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리뷰] 드라마의 생략과 비약을 메우는 음악과 무대 <돈 주앙> [No.66]

글 |현수정 사진제공 |NDPK 2009-03-10 9,388


<돈 주앙>은 <노트르담 드 파리>,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프랑스뮤지컬들이 그러하듯 송-스루(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져 있는)로 진행된다. 특히 이 작품은 스페인 무용수들의 플라멩코 공연, 로스 아미고스의 연주를 가미하여 쇼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콘서트 형식의 뮤지컬에서 입체적인 플롯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인과관계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극과 달리 비약과 생략이 심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뮤지컬의 장점은 음악을 비롯한, 드라마 이외의 요소들에서 찾을 수 있다.

 

 

<돈 주앙>에서는 장면간의 부드러운 연결을 위해 ‘해설’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앙상블과 인물들이 그리스비극의 코러스처럼 노래를 통해 반복적으로 작품의 결말을 암시하고, 바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사가 프랑스뮤지컬 특유의 ‘시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지 않고, 매우 직설적이다. 예를 들면 첫 장면에서 앙상블은 돈 주앙의 외모와 성격, 운명을 직접 묘사하면서 ‘천사의 두 눈과 악마의 마음’을 가진 그는 ‘미워할 수 없는 존재’라고 노래하고, ‘곧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돈 주앙이 “나는 죽네”라고 노래한 뒤 쓰러지면 앙상블들이 둘러서서 “그는 떠났네”라고 노래하는 식으로 상황을 `설명`한다.
이처럼 단선적인 진행을 보이는 것은 플롯이 입체적으로 건축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돈 주앙이 자신의 죄값을 치르며 몰락해가는 과정이 메인 플롯이라면, 돈 주앙에게 버림받고 앙심을 품은 엘비라와 마리아를 돈 주앙에게 빼앗기고 분노하는 라파엘의 복수혈전이 서브플롯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이 긴밀하게 조직되지 못하고, 밀가루 반죽처럼 뚝뚝 떨어진 채 나열되는 식이기 때문에 단선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노래 한 곡이 곧 한 장면인데다 곡의 스케일이 크지 않기 때문에 장면전환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장면의 호흡이 짧고, 스토리텔링이 단순명료하게 만들었다. 한편, 이와 대조적으로 무대, 안무에서는 상징적이고 감각적인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의 묘미는 드라마보다 음악, 무용, 비주얼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텔링을 ‘전담’하는 것은 음악이기 때문에 장면 마다 적합한 장르를 활용하고 있다. 플라멩코, 탱고 등으로 정열적이면서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면, 돈 주앙이 ‘개과천선’했음을 강조하는 음악은 건전하기 그지없는 가스펠을 연상시킨다. 가끔 템포감 있는 장면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어느 부분엔가 넣어도 될 정도의 유사함을 보이는 팝과 록 베이스의 빠른 음악들도 들을 수 있다.
스펙터클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무용수들의 춤인데, 로스 아미고스의 연주에 맞춘 플라멩코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요 인물들의 연기보다 이들의 쇼가 더욱 강렬하게 주목받는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점에서 장점이라고 할 수 없다. 플라멩코와 탱고뿐 아니라, 현대무용도 활용되었는데, 급 진전되는 사건의 추이를 보여주려는 듯 장면이 전환되는 부분에서 무용수들이 무대 뒤편을 전력으로 가로지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정적인 동선을 커버하기 위해 회전무대를 활용하여 속도감을 보여주었다. 오브제들은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쓰임새보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는데, 설치미술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았다. 밤하늘의 커다란 달, 금색의 커다란 공과 꽃병 등은 의미를 부여해 보자면 마치 거대한 운명의 매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보인다. 그리고 마리아의 조각품들이 전장의 장면에서는 말 탄 군인으로 변하여 회전목마를 연상시키는 양식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같은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작품은 특히 조명을 화려하고 다양하게 사용했는데, 마치 레이저를 쏘듯 비가 오는 장면을 연출한 부분은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콘서트 조명을 연상시키는 듯 천정으로부터 수많은 빛줄기가 무대를 비추도록 했는데, 돈 주앙의 심경의 변화를 드러내는 장면 등에서는 관객석으로 조명을 비추며 강렬한 효과를 주기도 한다.

 

 

한편, 돈 주앙이 여인들을 농락하고도 미움 받지 않는 세기의 바람둥이 훈남인 만큼 주인공 배우가 작품의 이미지를 크게 좌우한다. 이번 국내 공연에서는 김다현, 강태을과 같은 뮤지컬 배우와 함께 한류스타로 자리매김한 탤런트 주지훈이 출연하여 관심을 모았다. 주지훈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의 주부들이 단체로 비행기를 타고 공연장으로 향해 오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작사는 애초에 주인공을 뽑기 위해 케이블TV와 제휴하여 공개 오디션을 진행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오디션을 통해 뽑힌 몇몇 배우들이 출연하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강태을은 노래와 연기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플라멩코에 알맞은 카랑카랑하면서도 거친 목소리와 돈 주앙의 거칠면서도 로맨틱한 매력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돈 주앙’이란 이름은 카사노바와 함께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돈 주앙은 원래 전설 속의 인물로, 14세기 스페인을 풍미했던 호색가로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전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최초의 작품은 바로 티르소 데 몰리나의 희곡 <세비야의 호색가와 돌[石] 방문자>(스페인어로는 El burlador de Sevilla y convidado de piedra, 영어로는 The Trickster of Seville and the Stone Guest, 1630)이다. 이후 그의 이야기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바니>, 바이런의 서사시 <돈 주앙>을 비롯하여, 국적과 장르를 초월하며 다뤄져왔다.
뮤지컬 <돈 주앙>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돈 주앙은 숱한 여자들을 농락해온 호색가로,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는 동시에 호기심을 받아 온 인물이다. 그러던 중 돈 주앙은 그에게 여인을 빼앗긴 남자와 결투를 벌이는데, 그 결투에서 상대 남자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는 그 남자의 원혼으로부터 치명적인 저주를 받는다. 그 저주의 내용은 다름 아닌 ‘사랑’. 돈 주앙은 그 저주에 따라 마리아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이후 작품은 돈 주앙이 마리아에 대한 사랑 때문에 파멸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돈 주앙은 마리아의 전 애인인 라파엘과 결투를 벌이는데, 그는 충분히 이길 수 있었음에도 마리아를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 라파엘을 살리고, 일부러 그의 칼에 몸을 내어준다.


뮤지컬 <돈 주앙>은 스토리를 일부 각색했지만 여타 작품들처럼 돈 주앙이 저주로 인해 몰락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편, 이 뮤지컬에서 중요한 것은 돈 주앙의 내면이 그 과정에서 변화되고 있으며, 그가 사람들로부터 용서받는다는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비극이지만, 결말은 그리 어둡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작품이 돈 주앙이 겪는 심경의 변화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돈 주앙이 난생처음으로 사랑의 감정 때문에 고통 받는 장면에서 내용과 달리 갈등이 해결된 느낌의 편안한 느낌을 음계를 보여주고, 조명 역시 마치 밝디 밝은 빗살무늬의 흰 빛으로 처리하여 ‘선(善)’이라는 단어를 비주얼로 표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첫 장면부터 사방에서 돈 주앙에게 정신 차리라고 훈계하고, 결말 부분에서는 그 사람들이 그를 용서하며 부드러운 노래를 부른다. 이 정도 되면 이 작품에 ‘돈주앙의 개과천선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붙여야 할 것 같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