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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이정열, 이제 다시 시작이다 [No.115]

글 |이민선 사진 |박진환 2013-04-08 5,342

지난해 12월, 이정열은
<아이다>에서 조세르 역을 맡아 5개월간의
대장정을 막 출발한 참이었다.
그런데 개막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그의 중도 하차 소식이 들려왔다.
건강상의 이유라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놀라워하며 그를 걱정했다.
그러고는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그는
<아이다> 공연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위암을 앓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만큼
밝은 표정으로 관객 앞에 나섰다.
4월, 이정열은 <아이다>와 <넥스트 투 노멀>,
<그날들>까지 세 편의 무대에 선다.
누구라도 동시에 세 작품을 준비하는 것은
무리인 상황이지만, 그에겐 세 마리 토끼 모두
놓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세 작품은
지금까지 삶의 축약판” 같다.

 

 

                              

 

                                                    장소협찬 | 스페이스 화수목(02-792-2020)

 


배우의 열망에 불을 지핀 <아이다>               

뮤지컬 데뷔작 <개똥이>에 이어 가수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하드락 카페> 등의 뮤지컬에 출연했지만, 이정열이 자신을 뮤지컬 배우로 만든 결정적인 작품은 <아이다>라고 말했다. <아이다>가 초연했던 2006년만 해도, 8개월간 장기 공연하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배우로서의 의욕보다는 당분간의 생계 목적으로 오디션을 치렀던 <아이다>에서 비로소 그는 뮤지컬 배우가 된 듯하다고 고백했다. 초연 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조세르 커버. 커버가 뭔지도 모르던 때라 흔쾌히 계약서에 사인을 한 후, 그는 연습에 들어가자마자 커버의 고충과 외로움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었다. 8개월 동안 조세르로 무대에 설 기회는 네 번밖에 없었지만, 기본기를 다지고 무대의 소중함을 알게 돼 그에겐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그가 다시 한번 조세르에 도전하고 싶었으리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시간이 흐른 후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번에는 병마가 그를 가로막았다. 공연 개막 후 암 진단을 받고 무대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치명적인 상태는 아니었고 수술 결과도 좋았다.
그가 수술하고 입원했던 병원은 <아이다> 공연장과 멀지 않았다.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극장을 바라보며, 그가 얼마나 극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을지 짐작이 됐다. “공연 시작 시간만 되면 기분이 이상합디다. 무대에 오르기 10분 전 배우들이 최종 점검을 할 때, 무대감독에게 전화해 전화기 너머로 저도 함께 파이팅을 외치곤 했죠.” 단순한 슬픔 또는 외로움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얼른 나아서 걷고 뛰고, 또 무대에 서고자 하는 열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수술 직후에는 걷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바라 마지않던 <아이다> 무대에 다시 오른 후 그가 느낀 감격은 감히 뭐라 말로 표현되지 않았다. 건강을 자신하며 몸을 돌보지 않던 차에 경각심을 갖게 해줬다며, 그는 “인터뷰 기사를 읽을 배우와 스태프, 관객들 모두 꼭 건강검진 잘 받으시라고 써주세요”라 말하고 허허 웃었다. 그는 예전에 비해 확연히 체중이 줄었고, 목소리에 심겨 있던 단단함은 물러진 듯했다. 여전히 투약과 식이요법으로 치료 중이며 불시에 찾아오는 통증을 호소하지만, 무대에 설 수 있는 지금 굉장히 좋다고 말하며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그에게 웃을 수 있는 강인한 여유가 있다는 게 여간 다행이지 않았다.

 

 

경외와 감사의 대상 <넥스트 투 노멀>             

많은 이들도 그렇게 느끼듯, 이정열에게 <넥스트 투 노멀>은 브로드웨이에도 더 이상 새로운 게 없다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은 놀라운 작품이었다. 배우로서 작품 분석을 할 때마다 섬뜩해질 정도로 대본이 치밀하고, 음악의 완성도도 높다. “타인의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구든 ‘이건 내 이야기’라고 느끼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며, 그는 이 작품에 대한 감탄을 늘어놓았다. “배우로서 이런 말 하면 안 되겠지만, 연습할 때 더 행복한 작품이에요. 힘은 들지만 내 마음의 상처가 꿰매지는 듯하거든요. 누군가가 나를 다독여주는 것만 같은데, 그 누군가가 바로 나더라고요.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나 스스로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 같아요.”
이정열은 초연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작품에 참여한다. 지난 공연보다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은 ‘무엇을 해야 하는 연기’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연기’의 중요성이다. <넥스트 투 노멀>에서 관객들의 눈에 띄는 것이 엄마와 딸의 이야기라면, 아빠 댄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숨겨져 있다. 엄마와 딸 사이에서 그들을 돌보는 댄처럼, 이정열은 조명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도 조명을 받는 동료 배우들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주는 역할을 해야 함을 알게 됐다. 어시스트를 잘하는 포인트 가드처럼. “어두운 곳에서도 늘 무언가를 하지만 정작 내가 조명 속으로 들어왔을 땐, 무언가를 하지 않는 연기를 해야 하더라고요.”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게 기쁜 듯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연습하는 배우들에게 이토록 좋은 작품이라면, 무대와 연출이 가미된 후 관객에게 선보였을 때는 얼마나 멋지겠냐는 말에 이번 재공연을 더욱 기대해본다.

 

 

                               

 

 

추억을 넘어 새로운 도전이 될 <그날들>             

앞서 이야기한 두 작품이 뮤지컬 배우로서 시작과 현재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그날들>은 뮤지컬에 발을 들여놓기 훨씬 전의 이정열을 떠올려 보게 하는 작품이다. 세상을 향해 노래하는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그가 무척 따랐던 선배 가수 김광석의 노래를 엮은 작품이니 말이다. 일견 그와 깊은 인연을 지닌 작품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의가 컸을 거라는 예상과 함께, 어쩌면 그 반대의 마음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광석의 사후, 추모 음반이나 공연 등 그를 기리는 일들이 많이 진행됐다. 좋은 뜻에서 시작한 일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정열의 눈에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단다. 추억을 파는 장사처럼 느껴져, 김광석 주크박스 뮤지컬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도 부정적인 시선이 앞섰다. 한계와 실패 요인이 예상 가능한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김광석의 일생을 이야기할 건가? 김광석의 노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여러 가지 우려로 <그날들>의 출연 제안에도 거절했던 그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젊었던 시절 김광석의 막내 매니저가 <그날들>의 프로듀서가 되어 그에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여차여차해서 한 배를 탄 지금, 그의 심정은?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관객으로 공연 보면서 두고두고 후회했을 거예요.”
김광석은 살아생전에 네 장의 정규 음반을 남겼다. 그가 사랑받은 뮤지션임에는 틀림없지만 히트곡을 손꼽아 보면 사실 그다지 많지 않다. 아바의 수많은 히트곡으로 만든 <맘마미아>와는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날들>의 음악은 조금 낯설다. 게다가 처음 들었을 때 황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청와대 경호원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는 김광석 노래와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이정열 스스로도 우려의 시선을 보냈지만, 막상 대본을 받아들고 연습하다보니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면 이러할 거라고, 뻔하다고 예상하는 관객들에게 보기 좋게 뒤통수를 날려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김광석 모창하기 식의 무대가 될까봐 걱정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동료 배우들이 김광석에 얽매여 따라하듯 부르면 따끔하게 지적하리라 맘먹었는데, 김광석이 불렀던 노래와 동일한 정서를 담고 있을 뿐 <그날들>에서는 그저 뮤지컬 넘버로 받아들여지고 불리고 있어서 그가 나설 일은 없었다고. “드라마가 펼쳐지는 동안 김광석이란 인물은 전혀 드러나지 않아요. 하지만 극장을 나설 때 살포시 웃고 있는 김광석을 보게 될 거예요.” 작품에 대한 우려에서 확신으로 마음을 돌린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개막을 앞둔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점점 더 커졌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5호 2013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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