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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Just Feel It - 서병구 & 문예신 [No.93]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1-06-27 6,095

이번 달 <더뮤지컬>의 살롱에 초대한 게스트는 우리나라 1세대 뮤지컬 안무가이자 여전히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는 서병구와 댄싱 머신이라는 별칭을 가진 배우 문예신이다. 전혀 다른 시대에 비슷한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문예신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전 선생님하고 제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해요. 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웃음) 어려서 천재 소리를 들으면서 무용을 배웠다는 점도 그렇고, 클래식 무용부터 상업 무용까지 다양한 장르의 춤에 관심이 많으셨던 것도 비슷하고요.
서병구  내 전공이 한국 무용이잖아. 그런데 난 학교 다닐 때도 순수 무용보다는 재즈나 방송 무용 같은 대중적인 무용에 관심이 많았어. 어려서부터 AFKN의 <소울 트레인>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춤추는 걸 좋아했고,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에 디스코 열풍이 불어서 그런 춤을 좋아했거든. 학교에서도 순수 무용보다는 오락적이고 상업적인 안무를 더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어.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MBC 예술단 상임 안무자로 스카우트 됐어. 스물여섯에 거길 들어갔으니까 너무 어린 나이에 안무가가 된 거지.
문예신 저도 어렸을 때 <소울 트레인> 보는 걸 좋아했어요.
서병구 네가 그 프로그램을 알아?
문예신 아마 저희가 그 프로그램을 본 마지막 세대일 거예요. 제가 중학교 때였나, 그때 폐지된 걸로 기억해요. 순수 예술보다는 상업 무용 쪽이 더 어울린다고 말씀하셨지만, 선생님은 클래식 발레가 기본이 되는 <캣츠>에서 최고의 댄서 역할인 미스토펠리스를 하셨잖아요.
서병구 그때가 스물아홉 살이었을 거야. 당시 <캣츠>의 연출을 맡은 김효경 선생님이 우리 학교 순수 무용 공연 연출을 많이 하셨어. 그때 나를 눈여겨보신 거지. 어느 날 선생님이 <캣츠>라는 작품을 하게 됐다며 내가 미스토펠리스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 처음엔 난 노래도 못하고, 연기도 못하고, 뮤지컬에는 관심이 없다고 거절했는데 그러지 말고 미국에 가서 공연을 한번 보라는 거야. 미국에 가서 공연을 보니까 저 정도면 나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오는 것도 아니고 노래도 옆에서 다 불러주니까. 그런데 문제는 <캣츠>에 푸에테 도는 게 있잖아. 클라이막스에서 서른 바퀴 이상을 돌아야 하는데 난 발레 전공이 아니니까 힘들었지.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서른 바퀴도 넘게 돌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으면 열다섯 바퀴에서 그치고 그랬어. 그럼 박자가 남으니까 시간을 때우려고 즉흥적으로 춤을 췄지. 공연 한 달 동안 똑같은 춤을 춰본 적이 한번도 없었어.
문예신 그 공연을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선생님이 매일 다르게 춤을 추셨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요. 워낙 유명한 이야기니까요. 아! 선생님이 출연한 공연 자료가 설앤컴퍼니에 두 점 정도 숨어 있대요.
서병구 불 태워 버리라고 그래. (일동 웃음)

 


문예신 그런데 <캣츠> 말고 다른 작품에 출연하신 적은 없죠? 배우 생활은 더 안 하셨어요?
서병구 <캣츠>만 했는데 배우 생활이라고도 할 수 없지. <캣츠>로 뮤지컬을 접하게 되면서 뮤지컬에 관심이 생겼지만 난 노래와 연기에는 소질이 없어서 다른 작품에는 출연 못했지. 대신 나는 안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걸 하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뮤지컬 안무를 하게 된 거야. 안무가 데뷔 작품이 93년도에 공연한
<동숭동 연가>야. 그 작품 안무가 신선하고 좋다는 평을 받으면서 그때부터 거의 모든 작품의 의뢰가 들어왔고 지금까지 줄기차게 하고 있는 거지.
문예신 제 생각에 우리나라 최초의 올 라운드 멀티 댄서는 선생님이 아닐까 싶어요. 선생님 대에는 멀티 댄서라는 개념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춤에 관심을 가지셨는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서병구 요즘엔 장르의 구분이 없잖아. 정말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껴. 한 장르의 춤만 잘 추는 게 아니라 모든 장르의 춤을 다 추는 시대가 온 거지. 내 세대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거야. 내가 그렇게 다양한 춤을 출 수 있었던 데는 주위의 영향이 컸어. 어려서부터 재즈 댄스를 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큰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한국 무용을 배웠으니까. 또 대학에 들어가서는 선생님들이 많이 이끌어줬고. 그때는 남자 무용수가 없었잖아. 운이 좋았던 거지.
문예신 선생님 젊은 시절 별명이 서필라였다면서요? 필이 충만해서 얻은 별명이라고요. (웃음)
서병구 그 별명은 에이콤의 윤호진 대표님이 지어주신 거야. 내가 방송국에 다닐 때 방송국에서 외부 작품을 못하게 해서 가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 윤호진 선생님하고 밥을 먹다가 ‘이런 이유 때문에 가명을 써야할 것 같은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하고 여쭤봤더니 선생님이 대뜸 ‘필라’로 하라시잖아. 넌 필이 충만하니까 서필라로 해. 그래서 서필라가 된 거지. (일동 웃음) 실제로 그 이름을 몇 번 썼어. <스타가 될 거야>로 제1회 한국뮤지컬대상시상식에서 안무상을 받았는데 그 팸플릿 보면 서필라로 나와 있어. 하하. 엄청 웃기지.
문예신 그 시절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서병구 서필라 시절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서… (웃음)
문예신 선생님은 너무 겸손하세요. 분명히 자랑할 거리가 많은데도 그런 이야기를 잘 안 하세요. 제가 듣기로는 이태원에서 춤으로 진짜 유명하셨다던데요? 당시 춤의 메카가 이태원이었잖아요.
서병구 뭐, 나이트클럽에 가면 댄스 경연 대회 같은 거 하잖아. 어릴 때는 학비 벌려고 모든 경연 대회에 다 나갔어. 상금이 금 한 돈이었어. 많이 주는 데는 세 돈도 주고. (일동 웃음) 연말 결선에서 대상을 받아서 포니 자동차도 받아 보고 별별 상품을 다 받아 봤어. 그거 팔아서 등록금 내고 옷 사 입고 그랬지. 학교에서는 날 재벌 집 아들로 알았잖아. 80년대에 옷이랑 신발이 만날 바뀌니까. 사실은 그게 아닌데. 하하.
문예신 또 궁금한 점. 선생님은 공부를 진짜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패션쇼부터 리얼리티 쇼까지 제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면 모르는 게 없으세요. 그래서 말인데 하루에 잠은 몇 시간이나 주무시는지. 안 주무시는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웃음) 

 


서병구 내가 잠을 잘 못 자. 바빠서가 아니라 불면증이 있어서 잠을 잘 못 자는데, 억지로 자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 시간에 계속 무언가를 해. 나는 안무가도 예술가이기 때문에 안무만 잘해서 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자기 전공만 파고드는 것보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 세계를 경험하는 게 일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돼. 사람들은 나한테 어떻게 그렇게 금방 아이디어를 내놓느냐고 하는데 그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게 아니고 오랜 경험을 통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 둔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내는 거야. 내가 천재도 아니고 어떻게 금방금방 아이디어를 내놓겠어.
문예신 제가 선생님께 데이비드를 연기하는데 어떤 영화를 참고해 보면 좋을지 여쭤봤던 거 기억하세요? <올 댓 재즈>가 대극장에서 소극장으로 무대를 옮겨오면서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거든요. 제가 톰 포드를 굉장히 좋아해서 <싱글맨> 이야기를 꺼냈더니 선생님이 이미 그 영화를 알고 계셔서 무척 놀랐어요. 그때 <싱글맨>이 아니라 <패왕별희>를 보면서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감성을 익히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떤 디자이너를 좋아하세요?
서병구 어렸을 때는 실험적인 디자인의 옷들…, 말하자면 이세이 미야케나 꼼 데 가르송, 요지 야마모토 같은 일본 디자이너 옷을 좋아했어.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그냥 단순하고 편안한 시장 옷이 제일 좋아. 하하.
문예신 선생님 은근히 명품족이시잖아요. (웃음) 같은 옷을 입으시는 것도 보질 못했고. 저도 선생님 작품 할 때는 옷에 더 신경 쓰게 돼요. (웃음)
서병구 난 배우들한테도 항상 이야기해. 신경 써서 배우처럼 입고 다니라고. 댄서건 배우건 남한테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직업이니까 패션에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배우들이 있어. 외형적인 것에 전혀 신경을 안 쓰고 나는 오로지 연기만 하겠다고 하는 배우가 있잖아. 물론 자기 나름의 철학이 있겠지만 난 외모에도 관심을 가져서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잖아. 근데 너를 보면 패션에 관심도 많고 나 어렸을 때를 보는 것 같아. 내가 너를 처음 본 게 <라이프>를 할 때였지? 기획사 사정으로 공연은 못 올라갔지만, 그때 널 보면서 카리스마도 있고 에너지가 굉장히 많은 친구구나 하고 느꼈지. 근데 또 저쪽 구석에서 대본을 읽거나 가만히 있을 때 보면 왠지 쓸쓸해 보이면서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도 있고, 이 친구는 비범한 아이구나 싶더라고. 그게 배우한테는 굉장히 장점이거든. <라이프>, <샤우팅>에 이어서 이번이 세 번째 함께한 작업인데 <올 댓 재즈>에서 네 역량과 장점을 충분히 살려서 변신을 아주 잘한 것 같아. 난 만족하고 있어.
문예신 감사합니다. <샤우팅> 때 제가 선생님을 졸라 조안무를 맡게 됐을 때 처음 해봐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배우들을 가르치는 게 진짜 힘들더라고요. 한번은 주위에 선생님은 어떻게 가르쳤는지 물어 본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옛날엔 정말 무서우셨다면서요?
서병구 너는 나보다 더 무섭게 가르치더라. 그런데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사실 난 더 심했어. 지금은 배우들하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옛날처럼 야단치고 싶지 않더라고. 옛날에는 내 마음에 안 들고 조금만 틀려도 못 참고 그 스트레스를 다 배우들한테 풀었어. 왜 못 맞추느냐 백번이고 더 연습해서 맞춰라. 가슴에 비수를 꽂는 직선적인 말까지 하면서 뭐라고 했지. 배우들이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뒤에서 안 좋게 이야기하고 그랬어. 근데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나보다 더 나이 많은 배우들을 끌고 가려면 처음부터 냉정하고 무섭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문예신 정확한 에피소드는 듣지 못했지만 진짜 무서우셨다고 들었어요. 요즘엔  『슬램덩크』의 안 선생님 같으신데 말이죠. (웃음)

 


서병구 어렸을 땐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춤에 대한 영감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하면서 배우들한테 죽기 살기로 스트레스를 줬는데 배우 개개인을 생각해야지 내 입장만 생각해서 가르치면 안 되더라고.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배우를 다룰 수 있는 노하우가 쌓인 것 같아. 아, 이야기가 하나 생각났는데 연습할 때 난 배우들 몸을 잘 안 봐. 몸을 안 보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그럼 애들은 연습을 시켜놓고 왜 안 보냐고 뭐라 그러는 거지. 근데 안 보는 게 아니라 발을 보는 거야. 발동작이 조금만 틀리면 전체적인 동작이 다 틀려지거든. 그래서 연습이 끝나고 너 틀렸잖아 하고 딱 지적하면 애들은 저 선생님은 머리에 눈이 달렸나,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게 나름대로의 노하우야. 
문예신 그땐 사실 열정만 컸어요.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이겨내는 게 지도자의 길이라고 이야기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겸손해지려고 노력했고요. 그런데 선생님 저는, 아마 대부분이 비슷할 것 같은데, 사람들이 나를 보고 좋아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안무가의 길보다는 제가 무대에 서는 게 좋아요. 아주 오랫동안 무대에 서고 싶고, 그래서 뮤지컬 배우의 길을 택한 거고요. 그런데 요즘은 배우 생활에 고민이 많아요. 선생님, 저 요즘 사춘기예요.
서병구 고민이 많을 때지. 맞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난 인생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어. 그냥 현실에 만족하면서 여태 그렇게 살았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욕심만 지나치면 본인이 스트레스만 받지. 앞으로 네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네가 어떤 길을 가야할지 답을 제시할 수 없지만 네가 당장 배우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난 말리지 않을 거야. 그만큼 인생의 경험이 쌓이고 네 안에 보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게 되든 네게 다 도움이 되거든. 다만 어느 방향으로 가건 최선을 다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 그리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 길이 아니면 다시 돌아와도 되는 거야.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에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 미래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야.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3호 2011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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