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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프리뷰]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 이미지극의 대가 로버트 윌슨이 온다 [No.84]

글 |박병성 사진제공 |국립극장 2010-09-14 7,000

로버트 윌슨이 온다. 10년 전 입센의 <바다의 여인>을 이미지극으로 연출한 작품이 당시 문예회관 대극장(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파란 도화지 같은 벽, 현실 속의 인물이 아닌 듯 느릿느릿 걷는 여인, 시적인 대사. 이미지로 표현한 로버트 윌슨의 <바다의 여인>은 국내 공연계에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로버트 윌슨은 서사보다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는 실험극을 만들어온 세계적인 연출가이다. 그의 작품에서 서사는 단순해지고 빛과 소리 그리고 무대가 극의 전면으로 나선다. 로버트 윌슨이 이렇게 특별한 연출관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경험에 기인한다. 어린 시절 말더듬이었던 그는 언어가 아니어도 의사소통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그림과 건축을 배운 경험이 서사보다는 이미지에 더 반응하게 만들었다. 특히 버드 호프만에게 신체 인식 기법을 배운 것은 그의 연출 스타일을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심신장애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이미지가 이성적 언어를 넘어서는 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연출가이며 무대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는 조명이 많이 사용되고 배우들의 움직임은 일상적이지 않고 매우 느리거나 양식적이며, 무대는 심플하고 상징적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어린 시절 언어를 배제하고 생활했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의 명성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작업은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개막식 때 계획한 <남북전쟁(The Civil War)>일 것이다. 총 6파트로 나누어졌으며 이것을 모두 공연하면 12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예산 부족으로 그중 일부만이 실연되었다.


로버트 윌슨이 연출하고 출연하는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Krapp`s Last Tape)>가 2010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해외 초청작 중 하나로 초대된다. 한 명의 배우가 그가 녹음한 목소리와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독백을 하며 극을 전개하는 1인극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매년 생일마다 자신의 은신처인 골방에 들어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녹음을 한다. 70세 생일을 맞은 노인은 자신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지난 30년간의 녹음을 듣는다. 그는 ‘한 여인과의 관계가 끝났다’는 부분을 반복해서 듣는다. 녹음된 자신의 이야기를 듣거나 대화를 나누며 그는 그 여인이 진실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로버트 윌슨의 모든 작품이 그렇듯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역시 스토리보다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국내 한 일간지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1시간짜리 연극에 조명만 200번쯤 바뀐다고 한다. 그만큼 조명이나 무대, 음향의 역할이 중요하다. 빛과 그늘, 침묵과 굉음. 생을 마감하는 한 노인이 그의 생의 마지막 사랑을 반추하며 재생하는 녹음기. 그리고 나직한 읊조림. 이러한 이미지들이 철저히 계산된 배우의 미니멀한 움직임과 어우러져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차가운 이미지의 형식주의에 갇혔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은 늘 새롭고 독특하다.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과 만나는 것은 늘 설렌다. 게다가 이번에는 직접 연기와 무대디자인까지 맡아 온전히 로버트 윌슨 본인의 스타일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다.

 

9월 24일~25일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 2280-4115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4호 2010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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