서 일 년간 공연될 만큼의 작품들이 한국에서는 고작 한두 달 사이에 다 공연되더라고요.


매일 공연하니 다른 한국 공연을 볼 기회는 없었을 테죠. 혹시 궁금하거나 보고 싶은 한국 공연이 있나요?
젬마
  전 <시카고>요. 제가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다른 곳에서 이미 본 적이 있지만 한국 공연도 보고 싶네요.
수지  정말 한국 공연도 많이 보고 싶어요. 전 얼마 전에 명동에서 한국 스타일로 재해석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봤어요. 한국말로 공연했으니 난 그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죠.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 있었고, 다른 관객들이 웃을 때 함께 웃을 수 있었어요. 분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재밌는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게 정말 멋졌어요.


혹시 다른 작품에서 맡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젬마
  <고스트(Ghost)>의 몰리 역이요. 그런데 호주 공연이 연기돼서…. (내년에 한국에서 공연할 예정이에요.) 오우, 한국어를 배워야겠군요! (일동 웃음)
수지  저는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어떤 역할이든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제 꿈의 역할은 글린다였고 이미 꿈을 이루어서, 특별히 다음 역할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다른 나라에서 장기간 머물며 공연하는 건 재밌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할 것 같아요.
수지
  다양한 곳에 가서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무척 즐거워요. 하지만 가족들은 그립죠.
젬마  전 여행하는 걸 좋아해요. 여러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 게 재밌어요. 게다가 여행하면서 돈도 벌고 있잖아요. 일본에서도 몇 년간 활동했는데, 제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 중 하나예요.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싱가포르와 한국도 정말 좋았고요. 아직은 한곳에 정착하기 보다는,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고 싶어요. (젬마는 결혼도 했잖아요?) 네, 장거리 결혼 생활을 하고 있죠. 남편은 철인 3종 경기 선수예요. 그 역시 전 세계를 돌며 일하고 있죠. 하하. 다른 일을 하는 남편이었다면, 제가 이렇게 돌아다니는 게 어려웠겠죠. 그런데 제 남편은 저보다 더 여행을 좋아해요.


한국 공연을 마치고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하고 싶은가요?
수지
  전 한국에 좀 더 머무를 거예요. 주말에 반얀 트리에서 스파를 하며 쉬고 왔는데 무척 좋더라고요. 정말 멋지고 럭셔리한 곳이었어요. 또 가고 싶어요. 서울에서 들러보고 싶은 곳도 많아요. 비무장지대도 한번 가보고 싶은데, 거기 가는 버스가 아침 7시에 출발해서 도저히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 하하.
젬마  저도 한국을 더 여행하고 싶지만, 공연을 마치면 곧바로 하와이에 가야해요.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하는 남편의 경기를 보러 가야하거든요.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9호 2012년 10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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