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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25년간 흔들리지 않은 걸작의 위엄 <레 미제라블> [No.86]

글 |정명주(런던 통신원) 사진 |Michael Le Poer Trench 2010-11-29 8,579

세계 최장기 공연의 기록을 세우면서 1985년부터 지금까지 런던 웨스트 엔드에서 상연 중인 장수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지난 10월 8일로 25주년을 맞이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는 런던 3개 공연장에서 각기 다른 버전의 <레 미제라블>을 소개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감행하였다. 퀸즈씨어터에서 트래버 넌의 오리지널 연출 작품이 새로운 세대의 캐스트 멤버와 함께 롱런을 이어가는 가운데,  25년 전 초연이 공연된 바비컨 센터에서는 로렌스 코너와 제임스 파웰이 팀을 이룬 새로운 연출로 단장한 신규 프로덕션이 9월 14일부터 2주 반 동안 소개 되었다. 더불어 지난 10월 3일에는 콘서트 공연장인 O2에서 전설적인 뮤지컬 배우 레아 살롱가를 비롯하여 역대 유명 출연진과 특별 게스트 출연진으로 구성된 대형 기념 콘서트가 개최되었다. 

 

 

세 가지 버전의 25주년 기념공연
젊은 연출가 팀이 새로 구성한 25주년 기념 프로덕션은 쇤베르그의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들과 알랭 부브릴의 스토리 라인은 원작 그대로 지키면서, 무대 디자인과 연출, 그리고 오케스트레이션에서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레 미제라블>을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존 내피어 디자인의 회전무대와 그 위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던 혁명군의 장면이 사라지고, 대신 매트 킨리가 새로 디자인한 웅장한 나무 무대 세트와 화려한 프로젝션 이미지가 소개되면서 세부적인 연출이 많이 바뀌었다. 양쪽 무대에 자리한 어두운 색의 나무 구조물들이 들고 나면서 주인공 장발장이 죄수로 복역하고 있던 툴롱의 감옥, 탈출 후 8년이 지나 성공한 사업가이자 시장이 된 도시 몽트로이, 다시 9년 후 혁명의 기운이 퍼지고 있는 파리로 무대가 전환된다. 장면이 전환될 때 마다 흑백 에칭화를 닮은 프로젝션 이미지들이 무대 뒷면에 커다랗게 투영되면서 장소의 배경이 표현되었고, 대형 무대장치와 함께 코러스들이 바쁘게 등퇴장을 반복하였다.

 

전체적으로 화려함과 장중함이 증폭된 새 프로덕션의 무대는, 한편으로는 볼거리가 증가한 대형 프로덕션으로 재탄생했다. 장발장이 수양딸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를 혁명군의 바리게이트에서 구해내어 하수구로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는 3D에 가깝게 보이는 프로젝션 이미지가 인상적이었고, 평생 장발장을 쫓던 형사 자베르가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는 장면에서는 무대 전체에 가득한 별빛모양의 전구와 무대 위로 들려 올려지는 대형 다리세트가 나름의 볼거리를 선사했다. 하지만, 건물과 구조물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대형 무대셋트는, 단순한 회전무대를 활용하여 극적으로 순발력 있게 전환이 가능하던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속도감을 따라가지 못하고, 무대전환에 걸리는 시간 만큼 극적인 긴장감이 줄어드는 아쉬움이 있었다.

 


한편, 크리스토퍼 존크와 스티븐 맷칼프, 스티븐 브루커가 심혈을 기울인 새로운 오케스트레이션은 15인조 오케스트라의 명연주와 더불어, 믹 포터의 완벽한 음향디자인과 바비컨 극장의 탁월한 음향시설에 힘입어 쇤베르그의 명곡들을 감동적으로 재현하였다. 존 오웬-존즈가 열창한 장발장의 대표곡, ‘Who am I’와 ‘Bring Him Home’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가창력을 그대로 전달했다 얼 카펜터가 열연한 형사 자베르는 악인이지만 위엄이 가득한 매력적인 캐릭터로서 다시 한 번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고, ‘독백(Soliloquy)’을 부르며 자살을 하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워하는 관객들의 한숨소리가 가득했다. <레 미제라블>의 포스터로 유명한 앙증맞은 소녀이자 장발장의 양녀, 어린 코제트 역에는 소피 다운햄이 천사같은 이미지와 목소리로 큰 박수를 받았고, 혁명군의 꼬마 정찰병, 가브로쉬 역에는 로버트 맷지가 출연하여 소년답지 않은 강렬한 연기와 카리스마로 장내를 압도했다. 성장한 코제트 역에는 TV 오디션에서 앤드류 로이드 웨버에게 발탁되어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으로 전격 발탁되었던 신예 배우, 케이티 홀이 열연했다. 

 


퀸즈씨어터 <레미제라블> 프로덕션에서도 코제트 역으로 호평을 받은 후 이번 25주년 프로덕션 및 기념 콘서트에 캐스팅된 케이티 홀은 청아한 목소리로 큰 박수를 받았다. 팡틴 역의 마델레나 알베르토는 다소 아쉬운 연기를 보였지만, 명곡 ‘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 순간만은 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혁명군의 대장, 앙졸라 역의 존 로빈즈는 카리스마를 발휘한 연기로 무대 위에서 존재감을 과시했고,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역의 가레스 게이츠는 고운 미성으로 열연했다.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 역에는 혼혈가수 로잘린 드 제임스가 흑인 특유의 발성이 살짝 드러나는 창법으로 감동적인 ‘On My Own’을 선사했다. 특히, 전원이 등장하는1막의 마지막 합창곡 ‘One Day More’, 그리고 2막의 프로덕션 넘버인 ‘피날레’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탁월한 오케스트라 연주로 1000여명의 관객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선사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오페라 가수부터 조나스 브라더스까지
10월 3일, 2회에 걸쳐 펼쳐진 기념 콘서트에서는 전설적인 뮤지컬 가수 레아 살롱가, 영국의 대표적인 오페라 가수 알피 보이, <리틀 브리튼>으로 유명한 인기 코미디언 매트 루카스 등 기라성 같은 출연진과 함께 작곡가 쇤베르그, 대본작가 알랭 부브빌, 그리고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역사적인 순간을 축하했다.


50인조 오케스트라 반주에 160명이 넘는 대형합창단이 코러스로 활약한 이번 기념 콘서트 무대에는 오리지널 런던 프로덕션을 비롯하여 현재 런던 퀸즈씨어터 프로덕션, 그리고 바비컨극장에서 공연된 25주년 신규 프로덕션에 활약했던 캐스트 등이 고르게 등장하여 열연하였다. 주인공 장발장 역에는 오페라 가수로서는 최초로 출연한 알피 보이가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며 O2에 모인 만 오천 명의 관객들을 열광케 하였다. 그가 혼신을 다해 열창한 ‘Who Am I’, 애절함을 가득 담아 부른 ‘Bring Him Home’은 가히 노래 실력에 있어서만큼은 역대 최고의 장발장을 재현했다. 자베르 역에는 현재 퀸즈 씨어터 프로덕션에서 같은 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놈 루이스가 출연하여 환상적인 저음의 바리톤의 저력을 발휘했다.  <드림걸즈> 콘서트 무대에서 커티스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놈 루이스는 귀족적인 자태를 가진 흑인 배우로 기념 무대에  걸맞게 위엄이 있는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코제트 역에는 25주년 기념 프로덕션에서 코제트를 맡았던 케이티 홀이 출연하여 다시 한 번 청아한 목소리로 큰 박수를 받았다.  코제트의 엄마 팡틴 역에는 레아 살롱가가 출연하여 잊지 못할 명곡, ‘I dreamed a dream’을 불러 다시 한 번 기립박수를 받았다.  <미스 사이공>의 킴 역으로 유명한 레아 살롱가는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레 미제라블>에서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을, 2006년 리바이벌 프로덕션에서 팡틴을 연기한 바 있는, 그야말로 <레 미제라블>과 역사를 같이 한 배우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무대에 선 그녀는 변함없는 가창력의 열연으로 축하의 자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현재 <러브 네버 다이즈>의 팬텀으로 출연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뮤지컬 배우, 라민 카림루가 이번 콘서트 무대에서 학생 혁명 주도자, 앙졸라 역으로 다시 한 번 돌아와 독보적인 가창력을 자랑했고, 짝사랑의 화신인 에포닌 역에는 신예 여배우, 사만다 바크스가 놀라운 가창력을 선보이며 선전했다. 작품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코제트와 가브로쉬 역에는 25주년 프로덕션에서 좋은 평을 받았던 소피 다운햄과 로버트 맷지가 출연하여 다시 한 번 사랑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 인상적인 출연자 중에는 아이돌 밴드 조나스 브라더스의 멤버 닉 조나스도 있었다. 2003년 무대에서 가브로쉬 역을 맡았던 닉 조나스가 이제 청년으로 성장하여 마리우스 역으로 출연하여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또한 <리틀 브리튼>으로 유명한 영국의 인기 코메디언이자 최근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트위들리 & 트위들럼 쌍둥이 역으로 열연한 바 있던 매트 루카스가 여관주인 테나르디에 역을, 역시 영국의 인기 배우이자, 10주년 레미제라블 콘서트에 출연한 바 있는 제니 갈러웨이가 테나르디에의 부인 역으로 출연하여 축하의 분위기를 더했다.


25주년 기념 프로덕션을 연출한 로렌스 코너와 제임스 파웰이 구성한 이번 기념 콘서트는 거대한 조명 기중기를 무대 장치처럼 활용하여 <레 미제라블>의 전투장면을 인상적으로 재현하였고, 디자이너 매트 킨리와 조명 디자이너 패트릭 우드로프의 화려한 조명으로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혁명의 순간을, 별빛이 가득한 자베르의 자살의 밤을 환상적으로 구현했다.  특히 160명이 넘는 대형 합창단의 코러스와 가창력 위주로 선발된 호화 캐스트의 활약으로 전설적인 작곡가 쇤베르그의 음악은 더 없이 장중하게 울려 퍼졌다. 대형 콘서트장이다 보니, 바비칸극장에서 공연된 25주년 기념 프로덕션에 비해 집중력이 다소 부족했지만, 300여명이 한 무대에서 선보이는 합창은 규모면에서 더 할 수 없는 장중함을 선사했다. 

 

 


출연진들이 전곡을 완창한 후 앵콜 장면이 되자,  1985년 오리지널 로열셰익스피어 프로덕션의 장발장이었던 콜름 윈킨슨과 마리우스였던 마이클 볼이 출연하여 감격의 순간을 선사했다.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된 콜름 윈킨슨이 `One Day More`를 선창하자 만 오천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터뜨렸고, 마이클 볼의 합세로 함성과 박수는 더욱 커졌다.  무대에 선 무려 300여명의 가수들과 함께 관객들 모두가 스크린에 나온 가사를 따라 혁명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한 마음이 되어 축하를 하였다. 1980년 프랑스, 파리에서 <레미제라블>을 처음으로 선보였던 작곡가 쇤베르그와 대본작가 부브릴이 직접 출연하여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고,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 역시 등장하여 <레 미제라블>이 세대를 거듭하여 계속 공연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청소년들로 구성된, 교내 프로덕션의 어린 배우 220여명이 객석을 뚫고 대거 등장하여 관객과 다 함께 합창을 하면서 감동의 축하공연을 마무리했다.

 

<레미제라블>은 1985년 영국이 격심한 경제난과 실업난을 겪던 시기, 공연계의 지원금이 대폭 축소되면서,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로열셰익스피어극단에서 상업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와 손을 잡고 기획했던 작품이다. 사반세기를 지나 아직도 웨스트 엔드에서 상연 중인 탄탄한 작품성의 기저는, 당시 로열셰익스피어극단의 예술감독으로 재임하고 있던 트레버 넌의 문학적인 각색 및 수정, 그리고 극단 배우들과 함께 오랜 리허설 기간을 거쳐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다듬어 작업한 후에야 막을 올렸던 로열셰익스피어극단의 철저한 리허설 과정 등을 들 수 있다. 거기에 오랫동안 트레버 넌과 팀을 이루어 작업했던 디자이너 존 내피어를 비롯하여 당시 영국을 대표하던 최고 수준의 창작 팀의 기여 또한 중요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레 미제라블>의 25주년을 축하하는 2010년 새로운 기념 프로덕션으로 세계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한국의 관객들도 익숙한 회전무대 대신 대형 무대장치와 프로젝션 이미지가 등장하는 새 프로덕션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 새롭게 단장한 이번 프로덕션이 오리지널 프로덕션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레미제라블> 기념콘서트 및 25주년 기념 프로덕션 동영상 보기  https://25.lesmis.com/gallery/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6호 2010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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