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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엄마를 부탁해> 차지연 - 그녀에게서 보았던 것과 보지 못했던 것 [No.92]

글 |이민선 사진 |김호근 스타일리스트 | 김하늘 2011-05-25 6,680

무대 위의 그녀라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도도한 눈빛으로 좌중을 압도할 것 같은데, 인터뷰와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선 차지연은 어깨에 힘을 뺀 채 모든 사람들에게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하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그곳에 자신의 생각들을 묶어둔 양 어느 한곳을 응시하며 차근차근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는 매우 생각이 많고 상처받기 두려워하는 소녀 같았다. 그런 그녀가 카메라 앞에서는 무척 자유롭고 대담하게 눈으로 노래하고 몸으로 말한다. 대체 저런 에너지는 어디에 숨겨두었나 놀라울 정도로 강렬하게. 인터뷰를 하며 소심하고 겁 많다고 말하는 그녀를 격려하는 척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녀가 누구보다 더 용기 있고 당당하다는 것을 나도, 어쩌면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무대 위의 나는 현실의 나를 닮았다
“실제로도 가슴 아픈 일이 있다면 저는 확 무너지는 타입이에요. 그런 성향이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거겠죠.” 그녀의 성장 과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크든 작든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그녀에게 미친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성장기에 남들은 겪지 못했을 많은 일들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고, 그때 흘렸던 눈물과 가슴을 짓눌렀던 무게가 그녀의 연기에도 일조하고 있다. 경험했기에 연기할 때 가능한 더 깊은 감정의 구덩이 속으로 파고들 수도 있고 또 멀리서 냉정하게 관찰할 수도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걸 보니, 그녀는 자신과 무대를 떼어놓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무대에 선 배우로서의 얼굴과 일상에서의 민낯이 혼재하는 상황에 있다면 온전한 나 자신은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궁금했다. 그녀는 일상에서조차 자신에게 매인 고삐를 놓아버리지 못했다. “평소에도 나 자신을 의식하게 돼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깔깔대고 웃으며 박수를 치다가도 ‘내가 친구들과 있을 땐 자연스레 이런 행동을 하는구나’ 깨닫고, 누워서 쉴 때조차도 ‘내가 쉴 때는 이런 모습이구나’ 하고 의식하죠. 좀 더 일상적이고 가공되지 않은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평소의 나를 관찰하게 돼요.”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배우라는 이름이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어쩌면 배우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사람이지만 그러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묘해요. 나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나 자신을 더 많이 꿰뚫어 보게 되기도 하고. 이상해요.” 무슨 일을 하는가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일일 것이다.


노래가 좋아서 열심히 불렀을 뿐이다
무대에 선 차지연의 진가는 노래를 불렀을 때 드러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녀의 가창력에 대한 세간의 칭찬을 전하자 쑥스럽고 부끄럽다며, 요즘 말로 망언으로 기록될 만한 발언을 한다. “저는 정말로 제가 노래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그녀에게 노래는 또 다른 언어이다. 멜로디가 입혀진 말.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말을 더 효과적이고 풍성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노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슬픔을 표현하는 노래를 통해 단순히 슬프다는 한마디 말이 아닌, 그 감정 속에 담긴 이야기를 가능한 한 많이 들려주고 싶은 것이 그녀의 욕심이다. “슬픔이 보라색을 띠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보라색 한 가지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핑크빛 보라와 어두운 보라, 연보라 등 여러 가지 보라색을 보여주고 싶어요.” 모르긴 몰라도 그녀의 노래에 감동받은 관객이라면 그녀가 펼쳐놓은 스펙트럼 속의 다양한 빛깔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워낙 노래를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나. 즐겨듣는 음악을 물어보니 역시 식상하지 않은 답변이 돌아온다. 생각만 해도 좋은지 큭큭 웃음을 흘리며. “스페인 음악, 아프리카나 브라질 음악, 블루스 많이 들어요.” 그녀는 ‘어쿠스틱 소울, 빈티지 사운드’ 정도로 표현했는데, 단출하게 기타나 건반, 젬베 등에 맞춰 목소리로 채우는 음악이 좋다고 한다. 스페인에 가보는 게 꿈이라고 덧붙이면서. 아, 그녀는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꿈도 갖고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음반을 내는 것. 뮤지컬 배우로서가 아닌, 자연인 차지연이 좋아하는 음악 위에 그녀의 목소리를 얹은 음반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그녀는 동료들과 대중들도 좋아할 만한 음악을 공유하고 싶어서 고민이 많다. 그냥 저 하고 싶은 대로 저지르듯 해보는 것도 좋으련만, 그녀는 겉보기와 다르게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이제야 나 자신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차지연이 그녀의 엄마 이야기를 했다. 겉보기엔 여장부 같고 노래도 잘하고 끼도 넘치는 엄마. 굉장히 강인해 보였지만, 어느 날 문득 혼자 있는 뒷모습이나 엄마의 일기에서 훔쳐보았던 여리고 소녀 같은 모습. 그런데 그녀는 그걸 알까. 지금 그녀가 말하는 엄마의 이미지가 마치 그녀의 모습처럼 들린다는 것을. “제 말투나 이미지로 봐선 제가 당당한 성격일 것 같지만 겁도 많고 허점도 많고 여린 면도… 조금. 하하.”
큰 키에 늘씬하고 탄력 있는 몸매, 누가 봐도 부러워할 체형인데 그녀는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다고 두 번째 망언을 늘어놓았다. 큰 키와 다부진 체격 때문에 조금 멀어져버린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여배우에게는 아쉬운 덕목일 수 있다. 하지만 그녀처럼 남다르게 타고나지 못해 슬픈 이들도 얼마나 많은데! “요즘 들어서, 특히 김성녀 선생님이 ‘우리나라에 너 같은 골격 가진 사람 흔치 않다, 너 멋있어’라고 해주시니까 내 외모도 괜찮은가, 조금씩 제 모습을 인정하고 감사하고 있어요. 예전엔 제 자신을 싫어했는데 이제 조금씩 저랑 친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에게서 받은 강한 첫인상과는 다른 고백을 듣는다. “저, 외모는 그렇지 않지만 조심스러운 성격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편하고 여유롭게 말도 잘 건네고 하면 좋을 텐데, 작은 부탁을 할 때조차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으니 좀 도와달라고 굳이 부연 설명을 하곤 하죠. 그래서 오히려 오해를 사거나 말실수를 하게 되고요.” 스스럼없이 타인을 대하고 긴장감을 내려놓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 않은가보다. 하지만 얼른 두려움은 버리고 용기를 가지라고 재촉하진 못하겠다. 오랜 습성이 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벌써 완성되기에 그녀는 젊다. 차차 그녀가 자신이 가진 것을 인정하고 버려야 할 것은 내려놓는 모습을 천천히 뒤쫓다가, 어느 날 문득 멋있고 현명해진 배우를 마주하게 되지 않겠나.

 

다시 새로운 무대에 서다
차지연의 이력을 짚어봤을 때 매번 이슈를 낳은 작품과 의외의 캐릭터에 도전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매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 그녀에게 터닝 포인트가 되었음직한 작품 하나를 손쉽게 골라내기 어렵다.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작품으로 <서편제>를 꼽았다. 늘 비슷한 역할을 맡기보다는 새로운 캐릭터로 관객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연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지만, 그녀 스스로도 <서편제>의 송화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역할이라고 한다. 일단 제작진의 판단으로 맡겨진 역할이니, 캐릭터와 백 퍼센트의 싱크로율을 기대하진 못하더라도 자신에게 송화와 같은 면이 있다고 믿고 도전한 연기였다. 자신도 보지 못한 자기 내면의 캐릭터를 다른 이의 눈을 통해 재발견하는 것은 배우들에게 주어진 미션이자 행운이다.
<서편제>에서 한의 정서를 집약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감정적 소모가 무척이나 컸을 것 같다. “체력은 괜찮았지만 진이 빠진다고 하죠. 그런 느낌이 정말 강했어요. 뼈마디에서 골수가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런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네요. 엄마 얘기를 하다 보니 배역이 느끼는 후회와 인간 차지연이 가진 죄책감이 한꺼번에 즙처럼 짜여 나오니 너무 힘들어요.” 차지연은 곧 개막할 <엄마를 부탁해>에서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큰딸 역을 맡았는데, 특별히 짜인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엄마 생각에서 연유한 아픔이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힘들어도 여전히 좋단다. “매 작품이 저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하고 배우게 만들어요.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김성녀 선생님과 구태환 연출님을 만나서, 또 다른 방법으로 연기할 수 있는 여유와 여지가 생긴 것 같아요. 연습을 넘어서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달까요.” 아직은 경력이 길지 않은 젊은 여배우에게 벅차리만큼,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의 흐름을 보여줘야 하는 역할들을 감내해오면서 차지연은 우리가 그녀를 바라보는 속도보다 더 빨리 성장한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2호 2011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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