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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오프브로드웨이의 신작 뮤지컬, ‘톡식 어벤저 Toxic Avenger’ [No.70]

글 |이곤(뉴욕 통신원) 2009-08-05 7,243

 

뉴욕 공연계의 여름 풍경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든 뉴욕의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는 새롭게 올라가는 작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대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작품들끼리 다음 시즌을 기다리며 평화로운 한때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신작이 대거 쏟아질 예정인 가을 시즌은 브로드웨이 공연계를 다시 한번 뜨겁게 달굴 것이다.


어쨌든 올 여름, 뉴욕 공연계의 관심은 브로드웨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는 분위기다. 다가올 브로드웨이 공연의 배우 캐스팅에 대한 소식이 간간히 지면에 보도되곤 하지만 뉴욕 공연 비평가들은 새로운 작품들이 끊임없이 올라가는 브로드웨이 외곽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50년이 넘는 역사로 인해 이제 뉴욕의 여름 시즌 명물이 된 세익스피어 인 더 파크 페스티벌에는 앤 헤서웨이가 주연을 맡은 연극 <십이야(The Twelfth Night)>가 평론가들의 호평 속에서 공연되었고, 8월에는 세계적인 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음악을 맡은 <박커스의 여신도들>이 공연될 예정이다. 또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컴퍼니 ‘태양 극단’의 뉴욕 초연작 <하루살이들(Les ?ph?m?res)>이 포함된 링컨 센터 페스티벌, 그리고 언더그라운드제로 페스티벌을 비롯한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의 크고 작은 공연예술축제가 새로운 작품을 갈망하는 뉴욕 관객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뉴욕의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프브로드웨이의 신작 뮤지컬 중에서 관심이 모인 작품을 손꼽아 보면, 루실 로텔상을 수상했고 가을 시즌에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는 <펠라, 뉴 뮤지컬(Fela! A New Musical)>과 뉴욕 밖의 언론사에서 활동하는 공연 비평가들로 이루어진 아우터 크리틱스 서클 어워즈(Outer Critics Circle Awards)에서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톡식 어벤저(Toxic Avenger)>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뮤지컬 <펠라>는 브로드웨이의 가을 시즌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뮤지컬 <톡식 어벤저>를 살펴보고자 한다. 뮤지컬 <톡식 어벤저>는 2008년 10월에 뉴저지의 조지 스트리트 플레이하우스에서 초연한 뒤 2009년 4월 6일에 뉴월드 스테이지로 옮겨 본격적으로 오프브로드웨이에 진출하였다.


이 작품이 올라간 뉴월드 스테이지는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전문 극장으로서 네델란드에서 시작해 글로벌 공연 배급, 제작사로 성장한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복합 공연 공간이다. 지하에 199석에서 499석에 이르는 5개의 극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복합공연장은 1년 내내 공연을 찾는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 작품이 공연되고 있는 ‘스테이지 1’은 499석의 중규모의 공연장으로서 최근에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뮤지컬 <록 오브 에이지스>가 공연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공연장에선 이 작품 외에도 현재 오프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뮤지컬로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알타 보이즈>와 <마이 퍼스트 타임> 등이 장기 공연되고 있다.

 

 

 

컬트영화를 뮤지컬로


뮤지컬 <아이 러브 유>로 유명한 조 디피에트로(Joe DiPietro)가 대본과 가사를, 록 밴드 본 조비의 창단멤버이자 키보드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브라이언(David Bryan)이 작곡과 가사를 맡은 이 뮤지컬은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연출은 토니상을 수상한 뮤지컬 <유린타운>의 연출가로 유명한 존 란도가 담당했다.


원작 <톡식 어벤저>는 1984년에 대표적인 컬트영화 제작사 ‘트로마 엔터테인먼트 Troma Entertainment’에서 만든 B급 무비이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들, 그리고 알몸 노출로 유명한 이 영화제작사의 대표작  <톡식 어벤저>는 다른 컬트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상영 당시에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하지만 1985년 말에 뉴욕의 ‘블리커 스트리트 시네마’에서 심야영화로 재상영하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미국의 대표적인 컬트영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 영화는 이전에 이미 두 차례 뮤지컬화 되었다. 첫 번째 시도는 2004년에 <톡식 어벤저: 더 뮤지컬>이라는 제목으로 오마하의 블루 반(Blue Barn)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두 번 째 각색은 <톡식 어벤저: 더 무시킬 Toxic Avenger: The Musikill>이라는 타이틀로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에서 공연되었다. 하지만 두 공연 모두 원작 영화의 명성에 버금가는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영화의 내용은 뉴저지에 사는 순진하지만 좀 모자라는 주인공이 주변 청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유독 물질이 들어있는 통에 떨어지고 난 뒤 초인간적인 힘을 지닌 괴물로 변해 자신을 괴롭힌 불량배들을 응징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원작 영화를 뮤지컬화 하면서 디피에트로와 브라이언은 사랑이야기, 그리고 순진한 소년이 사나운 괴물이 된다는 기본적인 플롯만 유지한 채 여타 부차적인 에피소드들은 모두 제거하였다. 대신 환경문제라는 이슈를 작품의 큰 축의 하나로 추가하였다.


이 뮤지컬의 주인공인 멜빈은 뉴저지의 트롬빌에 살고 있는 순진한 소년으로,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시각장애인 사라를 좋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로부터 도시를 오염시키는 주범인 굿 어스 컴퍼티(Good Earth Company)에 관해 듣게 된다. 그 회사는 트롬빌의 시장이 자신의 주지사 출마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서 도시에 유독물질 쓰레기를 몰래 매립하고 있었다. 음모를 밝히려는 그에게 위협을 느낀 시장은 수하들에게 멜빈을 손봐줄 것을 지시하고, 멜빈은 그들에 의해 방사선물질이 든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하지만 그는 방사선 물질 때문에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괴물 ‘톡시’로 거듭나게 된다. 톡시는 시민들을 위협하는 악당들을 제거하는 한편 시각장애 때문에 그의 변한 모습을 눈치 채지 못하는 사라와의 사랑을 키워나간다. 고전하던 시장은 표백제가 톡시를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를 제거하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다. 결국 톡시는 사라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무공해 뉴저지의 주지사가 된다는 다분히 만화적인 이야기이다.

 

 

 

 

 

빈약한 플롯을 재치 있는 형상화로 극복하다


빈약한 플롯은 이 뮤지컬이 지닌 가장 커다란 약점이다. 브라이언의 음악은 그 자체로는 충분히 뛰어났지만 그리 세련되게 다듬어지지 못한 디피트로의 가사는 작품의 아쉬운 점이다.  뮤지컬 <리틀 샵 오브 호러즈>를 보았던 관객이라면 <톡식 어벤저>에서 그 작품을 곧바로 떠올릴 것이다. 이 공연을 본 많은 뮤지컬 마니아들뿐 아니라 평론가들 역시 두 작품을 즐겨 비교했다. 누군가는 <톡식 어벤저>를 성인용 <리틀 샵 오브 호러즈>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리틀 샵 오브 호러즈>가 지닌 위트와 매력 그리고 음악성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게 이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이다.


이 작품의 장점은 연출과 배우의 노력에 많이 기인하고 있다. 연출은 작품의 빈약한 내용과 인물을 웃음과 재미로 극복하려고 했다. 여주인공 사라가 지닌 시각장애는 유머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사용된다. 사서인 그녀는 책장을 정리하려고 하지만 늘 책은 바닥에 떨어져 어지럽혀진다. 또한 톡시의 커피에 크림 대신 하수구 세척제를 붓기도 한다. 그녀의 엉뚱한 모습은 톡시와의 사랑의 듀엣곡 ‘핫 톡시 러브(Hot Toxie Love)’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다 문을 찾지 못하고 무대 뒤로 사라진다. 사라를 따르던 조명은 공연히 빈 무대 벽만 비추지만 여주인공은 무대 뒤를 헤매다 한참 뒤에 반대편 무대를 통해 나타난다.


연출은 캐릭터의 진실성 보다는 코믹함을 선택했다. 이러한 의도는 곳곳에서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괴물로 변한 아들을 발견한 어머니는 녹색 오염물질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보고는 ‘빨리 씻고 어서 학교 가라’고 말한다. 이로써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해 했던 톡시의 고민은 일순간 무색해진다.


연출은 오염물질이 담긴 드럼통을 무대에 가득 배치함으로써 제목과 주제에 걸맞는 무대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회전무대를 이용해 다양한 장소의 변환 ?도서관, 톡시의 집, 사라의 집, 시장의 집무실, 실험실 등?을 신속하게 이루어내었다. 무대는 충분히 기능적이었지만 미적인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가로로 넓은 스테이지를 가득 채운 드럼통은 관객을 압도했지만 한편으론 무대를 다소 답답하게 만들었다.


연출은 또한 소도구를 이용해 연극적인 재미를 많이 만들어 냈다. 원작 영화에서는 절단된 사지, 피, 내장 등을 통해 잔혹한 폭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적인 잔혹함이 무대에서 사실적으로 재현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자칫하면 그 어설픔으로 인해 관객의 조소를 자아내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 이에 연출은 가짜 팔, 가짜 피, 가짜 내장 등을 의도적으로 노출시켜서 사실성을 포기한 대신 코믹함을 강조 한다. 이전에 같은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뮤지컬 <이블 데드: 더 뮤지컬>처럼 관객에게 피까지는 아니지만 물이라도 튀기는 등 곳곳에서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연출의 노력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배우: 코믹성과 변신의 재미


이 작품의 백미는 배우에 있다. 다섯 명의 소규모 캐스트이지만 모든 배우들의 열정 넘치는 연기는 이 공연을 관객과 함께 살아 숨쉬게 만들었다. 주인공 톡시 역을 맡은 닉 코데로 (Nick Codero)는 괴물로 변한 캐릭터의 갈등을 코믹함과 진지함을 유연하게 오가며 형상화 해 내었다. 캐릭터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면도 있었지만 연극적인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었다고 느껴졌다. 특히 1, 2층에 앉은 관객들 모두를 놓치지 않고 상대하는 그의 폭넓은 시야는 관객의 시선을 무대에 집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톡시의 여자친구 사라 역을 맡은 배우는 캐릭터의 천연덕스러움을 살린 과감한 연기로 관객의 호응을 자아내었다. 그녀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의도적으로 삽입된 무수한 개그적인 설정을 어색하지 않게 관객이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시장과 톡시의 어머니 역을 같이 연기한 배우 낸시 오펠(Nancy Opel)은 뮤지컬 <유린타운>으로 토니상 후보에 지명된 관록있는 여배우이다. 그는 어머니와 시장을 동시에 무대에 보여줌으로써 무대 위에서 연기변신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구현하였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패러디 한 듯, 사악한 시장과 어머니의 의상을 반반씩 걸치고 두 역할을 번갈아 가며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 공연의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를 만들었다.


코믹한 연기변신의 압권은 2명의 조연배우에 의해 이루어졌다. 두 배우는 사악한 시장에게 성적으로 속박된 과학자, 시장의 하수인들, 사라의 여자친구들, 경찰들, 살해당하는 노파 등 무수한 역할을 쉴 새 없이 번갈아 가며 보여주었다. 특히 마지막에 주인공을 추격하는 장면에서는 두 배우들이 지금까지 등장했던 모든 캐릭터들을 빠른 의상 갈아입기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 장면을 마치 전체 공연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 들도록 만들어 내었다.

 

최근 뉴욕의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은 그 자체로서의 독창적인 성격보다는 브로드웨이를 향한 징검다리 같은 느낌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다분히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이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브로드웨이 공연과 변별되는 독창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조금 덜 제작비가 들어가고 규모가 축소된 브로드웨이 공연이라고 할까?

 

하지만 <톡식 어벤저>가 보여주듯이 오프?브로드웨이의 공연의 매력은 관객과 배우의 친밀성을 통해 가장 잘 발산된다. 또한 작은 극장이 가지는 장점을 적극 이용한다면 브로드웨이의 공연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세한 작품도 관객의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극장 규모의 차이뿐 아니라 내용과 형식에서도 차이가 나는 독창적인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을 많이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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