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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NER VIEW] <쓰릴 미> 인간을 흥분시키는 두 가지 [No.138]

글 | 누다심 사진제공 | 뮤지컬해븐 2015-04-05 5,236

현대인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다가오는 스트레스를 온몸과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을 자극하는 것이 모두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구도 자신을 건드리지 않고, 어떤 사건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럴까? 아무런 자극도 없으면 좋을까? 그저 편하게 쉴 수 있으면 좋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감당하기 힘든 자극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뿐 자극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적절한 자극과 긴장, 흥분, 스트레스를 원한다.  


놀이터에 나가보라. 아이들은 그네를 타고 높이 더 높이 하늘로 솟구치려 한다.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더 힘차게 밀어달라고 부모에게 말한다. 어디 이뿐인가? 놀이공원에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360도 회전을 하는 놀이기구나 지상 수십 미터에서 1초 만에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놀이기구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은 무조건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수준의 스릴과 흥분을 즐기는 셈이다. 한평생 직장에 다니는 동안 은퇴와 휴식을 꿈꾸던 사람들이 막상 은퇴를 하고 난 이후에는 오래지 않아 소일거리라도 찾아다니는 이유도 이것이다. 




사람에게 적절한 자극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실험이 1950년대 캐나다 맥길대학교에서 진행됐다. 연구자들은 사람에게 자극을 박탈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어서 실험에 자원한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이 실험에서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실험에 참여하는 대가로 적지 않은 일당을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실험에 대해 자세히 안내해 주었다. “여러분은 가능한 모든 감각 자극이 차단된 상태로 작은 실험실의 간이침대에 누워 있어야 합니다. 반투명 고글을 쓰고, 팔은 원통에 넣고, 손에는 면장갑을 착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머리를 파묻을 수 있는 U자형 베개를 사용해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대학생들은 무척 기뻤다. 계속되는 과제와 시험에서 벗어나 그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다고 하니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잠이나 실컷 자면서 푹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실제로 첫날은 대부분 잠을 잤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 곳에서 아주 편안하고 달게 말이다. 그리고 잠에서 깬 후에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고민도 하고, 미래의 계획도 세우고, 추억에 빠져보기도 했지만 지루하다고 느꼈다. 시간이 지나 지루함은 견딜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화장실도 갈 수 있었고, 밥도 먹을 수 있었지만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모든 이들은 2~3일 만에 실험을 포기했다. 그중에는 정서 불안과 일시적이지만 환각을 경험한 사람도 있었다.


분명 사람에게는 적절한 긴장과 흥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원초적인 것을 꼽으라면 성(性)과 공격성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이 두 가지를 인간 내면의 두 가지 원초적 힘이라고 했다. 성과 공격성은 다른 말로 삶과 죽음, 사랑과 전쟁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사람의 삶이 매우 복잡하게 보여도 그 이면에는 성과 공격성이라는 두 가지 모티프밖에 없다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쓰릴 미>의 ‘나’와 ‘그’는 이 두 가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커플이다. ‘나’를 흥분시키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사랑한다. 단순한 우정을 넘어 서로의 몸을 탐하는 성적인 관계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그에게 어루만져 달라고 애원한다. 그리고 자신을 흥분시키는 성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고 피의 계약을 맺는다. 반면 ‘그’를 흥분시키는 것은 공격성이다. 불을 지르고, 강도짓을 한다. 타인을 공격하고 괴롭힌다. 욕을 서슴지 않으며, 타인이 느끼는 고통을 보면서 흥분한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적응의 귀재다. 처음에는 흥분이 되더라도 자꾸 반복하면 익숙해진다. 그래서 더욱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살인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동생을 죽일 생각을 하지만,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그 대신 힘없고 약한 어린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나’는 성을 위해 공격성을 팔고, ‘그’는 공격성을 위해 성을 파는 얽히고설킨 관계가 되었다. 마치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다. 결국 ‘나’와 ‘그’는 자신의 흥분을 위해서 어린아이를 죽이고 만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누가 성을 원하는지, 누가 공격성을 원하는지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다. 프로이트는 성의 본질이 살고자 하는 욕구, 공격성의 본질은 자신과 타인을 죽이고자 하는 욕구라고 했는데,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나’는 오히려 두려움 없이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프로이트 역시 성과 공격성은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죽일 만큼 미워한다는 것은 사실 그만큼 사랑했다는 의미이다.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의 연이 실은 전생의 원수라는 말도 있다.


당신을 흥분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성인가 공격성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삶을 파괴하지 않고 풍성하게 만들도록 해야 한다. 프로이트는 성과 공격성이 동전의 양면 같아서 분리할 수는 없지만, 공격성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성적 추동의 힘(사랑과 믿음과 배려)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와 평생 함께하기 위해 공격성을 발휘해 결국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었던 ‘나’의 오류를 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다심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심리학을 꿈꾸는 이. 
심리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누다심의 심리학 아카데미>에서 다양한 주제로 강연과 
집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꼭 알고 싶은 심리학의 모든 것』,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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