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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새로운 형식의 뮤지컬 <원스> [No.105]

글 |정예경(뉴욕 통신원) 협력초고 | 류해정 2012-06-18 3,891

입소문만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인디 영화 <원스>가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또 한 번의 모험을 하고 도약에 성공했다. 공연을 본 소감은 영화를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뮤지컬 <원스>는 공연 포스터에 써있는 대로 ‘새로운 뮤지컬’임이 분명하다. 독특한 시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을 잘 살려낸 웰메이드 뮤지컬. 잔잔한 인디영화 <원스>가 어떻게 화려한 브로드웨이에서 살아남아 가장 핫한 작품으로 급부상한 것일까?  

 

 

 

영화 <원스>와 뮤지컬 <원스>의 성적과 그 간의 행보
1억 7,500만원이라는 저예산으로 17일 만에 촬영을 마치고 2,340억 원에 가까운 수입을 올리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독립영화 <원스>는 어딘지 모르게 <비포 선라이즈>를 닮은 예쁘고 잔잔한 음악 영화다. <원스>를 보면 흔히 말하는 “인생은 한방이다”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오스카 음악상을 거머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브로드웨이의 히트작 대열에 올라서서 연일 매진행렬을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 말이다. 급기야 올해 토니상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원스>에는 클라이막스도, 그럴듯한 대사도, 선정적인 장면도 없고, 미남, 미녀까지도 없다. 분명 여자, 남자가 나와서 사랑 얘기를 하는데 그 흔한 프렌치 키스 장면 하나 없다니.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이렇게 오래 기억되고 다른 장르로 재생산될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영화가 우리의 현실을 관조하고 말없는 위로를 건네주는 데 있다. 보통 사람들의 꼬여버린 삶과 사랑,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답답함이 음악으로 표현되어 러닝타임 내내 흐르고 있고, 아련함과 따뜻함의 정서가 공존하는 그 선율들은 참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솔직히 매일 명품 백을 바꿔가며 뉴욕의 명소에서 멋진 남성과 당당히 데이트를 한다는 할리우드의 환상은 우리와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 아닌가). 

 

 

독특한 오프닝
<원스>의 오프닝은 특별하다. 관객참여형 오프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공연 시작 10분 전 객석에 입장한 필자는 어리둥절해서, 상황 파악을 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공연 시작 30분 전과 인터미션에 청중들을 무대 위로 끌어들여 배우들과 함께 펍에서 잼세션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무대 위에 올라간 사람들에겐 뮤지컬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주거나, 혹은 미처 섞이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있는 관객들에겐 아이리쉬 펍의 북적대는 모습을 관람하는 듯한 느낌(실제로 뮤지컬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런 모습들이 기본 배경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은)을 주고 있었다. 공연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연주자들을 남겨둔 채 관중들은 하나 둘씩 자기 자리를 찾아 내려가고 마침내 주인공 남자의 기타 연주로 극은 시작되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작’은 없었다.

 

 

<원스>는 액터-뮤지션 뮤지컬?

<원스>에서는 여주인공의 어린 딸을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기타, 만돌린, 벤조, 첼로 등 적어도 하나 이상의 악기를 연주한다. <원스>도 액터-뮤지션 뮤지컬인가? 그렇다. <원스>는 비록 클래식주자들의 현란한 연주 대신, 아이리쉬 스타일과 록 밴드용 악기들이 쓰이긴 했으나, 분명 액터-뮤지션 뮤지컬의 형식을 많이 차용했다. 하모니를 이루며 악기를 연주하는 배우들의 모습 자체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트는 신에서조차 13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 상주하고 있는 건 조금 아쉬웠다(배우들은 자신이 연기, 노래를 하지 않을 때 다른 배우의 반주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퇴장할 수 없다).

이것은 <원스>라는 작품이 가진 단점이 아니라, 액터-뮤지션 뮤지컬이 가진 태생적 난점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정석대로라면 무대 세트가 전환될 때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전환음악을 연주해주어야 하는데, 액터-뮤지션 뮤지컬은 전환음악이 필요한 시점에 배우들이 퇴장을 하지 못하고 연주를 해야 하므로 무대 언어로서의 전환이 의미가 없어지거나 물리적인 세트 전환이 어렵다. 따라서 존 도일 연출의 <컴퍼니>처럼 미니멀한 세트을 쓰면 오히려 관객들은 상상의 여지가 많아진다.

하지만 <원스>처럼 아이리쉬 분위기라는 특정 컨셉을 가지는 작품의 경우, 무대미술이 공간을 사실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디테일을 더하면 더할수록 무대 전환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따라서 원 세트가 가장 안전한 방법이란 결론이 나오고, 결국 조명을 십분 활용해서 여러 가지 공간을 연출시켜내는 쪽으로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굳이 이런 점을 문제점으로 꼽는다면, 앞으로 이 장르에서 무대미술과 연출을 하는 아티스트와 테크니션들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귓가에 울리는 음악과 형식을 살려준 안무
<원스>의 강점은 멋진 대사가 없더라도 화면에 촘촘히 스며든 섬세한 감정 변화가 음악으로 전부 표현된다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했는데도, 영어로 하지 않아서 남자는 알아듣지 못하고 지나칠 때의 그 아련한 감정은 4분짜리 노래 ‘Falling Slowly’에 모두 응축되어 있다. 이 노래는 여자와 남자가 만나는 1막 처음과,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2막 마지막, 이렇게 정 반대의 상황에 나오며 수미상관의 아름다운 형식미를 보여준다. ‘Falling Slowly’는 형식적으로 보면, 멜로디 재료가 A와 B밖에 없는 아주 단조로운 구조의 곡이다. 그 흔한 팔분음표도 없이, 담담한 4분음표로 우직하게 끌고 가는 멜로디, 그리고 반복되는 단순한 코드진행.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힘 있는 이 음악을 듣기 위해 사람들은 극장을 찾는다.

스티브 호겟(Steve Hoggett)의 미니멀한 안무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 낸다. 역동적이며 큰 제스처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안무와는 달리, 단순한 움직임 혹은 행위 예술에 가까운 안무를 선보였다. 어쩌면 이것 또한 액터-뮤지션 뮤지컬 장르의 부산물이다. 배우들은 계속 악기를 들고 언제든 연주할 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동작을 크게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탭을 포함한 점프가 많은 군무가 어렵거니와, 음향적 측면으로도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단조로울 수밖에 없는 안무를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보이면서도 의미가 전달되도록 짜느냐가 관건이다.
안무가들의 경우 이런 안무에 도전하는 것을 더 선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암묵적인 공식으로 굳어진 브로드웨이풍 안무의 틀을 벗어나서, 몸짓으로서 스토리를 표현한다는 것은 굉장히 예술적인 작업 아닌가. 연주에 필요한 악기 그 자체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안무가의 고민거리일 것이다. 악기를 배우 캐릭터, 움직임과 결합시켜서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에 도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미니멀해 보이는 액터-뮤지션 뮤지컬 안무는 더욱 창조적인 발상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액터-뮤지션 뮤지컬의 안무가는 연주 때문에 안무가 제한받는다고 생각을 넘어서, 연주를 안무의 차원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함은 물론이고, 연주하는 모습을 안무의 한 부분으로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함도 갖추어야 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5호 2012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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