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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스위니 토드> 연출가 에릭 셰퍼 [No.154]

글 |배경희 사진 |양광수 통역 | 이인정 2016-07-28 6,726

공연이란
마음에서 마음으로 번지는 것



9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다시 무대에 오르는 <스위니 토드>의 진두지휘를 맡은 사람은 미국인 연출가 에릭 셰퍼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에릭 셰퍼가 오랜 기간 예술감독으로 몸담고 있는 워싱턴의 시그니처 시어터는 미국에서 손드하임 작품을 가장 많이 올린 극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그 때문에 에릭 셰퍼에게는 손드하임 뮤지컬의 대가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번 첫 한국 작업 제안을 단번에 받아들인 것도 그 작품이 손드하임의 <스위니 토드>였기 때문이다.





손드하임 뮤지컬의 매력
아시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이번 <스위니 토드>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
몇 해 전에 내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시그니처 시어터(Signature Theatre)에서 미스터 신(신춘수 프로듀서)이 개발 중인 <스핀> 워크숍 공연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걸 계기로 미스터 신과 인연이 됐는데, 그가 한국에서 <스위니 토드>를 할 계획이라며 연락을 해왔다. 연출을 맡아볼 생각이 있냐고 말이다. 시그니처 시어터가 손드하임 뮤지컬을 많이 올리기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연출로 날 떠올린 게 아닐까 싶다. 이전에 아시아권에서 작업해 본 적은 없지만, <스위니 토드>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시그니처 시어터에서 손드하임 작품을 많이 올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1989년 극장 개관 당시 우리가 처음으로 올린 작품이 <스위니 토드>였다. 그러고 나서 이듬해에 <어쌔씬>을 올렸더니, 재밌게도 사람들이 우리가 다음엔 어떤 손드하임 작품을 올릴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 작품으로 <컴퍼니>를 하게 됐고, 매해 손드하임 작품을 한 편씩 올리는 게 점차 전통처럼 굳어졌다. 지난 27년 동안 손드하임 작품을 모두 스물여섯 번 공연했는데, 그중에서 내가 직접 연출을 한 게 열일곱 번이다. 나한테 손드하임 뮤지컬은 내 몸 안에 흐르는 피 같은 존재다. (웃음)


누구보다 손드하임 작품을 많이 경험한 연출가의 입장에서 손드하임 작품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만약 당신이 내게 제일 좋아하는 손드하임 작품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 쉽게 답하지 못할 거다. 모든 작품마다 좋아하는 점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스위니 토드>는 광기 어린 이발사 스위니 토드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가 좋다. <패션>은 감정적인 삼각관계를 그리는 게 좋고,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예술가적인 면모를 드러내서 좋다. <폴리스>는 무너진 꿈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점이 좋다. 이처럼 손드하임 작품은 각각 매력이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지녔는데 그건 바로 그가 뮤지컬로 만들겠다고 선택하는 소재들이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흥미롭다는 거다. 마치 관객들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이끌겠다는 생각으로 공연을 만드는 것 같달까.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고 나면 늘 뭔가를 느끼게 된다. 내가 연출가로서 항상 꿈꾸는 것도 그런 거다.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재밌는 공연이었어’ 하고 주차장으로 직행하는 게 아니라, 방금 전 자신들이 본 공연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는 작품을 만드는 것. 그런 작품들은 마음속에 남아 며칠이, 몇 주가, 몇 달이 지나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손드하임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다.


음악적인 면에서 특별한 점을 꼽자면?
방금 전 손드하임 작품은 새로운 경험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중심에 있는 게 그의 음악이다. 손드하임은 우리가 평상시에 쉽게 겪을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을 음악으로 느끼게 한다. 그게 정말 좋다. 그리고 손드하임은 작곡뿐 아니라 작사도 직접 하기 때문에 음악과 가사가 굉장히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그가 극 중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 선택하는 세련된 리듬이나 화성, 멜로디도 놀랍지만, 그에 꼭 어울리는 단어를 쓰기 때문에 각각의 캐릭터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음색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 <스위니 토드>

손드하임 작품의 매력을 말하면서 새로운 세계의 경험이라는 표현을 계속 썼다. 그렇다면 <스위니 토드>는 어떤 점에서 새로운 여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위니 토드>는 공연 내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이다. 어떤 장면에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의 충격을 주고, 또 어떤 장면에선 무시무시한 공포에 몰아넣다가 곧바로 분위기를 전환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어떻게 이런 걸 보면서 웃지 하고 깔깔 대게 만든다. 굉장히 영리한 구조로 짜여진 극이다.


<스위니 토드>를 롤러코스터에 비유해 얘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롤러코스터를 타면 언제 땅으로 곤두박질칠까 하고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가 있지 않나. <스위니 토드>에선 그게 언제일 것 같나.
내 생각에 우리 작품의 첫 번째 클라이맥스는 1막의 엔딩 신인 것 같다. 스위니 토드가 광기에 사로잡혀 무차별 살인을 결심하는 ‘Epiphany(계시)’를 부르다가 러빗 부인과 함께 살인한 사람들을 고기 파이를 만드는 데 쓰자면서 ‘A Little Priest(목사는 어때요?)’를 노래하기 시작하면, 아마 롤러코스터 같은 작품이라고 말한 의미가 뭔지 알게 될 거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클라이맥스, 롤러코스터로 치면 가장 높은 포인트에 도달하는 아찔한 순간은 2막에 등장한다. 그게 어떤 건지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공연이 끝나기 15분 전부터는 계속 끝없이 밑으로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거다.


공연 전반에 걸쳐 긴장감을 유지하는 힘이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관객들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할 생각인지 팁을 줄 수 있을까.
<스위니 토드>는 어딘지 노골적이고 대담한 면이 있는 작품이고, 그게 바로 공연에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래서 <스위니 토드>를 할 때는 늘 배우들에게 결코 예의 바르게 표현해선 안 된다는 말을 한다. 이번 연습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 중의 하나도 더 대범하게, 더 강하게 표현해달라는 거였다. 그리고 무대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일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보이느냐에 따라 긴장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연기 호흡에 대한 연습을 많이 했다. 연습 초반엔 배우들에게 대사를 할 때 앞선 대사를 하는 배우와 말이 겹쳐도 괜찮으니까 실제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연기해 달라는 주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배우들과의 교감은 어땠나.
뮤지컬 한 편을 공연하는 것은 말하자면 어떤 세계를 만드는 것과 같다. 때문에 다양한 외모와 체격, 성격의 배우들이 팀에 많을수록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다행히 각양각색의 배우들로 팀이 꾸려져 만족스럽다. 또 재능 넘치는 배우들도 많고, 다들 열정이 대단하더라. 나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이미지가 모든 배우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공연은 배우들과 함께 완성해 가는 게 중요하다. 이번 작업은 그런 부분에서 만족스럽다. 연습 영상을 몇 개 찍어서 손드하임에게 보내줬더니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한국 공연 포스터를 갖고 싶다고 해서 공연을 올리고 나서 미국으로 돌아갈 때 포스터를 한 부 얻어다 줄 생각이다. (웃음)



첫 한국 작업이라는 점에서 신선했던 점은 없었나.
사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브로드웨이와 한국의 작업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배우들에게 칭찬을 하면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못 믿는 눈치를 보인다는 게 좀 흥미로웠다. 아마 칭찬받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그런데 칭찬이라는 건 정말 중요하다. 누구나 칭찬을 받으면 자신감이 생겨서 더 좋은 결과를 내기 마련이니까. 특히 배우는 매일 밤 공연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얼마큼 자신감을 가지고 공연을 하느냐는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위니 토드> 국내 초연 당시 무대 디자인이 워낙 화제를 모았던 터라 무대 또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오필영 디자이너와 처음 의견을 나눴던 건 대형 오븐이 등장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무대였는데, 아마 미니멀한 3층 구조의 세트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여덟 명의 주요 캐릭터 모두 이야기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작품인 만큼 캐릭터와 이야기 자체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무대를 만들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론 피렐리가 끌고 다니는 수레에서 영감을 받은 누추한 느낌의 무대가 나올 것 같다. 공연 초반 스위니 토드의 라이벌 이발사로 등장하는 피렐리는 그저 악덕 이발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먹고살기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오필영 디자이너와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피렐리가 항상 끌고 다니는 수레에는 그의 모든 삶이 담겨 있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게 오필영 디자이너에게 좋은 힌트가 된 것 같다.


<스위니 토드>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 중에서 어떤 캐릭터의 이야기를 제일 좋아하나.
모든 캐릭터의 이야기를 다 좋아하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토비아스의 이야기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 토비는 우연히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 일을 돕게 되는 어린 고아인데, 그저 사랑받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자신을 사랑해 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여정에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러빗 부인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고, 러빗 부인을 돕는 게 자기의 삶이라고 생각해 그녀에게 헌신을 다한다. 극 중에서 누구보다 진심이 느껴지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마지막엔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기질을 보여주는 인물이라 더 매력적이다. 


주인공 스위니 토드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스위니 토드는 무엇보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해 보여주려고 한다. 무차별 살인을 벌이는 스위니 토드를 관객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인물을 응원하기 마련이지 않나. 공연 초반 스위니 토드의 억울한 사연이 밝혀지면 관객들도 그가 왜 그렇게 복수에 집착하게 되는지 이해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끝으로 연출가로서 신념은 뭔가.
내가 처음으로 본 손드하임 뮤지컬은 해롤드 프린스가 연출하고 유진 리가 세트 디자인을 했던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 버전의 <스위니 토드>였다. 열여덟 살에 학교 선생님을 따라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극장에 갔던 건데, 거의 넋을 놓고 공연을 볼 정도로 작품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계속 어제 본 공연이 생각나 그길로 곧장 레코드 가게에 가서 공연 앨범을 산 다음, 말 그대로 일주일 내내 그것만 반복해 들었다. 가사를 곱씹을 때마다 연신 ‘오 마이 갓, 이거 정말 환상적이다’를 외치면서 말이다. (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떤 공연에 매료됐던 경험들이 연출가로서 내게 최고의 교육이었던 것 같다. 왜냐면 사실 공연이라는 건 마음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수학 공식처럼 교과서를 통해 배울 수 없다. 공연 연출을 책 한 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한 교과서를 쓸 수만 있다면 나도 물론 쓰고 싶지만. (웃음) 그런데 공연을 수학 공식처럼 배우기만 하려다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안타까운 일이다. 내게 종종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해주고 싶은 말은 하나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많은 걸 느끼고, 스스로 느낀 대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라. 그래야만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공연을 만들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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