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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INSIDE THEATER]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 [No.150]

글 |김주연 사진제공 |LG아트센터 2016-03-17 5,261

거장이 거장에게 바치는 무대  





해마다 국내외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우리 공연계에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어 온 LG아트센터가 2016년 시즌 첫 개막작으로

필립 글래스의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를 선보인다.

1946년에 장 콕토가 만든 고전 흑백영화 <미녀와 야수>를

필립 글래스 앙상블의 연주와 성악가들의 노래를 통해

새로운 형식으로 재탄생시킨 공연이다.

사실 스크린 상영과 함께 현장에서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영화음악의 원초적인 형태인 동시에, 여러 가지 형식으로 변형되어

오늘날에도 종종 공연되는 방식이다. 영상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인

100여 년 전, 극장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 무성영화를 상영하면서

한쪽에서 연주자들이 배경음악을 직접 연주하게 했다.

당시의 영화 관람은 ‘보는 영화’인 동시에 ‘듣는 영화’였던 것이다.



장르의 완전한 변형과 새로운 해석


                       

최근 들어 이러한 연주 방식은 음악이 단순히 영상을 뒷받침하거나 설명하는 역할로부터 벗어나, 음악 자체로서의 존재감을 발휘하며 주도적으로 영상을 이끌어간다는 면에서 다시 주목받으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음악’과 ‘영화’를 키워드로 내세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는 매년 <시네마 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무성영화의 걸작들을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라이브 연주와 함께 소개하고 있으며,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연주와 함께 보는 무성영화’ 시리즈를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전문 무성영화 연주가들과 단체들이 극장뿐만 아니라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 다양한 공간에서 무성영화 연주를 펼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고전 흑백영화를 극장에서 라이브 연주와 함께 상영하는 이번 <미녀와 야수>의 공연 형태가 그렇게 새롭거나 획기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이 공연을 설명하는 특징 중 하나일 뿐,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가 특별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공연이 단순히 스크린과 라이브 연주자의 만남이 아니라, 본래 극영화인 <미녀와 야수>를 오페라 장르로 새롭게 해석해 냈다는 점이다. 즉, 단순히 배경음악을 제거하고 다시 연주하는 형태가 아니라, 원작을 완전히 새로운 장르로 변형시킨 것이다. 


원작인 1946년 버전 <미녀와 야수>는 영화 전체에 걸쳐 장 콕토의 천재성이 번뜩이기는 하지만, 형태적으로는 아주 고전적인 스타일의 극영화이다. 특히 조르주 오리크가 맡은 이 영화의 음악은 당대 흑백영화의 관습적인 음악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야수가 성에 도착할 때 음습한 분위기의 음악으로 긴장을 고조시킨다거나 드라마틱한 장면에서 과장된 효과음을 들려주는 식으로 말이다.


필립 글래스는 원작 영화의 대사와 음악, 음향효과 등 모든 소리를 전부 제거한 채, 자신이 작곡한 음악과 노래로 이 작품을 (음악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본디 오페라가 아닌 극영화를 오페라로 만든다는 것은, 극 중 인물의 대사는 물론이거니와 감정과 분위기, 극의 흐름을 모두 음악적으로 새롭게 해석, 창조해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립 글래스는 극 중 인물들의 대사를 오페라 아리아로 만드는 한편, 노래 사이사이의 동선과 포즈(Pause), 이미지의 전환까지 모두 치밀하게 계산하고 시간을 배분해 음악적으로 통일성을 지닌 하나의 오페라 작품으로 완성했다. 단순한 배경음악이나 영상에 딸린 반주가 아니라 장르의 완전한 변형이라는 점에서, 이는 새롭고도 획기적인 시도라 할 만하다.



선배 예술가의 도전에 대한 음악적 오마주

                     


이처럼 원작 영화를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로 탈바꿈시킨 것은 작곡가로서 필립 글래스의 비전을 실현한 음악적 시도인 동시에, 원작 영화를 만든 장 콕토에 대한 필립 글래스 자신의 경의를 담은 오마주의 의미를 담고 있다. 


20세기 초, 파리의 ‘르네상스 맨’으로 불리며 문학, 연극, 영화 등 다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펼쳐보인 장 콕토의 예술 세계를 깊이 존경해 온 필립 글래스는 1990년대에 콕토의 영상에 바탕을 둔 <장 콕토 3부작>을 완성해 주목을 받았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은 콕토의 영화 <오르페> 시나리오를 챔버 오페라의 리브레토로 사용한 <오르페>(1993)이다. 두 번째 작품이 바로 필름 오페라로 새롭게 탄생시킨 <미녀와 야수>(1994)이며, 3부작의 마지막은 콕토의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무용극 <앙팡 테리블>(1996)이다.


필립 글래스의 <미녀와 야수>가 선배 예술가 장 콕토에게 바치는 오마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이 작품이 3부작 중 하나여서가 아니라, 이 프로젝트 자체가 바로 장 콕토의 새로운 시도, 즉 동화인 <미녀와 야수>를 콕토만의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해 낸 것에 대한 필립 글래스의 음악적 헌사이기 때문이다. 장 콕토는 장-마리 드 부몽 여사가 쓴 18세기의 동화 <미녀와 야수>를 영화로 만들면서 이 작품을 단순한 환상동화가 아니라 “예술 창작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은유로 바라보고, 이를 화면 위에 시적인 이미지들로 구현해 냈다. 


<미녀와 야수>의 작곡가 노트에 따르면 필립 글래스는 이 작품을 예술 창작의 본질에 대한 장 콕토의 가장 확실한 발언으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시선으로 볼 때, 극 중 벨(아름다움)이 야수의 성(城)을 찾아가서 겪는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그로 인한 야수의 변화는 그 자체로 자신의 무의식을 찾아가는 여정이자 예술가가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과도 같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 높이 떠오르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한층 높은 단계로 고양된 예술의 상태를 은유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동화를 예술에 대한 은유이자 한 편의 영상 시학으로 완성해 낸 장 콕토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담아, 필립 글래스는 이 작품을 ‘오페라’ 장르로 다시 한 번 음악적 변형을 이끌어냄으로써 선배 예술가의 도전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오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을 통해 감정을 쌓아가는 음악


                       

무대 위에는 모든 사운드트랙이 제거된 장 콕토의 흑백영화가 상영되는 가운데,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새로운 음악을 필립 글래스 앙상블이 연주하고, 4명의 성악가가 각기 역할을 나누어 아리아를 노래한다. 스티브 라이히와 함께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며 현대음악사, 나아가 현대예술 전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필립 글래스의 음악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


스스로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보다는 ‘반복 구조의 음악을 쓰는 작곡가’로 불리는 걸 선호했던 글래스의 음악은 실제로 ‘반복’을 통해 독특하면서도 잊지 못할 음악적 경험을 선사하곤 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지난해 광주아시아예술극장에서 공연되어 화제를 모았던 <해변의 아인슈타인> 같은 경우, 다섯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음악적 프레임의 반복 속에서 어떤 ‘무한성’을 느끼게 해 주었으며, 이것이 쌓이고 쌓여 마지막 장면에서는 극장 전체를 압도하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이끌어낸 바 있다.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 역시 작품 전체를 새롭게 작곡한 프로젝트인 만큼, 필립 글래스의 음악적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시대의 거장 필립 글래스가 지난 시대의 거장 장 콕토에게 바치는 음악적 헌사는 어떤 색깔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3월 22~23일    LG아트센터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0호 2016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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