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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OPLE] <아가씨와 건달들> 송원근, 시간이 쌓아올린 오늘 [No.121]

글 |나윤정 사진 |김수홍 2013-10-08 6,598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참 아름답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한
배우 송원근의 여정은 길고 험난했다.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있었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랜 시간들이 쌓아올린 그의 길은 이제
송원근의 오늘을 밝혀주는 가장 큰 빛이 되었다.

 

 

 

 

송원근은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찬찬히 회상하며 환히 웃었다. 모델을 꿈꾸던 형을 따라 얼떨결에 패션 잡지 <유행통신>의 모델에 응모했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그의 얼굴엔 순수함이 묻어났다. 최근작 <쓰릴 미>의 리처드나 드라마 <오로라 공주>의 나타샤가 남긴 강한 인상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덕분에 마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 그의 과거에서 이름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13년 만에 진짜 제 이름을 찾았어요.” 17세에 잡지 모델로 발탁돼 연예계에 입문한 그는 19세에 1세대 아이돌 OPPA의 멤버 ‘한글’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생방송 도중 무대에서 추락해 발목 복사뼈가 으스러지는 심각한 사고를 당하고 만다. 결국 팀을 떠나게 된 그는 다리에 철심을 박고 재활에 힘쓰며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던 중 재기의 기회가 찾아왔다. 초심을 되새기며 연습생 신분으로 돌아간 그는 새로운 소속사가 마련해준 옥탑방에서 3년간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추운 겨울엔 양말 4개를 신고 눈을 맞으며 연습을 이어갔다. 그 고된 과정을 거쳐 그는 8년 만에 발라드 가수 ‘이불’이란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또 한 번 ‘런’으로 이름을 바꿔 댄스 가수로 전향했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음반 활동을 10년 정도 했는데, 그중 9년을 연습실에서 보냈어요. 그땐 너무 힘들어서 과거에 대한 원망과 후회를 많이 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이 오늘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아요.” 당시 부단히 노력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그는 큰 상념에 빠졌다. 자신의 길에 회의를 느껴 포기하려던 찰나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바로 뮤지컬이었다.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OST 작업을 함께했던 <궁>의 음악감독 하울이 오디션을 제안한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솔직한 자세로 오디션에 임한 결과 스태프들의 만장일치로 뮤지컬 <궁>의 주인공 이신 역을 맡게 됐다. “연습 땐 많이 헤맸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느낌이 달랐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음반 활동은 오랜 연습과 리허설을 거쳐도 무대에 3분밖에 오르지 못하는 반면 뮤지컬은 공연 두세 시간 동안 한 캐릭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확 파고드는 희열이 있었어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죠.”

 

 

 


이후 그는 차곡차곡 무대 경험을 쌓아갔다. <렌트>, <김종욱 찾기>, <아르센 루팡>, <쓰릴 미> 등 매 작품은 그에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즐겁게 공연했던 <김종욱 찾기>는 무대에서 온전한 송원근을 보여줬을 정도로 역할이 자신과 잘 맞아떨어졌고, <쓰릴 미>는 연기의 디테일을 끊임없이 발견해내는 소극장 공연의 매력을 한껏 전해주었다. “<쓰릴 미>는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에요. 무대 위에서 다양한 감정을 시도해볼 수 있었죠. 마지막 공연이 끝난 다음 날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 작품, 다시 또 하고 싶다!”
한편 <쓰릴 미>를 공연하는 사이 그는 브라운관을 통해 배우 송원근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에 출연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여성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게이 나타샤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오디션 제의가 들어와서 최선을 다해 임했죠. 오디션을 보고 나오시는 분들이 이런 역할인 줄 몰랐다며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저 역시 그랬죠.(웃음) 추후에 공연 스케줄이랑 겹쳐서 촬영 팀에 피해를 줄 것 같아 정중히 거절했는데, 임성한 작가님이 끝까지 저를 고집하셨대요. 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스케줄을 잘 맞춰보자고 설득을 하셨죠.” 그렇게 그는 유일무이한 독특한 캐릭터로 드라마에 데뷔했고,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무대가 많이 그리웠어요. 무대는 모든 것이 살아 숨 쉬잖아요.” 이제 그는 <아가씨와 건달들>의 스카이가 되어 다시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게 되었다. “스카이는 굉장히 매력적이고 멋있는 캐릭터예요. 극 속에서 ‘나는 멋있는 사람이야’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들이 안 보일까봐 두려움이 커요. 지금 사람들의 시선이 ‘나타샤’에 많이 맞춰져 있어서 작은 것 하나에도 ‘나타샤’가 보일 수 있거든요.” 이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면서 그는 언제나 그러했듯 한 걸음 한 걸음씩 역할에 몰입해 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상대 배역에 대한 감정들을 잘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사라와 네이슨과의 호흡에 집중하는 중이에요. 상대 캐스팅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스카이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던 뮤지컬이었지만, 이제 그는 무대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뮤지컬은 매 공연이 끝날 때마다 희열을 느낄 수 있어 좋아요. 막이 내린 후에도 피곤함 대신 오히려 더 큰 에너지를 얻어서 집에 돌아가죠. 그 중독성이 저를 끌어당기는 것 같아요.”
지난 13년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송원근. 그는 시간의 깊이만큼이나 겸손함과 성실함으로 잘 다져진 배우인 듯하다. 회사에 출퇴근을 하듯 소속사를 오가던 시절, 정말 절실했던 한 가지 바람은 ‘일을 해보는 것’이었다는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다가도, 이내 힘든 시간이 있었기에 매사에 감사할 줄 알게 됐다고 긍정적인 결론을 내놓는 그의 오늘에 한층 깊은 신뢰가 더해진다. 그 진정성은 최고가 되겠다는 욕심 대신 “앞으로도 계속 자신을 꾸준히 찾아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미래의 바람에도 강한 믿음을 전해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1호 2013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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