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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REATIVE MINDS] <아랑가> 이한밀 작곡가 ·김가람 작가 [No.140]

글 | 박병성 사진 | 심주호 장소협찬 | 서촌의 향기(02-6071-9000) 2015-05-27 7,218

덧없는  인간의 욕망을 노래하다    

2015년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첫 작품은 <아랑가>이다.  도미설화를 모티프로 삼은 팩션 뮤지컬로, 판소리와 뮤지컬 음악을 결합한 것이 특색이다. 
이 작품의 창작자인 이한밀 작곡가, 김가람 작가는 중앙대 연극학과 동기생이다. 
학생 시절 중국에서 세계 연극학과 학생들이 모여 펼친 ATSF(Asian Theatre Schools Festival)에서  이 작품으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이들은 <아랑가> 리딩 공연을 시작으로  창작집단 비로소[Be.路所]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돌입한다. 
공연계에 입문한 두 창작자를 응원하며 <아랑가>의 제작 과정을 들어보았다. 


{€작품 소개€}

<아랑가>는 도미설화를 바탕으로 꾸민 팩션 뮤지컬이다. 도창이 등장해 사건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묘사하는 역할을 한다. 어린 시절 개로는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저주를 듣고 왕이 돼서도 악몽에 시달린다. 고구려와의 전쟁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의지하던 도미장군을 국경으로 보낸다. 개로를 보필하는 스님 도림은 고구려의 첩자로 왕의 꿈에 나타난 여인이 도미장군의 아내 아랑과 닮았다는 것을 알아내고 음모를 꾸민다. 왕이 아랑에게 눈이 멀어 정사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게 한 것. 욕망에 이끌려 잘못된 길을 가는 개로왕은 도미장군의 직설적인 말에 격분하여 그의 눈을 멀게 하고 아랑을 취하려 하는데…



배우에서 창작자로 


뮤지컬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김가람  울산에서 살았는데 중학교 때까지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다. 연극을 하려고 계원예고에 진학했는데, 선배 중에 뮤지컬 하는 분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뮤지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배우와 연출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가 고3 때부터 연출로 정하고, 극작을 동시에 공부하고 있다. 
이한밀  뮤지컬과 인연을 이야기하려면 일곱 살로 올라가야 한다. 부모님이 바탕골 소극장 연간 회원권을 끊어주셨다. 1년에 서너 차례는 엄마 손잡고 뮤지컬을 보러 갔다. 첫 줄에 앉으면 배우들이 악수를 해주어서 늘 일찍 가야 한다고 조르던 기억이 난다. 음악 공부를 하다가 군대에 갔는데, 휴가 때 나와서 본 뮤지컬이 홍광호 선배가 출연하던 <지킬 앤 하이드>였다. 그걸 보고 더 늦기 전에 뮤지컬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중대 연극영화과에 다시 들어갔다. 


배우와 연출로 시작했는데, 어떻게 뮤지컬 창작을 하게 되었나?
이한밀  학교에서 창작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원래 음악을 공부했는데 내가 만든 음악이 공연이 되었을 때 성취감이 있더라. 그러다 보니 창작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학교 작품을 계기로 뮤지컬을 하게 됐다. <아랑가> 역시 학교에서 개발한 작품이라고 들었다. 
김가람  학교에서 음악극 형식으로 <깨지마라, 안티고네>를 올렸다. 내가 연출을 하고, (이한밀) 오빠가 음악을 맡았다. 박동우 선생님이 우리 작품을 좋게 봐주셔서 ATSF에 출품할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하셨다. 북경중앙희극학원에서 주최하는 페스티벌이었는데 3회 때는 미국을 비롯 주로 아시아 국가의 연극학과 학생들이 작품을 발표했다. 그해 주제가 전통과 현대여서 설화 중에 소재를 찾다가 박동우 선생님 수업에서 들었던 <몽유도원도> 무대 제작 수업이 떠올라 도미설화를 선택했다. 


ATSF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도미설화의 어떤 점이 끌렸는가?
김가람  도미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기보다는 설화에서 소재를 찾다가 도미설화를 선택한 경우다. 도미설화는 <춘향전> 같은 느낌을 준다. 관탈민녀 설화로 결국 여자의 정절을 지키고 여자와 남자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그런데 여자의 정절이 현대에 적합한 주제는 아니지 않나. 그것을 어떻게 현대화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줄까 고민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인간의 욕망, 욕망에서 비롯한 덧없음, 죽음 등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게 됐다. 




설화를 현대화하는 과정


신하의 아내를 탐했던 개로왕이 주인공 같긴 한데, 주인공으로서 존재감이 약했다. 
김가람  가장 많은 피드백을 받았던 내용이다. 개로가 주인공 같기도 하고, 아랑이나 도미도 그만큼 중요하게 그려졌다. 가장 먼저 풀어야 하는 지점이다. 도미나 아랑이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개로는 나약한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개로에게 정이 많이 가더라. 개로로 시작해서 개로로 끝나는 작품이다. 다시 선보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백제를 살리려고 했지만 스스로 파멸해 가는 개로의 인간적인 갈등을 부각하고 싶다. 


판소리와 뮤지컬을 결합한 것이 <아랑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한밀  그해 ATSF의 주제가 전통의 현대화였고,  출품작으로 준비하다 보니 전통극 중 창극을 차용하게 됐다. 페스티벌에서는 60분 이내에 배우 포함 여덟 명만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제약이 있었다. 그런 조건에서 도창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도창은 복잡한 상황을 사설 몇 마디로 끝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도창을 둔 뮤지컬 형태가 되었다. 


도창이 부르는 노래 말고도 뮤지컬적인 음악이 있다. 두 음악을 어떤 식으로 배치하려고 했나?
이한밀  도창이 부르는 부분을 창, 뮤지컬 음악을 넘버로 말한다면 처음 컨셉은 창과 넘버를 완벽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국악 부분은 도창이 맡고, 배우들은 대중적인 뮤지컬 넘버를 사용했다. 국악 장단이나 선율을 사용하긴 했지만, 가급적 둘에 구분을 두려고 했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리딩 공연에서는 장르도 음악극에서 뮤지컬로 변했고, 음악적인 조화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멘토링을 받았다. 그래서 넘버 사이에 창이 들어가거나, 창에 이어 넘버가 나오는 곳에서는 두 음악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도록 배려했다. 그 부분은 작창을 한 박인혜 씨의 도움을 받았다. 


서양 음악을 주로 해서 국악풍으로 작곡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나?
이한밀  작곡을 하고 연주자들과 합주를 했는데 문제가 드러나더라. 굿거리장단으로 작곡하고 악보에도 그렇게 써놓았는데, 연주자들이 ‘이거 굿거리장단 아닌데’ 하는 것이다. 국악 장단에 맞춰 썼지만 반주 패턴에 내 고유한 그루브가 담겨 있었다. 국악적인 듯 보였지만 이한밀스러운 그루브가 있었던 거다. 연주자들이 이건 자기들이 맞춰갈 수밖에 없다며 맞춰주었다. 


도창 이외에 배우들 전체가 코러스로 등장하는 부분이 있던데, 두 역할이 겹치는 느낌을 받았다. 
김가람  학교 공연이 끝나고 나서 관객들이 도창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도창의 역할이 많아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없고 비약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도창을 이미지적으로 보여주려고 신경 썼다. 코러스와 겹치는 느낌이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는데, 도창에게 코러스장의 역할을 주어 코러스와 도창이 하나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면 많은 부분 해소될 것이다. 


사향과 도림이 대숲에서 활극을 벌이는 장면에서 도창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말 자체가 무척 재밌더라. 
김가람  창은 적벽대전도 혼자서 보여줄 수 있다. 그게 창의 장점이다. 전장의 상황을 노래한 ‘백제의 태양’ 같은 장면도 소리를 결합하면 고급스런 장면이 만들어질 것이다. 사향과 도림의 대결 장면도 무대에서 배우들의 재현에 소리가 더해 매력적인 장면이 될 수 있다. 그 부분은 대략적인 글을 써주면 작창을 해준 박인혜 씨가 디테일하게 고쳐주었다. 글을 은유적으로 쓰는 편인데, 판소리의 가사는 더 직접적이더라. 사향이 칼을 겨눈다. 이 정도만 써넣으면, 하얗고 가는 손으로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디테일이 더해졌다. 


리딩 공연을 올린 소감은?
이한밀  참 감사하게도 연습 기간에 배우 분들이 모두 작품에 올인 해주었다. 단기간에 짧게 올리는 것이라 서로 민망해질 지점이 있는데 서로 요구하고, 수용하고 설득하면서 좋은 팀워크를 이뤘다. 그런 과정 때문에 생각보다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변정주 연출님도 무척 바쁜데도 많은 도움을 주셨고, 연주자들도 일당백으로 세 명의 세션이 열 개 악기를 맡아 주었다. 나만 피아노 하나를 맡았다. 
김가람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니까 아쉬운 게 많았다. 그래도 배우 분들이 단기간에 굉장히 집중을 해주었다. 의견도 많이 주고 치열하게 임해 주어서 감동을 받았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가
이한밀  배꼽 빠지는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 작년에 우란문화재단에서 교육을 받을 때 코미디를 썼는데 처참한 평가를 받았다. 배우와 녹음할 때까지만 해도 무척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노래로 웃음을 준다는 게 참 어려운 작업이다.
김가람  다른 작품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코미디 요소를 넣어보려고 한다. 유쾌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작품. 비극의 세계도 매력적이지만 희비극의 세계에도 그만큼 매력을 느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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