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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삼세번 만에 완성된 손드하임의 한국화 <어쌔신> [No.113]

글 |조용신(뮤지컬 칼럼니스트) 사진제공 |샘컴퍼니 2013-03-05 5,343

우리말 국어사전에서 ‘삼세번’은 “더도 덜도 없이 꼭 세 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삼세판’이라는 말도 비슷하다. 단판에 여부를 결정해 아쉬움을 갖기보다 두 번의 기회를 더 가져 삼세판으로 결정하는 것이 좀 더 마음이 편하지 않은가? ‘삼세번’ 도전에 나선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의 꿈이 기어코 성취되었듯 <어쌔신>도 한국 프로덕션의 세 번째 도전 끝에 드디어 작품이 원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무대 위에서 펼치는데 성공했다. 대체 얼마나 어려운 도전이었기에 삼세판까지 가는 도전을 멈출 수 없었고, 한편으로 이를 뒤집으면 대체 어떤 작품이었기에 제작사가 매번 바뀌면서까지 세 번이나 재공연 기회를 갖게 되었을까?

 

 

아이러니한 미국의 실체 고발


<어쌔신>은 참으로 비현실적인 뮤지컬이다. 각자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을 ‘감히’ 저격했던 인물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는 것만큼 비현실적인 설정이 있을까? 그러나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이런 환상을 현실화시키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췄다. 찰스 길버트 주니어의 기본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존 웨이드만이 작가로 참여한 이 작품은 1970~80년대 수많이 명작을 통해 이미 브로드웨이 뮤지컬계의 거장이 된 작·작곡 스티븐 손드하임이 주도해 1990년 오프브로드웨이의 명가 플레이라이트 호라이즌(Playwrights Horizons) 극장에서 초연을 가졌던 작품이다. 암살자들은 모두 미국의 전통적인 이동식 유원지인 카니발 사격장에 모여, 사격장 주인(Proprietor)이 안내하는 순서에 따라 자신들이 행했던 암살의 의도, 행위, 결과의 과정을 하나의 블랙코미디가 버무려진 쇼로 펼친다. 또한 이 작품은 초연 이후 수차례 수정 과정을 거쳤는데 초월적인 해설자 역할의 발라드 가수(Balladeer)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저격 사살한 리 하비 오스왈드를 같은 배우가 연기하게 한 것을 포함해서 케네디를 잃은 미국민의 슬픔과 충격을 표현한 장면은 초연 이후 강화된 것이다. 그동안 세 차례 한국 프로덕션은 모두 2004년 토니상 리바이벌 작품상을 비롯해 5개의 트로피를 휩쓴 2003년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조 만텔로 연출)에 기반하고 있다.


그간의 두 번(2005, 2009)의 한국 프로덕션이 시도했지만 도달하지 못한 부분은 아홉 명이 시도하고 그중 네 명이 실제로 성공한 암살자들이 정말 죽이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나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 찾기였다. 비록 이 작품이 철저하게 암살자들의 시각에서 상황을 이어가는 드라마이지만, 이 뮤지컬은 결코 암살자들의 행위 자체를 도덕적으로 옹호하고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는 없다.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건국이념으로 삼은 ‘Free Country’ 미국이라는 국가에서 이들 개개인들이 전체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되면서 공동체 안에서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관심도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를 몰라 길을 잃는다. 또한 암살자들의 희대의 돌출행동들로 인해 그때마다 국가적인 위기를 맞았지만 미국은 그마저도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아 발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그들의 ‘자유국가’에 대한 애정마저도 담겨 있다. 미국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자유국가의 모습은 개인의 방어를 위해 총기 소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서로를 잠재적인 암살자로 여긴다는 아이러니를 감수해야 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자신을 옥죄는 소외를 거부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총을 들 자유 또한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암살자들이 총을 휘두르며 부르는 주제곡 ‘Everybody`s Got the Right’가 뜻하는 자유국가의 진득한 아이러니와 궤변이 이 작품을 근본적으로 블랙코미디로 만들어준다. 이는 낯선 미국의 역사를 무대 위에 프레젠테이션 하듯 펼쳐놓고 관객을 이성적으로 학습시킨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소통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프로덕션은 비슷한 시행착오를 보여주었다.


샘컴퍼니가 제작하고 배우 황정민이 연출 겸 배우를 맡아 빚어낸 이번 프로덕션은 무엇보다도 블랙코미디의 문법을 세심하게 수행해냈다. 실존 인물들에서 캐릭터를 추출해 낸 존 웨이드만의 원작 의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배우들은 자신의 대사와 움직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때문에 배우들은 애드리브까지 살짝 가미해 가며 대본의 대사와 가사를 자연스럽고 능청맞게 구사한다. 가령 자신이 프랑스 대사가 될 거라고 착각하는 무모한 과대망상주의자 찰리 귀토, 변비에 시달리는 허풍장이 건달 주세페 장가라, 엘리트 연극인 존 윌크스 부스,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타쿠 팬 존 힝클리, 정신병자 노숙인 세뮤엘 비크, 배운 건 없지만 불만만큼이나 열정으로 가득했던 무정부주의자 레온 촐고츠, 히피를 동경하는 여자 리넷 프롬, 욱하는 성질의 사라 제인 무어, 자살을 결심했던 스나이퍼 오스왈드까지.

 

 

그들이 총을 든 이유

 

그들은 각각 암살에 나선 저마다의 이유가 있지만 그것을 매번 관객에게 설명하기보다는 지긋지긋한 무관심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벌이는 즉흥적인 행위라는 것을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최대한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들은 마치 망령처럼 비현실적이며 환상적인 캐릭터로 모호하게 존재한다. 더불어 개별 사연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연민을 자아내려는 목적도 없다. 오히려 대통령과 암살자가 공존하는 사회를 무심한 듯 드러냄으로서 결과적으로 그것이 미국임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번 프로덕션은 강력한 내러티브 대신 하나의 아이디어나 형식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중점을 둔 컨셉 뮤지컬을 한국에서 가장 잘 구현한 프로덕션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들은 모두 심각한 상황에서도 이것은 커다란 쇼의 일부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웃음과 연민을 정교하게, 그러나 유연하게 교차시켰다. 가령 루즈벨트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쥬세피 장가라(최성원)가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당하는 장면은 2층 무대의 번쩍이는 전식 효과와 오버랩되며 그의 최후마저도 코믹하게 진행한다. 정상훈의 세뮤엘 비크는 간혹 과하기는 하지만 한국의 정치 상황을 빗대어 스탠딩 코미디언 스타일로 객석의 호응을 유도한다. 유태인 찰리 귀토가 교수대를 향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흡사 박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엉성한 앙상블 댄서의 발차기와 같다. 특히 황정민의 찰리 귀토는 강박증과 과대망상으로 심한 자격지심을 덮으려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일면 순수해 보일 정도로 바보스러운 언동을 통해 신경질적인 사이코가 아니라 사랑스런 이상주의자로 완성되었다. 때문에 그가 용감하게 교수대를 향하다 말고 뒤돌아 계단을 내려올 때 그에 대한 연민이 극대화된다. 그는 찰리 귀토만이 아니라 총에 맞아 죽는 두 명의 대통령 역을 더 맡으면서도 코믹한 캐릭터를 유지해 그의 등장을 반기게끔 만든다.

 

총을 든 서부 개척자 시대의 정서를 대변하듯 컨트리 웨스턴풍의 음악이 작품 전반을 장식하는 가운데 각자의 짝사랑을 위해 대통령에게 총을 쏜 힝클리와 프롬의 이중창 ‘Unworthy Of Your Love’는 사랑의 감정 대신 짙은 풍자를 느끼게 하는 새로운 방식의 뮤지컬 코믹을 구현한다. 이 노래는 희대의 또라이 두 명이 부르는 극중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라는 사실만으로도 존재 자체가 아이러니이자 블랙 코미디의 정수다. 힝클리의 이승근과 리넷의 김민주의 듀엣은 하모니 쪽으로는 아쉬움이 있지만 똘끼로 똘똘 뭉친 듀엣송을 제대로 들려준다. 이 프로덕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배우는 부츠 역의 박인배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시조이자 미국 최초의 대통령 암살자이자 유명 배우였던 그는 섹시하고 음험하며 자의식 과잉인 인물이다. 오로지 찬사만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부츠 역을 박인배는 꽤 능숙하게 해 낸다. 이정은은 뭘 해도 안 되는 여자 사라 제인 무어를 코믹한 신스틸러로 만드는데 성공했으며 윤석원은 외면적, 내면적으로 모두 완벽한 촐고츠였다.

 

이 작품의 백미는 여덟 명의 암살자들이 발라드 가수에서 변신한 오스왈드(강하늘)에게 마지막 암살을 부추기는 장면이다. 고뇌하는 오스왈드를 보며 부스가 힝클리의 등을 떠밀며 비슷한 시대의 사람이니까 설득해 보라고 하자 힝클리가 하는 말은 “사인 좀 해주세요”다. 이 가슴 죄는 순간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마침내 아홉 명의 암살자가 모두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행복추구권’을 노래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했음을 우리는 안다. 오스왈드의 케네디 암살로 인해 비로소 ‘암살자들’이라는 카테고리가 완성됨과 동시에 이 작품도 블랙 뮤지컬 코미디로서의 일관성을 얻는다.

이번 프로덕션은 배우들의 고른 호연이 더해져서 한국에서 뮤지컬을 만드는 이들에게 뮤지컬 장르의 진화를 볼 수 있는 작품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웃음과 그 웃음의 의미를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오랜만에 한국 뮤지컬 무대에서 블랙코미디를 만족스럽게 보여준 프로덕션이므로.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3호 2013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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