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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뮤지컬 인사이드] <번지점프를 하다> 환상의 모티프를 서정성으로 살려내다 [No.122]

글 |박병성 사진제공 |뮤지컬해븐 2013-11-27 4,882

<번지점프를 하다>가 2008년 뉴욕에서 첫 워크숍을 가진 후, 창작팩토리 선정, 딤프에서 트라이아웃 공연 등 다양한 단계를 거쳐 본 무대에 오른 것은 4년 후인 2012년이었다. 처음 이 작품을 뮤지컬로 만든다고 했을 때 사실성에 기반한 판타지적 스토리를 뮤지컬로 만드는 것이 과연 적합할까 우려했는데, 뛰어난 음악과 극 구성으로 우려를 극복했다. 다소 컸던 초연 무대의 경험을 살려 재연 공연에서는 무대를 두산아트센터로 옮기고, 드라마의 디테일을 강조해서 한층 완성된 작품을 선보였다. 초연 때 협력연출로 참여한 후 재공연에서 단독 연출을 맡은 이재준 연출을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생을 넘어서는 인연

첫 장면은 인우가 분필로 흰 선을 그으며 인연을 강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초연에도 선, 혹은 끈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초연에 비하면 많이 덜어낸 것이다. 초연 무대는 평면적이다 보니 그곳을 채워야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의 무대는 디테일도 많고 굴곡지다 보니까 선을 잘못 사용하면 안 어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 덜어낸 것이다. 조명디자이너가 처음부터 제안한 컨셉이었다. 원작 영화를 보면 태희와 인우가 만나기 전에 우비를 쓴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굉장히 의도적인 장면인데 그 자전거가 보도블록의 흰 선 위로 지나간다. 거기서 착안해서 작품의 주요한 컨셉으로 삼았다.

 

그 선은 인연을 상징하는 선이면서 동시에 인우가 묶어주는 태희의 신발끈으로, 또는 이인삼각 경기의 끈으로 이어진다. 공연 도중 무대 곳곳에 분필 선이 무대에 보여지는데 선이 비춰지는 장면에 어떤 규칙이 있나?
극 전체를 같은 느낌으로 유지하려 했다. 태희와 인우가 나오는 장면만 아니라, 인우와 현빈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분필선이 비춰진다. 현재 인우의 고민은 다 과거의 일들과 이어진 것들이다. 그것을 선을 통해 암시하고 있다. 초연 때부터 현재 장면에서 무대 뒤에 실루엣을 남겨 과거의 어떤 것이 남겨져 있다는 이미지를 주자는 의견이 있었다. 지금의 무대에 더 어울릴 수 있는 아이디어지만 그렇게 되면 지나치게 산만해질 수 있어 하지 않았다. 과거와 이어지는 것은 선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하게 됐다.

 

제목이 ‘번지점프를 하다’이고 선이나 끈의 이미지는 번지점프하고도 연관된다. 무대의 제약 상 번지점프 대신 산이라는 공간을 택했다. 실제 뛰어내리지는 않고 분위기만 암시하고 끝난다. 직접적으로 뛰어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나?
2010년 딤프에서 처음 소개됐을 때는 무대 뒤로 실제 뛰어내리기도 했다. 보기에 감정적으로 강렬할 수 있는데 죽음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프로덕션에서도 죽음의 이미지가 전면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들이 자살을 했다는 이미지보다 한 사람만 사랑했다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길 바란다. 서정성이 강한 작품이기도 하고 그런 특색에 맞게 뉘앙스만 남겨둔 것이다. 이 장면을 좀 더 감성적으로 만들기 위해 와이어를 쓴다든가,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만큼 비용이 더 들어야 하기도 하고, 작품의 특성상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다.

 


인연,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 뫼비우스

스토리 구조는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구조이다. 초연 때는 넓은 무대의 폭을 최대한 활용해 프레임의 좌우 이동으로 현재에서 과거 또는 과거에서 현재의 시간 이동을 했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이동이었다. 이번에는 문을 사용했다. 초연이 영화적이라면 이번에는 연극적인 전환이란 생각이 든다.
초연에서 프레임을 통해 시간 변화를 준 것처럼 나는 문을 통해 시간의 전환을 시도했다. 원래는 지금보다 더 많은 문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층에도 상징적인 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너무 추상적이라는 지적이 있어 축소했다. 어떤 문에서 어떤 기억이 나올지 과거의 기억들은 일정한 문을 통해 나오도록 했다. 현재의 사건들이 벌어질 때 사용하는 문과 차이를 두려고 했다. 과거의 기억들이 호명되면 조명이 들어오고 그림자가 아른거리다가 문을 통해 과거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시간이 전환된다. 그런데 뒷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백스테이지 활용이 어려웠다. 무대 뒷공간에서 그림자를 표현해야 하니까 별도로 조명을 설치해야 하는데 그럴 공간이 없다. 필요한 순간만 조명기를 가지고 들어간다. 그러면 간신이 배우들이 이동할 공간만 생긴다. 중앙 문이 열리니까 또 사용하지 않을 때는 조명기를 보이지 않게 빼야 한다. 그래서 원하는 만큼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현빈이 모든 것을 깨닫는 장면에서 창문을 통해 과거의 기억들이 그림자로 보여진다. 춤추는 장면과 몇 장면은 어떤 기억인지 확실히 느낌이 오는데, 몇몇 그림자는 어떤 기억인지 모르겠더라.
과거의 기억들을 그림자로 표현한 것인데, 왈츠를 춘다거나, 우산을 들고 있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한다. 근데 막상 왈츠 장면을 제외하고는 그림자로 명확하게 각인시킬 만한 장면이 많지 않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실루엣으로 보면 무언지 알기 쉽지 않고,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이 적당하지만 창문이 허리 위로 나있기 때문에 보여줄 수 없다.

 

지난번 공연은 현빈이 모든 사실을 알아차리는 장면이 갑작스럽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에는 나름 세밀하게 전개해서 보완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평을 보니 여전히 갑작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놀이동산 갔다 와서 현빈의 친구들이 선생님이 이상해졌다고 하면, 현빈이 잠시 생각하는 장면을 둔다가나 혜주와 다툼에서도 선생님 편을 드는 등 좀 더 단계를 만들어서 접근했다. 나름 단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관객들이 갑작스럽게 느낀다. 좀 더 정확하거나 더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나 보다.

 

과거 시점이 되면 동시상영 영화 간판이 걸린다. 실제 그렇게 많은 장면에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인우와 태희가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세트를 이용했나?
현재에서 과거로 갈 때 공간을 새로운 장소로 환기시키려면 덩어리가 있는 거대한 어떤 것으로 시선을 끌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극장 밖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나. 시간이 바뀌는 장면은 다른 시간대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그런 이미지와 연결시키고 싶었다. 인우가 태희가 만나는 시점이 1983년 정도인데 <라붐>이 개봉한 것은 그때보다 좀 앞선 때이다. <사관과 신사>나 몇몇 후보작들이 있었지만 재개봉을 많이 하던 시기라 문제되지 않았고, <라붐>이 작품의 내용과 비슷해서 이 작품으로 했다.

 


인연을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

1막은 태희와 인우의 사랑 이야기가 주로 진행되고, 2막은 인우와 현빈의 관계가 집중적으로 부각된다. 1막은 감성적이었다면, 2막은 이성적으로 설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우가 모든 것을 버리고 환생한 남자 제자를 선택한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사실 온전히 받아들이긴 쉽지 않은 이야기다. 개인적인 차이일지 몰라도 나는 오히려 2막에 들어갈 때 더 진지하고 밀도가 생기는 것 같아 좋다. 인우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고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 짓이겠지만 그에게는 절실한 것이다. 남들이 다 틀렸다고 해도 인우에게는 옳은 일이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선택하면서 모든 것을 잃고 외로워진다. 그런 선택으로 인해 외로워지는 인간이어서 더 몰입이 된다.

 

아무래도 아내까지 버리면서까지 죽은 여자에게 집착하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내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인우의 상태를 보여주는 데 도움을 주는 캐릭터다. 인우가 현빈을 알아보면서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그 역할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아내에게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주어야 할까도 고민 중이다. 연습 때 배우들이 그럼 인우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단지 태희와의 약속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인우가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자 오랜 만에 만나는 대근이 심하게 화를 내는데 그렇게 화내는 이유가 이해가 안 간다. 그래서 혹시 아내와의 관계에서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일단 그 장면이 초연과 다른 것은 이들이 완전히 연락도 않고 지내다 만난 것이 아니라 꾸준히 만나왔다는 설정으로 바꿨다. 대사 중에 오해를 살만한 것이 있어 아직 그것이 명확히 드러나진 않았는데, 설정 자체는 꾸준히 연락을 하고 지낸 사이로 바꿨다. 인우는 태희가 사고를 당한지 모르고 군대에 간다. 군대에서 또는 제대하고 태희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친구들이 많은 힘이 되지 않았을까. 배우들과 아내 역시 인우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려주고 옆에서 도와준 그의 지인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아내가 태희의 존재는 아는 것으로 나온다.

 

지금 공연에서는 드러나진 않지만 그런 생각을 해보긴 했다. 아내가 왈츠 수업 때 인우에게 춤을 청한 여학생거나,  또는 미술실에서 늘 태희 옆에 있던 친구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아내가 명확히 누구라고 명시하진 않았지만 인우가 힘들어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뒷바라지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까 싶다.

 

태희의 캐릭터도 좀 더 명확해진 것 같다.
초연에 비해 삭제된 대사들이 있다. 처음 태희가 인우의 우산 속에 들어갔을 때 일기예보에서 비 온다고 하면 일부러 우산을 안 가져온다는 등 둘이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 부분은 거의 다 뺐다. 태희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그 장면은 침묵 속에 긴장감을 주어야 하는데 너무 말이 많았다. 인우는 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어느 선을 넘지 못한다. 태희는 그런 인우를 끌어당겨서 넘게 만드는 인물이다. 인우가 혼자 춤추는 장면이 코믹하게 표현됐지만, 왈츠를 출 때도 머뭇거리고 있는 인우를 당겨 행동하게 만드는 건 태희다. 신비롭지만 이런 관계를 통해 태희의 매력이 보이게 하고 싶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태희의 성격 설정을 명확히 해서 배우들이 연기하기에 편해지고 캐릭터에 좀 더 사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2호 2013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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