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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SPECIAL REVIEW] <헤드윅>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버전 [No.129]

글 |박천휴(작가/번역가) 사진 |Joan Marcus 2014-07-11 4,833
화려하게 반짝이는 <헤드윅>

<헤드윅>이 돌아왔다. 그것도 브로드웨이로. 1998년 오프브로드웨이에 처음 올라간 <헤드윅>은 ‘거의 여자가 될 뻔했고, 거의 록스타가 될 뻔했던’ 헤드윅만의 독특하고 거칠면서 감동적인 이야기, 글램록과 펑크로 채워진 힘 있는 음악과,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에서 빌려온 시적인 가사로 수많은 컬트 팬을 모으며 2년 넘게 공연됐다. 2001년에는 공연의 원작자이자 주연을 맡았던 존 캐머런 미첼이 직접 연출한 동명의 영화로 재탄생되어 그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과 관객상까지 받으며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매년 무대에 오르는 가장 인기 있는 뮤지컬 중 하나인 <헤드윅>은 지금껏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스웨덴, 캐나다, 브라질 등 수많은 나라에서 계속해서 ‘헤드헤즈’(헤드윅의 팬들을 지칭하는 말)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헤드윅>은 인기 TV 드라마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를 앞세워 예전보다 커진 규모의 무대에서 <스프링 어웨이크닝>, <아메리칸 이디엇> 등으로 인정받은 연출가 마이클 메이어의 세심한 지휘 아래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데뷔식을 치렀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퀴어’이자, 외로운 소수를 대변하는 인물 헤드윅의 모놀로그에 가까운 이 작은 공연은 2014 토니상 최우수 리바이벌 뮤지컬,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연출상 등 8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있는 상태다. 이처럼 <헤드윅>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시작된 지 16년이 지난 현재,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며 이번 시즌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로 자리 잡았다. 

이번 <헤드윅>은 전보다 훨씬 규모가 커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면서 새로운 설정들이 추가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완벽하게 새로워진 무대. 무대 위엔 폭격에 폐허가 된 듯한 도시의 풍경 (무너진 장벽, 폭발한 자동차의 잔해)이 펼쳐져 있다. 지금 <헤드윅>이 공연하고 있는 이 무대가 실은 <허트 로커: 더 뮤지컬>이라는 가상의 뮤지컬이 공연했던 세트인데, <허트 로커>는 흥행에 참패한 나머지 단 며칠 만에 공연을 중단했으며, 덕분에 자신이 ‘운 좋게’ 이 무대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공연 초반에 나온다(이 대목에서 헤드윅은 자신이 어떻게 극장주를 설득했는지 그답게 야하고 짓궂은 농담을 던진다). <빅 피시>의 세트 디자인과 <애덤스 패밀리> 등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디자이너 줄리언 크로우치의 이 아름답고 낯선 세트는, 헤드윅의 고향인 베를린의 무너진 장벽과 묘하게 대구를 이루며 정서적 울림을 준다.

<스프링 어웨이크닝>, <아메리칸 이디엇>, <넥스트 투 노멀> 등을 작업한 베테랑 조명디자이너 케빈 애덤스의 정교하고 효과적인 조명 또한 화려하게 반짝이거나, 친밀하게 빛을 발하며 이 무대에 힘을 실어준다. 연출을 맡은 마이클 메이어는 본인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세련된 연출력을 이번 <헤드윅>에서도 맘껏 발휘한다. 오리지널 프로덕션 <헤드윅>이나 영화의 퀴어스럽고 거친 비주얼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개성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비주얼이라는 게 전반적인 느낌이다. 이 세 사람은 이번 토니상에 나란히 연출상, 무대 디자인상, 조명상 후보에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헤드윅>에 참여했던 의상과 메이크업·가발 디자이너들이 이번 프로덕션에도 그대로 참여하여 <헤드윅> 특유의 분위기를 브로드웨이에 성공적으로 옮겨 놓았다. 이렇게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헤드윅>은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핸섬’한 느낌이다. 마치 모두가 열광하는, 인기 많은 록스타같이 말이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하듯, <헤드윅>은 프레스 티켓조차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매진됐다. <헤드윅>이 공연되는 벨라스코 극장 안은 공연 시작 전부터 기대와 흥분에 가득 찬 관객들의 열기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듯했다. 주인공 헤드윅 역의 닐 패트릭 해리스가 공중에서 등장하는 순간 시작되는 관객들의 함성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닐 패트릭 해리스의 무대 위 존재감은 인기 TV 드라마들을 통해 쌓은 그의 명성과 경력에 걸맞게 자연스러우며 압도적이다. 그는 헤드윅이란 인물의 상처 많은 과거로부터 비롯된 방어적이면서 공격적이며, 허무주의적이면서 고약한 성격이 묻어나는 말투와 표정, 손동작은 물론이고, 때때로 꽤 고난도의 안무 동작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내며 조금도 힘에 부치는 기색 없이 공연을 이끌어 나간다. 그래서 무대 위의 닐 패트릭 해리스를 보고 있으면, TV 스타로만 알고 있던 이 배우가 무대 배우로서의 기본기도 무척 탄탄함을 깨닫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닐 패트릭 해리스 특유의 약간은 짓궂으면서도 굉장히 친근한 쇼맨십과 유머 감각은, 극도로 과장된 헤드윅 가발에 전혀 눌리는 기색이 없다. 이러한 그의 스타성은 사실 굉장히 날이 서고 어두운 이야기인<헤드윅>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조차 이 공연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닐 패트릭 해리스가 부르는 <헤드윅>의 뮤지컬 넘버는 대체로 존 캐머런 미첼보다 기술적으로 훌륭하게 들리나, 때때로 헤드윅이 아닌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의 노래를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나 감정적인 발라드 넘버들을 듣고 있을 땐) 종종 존 캐머런 미첼의 오리지널 헤드윅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있는데, 오프브로드웨이 초연과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오랫동안 각인된 헤드윅의 이미지에 애초에 이 캐릭터의 창시자인 존 캐머런 미첼이라는 아티스트의 개성이 많은 부분 오버랩 되어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약간의 감상주의적 접근과는 별개로, 현재 닐 패트릭 해리스에 대한 현지 언론의 평가는 굉장한 호평 일색이다. 지금껏 TV 속에서 친근한 이미지였던 이 배우가 헤드윅이라는 날카롭고 엣지있는 퀴어 역을 맡아 보여준 변신에 관객과 평단 모두가 굉장히 열광하는 분위기이다. 존 캐머런 미첼은 뉴욕에서 진행된 이번 <더뮤지컬>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본인이 직접 헤드윅으로 무대에 오를 계획을 밝혔는데, 닐 패트릭 해리스의 스타 파워에 한껏 들뜬 이 분위기가 가라앉고 난 후 브로드웨이 <헤드윅>은 어떻게 그 운명을 이어갈지, 흥행의 여부와 관계없이 궁금해진다.

<헤드윅>은 끊임없이 점멸하는 색색의 조명 아래, 외설적이기까지 한 거친 입담과 데시벨 높은 음악들로 빼곡히 채워진 공연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여렸던 헤드윅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상처 많은 인생을 헤쳐 나가며 자신만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다는 페이소스 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뉴욕 다운타운의 작은 무대에서 다듬어진 이 이야기가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무대로 옮겨 오기까지는 16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그 결과는 헤드윅의 글리터 메이크업만큼이나 화려하게 맘껏 반짝이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9호 2014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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