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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마타하리> [No.152]

글 |정수연 한양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2016-05-17 6,146

순정파 마타 하리는 마다하리, <마타하리>



치명적 매력?                        

<마타하리>를 소개하는 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수식어가 있으니 바로 ‘치명적인 매력’이다. 섹시한 여주인공을 묘사하는 장르 불문 만국 공통어. 매력이 치명적인 까닭은 그것이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힘이기 때문이다. 어원으로 보자면 귀신의 힘(魅力)이요 마법의 주문(Charm)을 일컫는 말이니만큼 매력이란 불가항력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리킨다. 의식과 의지를 압도하는 이 힘을 거부하기란 불가능하다. 이 힘에 꼼짝없이 매여 치명상을 입는 사람은 누굴까? 자석이 갑이고 철가루가 을이다. 매력에 끌리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맹목에 던져 넣는 거다. 치명적인 매력은 언제나 상대의 눈을 감겨버린다. 


그렇게 보자면 <마타하리>의 주인공은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가 아니다. 매력의 주체여야 할 마타 하리가 오히려 맹목의 치명상을 입으니 말이다. 사랑에 우는 것도 마타 하리요, 죽음에 내몰리는 것도 마타 하리다. 모든 선택과 행동은 자기의 의지에서 비롯되기보다는 모략 때문이거나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생겨난다. 매력이 발휘하는 힘의 논리가 완전히 뒤집혀 있는 셈이다. 여자 주인공은 능동적이기는 고사하고 순정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한 수동형 인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마타 하리만이 아니다. 카르멘도 그랬고 마리 앙트와네트도 그랬다. 제목에 자기 이름을 내건 뮤지컬의 여주인공들이 치명적인 매력을 발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기껏해야 절대 미모와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정도랄까. 도발적인 면모 뒤에는 언제나 새하얀 순정이 숨어있으니 여성 캐릭터를 향한 상상력은 항상 이 근처에서 돌고 돌았더랬다. 알파고에 지금까지의 모든 캐릭터를 입력시킨 후 새로운 여주인공을 만들어내라고 하면 오히려 더 창조적인 인물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수동적인 마타 하리, 매력적이지 않다.


<마타하리>에 기쁘게 창작뮤지컬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망설여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주요창작자의 국적이나 자본을 주관하는 제작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행정적 의미의 창작뮤지컬은 정의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창작이라는 단어의 뜻 그대로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것에 기준을 두자면 <마타하리>에서 눈에 띄는 건 창작의 신선함이 아닌 클리셰의 기시감이다. 마타 하리라는 흥미로운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기보다는 뮤지컬의 전형에 익숙한 맞춤 캐릭터로 빚어내는 데 더 힘을 쏟은 느낌이랄까. 캐릭터를 구축할 필요가 없는데 이야기의 치밀함을 미주알고주알 요구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플롯이 아니라 관성에 따라 흘러가는 이야기. 뮤지컬 공연 목록에 그저 비슷한 경향의 또 하나의 데이터가 축적된 셈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작품에서 창작뮤지컬의 이름으로 뭔가 하나 해주기를 바랐지만 말 그대로 치명적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대, 오로지 무대                           

그렇다고 이 작품에 아예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무대. 무대를 보고 있자니 디자이너로서는 하고 싶은 것 다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화려할 뿐 아니라 조명과 어우러진 무대의 색감 또한 아름답다. 게다가 모든 장면은 세트와 장치를 통해 일일이 설명되고 묘사된다. 지나친 물량 공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물량만으로 이 무대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평가가 아닐 거다. 이 작품의 무대는 수직 공간에서 오케스트라의 옆면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시야에 포착되는 모든 공간을 무대로 활용하는데 그 솜씨가 능숙하다. 상징적으로도 그렇고(마타 하리의 삶과 죽음을 표현하는, 무대 천장에서 만들어지는 길!), 기능적으로도 그렇다(기둥을 전환시킴으로 헤어진 가족의 그리움을 교차시키는 설정!). 때로 과잉처럼 보이기도 하고(너무 높고 넓게 펼쳐놓은 사람들!) 지나치게 설명적이기도 하지만(단 한 번 날려 보내기 위해 만든 비행기!), 장치를 통한 장면 전환은(기차에서 기차역으로!) 관객에게 보는 재미를 쏠쏠하게 제공한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많은 무대 전환을 이리 자연스레 잇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작품의 무대는 연출의 기능을 넉넉하게 해낸다.


하지만 이야기의 질량과 적절하게 맞물리지 않을 때 무대는 과유불급이 돼버린다. 무대가 아무리 마타 하리의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면 뭐하나. 정작 이야기 안에서 이런 설정은 간단히 휘발돼 버리고 마는데 말이다. 작품 전반을 이끄는 해설자를 설정한 것이나 작품의 처음과 끝 장면을 인생이라는 공연을 끝내는 마타 하리의 커튼콜처럼 그린 것을 보자면 이 작품도 애초에 그의 삶을 한판 춤으로 봤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의도는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다. 일단 작품 전반에 그려진 마타 하리의 삶은 한판 춤만큼 강렬하지 않다. 사건을 이끌기보다는 상황에 말려드는 수동적 인물에게서 삶의 연극성 그러니까 운명의 비극성 따위를 찾아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극 중간에 자주 개입하는 해설자의 역할이 애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극은 에피소드의 연결이 아닌 스토리의 진행을 요구하는데 극 안과 밖의 위치조차 분명치 않은 해설자를 굳이 설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춤을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관능적인 이국의 몸짓으로 무대 위에서 한 켜 한 켜씩 옷자락을 벗어내는 마타 하리의 춤은 그 자체로 삶을 도발하며 운명을 암시하는 상징이 되어야 할 터. 이중 스파이라는 굴레가 조여올수록 춤추는 마타 하리의 자유와 사랑은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여러 군데에서 깨지고 만다. 옥주현의 춤이 그다지 관능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그저 개인의 취향이라고 미뤄두자. 마타 하리의 춤이 작품 전체에 걸쳐 분량에서나 상징성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적다는 점은 이 작품에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공연 의상을 갖춰 입고 마치 춤을 출 듯이 사형장에 선 마타 하리가 그저 손키스만 날린 채 끝을 맺는 건 너무 싱겁지 않나? 춤의 함축적이고도 상징적인 힘을 이렇게 날려버리다니. 거창하게 만들어놓은 무대가 아까울 따름이다.




사랑보다 춤을                       

무대와 조명을 비롯한 시각적인 공연 언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승부수는 이야기의 완결성보다는 스펙터클 위주의 공연성에 있다. 물론 독백 같은 넘버가 많기에 그 넓은 무대에서 캐릭터들의 나 홀로 노래가 많은 것은 작품을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배우의 뛰어난 성량으로 장면을 살리고자 해도 비슷한 감성으로 계속 이어지는 노래의 단조로움은 쉽게 극복되지 않더라. 프랭크 와일드혼이 감성적인 작곡가이긴 해도 극적인 작곡가는 아님이 또다시 확인된 셈이다. 이 지루함과 단조로움을 극복하려면 춤을 통해 공연다움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세계 진출을 목적으로 한다면 더욱 그렇다. 텍스트의 언어보다는 공연의 언어가 관객에게는 분명한 의미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춤의 언어를 구체화할 때 마타 하리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확장될 길을 얻을 수 있다. 관능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 법. 관객의 욕망보다 캐릭터의 욕망을 먼저 담아내는 게 급선무다.


이번 공연에서 EMK뮤지컬컴퍼니의 작품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들은 언제나 그랬듯 늘 자기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무대에서 몸매를 드러낸 채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배우들의 긴장도 만만치 않았을 터. 늘씬한 배우들 사이에서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가 있다. 안나 역의 김희원이다. 늙은 코디네이터인 안나는 마타 하리에게 엄마 같은 존재이다. 튀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김희원의 연기에서 캐릭터의 진심이 느껴지더라. 더 좋았던 건 캐릭터로서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이었다. 안나가 등장할 때 극은 안정감을 찾는다.


<마타하리>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완성하려는 EMK뮤지컬컴퍼니의 포부를 지지한다. 하지만 그 포부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토대부터 다시 확인하고 다져야 할 것들이 많아 보인다. 시장의 가능성을 얻으려면 작품의 완성도에 매진할지니. 작품성이 목적이요 시장성은 결과가 되어야 하건만 이게 뒤바뀌면 작품도 관객도 민망해진다. 부디 건승.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2호 2016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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