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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노트르담 드 파리> 리카르도 코치안테 · 마르티노 뮐러 [No.137]

글 |배경희 사진 |Robin Kim 2015-03-05 7,748

새로운 패러다임 

사진 촬영에 앞서 포토그래퍼는  <노트르담 드 파리>의 히어로 작곡가  리카르도 코치안테와 안무가 마르티노 뮐러,  두 사람에게 체스를 두는 포즈를  연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마르티노 뮐러가 물었다. “누가 승자죠?”  이에 리카르도 코치안테는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야 <노트르담 드 파리>지!”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작품  <노트르담 드 파리>를 만들어낸  두 사람은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오랜만에 월드 투어 공연을 시작했어요. 지금 이 시기에 투어 공연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죠?
뮐러  솔직히 말할게요. 이번에 월드 투어 공연을 하게 된 건 새롭게 계약을 체결해야 할 시기였거든요. (웃음) 서울에서 투어를 시작한 이유는 서울은 <노트르담 드 파리>가 굉장히 흥행한 도시고, 그건 저희에게 무척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정말 솔직한 답변이네요. (웃음) 오랜만에 다시 프랑스어로 올라간 공연을 본 소감은 어땠나요?
뮐러  프랑스어 공연을 보는 건 거의 7~8년 만이에요.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었죠. 게다가 한국 관객들은 정말 열정적이잖아요. 어젯밤 공연이 끝나고 2천 명이 넘는 관객들이 뜨거운 환호를 보내주는데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웃음) 좋은 스토리, 좋은 음악, 좋은 창작자들,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야 성공을 이룰 수 있는데, 제가 이런 작품의 일부분을 차지한다는 게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코치안테  저는 <노트르담 드 파리>가 서울에 올라오기 전, 경주에서 먼저 공연을 봤어요. 저 역시도 오랜만에 오리지널 언어로 하는 공연을 보게 돼서 기뻤지만, 우리 공연엔 모든 언어를 뛰어넘는 음악이라는 다른 종류의 언어가 있기 때문에 항상 좋았다고 생각해요. 


유럽과 다른 교육을 받은 한국 댄서들이 춤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이 있나요?
뮐러  유감스럽게도 한국 댄서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공연을 봤을 때, 한국 댄서들이 이 작품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게 느껴져서 아름다웠어요. 다른 문화의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감정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죠.


1998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노트르담 드 파리>를 무대에 올리면서, 이 공연이 앞으로 더 오래도록 공연되기 위해 곡이나 안무를 새롭게 수정할 생각은 안 했나요?
코치안테  파리에서 처음 공연이 올라간 일 년 동안은 작품을 조금씩 수정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 더는 작품에 손대지 않기로 결심했죠. 무언가 좋은 게 있다면, 그걸 계속 수정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우리는 이미 좋은 작품을 만들었고, 그 어느 것도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않죠.


그렇다면 어제 공연을 보면서 다시금 아름답게 느껴진 곡이나 장면이 있나요?
코치안테  운이 좋게도 <노트르담 드 파리>는 한두 곡 좋고 마는 것이 아니라, 좋은 노래가 열 곡 정도 있는 작품이에요. (웃음) 그래서 사람마다 좋아하는 곡이 각자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2막에서 콰지모도가 부르는 ‘Dieu Que Le Monde Est Injuste(불공평한 이 세상)’을 좋아해요. 이 노래에서 제 자신의 문제를 느끼거든요. 사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 곡에 공감할 거예요.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느끼는 콤플렉스에 관한 노래니까. 
뮐러  전 그 노래가 다른 의미로 무척 슬퍼요. 그 장면에 안무가 없거든요. (웃음) 제가 좋아하는 곡은 페뷔스가 부르는 ‘Dechire(괴로워)’하고, 그랭구와르, 프롤로, 콰지모도의 합창곡인 ‘Les Cloches(성당의 종들)’이에요. ‘Les Cloches’는 굉장히 시적인 장면이죠. ‘Dechire’는 연출가 질 마으가 처음 노래를 들려줬을 때,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무척 애를 먹었어요. 한 인간의 고뇌를 담고 있는 곡이라 불완전한 느낌이 나야 하는데, 동작을 넣으면 그런 느낌이 사라지는 것 같았거든요. 결국 무대 리허설 때까지도 안무를 결정짓지 못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라 조명디자이너 알랭 로르띠에게 무대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달라고 요청했고, 댄서에게 그 조명 안에 들어가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감정으로 즉흥 춤을 춰달라고 했죠. 알랭이 훌륭하게 조명을 비춰주는 바로 그 순간 그 장면이 완성된 셈이에요. 
코치안테  어떤 일은 종종 우연 속에 벌어지죠. 곡 작업을 할 때도 그런 우연의 순간이 있었어요. 작업 막바지 무렵, 플라몽동(작사가)과 저는 이미 충분히 많은 곡을 써서 더 이상 새로운 곡을 쓰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플라몽동과 페뷔스의 집착하는 성격에 대해 얘기하던 중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 피아노 앞에 가서 2분 만에 새로운 곡을 쓰게 됐죠. 그게 ‘Dechire’에요. (웃음)


프랑스의 첫 뮤지컬은 1979년에 공연된 <스타마니아>라고 알고 있어요. <스타마니아>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지만, 그 이후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히트작이 탄생하기까지 거의 2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어요.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걸까요?  
코치안테  글쎄요, 하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를 파리에서 공연하기로 했을 때도, 이런 종류의 공연을 올리기에 좋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스타마니아>는 뮤지컬이라기보다 록 오페라고,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피플 오페라(People’s Opera)예요. 처음에 플라몽동과 얘기했던 건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를 가지고 오페라를 만들자는 거였는데, 오페라보다는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오페라의 웅장한 느낌이 가미된 뮤지컬을 만들게 된 거죠. 그게 제가 말하는 대중적인 오페라, 피플 오페라예요.
뮐러  제 생각에도 <노트르담 드 파리>는 엄밀히 말해 뮤지컬이 아니에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음악과 춤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한 무엇이라고 할 수 있죠. 뮤지컬이 <노트르담 드 파리>를 받아들인 게 아니라, <노트르담 드 파리>가 다른 뮤지컬을 받아들인 거라고 생각해요.  


<스타마니아>의 성공을 뛰어넘을 새로운 공연을 만들기 위해 뮤지컬 창작자들이 아닌 각각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였던 거군요.
뮐러  맞아요. <노트르담 드 파리> 작업 제안을 받았을 때, 전 뮤지컬 안무가가 아니라 현대 무용 안무가였어요. 만약 제게 뮤지컬 안무를 해달라고 했다면 못 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를 찾았다는 건, 뮤지컬 안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길 원해서였겠죠. 저뿐만 아니라 플라몽동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전부 뮤지컬 작업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리카르도나 질 마으, 알랭 로르띠, 모두 <노트르담 드 파리>가 첫 번째 뮤지컬이었죠. 아마 뮤지컬계 밖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새로운 타입의 공연이 나오리라 기대했던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 <노트르담 드 파리>는 드라마적으로 강하다기보다 매 장면 감정적인 면에 호소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노트르담 드 파리> 성공 이후에 한국에서 공연된 다른 프랑스 뮤지컬 역시 감정적이고 상징적인 공연이었고요. 그래서 프랑스에서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기대하는 바가 이런 건지 늘 궁금했어요. 물론 <노트르담 드 파리>의 성공으로 비슷한 성격의 작품들만 한국에 소개됐는지 모르겠지만요. 
뮐러  솔직히 말해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전 독일계 스위스 사람이고 뮤지컬 작업을 많이 한 편도 아니라. (웃음) 하지만 프랑스에서 뮤지컬은 그다지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에요. <노트르담 드 파리>도 처음엔 굉장한 도박이었어요. 모두가 프랑스에서 뮤지컬은 성공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한 예로,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레 미제라블>도 프랑스에선 흥행에 실패해 금방 막을 내렸죠. <노트르담 드 파리> 전엔 <스타마니아>가 거의 유일한 흥행작이었어요. 우린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죠.


한국에선 일반적으로 댄서와 싱어를 구분 짓는 게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이라고 얘기해요. 이러한 시도는 <노트르담 드 파리>가 처음으로 한 건가요?
코치안테  네, 아마도 그럴 거예요. 댄서와 싱어를 구분 지은 이유에 대해선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겠네요. 마네나 모네 같은 화가들은 구체적인 형상을 생략하고 순간순간의 인상을 그림에 담아내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했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린 잘 짜인 이야기로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기보다 노래나 춤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감정적인 무언가를 느끼게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더욱 뛰어난 댄서와 싱어를 기용하기 위해 두 파트를 구분한 거죠. <노트르담 드 파리>가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음악으로 더 많은 감정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에요. 안무 역시 어떤 느낌인지 추상적으로 감정을 표현해주죠.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아닌 녹음된 반주를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코치안테  테이프(녹음 반주)가 현대적이고 새로운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다른 공연이 라이브라고 하지만, 대개는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녹음된 반주를 섞어서 사용해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정직한 거라고 할 수 있죠. (웃음) 또 다른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에요. 라이브 오케스트라로 공연하면 투어 공연을 할 때 아무래도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녹음 반주라는 방법을 택한 거죠. 녹음된 반주를 사용하면 공연 준비도 쉽게 할 수 있고요.   


한국에 소개된 다른 프랑스 뮤지컬도 전부 녹음된 반주로 공연했어요. 이것 역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영향인가요?
코치안테  맞아요. <노트르담 드 파리> 이후에 생긴 변화에요. 이전에는 열 개 중 한 작품 정도만 녹음 반주를 사용했다면, <노트르담 드 파리>가 공연된 후부터는 모든 공연이 저희 방식을 활용했어요.  


<노트르담 드 파리>의 성공이 프랑스 뮤지컬에 또 다른 영향을 끼친 게 있나요?
코치안테  글쎄요, 이미 충분히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나요. (웃음) 우리가 만들어낸 변화는 급진적이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도 영향을 끼쳤어요. 제 생각엔 지금 대중들이 원하는 게 <노트르담 드 파리> 같은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지만, 종종 무엇이 새로운 시도인지 모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낡은 표현 형식에 갇혀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하죠. 저희 작품이 새로운 뮤지컬에 대한 생각을 환기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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