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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김지우 [No.146]

글 | 안세영 사진 | 심주호 2015-12-01 6,025

내일의 태양을 향하여

2013년 <아가씨와 건달들>을 마지막으로 휴식기에 들었던 김지우가 2년 만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히로인 스칼렛 오하라로 돌아온다.
방송 연기자 출신이라는 설명이 무색할 만큼 소극장부터 대극장까지 차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넓혀온 그녀. 

오랜 공백을 깨고 돌아온 이번 무대에서 그녀는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꾼다. 



새로운 시작

2년 만의 무대 복귀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작년 12월 아이를 낳은 뒤로는 계속 육아에만 전념했어요. 그러다 3개월쯤 지났을 때 <복면가왕>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가 출산 후 처음으로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불렀죠. 그런데 너무 오래 쉬어서 그런가 목소리가 마음대로 안 나오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다시 보컬 레슨도 받고 운동도 하러 다녔어요. 드디어 다시 무대에 선다고 생각하니 정말 신 나요! 물론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도 크지만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사실 제작사에서 스칼렛 오하라를 캐스팅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저하고 소속사 쪽에서 먼저 연락을 했어요. 그때는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캐스팅이 되고 나니 걱정이 밀려오더라고요. 스칼렛 오하라로 복귀라니, 나 어떡하지?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지금도 하고 있어요. 복귀작부터 너무 욕심낸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남은 시간 동안 더 노력해야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작품은 뭘로 처음 접했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대부분 영화로 먼저 접한다고 알고 있는데, 저는 책으로 먼저 읽었어요. 아마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아요. 영화는 나중에야 봤는데, 와! 정말 넋을 놓고 봤죠. 비비안 리의 스칼렛은 어쩜 그렇게 예쁜지. 또 클라크 게이블의 레트는 어쩜 그렇게 멋있는지. 저런 사람이랑 사랑에 빠지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했어요. 
지난 3월에는 EBS ‘책 읽는 라디오’에서 성두섭 씨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낭독하기도 했죠. 
그니까 사람 일이라는 게 참 웃겨요. 그게 딱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초연이 끝날 때쯤 방송한 거거든요. 원래 EBS 라디오에서 동화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조연출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낭독 프로그램 연출을 맡게 되면서 저한테 같이하자고 한 거였어요. 그때만 해도 이렇게 뮤지컬로 다시 만날 줄은 몰랐죠.
스칼렛을 포함한 모든 여자 캐릭터를 연기했다면서요?
스칼렛, 멜라니, 벨, 보니, 심지어 피티 패트 고모까지 제가 다 했죠. 그때의 낭독 경험이 지금도 도움이 돼요. 이 인물은 어떤 성격이니까 어떤 목소리로 연기해야겠다, 이렇게 다 정해 놓고 낭독을 한 거였기 때문에 모든 캐릭터를 조금씩 맛보고 파악할 수 있었거든요. 심지어 스칼렛이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목소리로 표현해야 했어요. 덕분에 대본 리딩 때는 한결 수월했죠. 

스칼렛 오하라가 되다


원작을 읽으면서 생각한 스칼렛은 어떤 사람인가요?
사실 처음에는 ‘나쁜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화가 난다고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타라를 지키기 위해 여동생의 남자를 가로채고, 또 유부남인 애슐리를 못 잊어서 옆에 있는 레트까지 놓치잖아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죠. 뮤지컬 대본을 받아들고도 ‘얜 왜 이럴까’ 하는 생각에 한동안 막막했어요. 그런데 연습을 하면서 한진섭 연출님께서 저를 일깨워주셨죠. ‘지우야, 스칼렛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면 안 돼. 스칼렛은 평범함의 범주에서 벗어난 아이야. 네가 스칼렛이 돼야지 스칼렛을 너한테 맞추려고 하면 이해가 안 될 거다.’ 그 말씀을 듣고 아차 싶었어요. 제가 스칼렛의 입장이 돼야 하는데 바보같이 제 입장에서 스칼렛을 생각한 거예요. 한 발짝 떨어져서 ‘나라면 이렇게 안 할 텐데’ 생각하고 있었으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거죠. 
사실 김지우 씨의 발랄한 이미지를 생각하면 스칼렛이 쉽게 연상되진 않아요.
뮤지컬 활동 초반에는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했으니 그런 이미지가 굳어졌을 수도 있죠. 하지만 <닥터 지바고>의 라라를 연기하면서 ‘저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를 조금 보여드렸다고 생각해요. 사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는 양쪽이 다 들어 있거든요. 1막 초반에는 ‘내가 제일 잘났어, 남자들은 다 나만 좋아해, 흥!’ 이러면서 발랄하고 통통 튀는 모습도 보여줘요. 그러다 후반부로 갈수록 나이를 먹으면서 강인함, 성숙함을 보여주게 되고요.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색깔이 하나로 정해져 있으면 그쪽에 몰입하면 되는데 여러 가지를 다 표현해야 되니까. 
극 중에서 스칼렛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을 꼽는다면요?
스칼렛이 두 번째 남편이 죽은 뒤에 레트와 결혼을 또 하잖아요. 다른 사람 같으면 왜 나랑 결혼하는 사람마다 죽나, 동생 애인을 빼앗아서 벌 받나 이런 생각에 계속 빠져있을 텐데 스칼렛은 레트의 청혼을 받고 바로 좋다고 한단 말이에요. 심지어 레트가 결혼반지는 뭐가 좋냐 물으니 ‘다이아몬드요! 이따만 한 걸로!’ 그러거든요. (웃음)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스칼렛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나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천진난만한 거죠. 
스칼렛에게 있어 애슐리와 레트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해요?
애슐리는 말하자면 교회 오빠? 신사적이고, 시적이고, 추억 속 첫사랑 같은 존재랄까. 그러다 시간이 흘러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약간 ‘뜨악’ 하게 되는 것처럼, 스칼렛의 환상도 깨지는 순간이 오죠. 그게 바로 멜라니가 죽은 이후인데요, 소설에서 애슐리는 아내인 멜라니가 없자 옷 하나를 제대로 못 입는 걸로 나오거든요.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 무기력한 남자를 보면서 스칼렛은 그가 자신이 그려온 것과 전혀 다른 사람이란 걸 깨달았을 것 같아요. 반면 레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곁에 있을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자신이 사랑을 고백했을 때 무시하고 떠나니 충격을 받았겠죠. 그러니까 결말에서 두 인물에 대한 스칼렛의 믿음이 완전히 무너지는 거예요.
레트 역은 배우가 네 명이나 되잖아요. 네 배우의 개성도 연령대도 제각각이라 누구와 연기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진짜 엄청 달라요. 주변에서 자꾸 누구랑 잘 맞느냐, 누구랑 하는 걸 보러 가면 좋겠느냐 물어 보는데, 네 레트가 워낙 다 달라서 엄마한테도 답을 못했다니까요. (웃음) 우선 남경주 선배님은 한국말 하는 클라크 게이블! (웃음)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로 레트의 매력을 살려내시죠. 신성우 선배님은 상남자일 것 같지만 의외로 나른하게 대사를 치실 때 반전 매력이 있고요, 김법래 선배님은 목소리에서 오는 무게감이 남달라요. 극 중에서 레트가 스칼렛에게 ‘나랑 결혼하겠다고 말해요, 얼른!’ 이러는 장면이 있는데, 저절로 ‘네~’ 하게 된다니까요. (웃음) 윤형렬 씨는 딱 레트의 젊은 시절 같아요. 패기가 느껴지죠. 연습이 진행될수록 점점 여유로움과 중후함도 갖춰가고 있어서 그걸 보고 있으면 레트가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바로 저랬겠구나 싶어요. 아무튼 관객분들은 캐스팅 고르려면 머리 좀 아프실 거예요. 다 보셔야죠, 뭐. 하하!



운명을 개척하는 힘


방송 연기자로 시작했지만 드라마나 영화보다 뮤지컬 활동에 주력하고 있어요. 이번에도 뮤지컬로 복귀를 택한 이유가 있나요?
흔한 대답이겠지만,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어요. 요즘 사람들은 카메라에 익숙하고 셀프 동영상도 많이 찍잖아요. 아마 카메라 앞에 선 느낌은 평소에 셀카를 찍을 때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 연기는 다르죠. 배우가 관객에게 기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왔다 갔다가 있거든요. 저는 그게 재밌어요. 또 내가 맡은 역할에 대해 충분히 시간을 갖고 분석할 수 있고, 연습 동안 더 좋은 모습을 찾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에요. 마약은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고 하잖아요. 공연도 마약 같아요. 안 하고 있으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빨리 공연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죠. 
그동안 소극장에서 대극장, 현대물에서 클래식까지 다양한 작품에 서왔는데, 자신의 뮤지컬 경력에 전환점이 된 작품을 꼽는다면요?
두 번 고민할 것 없이 <닥터 지바고>죠. 제가 <닥터 지바고>를 하지 않았다면 <베르테르>를 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닥터 지바고>를 하지 않았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할 수 있었을까요? 절대 못했을 거예요. <닥터 지바고> 이후 제게 들어오는 작품의 폭이 달라진 거죠.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착도 커요. 제가 트위터에 <닥터 지바고> 앓는 글을 하도 많이 써서 팬들이 ‘지우 라라 때문에 지바고 지뢰 밟았다’, ‘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건드리느냐’고 말할 정도예요. (웃음) 심지어 저는 <닥터 지바고>를 공연한 샤롯데씨어터 앞에만 가도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요. 그래서 이번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공연장이 샤롯데씨어터라는 걸 알았을 때도 괜히 더 좋았어요. 얼마 전, <더뮤지컬> 15주년 콘서트 때도 (강)필석 오빠랑 ‘On the Edge of Time’을 불렀잖아요. 아, 정말 아련하더라고요. 제가 파샤랑 그 노래를 부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웃음) 
클래식한 작품을 한 건 <닥터 지바고>가 처음이었으니, 발성 연습을 많이 했겠어요.
그랬죠.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어요. 제가 캐스팅이 됐다는 것 자체에 의구심을 갖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저 역시도 그랬어요. 라라 역에 어울리는 쟁쟁한 배우가 얼마든지 있는데 내가 감히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걸까? 왜냐면 저도 뮤지컬을 좋아하는 한 관객으로서 십만 원이나 주고 보는 공연을 못하는 배우로 보긴 싫거든요. 그러니 관객들이 욕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결국 그분들에게 죄송하지 않으려면 내가 연습을 더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습을 정말 미친 듯이 했죠. 조금씩 발전해 가는 모습을 관객들도 좋게 봐주셨는지, 마지막에는 ‘그래도 좋은 라라였다’고 얘기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대 위에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아이가 생긴 뒤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서 달라진 점은 없나요?
아무래도 책임감이 달라지더라고요. 사실 그렇잖아요. 아이가 저한테 낳아달라고 했나요? 제가 좋아서 낳았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죠. 그게 일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좋아서 하겠다고 선택한 작품이지 누가 등 떠밀어서 한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저는 여태까지 작품 하면서 힘들다 소리를 달고 살았어요. 어차피 할 거면서. 거기에 대해 반성이 되더라고요. 솔직히 엄마가 되고 나서 연기가 달라진다거나 이런 건 아직 모르겠어요. 관객들이 보기에도 갑자기 뭔가 확 달라지고 이런 건 없겠죠. 다만 이제는 하고 싶은 역할이 생기면 절대 물고 놓지 않을 거예요. 도전할 거예요. 나한테 온 기회는 놓치지 말아야겠다, 그런 부분에서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같아요. 
끝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 사람 연기는 잘하는데 사람은 별로야’ 이런 말은 듣는 배우는 되고 싶지 않아요. 인간적으로도 멋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특히 여자로서 아주 멋진 여자이고 싶어요. 제가 딸을 낳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딸에게 ‘우리 엄마는 참 좋은 엄마야’가 아니라 ‘우리 엄마는 참 멋진 여자야’라는 말을 들었으면 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6호 2015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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