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뮤지컬&컬처 | [REVIEW] <모차르트!> 천재 모차르트보다 빛난 노력파 창작진의 역량 [No.130]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2014-08-08 4,247
<모차르트!>의 남다른 ‘시즌’



잘나가는 사람에게는 전성기가 있고 잘나가는 공연에는 ‘계절’이 있다. 사람이건 공연이건 자기를 온전히 발휘할 기회를 갖는다는 건 큰 복이다. 어쩌면 사람의 전성기보다도 공연의 ‘계절’이 훨씬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성기가 간혹 우연이라면 계절은 필연이니까. 때가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처럼 흥행 공연은 ‘시즌’이라는 시간의 주기를 타고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물론 그 시즌을 만들어내는 동력은 많은 부분 관객에게 있다. 시즌에 따라 공연을 반복한다는 건 관객의 선택을 받은 공연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자기증명인 셈이다.  

시즌을 확보한 공연의 딜레마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시금 확인하는 ‘같음’과 새롭게 발견하는 ‘다름’ 사이에 자기의 정체성을 위치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객의 취향은 의외로 완고한 바, 이전 공연과 비교해볼 때 너무 달라져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똑같아도 안 된다. 이런 경우 ‘다름’을 책임지는 주체는 대부분 배우이다. 전체적인 작품의 결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전 공연과 다른 면모를 만들어내기에 배우만큼 효과적인 재료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중심이 되는 원리는 유사성이다. 유사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차별성은 안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런 특성은 대중예술에 통용되는 일반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작품을 향유한 경험과 그것에서 비롯된 기억은 관객에게 또 하나의 ‘원본’으로 자리 잡고, 관객은 그 ‘원본’을 재현하는 재미를 즐기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번 시즌의 <모차르트!>는 좀 다른 선택을 했다. 2010년 초연된 이후 작년을 제외하고는 매 시즌 공연된 작품이건만 이번에는 차별성의 토대를 배우가 아닌 창작진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연출을 비롯한 창작진을 바꾸는 일은 작품을 전체적으로 다시 만든다는 거다. 재현의 반복이 아니라 해석의 구축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작품의 이야기와 분위기를 다시 쌓아올림으로써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일은 어쩌면 창작자의 당연한 욕구일 거다. 하지만 그런 당연함을 이런 대형 뮤지컬에서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생각해보시라. 배우 기용을 통해 흥행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굳이 손댈 필요가 없지 않겠나. ‘관객의 원본’과 충돌할 위험도 없애고 말이다. 비용도 무시 못할 일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의 <모차르트!>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만듦새로 존재감을 자아낸다. 이런 접근만으로도 이 작품은 차별적인 가치를 갖는 셈이다.  



이제야 보이는 <모차르트!>

사실 뮤지컬 <모차르트!>는 극으로서 집중도를 끌어내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모차르트의 삶은 비할 바 없이 극적이지만, 그 극적인 삶을 담아내는 극의 구성은 모차르트의 연대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건 그의 삶 전체를 이야기 재료로 삼는 것과 같다. 연대기적 구성은 일단 사실의 나열에 치중한다. 중요한 건 이러한 연대기적 사실이 극적으로 구축되는지의 여부이다. 모차르트가 주인공 즉 프로타고니스트라면 그와 대립하는 안타고니스트의 존재가 있을 때 그의 삶은 더욱 입체적으로 조명될 수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빛낸 이가 살리에리였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모차르트와 맞서는 안타고니스트가 명확하지 않다.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나 할까. 아버지의 억압, 귀족 사회의 굴레, 사랑을 빙자한 착취, 천재성과 경박함의 공존, 예술가와 음악 노예 사이의 정체성 등등. 모차르트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다 보니 그 많은 사건과 갈등은 에피소드처럼 제시될 뿐 하나의 틀로 구축되지 않는다. 연대기가 사실의 나열에 중점을 둔다면 극은 사실의 연결에 힘을 싣는다. 이 연결이 바로 플롯이지만, 이 작품은 플롯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 작품을 연출하기가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모차르트의 전체 인생이 에피소드처럼 나열되어 있으니 사이사이 이음새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을 터. 물론 주제 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가상 인물(아마데!)을 설정했지만, 쿤체와 르베이의 또 다른 작품 <엘리자벳>에서 주인공과 대결하며 내면의 갈등을 부추기는 ‘토드’와는 달리, ‘아마데’는 모차르트를 보여주는 오브제에 가깝다는 점에서 극적 인물로서는 수동적이다. 그러니 이야기에 근거해서 이것저것 궁리하는 것보다는 모든 장면에서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작품의 극적 설득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는 거다.  

이 작품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음악의 분위기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가벼운 노래는 단 한 곡도 없다. 모든 인물과 장면은 무게감 있는 노래를 빠짐없이 부여받았으니, 음악이 강조하지 않는 장면과 인물 또한 하나도 없는 셈이다. 이 작품의 중심은 확실히 이야기의 극적 연결보다는 노래 자체의 극적 면모에 있다. 때로 음악과 장면의 부조화가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작부인의 유명한 뮤지컬 넘버 ‘황금별’ 장면이 대표적인 예일 거다. 이 노래의 탁월함이야 다시 말해 무엇하리오. 하지만 장면으로 보자면 다소 무리수가 있다. 모차르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오는 남작부인의 등장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황금별’이 끝나고 나서다. 노래의 분위기로 봐서는 이대로 그 장면이 끝나야 하는데 노래가 끝난 후에도 모차르트와 레오폴트의 갈등은 같은 장면에서 꽤 길게 이어지니 말이다. 맥락상으로 보자면 남작부인은 밑도 끝도 없이 얼른 퇴장해야 하는 거다. 이런 배치는 장면의 설득력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꽤나 부자연스럽다. 그래도 이번 시즌의 퇴장이 제일 낫더라. 그 멋진 노래를 부르고 어색하게 걸어 나가는 남작부인보다는 좀 뜬금없지만 엘리자베트 못잖게 환상적으로 퇴장하는 그이를 보는 게 훨씬 맘 편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모차르트!>의 미덕

이번 시즌 <모차르트!>의 공로가 여기에 있다. 이제야 비로소 작품으로서의 <모차르트!>가 보이니 말이다. <모차르트!>가 원래 어떤 작품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은 이미 지난 시즌의 완성도를 훌쩍 넘어선다. 배우의 개인적 매력에 의존하기보다는 모차르트라는 캐릭터에 주목하려는 연출의 의도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미덕이다. 물론 이런 의도가 전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천재성이라는 운명’과 ‘운명으로부터의 자유’를 갈등의 축으로 삼기에는 일단 아마데와 볼프강의 관계가 모호하다. 아마데가 천재성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정작 볼프강을 음악 노예로 착취하고 강제하는 주체는 천재성이 아니라 아버지와 대주교 그리고 베버 가족이잖나. 볼프강이 대결하고 벗어나려는 운명이 아마데로 보이진 않더라. 그러려면 적어도 아마데를 집어던지기라도 했어야지. 마지막 장면에서 레오폴트의 품에 안기는 아마데의 의미가 분명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일 거다. 

이 작품의 연출은 오히려 무대그림과 장면 연출에서 돋보인다. 여기엔 무대 디자인이 일조한 바가 크다. 정승호는 무대의 시각 이미지를 통해 텍스트를 해석하는 일에 거의 독보적인 무대디자이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그의 무대는 이미 연출의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액자와 거울을 통해 모차르트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이나, 무대 전체를 감싸 안는 곡선의 윙을 활용해 사실적인 무대와 상징적인 무대를 통합시키는 시각적 논리는 이런 면모를 보여주는 많은 예 중 하나이다. 몇몇 장면은 다소 설명적이고 무대 전환도 빈번하지만 그것이 분주하게 보이진 않는다. 연출과 무대와 조명이 합작해 만들어낸 몇몇 장면의 임팩트는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작품 전체를 설명해줄 만큼 강렬하다. 무대의 높이와 조명의 색채와 연출의 동선이 만들어낸 1막 마지막 장면은 한 번에 주제를 함축하고, 2막의 마지막 장면에서 촛불인 듯 반딧불인 듯 어둠 속에 떠오르는 음표의 아름다움은 작품의 서정성을 뭉근히 자아낸다. 이 작품은 강조해야 할 장면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이런 장면의 힘은, 크다.

<모차르트!>는, 배우 또한 여전히 빛나지만(박효신!), 이전 시즌과 비교해볼 때 창작진의 역량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극 속으로 좀 더 녹아든 음악,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단정한 안무, 한결 자연스러워진 가사 등 이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작품은 더욱 분명해졌을 뿐 아니라 무게감을 얻었다. 천재의 영감보다 노력하는 이들의 반복이 진짜 재능일 터. 모차르트보다 더 빛나는 건 그들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