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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푸가> 안무가 정영두·무용수 김지영, 윤전일 [No.145]

글 | 송준호 사진 | 김수홍 2015-11-03 7,487

차이들이 만들어내는 조화의 미학



서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굳건히 차지하는 바흐의 음악은 아직까지도 수많은 안무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마기 마랭, 마리 쉬나르, 나초 두아토 등 대가들의 작품을 통해 바흐의 존재감이 확인된 바 있다.  이번에는 정영두의 차례다. 그는 특히 푸가 형식으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던 바흐의 ‘푸가의 기법’을 무용수의 몸으로 시각화하는 실험에 나선다. 푸가는 중심 멜로디에 화음을 맞추는 화성법과 달리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각 파트가 상호 교류하면서 하나의 큰 줄기를 만드는 대위법이 돋보이는 형식이다.  국립발레단의 간판인 김지영과 <댄싱9>이 낳은 스타 윤전일 등 7명의 무용수들은 정영두의 지휘에 따라 저마다의 개성을 발휘하며 동시에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하는 춤의 푸가에 도전한다.




바흐에서 정영두로 건네진 푸가의 변주


 <푸가>는 메시지보다는 푸가의 음악적 특색을 이미지로 푸는 작품입니다. 정영두 안무가는 예전에도 음악으로 작업을 한 경험이 있지만, 이번에는 다른 영감을 받았을 것 같아요.
정영두  우선 이 푸가 음악들은 안무 공부를 하기에 무척 좋았어요. 푸가는 다른 음악과 달리 굉장히 단순한 구조인데, 그런 구조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됐어요. 가령 푸가 8번은 중반까지 A파트, B파트가 각자 진행되다가 그걸 서로 바꾸고 마지막에 몇 마디가 새로 들어가는 것뿐인데, 정말 아름다워요. 어떻게 서로 다른 음들이 이렇게 조화롭게 하나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이런 요소들이 저에게 큰 즐거움과 영감을 줬죠.


안무할 때 내용에 따라 형식을 구상하기도 하지만, 형식에 따라 내용을 만들기도 하잖아요. 이번에는 ‘푸가’라는 형식이 먼저 정해졌는데 내용은 어떻게 구성하셨나요.
정영두  말씀대로 <푸가>는 메시지가 없는 게 메시지인 작품이죠. 그래서 무용수들이 몸으로 표현해 내는 음악성을 포착한다면, 언어적인 메시지보다 더 큰 원초적이고 시각적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걸 의도하며 진행하고 있어요.


본인이 운영하는 두 댄스 씨어터 단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처음 작업하는 무용수들이죠. 특히 김지영과 윤전일은 그간 접점이 없었던 무용수인데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요.
정영두  비단 이번 작품이 아니더라도 같이 작업하고 싶은 분들은 늘 있었죠. 예전에 모리스 라벨의 현악 4중주로 만든 여성 듀엣 <시간은 두 자매가 사는 서쪽 마을에서 멈추었다>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걸 발레리나가 풀어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김지영 씨를 떠올렸는데, 이번에 마침 LG아트센터에서 지영 씨를 비롯한 발레 무용수와 함께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기쁘게 받아들였죠. 아무래도 현대무용 프로젝트이다 보니까 현대무용을 경험한 발레 무용수나 발레를 할 수 있는 현대무용수들이 섭외가 됐어요.


두 분은 어땠어요? 작품보다는 ‘정영두’라는 이름이 참여의 기준이 됐을 것 같은데.
김지영  저는 정영두 선생님과 인터뷰한 적은 있었는데 작품은 못 봤거든요. 그래서 작품을 같이하자는 전화가 왔을 때 “제 춤을 보신 적 있으세요?”라고 되물었어요. 작업을 한 적이 없으니까 서로를 모르고, 그래서 참가 여부에 대한 대답도 늦게 했던 것 같아요. 참여한 후에는 진짜 힘든 나날의 연속이죠. 이제까지 여러 안무가와 작업을 했는데 음악을 파고들거나 동작을 꾸미는 안무는 정말 최고예요.
윤전일  저는 (김)지영 누나가 한다고 해서 왔어요. (일동 웃음) 그런데 2년 동안 계속 대중과 어울릴 수 있는 춤만 추다 보니 안무가와 작업하는 게 오랜만이어서 초반에는 스트레스를 좀 받았어요. 음악도 잘 모르겠고, 선생님이 원하는 동작들도 생소해서 거울 속의 제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우울했는데 지금은 저 자신을 집에 두고 온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발레 문법이 아니니까 낯설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다른 장르의 무용수들이 모이면서 생기는 시너지 효과도 분명히 있겠죠?
정영두  이번에 함께하는 멤버 하나가 그러더라고요. “지영 언니는 완벽주의자 같아요. 춤이 해결이 안 되면 못 참더라고요.” 그게 맞아요. 제가 솔로 컨셉을 만들어서 2월에 지영 씨에게 전달했는데 정작 저는 잊어버렸거든요. 순서나 동작이 좀 어려워서. 
김지영  (말을 가로채며) 어려운 걸 알긴 아세요?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정영두  그런데 연습실에 오면 본인 파트를 다시 해보면서 그 부분을 다 정리하고 가요. 그럼 저는 남은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본받으라고 하죠. 워낙 모두가 우러러봤던 무용수인 것도 있지만 늘 완벽하게 연습을 하는 모습이 감동을 줬어요. (윤)전일 씨도 늘 투덜대는 것 같아도 본인 역할은 충실히 다해요. 특히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드는 역할을 잘해서 예민해질 수 있는 순간들마다 부드럽게 넘길 수 있어요. 그냥 포기하거나 쉽게 갈 수 있는 부분들도 이분들은 어떻게든 자기 것으로 만드니까 기대하게 되죠.
윤전일  기대하지 마세요, 선생님. 제발요.


푸가는 무용에서 낯선 음악은 아니죠. 마기 마랭의 <그로스 랜드>나 나초 두아토의 <멀티플리시티>처럼 푸가 기법을 모티프로 한 작품들도 있었으니까. 실제로 해보니까 어떤가요.
김지영  음악적으로는 그렇게 어려운 건 없어요. 구조도 단순하고 박자도 어렵지 않으니까. 살짝 걱정이 되는 건 음악이 비슷하고 단조로워서 이걸 한 시간 동안 했을 때 자칫 관객이 졸 수도 있다는 건데, (웃음) 그건 정영두 선생님이 고민할 문제겠죠.
윤전일  저는 여기 현대무용 하는 분들 네 명이 있는데 그분들이랑 출 때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더 열심히 해요. 원래도 연습할 때 다른 친구들이 다리를 높이 든다 싶으면 제가 좀 더 다리를 높이는 게 있어요. (웃음) 그런데 새로운 동작을 만나면 좀 막혀요. 선생님 동작이 한 번에 외워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김지영  특히 발레 무용수들에게 정영두 선생님 작품이 힘든 건, 우리는 모든 동작들을 하나하나 박자까지 찍고 가거든요. 그런데 현대무용에서는 동작을 그렇게 딱 찍고 가면 안 되고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조절해야 돼요. 그런 융통성이 발레 무용수들에게는 오히려 어렵죠. 저 같은 경우는 실제로 완벽주의가 좀 있어서 혼자 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어요. 


그래도 하면 할수록 재미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겠죠?
윤전일  (엄)재용(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형이랑 함께하는 부분이 있는데 제 것처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특히 이건 선생님이랑 둘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일단 재용 형보다 잘하는 것처럼 보여야 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웃음)
김지영  전 그래서 솔직히 좀 짜증이 났어요. 저 빼고 발레 쪽 친구들은 다 그 사람에 맞춰서 안무가 만들어졌는데 저만 다른 사람 파트를 대신 맡게 된 거라서요.
정영두  그런데 가끔 지영 씨가 아라베스크 하다가 풀 때 깜짝 놀라요. 앉아 있다가 돌 때도 보면 팔이나 다리 라인들이 정말 아름다워요. 한 번은 연습한 걸 영상으로 보면서 우리끼리 ‘실비 길렘 저리 가라다’ 할 정도로 감탄하기도 했어요. 
김지영  미에 대한 관점이 좀 특이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끼리 ‘숨은 변태’라고 불러요. (웃음) 나쁜 뜻이 아니라 성격이나 말투가 굉장히 선비 같은데 그 선한 얼굴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게 있어요. 그러면서도 화는 절대 안 내시고.



개성 넘치는 ‘부분’들의 하모니
                      
 


결국 푸가 형식은 각 부분의 조화를 통해서 전체 그림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매력을 찾을 수 있겠죠. 그러려면 각 부분의 매력을 어떻게 배치하고 활용하느냐가 중요할 텐데요.
정영두  어떤 안무나 장르를 대할 때 저의 첫 번째 기준은 작품의 존중에 있습니다. 작품이 무용수 다음이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무용수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고, 주목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하지만 작품을 표현하는 것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면 작품의 가치도 떨어지고 무용수도 빛을 잃을 거예요. 아까 전일 씨가 본인을 내려놓고 나온다고 했는데, 음악과 동작들을 본인의 것으로 완전히 녹여낸다면 무대에서 그 사람의 개성도 돋보이고 전체적인 앙상블도 살지 않을까 싶어요.


푸가 음악에선 핵심이 되는 선율이 반복되며 작은 주제를 이룹니다. 이 작품에서도 전체를 관통하는 반복적인 움직임이 있을까요.
정영두  어떤 건 구조 그대로 들어가는 게 좋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의 멜로디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면 그때는 같은 동작이 들어가는 게 좋은 부분이 있어요. 똑같은 움직임을 몇 번 보여줄 것인가, 똑같은 움직임을 비슷하게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똑같은 움직임을 이어가다가 새로운 움직임을 삽입할 것인가. 이걸 치밀하게 정리해서 시각적인 경험이 흐트러지지 않게 해야죠.


바흐의 푸가에서는 네 개의 다른 성부들이 완벽한 하나로 존재하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드는데, 무용수들이 그런 성부의 기능을 하는 건가요?
정영두  그것이 제일 기본적인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각 악기마다 무용수를 배치하지는 않았어요. 일단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의미도 없는 것 같아서요. 그건 그냥 음악을 분석하는 거잖아요. <푸가>는 음악을 한 단계 다른 표현으로 만드는 작업이에요. 한 성부를 서로 번갈아가면서 추기도 하고, 특히나 현악 4중주로 되어 있는 곡들은 4인무나 5인무로 그려지는데 그때 페어나 솔로가 되는 움직임들이 잘 드러날 것 같아요.


지영 씨는 최근 클래식과 모던 등 장르를 넘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전일 씨는 <댄싱9> 이후에 뮤지컬 <팬텀>에 출연하는 등 전방위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클래식 발레에만 집중하던 기존 양상과는 다른 행보인데 각자 어떤 마음가짐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김지영  ‘도전’이죠. 단체 생활도 오래 했고, 특히 국립발레단은 그동안 클래식 발레를 주로 해왔잖아요. 이런 다른 성격의 개인 작업을 하면서 저 자신에게도 신선한 공기를 주는 기회를 만드는 거죠. 제 춤에 대한 호기심도 있어요.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얼마나 변할 수 있나 지켜보는 건 스스로도 흥미롭죠.
윤전일  전 TV 출연 후 클래식 발레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어졌어요. 대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춤의 가능성을 많이 알게 됐죠. 그런 공연들을 하면서 큰 공부가 됐다고 생각해요. 언제까지 발레가 마니아나 고급 취향의 관객들을 대상으로만 하는 예술일 수는 없으니까요. <댄싱9>에 나왔던 친구들의 목표도 똑같이 춤의 대중화였어요. 그쪽으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어느새 춤도 대중 취향의 크고 멋진 움직임을 선호하게 된 것도 있어요. 조금 물이 든 거죠. 이번에 정영두 선생님과 작업하면서 얘기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제게 이런 작품이 꼭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특히 지영 씨는 지금 무용수뿐만 아니라 발레단 부설 아카데미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잖아요. 몇 년 후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김지영이 어떤 길을 갈까 관심을 갖는 이도 많습니다.
김지영
  일단 전 안무가가 될 생각은 없어요. 그건 정말 타고나야 하는 것 같아요. 그냥 나한테 선물하듯 작은 작품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겠죠. 마침 올해부터 국립발레단에서 단원들을 위해서 안무 무대를 만들어주는데, 옆에서 지켜보면서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은 한 적 있어요. 이렇게 생각하다가 막상 내년 되면 ‘나 안무가 될래’ 이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전 별로 좋은 안무가가 될 것 같지는 않아요. (웃음)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건 발레단에서 후배들 가르치는 거예요. 이제 거창한 꿈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영두 안무가는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고 보도자료에 적었던데요.
정영두
  춤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예요. 아름다운 걸 보면 마음속에 뭔가 생기잖아요. 그게 직접적으로 생각을 변화시키지는 않겠지만 저는 그런 기억들이 많을수록 좀 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믿어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다른 장르보다 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뭐든지 빠르고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이슈도 많다 보니까 시각적 경험을 충분히 곱씹을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시도 잘 안 읽잖아요. 기존의 언어 체계로 그 사물이나 현상을 다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어법들로 표현하는 게 시거든요. 옛날에 정치인들은 시로 벼슬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세상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선도해야 할 분들이 춤과 음악이라는 시각적 경험을 통해 세상을 느끼는 경험을 했으면 합니다.
김지영  맞는 얘기 같아요. 문제가 있는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려주면 성정이 개선된다는 말도 있거든요. ‘말’에만 집착하지 말고 이런 작품을 통해서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듯해요. 무용수의 기량을 평가하기보다 즐기려는 자세로 보면 더 좋겠죠.


이번 작품이 관객들에게 혹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되길 바라나요?
윤전일  지영 누나가 관객이 평가한다는 말을 했는데, 사실 저도 그게 싫어서 무용 공연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댄싱9> 멤버가 함께한 공연에서 관객들은 평가를 하지 않았어요. 춤이 좋아서 티켓을 샀고 공연을 즐겼거든요. 그런 태도가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무용수들이 지금 땀을 흘리는 거고, 그게 제가 무대에 서는 이유예요. 티켓을 사는 데 지불한 돈의 가치만큼 관객에게 돌려드리고 싶어요.
김지영  전 일단 이 힘든 시간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웃음) 이제는 거창한 이유를 대고 싶지 않아요. 제 인생에서 춤은 이제 일상이 돼서요. 그저 즐겁게 췄으면 좋겠어요.



공연정보                           
10월 9~11일   LG아트센터                            
10월 14일   통영국제음악당                         
10월 23~24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5호 2015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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