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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아란 케이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 달과 별의 세계로부터 지상의 여왕으로 [No.96]

글 |김영주 사진 |박인철 2011-10-04 5,077

영국의 인기 진행자 조나단 로스가 자신의 이름을 건 BBC 다큐멘터리에서 일본의 문화를 소개했을 때,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자랑스럽게 내세운 스타는 아란 케이였다. 남자 역(男役, 오토코야쿠)을 맡는 배우들이 으레 그렇듯이 날렵한 느낌의 짧은 머리에 단정한 정장을 입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아란 케이는 2005년 내한 공연 당시 <더뮤지컬>과 인터뷰를 할 때처럼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그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위화감을 줄 만큼 비할 데 없이 화려한 다카라즈카에서 재일동포로는 처음 톱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그녀가 퇴단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도 2년이 지났다.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다카라즈카 스타들이 보통 그렇듯이 뮤지컬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겠구나 싶었던 그녀의 이름을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견했다. 영국이 사랑하는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가 첫 내한 공연작인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타이틀롤로 선택한 아란 케이를 한 계절 앞서 만났다. 소탈하지만 한 점 흐트러짐이 없는 관록의 여배우와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더뮤지컬>과는 두 번째 만남인데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죠. 퇴단 전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2005년에 한국에 왔을 때는 아직 톱은 아니었고, 그 바로 아래 급인 준 톱이었지요. 당시 다카라즈카를 좋아하는 한국 팬들이 따듯하게 맞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에 톱이 되어서 2년 반 동안 그 자리에 있다가 퇴단을 했고, 그 후 뮤지컬에 주로 출연을 했는데 콘서트도 했어요. 이번에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 출연을 하게 되었고, 덕분에 이렇게 한국에 다시 오는 멋진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입단을 할 때도 3년이나 낙방의 아픔을 겪어야했고, 그 후로도 톱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실패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시간을 겪으면서도 자긍심에 상처를 받지 않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타고난 성격 자체가 남에게 지기를 싫어해요. 그 성격대로 떨어질 때마다 다음에는 꼭 붙어야겠다고 의지를 불태웠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정말로 무대를 좋아하고, 춤과 노래와 연기를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극단에 들어가기까지나 입단한 후의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있을 때는 톱이라는 하나의 목표가 분명하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면, 퇴단 이후에는 배우로서 또 다른 지향점을 찾아야 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목표를 찾았습니까? 지금은 확고하게 목표가 정해져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새로운 경험들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꿈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단계이지요.

 

그 과정에서 이번 연극이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캐스팅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연습은 시작했습니까? 니나가와 연출님께서 직접 캐스팅 요청을 해주셨습니다. 저를 선택해주신 거죠. 아직 연습은 들어가지 않은 상태고요, 니나가와 연출께서 ‘기대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강한 여성인데 당신이라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굉장히 기뻤지만, 그만큼 두렵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인 인물이자 거의 신화적인 인물인 클레오파트라라는 역을 맡는다는 것이 여배우로서 부담스러운 면도 있고, 욕심이 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죠.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라는 영광스러운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니 꼭 성공을 시켜야 할 것이고요. 이 공연을 마친 후에는 제 안에서 소중한 무엇인가가 다시 생겨날 것 같다는 예감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배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대표작들에서 맡아온 역들이 드라마틱한 운명의 주인공이 많았습니다. 그런 비극적이고 격렬한 이야기에 끌리는 편인가요? 확실히 상처를 가지고 있거나 그늘진 과거가 있는 어두운 역할들이 저에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코미디나 밝은 뮤지컬에 출연하는 것도 좋아해요. 하지만 그런 역할보다도 상처를 입은 인간을 연기하는 것이 좀 더 보람이 있다고 할까요. 그런 쪽이 저로 하여금 좀 더 연기하고 싶게 만듭니다.

 

그런 묵직한 역할의 비극에 몰입한 후 무대에서 내려오고 나면, 그 잔영 때문에 일상에서도 힘들지는 않으세요? 그런 역할을 할 때는 사생활에서는 일부러 더 즐거운 일을 많이 찾아서 하곤 해요. 그래서 괜찮습니다. 물론 그런 역할을 함으로써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발견하고 나에게 이런 면도 있구나 하면서 스스로 놀라기도 하지요.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췄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 제가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가라오케를 좋아했어요. 세 살 때부터 샹송을 번안한 곡을 좋아했어요. 당연히 어린아이가 이해하고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를 담은 곡이었는데 그 노래를 즐겨 부르고, 칭찬도 많이 들었어요. 춤은 소학교 3학년 때 발레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배우게 됐는데, 발레 학원에서 매해 발표회를 했죠. 가족들이 보러오면 그 앞에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춤을 췄던 걸 기억합니다. 특히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연극부 활동도 하셨던 분이라,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니까, 딸이 하는 것도 참 좋아하셨어요. 늘 응원해 주셨죠.

 

이번에 조부모님의 고향인 진주를 방문했다고 들었습니다. 오기 전에 그분들께 들은 이야기가 있었나요? 아버지께서 지금은 친척들이 없을 거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진주에서 촬영을 하던 중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시라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돼서, 저희 할머니 성함을 말씀드렸더니 그분이 나중에 조사를 해주셨어요. 지금 진주에 친척이 살고 있다고, 그런데 그 소식을 서울에 온 후에 전화로 연락을 받아서 만나 뵙지는 못했어요.

 

진주는 남쪽 끝에 있는 중소도시고 보통의 일본 관광객들이 찾는 곳은 아닌데 어떠셨어요? 여기 오기 전에는 굉장히 시골이라고 들었는데 막상 가보니까 그렇게 시골도 아니었습니다. 신기했던 게, 저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일본에서 사시던 곳과 진주가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 싶을 만큼 닮았다는 거였어요. 꼭 아는 곳에 온 것 같아서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경남 출신이라서, 예명의 ‘케이’가 그 ‘경’자에서 따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웠어요. 동향 분이시네요. 굉장히 기쁩니다.(웃음)

 

이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처음 의미를 모르고 들었을 때는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랑 전설에서 따온 ‘아란’과 선조가 살던 곳인 경상도의 첫 자를 합친 것이라는 뜻을 알고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확고한, 용기 있는 여배우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별히 제가 용감한 건 아닙니다. 단지 제가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뿌리를, 그 원점을 예명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지은 것이니까요. 하지만 듣는 분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현대 배우들 중에는 남성과 여성을 모두 연기하는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 특별한 경험이 배우로서 본인에게 어떤 남다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계속 남자 역을 맡다가 <왕가에 바친 노래>라는 작품에서 처음 여자 역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대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상대역을 바라보다 보니 ‘아, 이렇게 좀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어떤 이상적인 이미지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남자 역을 맡게 됐을 때는 이전에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습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글쎄요. 제가 연기했던 남자 역과 진짜 남자는 또 다르기 때문에 그 경험을 지금 살리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어떤 작품을 할 때 내 안에 이런 어두운 부분도 있구나 하고 깨달은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어떤 특정한 작품은 아니고요, 매번 공연을 하면서 역할에 대해 고민을 하고 공감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데, 예를 들어서 나는 왜 이렇게 비관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내가 정말 싫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고, 제가 발견했던 싫은 제 모습에 대해서 더 깊이 드러내기는 어려워요.

 

연기를 한다는 것은 이 자리에서 말씀하기 어렵다고 했던 그 어두운 면까지 관객들 앞에서 모두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무대에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힘들지 않으세요? 물론 그런 적이 있습니다. 내 본연의 모습이 무대 위에서 나와 버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그 사실을 들키지 않도록, 지금 보이는 모습이 내가 아니라 내가 연기하는 극 중 인물의 것인 듯 보일 수 있게 연기를 하지요.(웃음)

 

오사카에서 다카라즈카 배우들과 팬들을 멀찍이서 본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독특한 정서를 가진, 현실과 구별되는 듯한 세계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성년자였던 시절부터 몸담아왔던 그 세계 밖으로 나왔을 때 어떻게 적응을 하셨나요? 무대 밖에서나 위에서나요. 다카라즈카에 있을 때는 거의 차로 이동을 했기 때문에 퇴단 후에 처음 한 일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통의 방식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삶에 익숙해지고 싶었습니다. 인간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같으니까 의식적으로 연기의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카라즈카에서는 아무래도 남자 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과장된 표현이 다소 필요했지요. 지금은 그런 면들을 떼어내고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게 된 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제가 주로 뮤지컬을 해왔고, 정극은 처음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또 다른 변화가 있겠지요.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대본을 보면서 이 장면을 빨리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신이 있으세요? 멋진 장면들이 정말 많아서 딱히 하나를 꼽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지금은 사실 이걸 빨리 해보고 싶다기보다는 내가 정말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조금 더 많습니다.(웃음) 사실 니나가와 선생님이 이 대본을 어떻게 연출을 하실 것인가가 정말 궁금합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독사에게 물려서 자살을 할 때, 그 순간이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가 큽니다.

 

한국에서도 뮤지컬 배우들이 노래도 춤도 없는 연극 무대에 처음 서게 될 때는 부담감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극 데뷔작으로 연극 중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는 셰익스피어 극을 하는 것이 정말 큰 도전일 텐데, 그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지, 있다면 그 확신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도 어떤 일이 있어도 제가 그것을 다 극복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믿음이지요.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해서 나는 할 수 있다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꼭 성공해 보일 것이라는 자신감은 있습니다.

 

공연을 하게 될 엘지아트센터는 돌아보셨나요? 첫인상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아주 많은 무대에 섰는데, 그중 가장 애착을 느끼는 극장은 어디인지도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극장이라서 놀랐어요. 좀 더 소규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로 깊이가 있는지는 올라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객석이 3층까지 있는 것을 보고 저 끝까지 목소리가 전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됐습니다. 그리고 객석이 파란색인 걸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일본에서는 극장의 좌석은 모두 붉은색이거든요. 객석은 푸른색이고 벽은 나무색이어서 정말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시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오랜 세월 서왔던 다카라즈카 대극장입니다. 굉장히 큰 극장이에요. 3천 석 이상이고, 옆으로 넓게 펼쳐진 무대라 그곳에 익숙해져 있다가 다른 극장에 가면 답답함을 느끼곤 했죠. 그런데 올해 이벤트가 있어서 퇴단 이후 처음으로 딱 하루 그 극장에서 공연을 했는데 새삼 이렇게 큰 극장이었나 싶어서 다리가 떨릴 만큼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그 무대에 익숙해지기까지 정말 긴 시간이 걸렸을 텐데 몇 년 만에 그만큼 긴장을 하게 됐다니 좀 억울하셨을 것 같은데요. 억울하다, 그런 느낌은 없었고요. (웃음) 다시 한번 그곳에 가서 정말 이렇게 큰 무대에서 내가 매일매일 섰구나라는 생각에 감개무량했습니다. 연기자로서 이렇게 큰 공간을 메우는 연기를 내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하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마음을 전하고 설득을 시키는 것도 어렵고 의미 있는 일인데, 삼천 명을 앞에 두고 그런 일을 한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잖아요. 배우로서 그 무대에 서는 동안 관객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성취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음… 다카라즈카는 현실적이지 않은 세계, 이른바 꿈의 세계를 그리는 공연이잖아요. 그런데 꿈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리얼한, 현실적인 무언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극장이 작으면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전달을 할 수 있지만 대극장에서는 움직임이 커져야 하는데, 그렇게 크게 움직이면서도 관객들이 리얼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고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얼마나 전달이 되었느냐… 글쎄요. 확신은 없지만 팬 분들이 제 연기를 보고 감동을 해주셨으니 어느 정도는 전달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직 연습을 시작하기 전이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적겠지만, 그래도 한국 관객들에게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이런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일단 니나가와 연출은 독특한 세계관과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분이시니까 한국의 팬 여러분들이 마음에 들어하실 만한 특별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도전하는 정극이고,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기에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들을 다 극복하고, 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고, 니나가와 연출과, 안토니 역의 요시다 씨와 함께 정말 온몸을 바쳐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테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6호 2011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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