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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현실적인 일상이 빛나는 <굿모닝 학교> [No.76]

글| 김소연(연극평론가) |사진| 극단 학전 2010-01-11 6,717

<지하철 1호선>의 본격적인 장기공연이 시작되는 1996년은, 공교롭게도 삼성영상사업단이 제작한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막이 오른 해이기도 하다. 한편 한 해 전인 1995년은 소극장 뮤지컬의 대중성을 확인한 <사랑은 비를 타고>가 개막한 해이다. 이처럼 한국공연계에서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되었던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뮤지컬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대작 라이선스 공연들이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사랑은 비를 타고>와 같은 소극장 뮤지컬이 저변을 넓혀가는 과정으로 전개되었다.


반면 학전의 뮤지컬은 <지하철 1호선>의 장기공연과 더불어 <개똥이>, <모스키토>, <의형제> 등으로 이어졌다. 김민기가 작사, 작곡, 연출을 맡은 <개똥이>를 제외하면, 근래 학전에서 주력하고 있는 어린이 뮤지컬을 포함해 학전의 작품들은 모두 원작을 둔 번안 작품이다. 학전 뮤지컬은 구체적인 사회 상황 속에서 밀도 높은 드라마가 전개되는 원작을 선택하면서도 탄탄한 극적 모티브와 드라마 구조를 빌려올 뿐, 한국 사회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창작에 가까운 번안을 거친다.


특히 번안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음악에 입혀 놓은 가사이다. 음악극 작가로서 김민기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한참을 거슬러 올라 1970년대 말 만들어진 노래극 <공장의 불빛>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은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한 채 불법 테이프로만 유통되다가 얼마 전 정재일의 편곡으로 다시 음반으로 만들어졌다. 한국 대중음악의 거목 김민기는 논외로 하고 음악극 작가 김민기는, 여전히 미완성인 록오페라 <개똥이>의 넘버들에서도 확인되듯이, 드라마틱한 성격과 상황을 포착하는 음악과 노랫말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한국뮤지컬 주류의 흐름이 뮤지컬의 대중성과 산업적 가능성을 향해 전개될 때 학전 뮤지컬은 이처럼 ‘드라마’에 천착하는 음악극의 길을 모색해왔다.


사회적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학전 뮤지컬의 경향성은 사실 소재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드라마’에 대한 천착에서 비롯된다. 이번에 다시 막이 오른 <굿모닝 학교>(정가람 작, 남동훈 연출)는 여러 가지 점에서 학전 뮤지컬이 천착하는 드라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1997년 초연된 <모스키토>의 음악만 남겨두고 번역을 넘어 개작을 한 이번 작품은 청소년이 직접 정당을 만들어 선거에 참여한다는 드라마의 주요 내용을 모두 걷어내고 아이들을 무한경쟁에 내몰고 있는 교육현실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초연 당시 대선을 앞둔 시기라는 시의성까지 더해져 한편의 정치 풍자극으로도 읽힐 만큼, 아이들이 만든 모스키토(모기)당이 기성 정치권을 공략한다는 이야기가 드라마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이 직접 정당을 만들어 선거에 참여한다는 원작의 전개는 비록 허구의 극적 상황이라 하더라도,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다소 거리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 예의 창작에 가까운 번안 부분에서는 공부하는 기계가 되기를 강요하는 한국사회의 풍경이 잘 드러났다. 초연 공연은 ‘아이들의 정치참여’라는 표면적 사건들을 떠나 청소년 인권이 막 이야기되기 시작하던 당시 독립된 주체로서의 청소년을 그리는 극적 우화로 다가왔다. 1999년, 2000년, 2004년으로 이어진 이후의 개작은 ‘모스키토당’이라는 모티프를 따르면서 청소년 드라마를 강화하는 방향이었다. 그러던 것이 <굿모닝 학교>에 와서는 원작의 주요 모티브인 모스키토당을 완전히 걷어내는 데에 이른 것이다.


꼼꼼한 자료조사와 인터뷰 등에 바탕한 번안/극작 작업은 학전 뮤지컬의 특장인데, 이러한 과정은 <굿모닝 학교>가 그려내는 아이들의 일상에서 빛을 발한다. 학교 정문 앞 복장 검사에서부터 교실 풍경까지, 아이들의 일상을 그려가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비즈니스 그리고 은어와 비속어가 뒤섞인 아이들의 입말은 그 자체가 극적 활기를 만들어내는 것인 한편, 비록 똑같은 교복 안에 갇혀 있다하더라도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은 정우, 민이, 베드로, 공주, 똘이, 캥거루인 제 각각의 이름을 갖는 독립된 인간으로서 자기주장을 펼친다. 아이들은 끊임없는 경쟁을 강요하는 현실이 이미 산업이 되어버린 사교육으로 떠받치고 있는 “돈지랄”이라는 것을 알 만큼 맹랑하고, 그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물 위로 차오르며 / 큰 숨을 뿜어내는” 고래를 꿈꿀 만큼 풋풋하다. 그러나 체벌을 대신한 그린마일리지가 학생들을 통제하는 효율적인 관리 수단이 되어 있는 현실에서, 목적도 없이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은 제 옆의 친구에게 “죽여” “밟아”라고 외칠 만큼 분노에 차 있기도 하다. 객석 바로 앞으로 자리를 옮긴 밴드는 일렉 기타와 베이스 기타로 구성된 단출한 구성이지만 록의 강렬한 사운드로 이 답답한 현실에서 터져나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실어 나른다.

 

 

 

 

 

 

 

 

 

 

 

 

 

 

<굿모닝 학교>는 세세한 일상을 통해 만만찮은 현실의 무게를 건져 올리는 한편 극적 활기와 음악적 강렬함을 갖춘 학전 뮤지컬의 내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키토당이라는 극적 모티브를 걷어내고 대한민국 청소년의 삶을 단도직입적으로 풀어낸 이번 작품에서 아이들을 둘러싼 현실의 모습은 도리어 빈약하게 다가온다. <모스키토>에서 아이들의 정치참여는 현실의 다양한 편린들을 만화경처럼 펼쳐놓으면서(초연에서 설경구가 13역으로 분하여 이 만화경에 생기를 주는 연기로 주목받기도 했다), 제각각의 모습들이 잇닿고 겹쳐지게 하며 그 이면을 드러내는 주요한 극작의 모티브였다. 제 눈앞의 이해에 따라 정략적으로 움직이는 정치권의 모습은 비단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자화상으로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입시에 내모는 부모들의 모습으로 심화된다. <모스키토>에서 <카르멘>의 ‘하바나라’를 개사한 엄마들의 합창에서는 현실의 감추어진 이면이 드러나고 폭로된다.


“이전의 틀로는 도저히 현재의 학교 현실을 담을 수 없어 개작을 하게 되었다”는 연출자의 말처럼 <굿모닝 학교>가 보여주고 있는 오늘의 교육현실은 비록 허구라고 하더라도 톡톡 튀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암담하다. 고등학생에서 중학생들의 이야기로 바뀐 것부터가 이제는 대학이 문제가 아니라 자사고, 특목고 등으로 더 일찌감치 입시경쟁에 내몰려 있는 아이들의 현실을 말해준다. <굿모닝 학교>는 이러한 현실을 학교와 사설학원을 모두 거느린 학원기업, 생존을 위해서는 시험지 유출도 마다 않는 기성세대, 여전히 죽음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그리고 그 죽음 앞에서도 계산기를 두드리며 사고사로 포장하는 일련의 사건들로 그려낸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들이 이미 우리가 언론보도로 그 사건들을 접할 때의 충격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모스키토당’을 걷어낸 반면 뚜렷한 극적 모티브를 만들지 못한 이번 작품은 장장 세 시간에 이르는 공연시간의 적지 않은 부분을 인물과 사건 전개의 개연성을 보여주기 위한 설명적 장면들에 할애하고 있다.

 

 

 

 

 

 

 

 

 

 

 

 


 

매력적인 노래들에도 불구하고 느슨한 드라마는 <굿모닝 학교>가 그려내는 현실마저도 흐릿하게 한다. 세세한 현실을 섬기는 것만으로 드라마는 완성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근심과 애정 그것을 노래에 응축한, 그러나 여전히 미완성인 <개똥이>가 떠오르면서, 학전 뮤지컬이 멈추어 있는 그 자리가 안타깝다.

 

* 본 리뷰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6호 2010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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