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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레드북> 한정석 작가 이선영 작곡가 [No.160]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2017-01-25 7,400

 솔직해서 도발적인 고백



한정석 작가와 이선영 작곡가는 2013년 <여신님이 보고 계셔>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젊은창작자다. 재치 넘치는 대사가 돋보이는 한정석 작가의 이야기와 다채로운 매력을 앞세운 이선영 작곡가의 음악. 이것이 또 한 번 만나 <레드북>이란 특별한 시너지를 이루어냈다. 더없이 보수적이었던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성과 사랑의 경험을 솔직하게 말하는 여주인공 안나의 이야기. 제목만으로도 도발적인 느낌이 가득한 작품 <레드북>은 두 창작자의 손길을 거쳐 어떤 모습으로 완성되었을까.





즐겁고 편한 파트너십


먼저 데뷔작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2013년 <여신님이 보고 계셔>(이하 <여신님>)로 인상적인 데뷔를 했는데, 각자 이 작품을 떠올릴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뭐예요?
한정석  추억이 정말 많죠. 개발 단계까지 포함하면 작업 기간이 5년이 넘거든요. 그야말로 저희의 청춘을 바친 작품이죠. (웃음) 20대 후반을 거쳐 30대 초반까지, 한창일 나이에 이 작품을 작업했으니까요. 그래서 되돌아보면 제 청춘이 주마등처럼 떠올라요.
이선영  <여신님>은 지금까지 네 번 무대에 올랐는데요. 그중에서도 초연이 제일 생각나요. 그땐 유독 처음인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도 뮤지컬 작곡가로서 처음 이 작품에 참여한 거였잖아요. 그래서 스태프와 배우 들이 더욱 마음을 모을 수 있었고, 참 즐겁게 연습을 했어요. 그 시절이 많이 그리워요.


데뷔작의 성공으로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도 컸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땠나요?
이선영  사실 그런 부담감은 지금 하나도 없어요. <여신님>이 잘됐으니 다음 작품도 그래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어요. 물론 제 작품이다 보니,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생기죠. (웃음) 
한정석  <여신님>의 성공이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 역시 차기작의 흥행에 크게 연연하려고 하진 않아요. 다만 이런 욕심은 있어요. 저희가 전작보다 더 성장했고,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평은 듣고 싶어요. <여신님>과는 또 다른 컨셉과 목표를 갖고 작업한 무대이니, 이런 부분이 성공을 거두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2013년 뮤지컬하우스 블랙앤블루에 선정되어 쇼케이스 공연을 펼친 <카인과 아벨>, 그리고 2016 창작산실 뮤지컬 우수신작으로 선정돼 공연을 앞두고 있는 <레드북>, 이렇듯 <여신님> 이후에도 꾸준히 협업을 해오고 있어요. 서로 호흡이 잘 맞기 때문인가요?
이선영  처음부터 동갑 친구여서 그런지 이야기가 잘 통했어요. 그리고 작품을 거듭할수록 대화하기가 더 편해지더라고요.
한정석  알고 지낸 지 벌써 8년 정도 되었어요. 저 같은 경우 계속 다른 작품을 써보면서 스스로의 기준이나 한계를 느끼거든요. 내 안에 이런 특징이 있나? 이런 작업도 가능할까? 그런데 이런 점을 파트너에게도 똑같이 느끼게 돼요. 이 친구에게 이런 면이 있나? 이런 느낌도 가능할까? 이렇듯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같은 파트너와 작업을 한다고 해서 하나의 색만 나오는 건 아니더라고요. 서로 이런 점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요.


평소 어떤 방식으로 협업을 하고 있나요?
한정석  주로 제가 던지는 사람이고, 선영 작곡가가 정리하는 역할을 해요.(웃음) 가사의 경우 제가 먼저 아이디어나 컨셉을 서슴없이 던지면, 선영 작곡가가 좋은 것을 추려주거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줘요. 그걸 정리해서 가사를 써 보내면, 또 음악적으로 더 필요한 것들을 말해 주죠.
이선영  가사의 순서를 바꿔야 할 것 같다. 가사를 덜어내거나 더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계속 주고받아요. <레드북>의 경우도 완성된 대본을 받고 작곡을 시작한 방식이 아니라 처음 구상 단계부터 상의하며 작품을 함께 만들어 나갔어요. 조각조각을 붙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면서 작품을 완성했죠. 물론 작품과 관련된 일뿐 아니라 평소에도 재밌는 정보가 있으면 자주 연락해 이걸 작품으로 쓰면 재밌겠다고 재깍재깍 이야기하곤 해요.





세상의 편견에 당당히 맞서다


뮤지컬 <레드북>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성과 사랑 앞에서 당당하고 솔직한 안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로맨틱 코미디물이에요. 독특한 소재가 눈길을 끄는데,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요?
한정석  <여신님> 이후 <카인과 아벨>을 작업하고 있었는데,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 때쯤 우란문화재단에서 신작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어요. <카인과 아벨>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라 조금 망설였지만 그래도 좋은 기회니까 해보기로 하고, ‘시야플랫폼: 작곡가와 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했죠. 일단 <카인과 아벨>이 너무 무겁고 어두운 톤이니까 이번에는 최대한 밝고 유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가장 빨리 준비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일까 고민하다가 결국 작가를 택하게 됐죠.

이선영  애초에는 완전 다른 이야기였어요. 현대의 여자 작가와 과거의 남자 작가의 로맨스를 그린 판타지물을 떠올리기도 했죠.


한정석  그러다가 도발적이고 과감할 걸 써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자신의 성 경험을 이야기로 쓰는 여자 작가를 다뤄볼까? 그렇다면 이 여자를 가로막는 장애는 보수적인 시대일 것이다! 찾아보니 딱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더라고요. 그렇다면 로맨스로 풀어내기 위해서 이 여자와 가장 어울리는 상대는 누굴까? 이 시대를 대표하는 고지식한 신사겠지? 이런 식으로 조각조각을 계속 붙이면서 작품을 만들어 나갔어요.
이선영  음악적으론 대사와 가사를 드라마 안에 많이 녹여낼 수 있는 작품을 써보고 싶었어요. 전작의 경우 넘버와 장면이 조금 분리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음악 안에서 대사와 가사가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을 써보고 싶었어요.


<레드북>이란 제목 또한 흥미로운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요?
한정석  통상적으로 ‘빨간 책’ 하면 야한 서적, 도색 소설을 생각하잖아요. 이 작품은 영국이 배경이니까 영어로 ‘레드북’이라는 제목을 달았죠. 사실 <여신님> 때 제목 때문에 너무 고민을 했거든요. 실제로 제목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기도 했고요. 이번에는 짧고 명료하면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제목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참고하거나 아이디어를 얻은 대상이 있나요?
한정석  원래 자료 조사를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이번에도 역시 키워드별로 다양한 자료를 찾았어요. 빅토리아 시대, 여성 작가와 관련된 작품들, 로맨틱 코미디의 명작들을 다 찾아봤어요. 그리고 <레드북>의 대사와 상황들이 여성의 인권을 다루고 있는데, 돌아보니 제가 간과한 부분이 있을 것 같더라고요. 다시 여성 인권과 관련된 책들을 보고 공부해서,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들을 수정하기도 했어요.
이선영  정석 작가가 본 영화들을 저도 다 찾아봤어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부터 시작해 로맨틱 코미디들을 하나씩 훑었죠.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했거나 인권과 관련된 영화도 많이 봤고요. 또 음악적으로 꿈꾸고 설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엄청 봤죠.


이 작품의 매력을 직접 꼽아본다면 무엇일까요?
한정석  캐릭터에 많은 공을 들였어요. 주인공 안나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익숙한 인물이지만, 그 당시에는 자신의 소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한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살아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여신님>
때도 중요 인물을 설정할 때, 그 인물과 대비되는 캐릭터를 만들어 인물들이 더 잘 보일 수 있게 했거든요. 이번에도 안나라는 인물이 잘 보일 수 있게 보수적인 신사 브라운을 설정하고, 이 중심인물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나머지 캐릭터들을 덧붙였어요. 악의 축을 대변하는 변태 문학 평론가 존슨, 안나의 동료들이라 할 수 있는 로렐라이 언덕의 괴짜 인물들이 그들이죠. 그리고 겉보기는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지만, 그 안에는 요즘 시대에 생각해 볼 수 있는 화두를 던져놓았어요.
이선영  엄청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알고 보니 몸에 좋은 유기농인 거죠. 물론 사랑스럽고 유쾌한 매력도 빼놓을 수 없고요.


<여신님>에서 그러했듯 캐릭터들이 굉장히 또렷해요. 실제로 주변 인물에서 끌어온 캐릭터도 있을 듯해요.
한정석  캐릭터들에 조금씩 조금씩 제 모습이 녹아 있는 것도 있어요. 안나 같은 경우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데, 이런 모습은 저를 생각하면서 그려냈어요. 그리고 여성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모습에는 선영 작곡가의 목소리도 많이 담아냈죠. 브라운은 처음에는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의 이미지를 그렸다가, 멋있는 면은 좀 덜어내고 조금은 찌질하고 허술한 면을 더 담아냈죠. 그리고 변태 문학 평론가 존슨은 제가 살면서 봤던 수많은 예술계 선배들의 모습을 총집합해 만들어낸 캐릭터죠.



성을 표현하는 데 솔직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작품을 준비하며 고민된 지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한정석  표현의 수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편에서는 야한 것을 기대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반응도 있었고요. 하지만 작품의 배경은 여성이 ‘손’이란 말을 해도 경기를 일으키던 시대였거든요. 현대인의 시점에서는 지극히 정상인 인물이지만, 그 시대에서는 소외받는 인물이었죠. 이런 설정을 두고 어느 정도의 성적 표현을 사용하되 일부러 자극적이거나 흥미를 유발하려는 표현은 자제했어요. 성적 농담을 담으면서도 누군가에게는 불쾌하지 않은 선을 지키기 위해 계속 고민했죠.
이선영  이 시대에는 안나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캐릭터였거든요. 마녀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요. 하지만 지금 사람들에게 그 정도는 아니니까 이 캐릭터에 대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런 갭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작품의 특별한 매력을 살리기 위해, 음악은 어떤 방향으로 풀어냈나요?
이선영  전체적으론 사랑스러운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했어요. 클래식한 곡도 있고, 팝 적인 곡도 있고, 굉장히 다채로워요. 그 다채로움 안에서 음악적인 테마들이 교류할 수 있게 신경 썼어요. 또한 음악 안에서 드라마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공을 들였죠. 2막 오프닝 곡인 ‘낡은 침대를 타고’의 경우 안나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장면이거든요. 억압된 시대에 안나가 책 속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음악도 정말 자유롭고 거침없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더했어요. 꿈꾸는 듯한 멜로디와 리듬을 쓰고 싶었죠. 그리고 안나의 전사가 담겨 있는 곡인 ‘안나, 이야기를 들려주렴’의 테마를 중간중간 삽입해, 음악적으로 특별한 재미를 더했죠.


<여신님>의 경우 중독성 있는 넘버가 눈에 띄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곡들이 그런 역할을 맡을까요?
이선영  ‘신사의 도리’라는 곡이 배우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더라고요. 남자 주인공 브라운이 절친인 쌍둥이 잭과 앤디와 런던 거리를 활보하며 자신들의 멋짐을 뽐내는 장면이거든요. 본인들은 정말 자신들이 멋있는 줄 알고 뽐내는데 풍자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어서 되게 재밌어요. 반복적인 가사들도 많아 이 노래가 관객들에게 인상 깊지 않을까 싶어요.


솔직한 표현 때문에 거센 사회적 비난에 부딪히게 되는 안나.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요?
한정석  자신의 목소리를 내달라! 이 사회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좀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작품은 계속 이런 화두를 던져요. 이를 통해 이해와 존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그 노력에 어떤 가치를 담아야 하는지, 이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레드북> 개막과 함께 2017년을 맞이할 텐데요. 창작자로서 신년에 세우고 있는 계획은 뭐예요?
한정석  무엇보다 <레드북>의 안정적인 정착과 뿌리내림이 제 화두예요.(웃음) 이를 위해 다른 계획은 욕심 부리지 않고 있어요. 하반기에
<여신님>이 공연하니까 그에 대한 준비를 하려고요. 그리고 저희의 숙원 사업인 <카인과 아벨> 작업에 충실하려고요.
이선영  저는 작업실을 같이 쓰고 있는 박소영 연출, 그리고 몇몇 배우들과 소극장에서 프로젝트 공연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뮤지컬 공연 하나 올리려면 너무 많은 단계와 시스템이 얽히잖아요.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친구들끼리 내년 중반쯤 정말 간단하게, 포스터도 우리가 만들고, 표도 우리가 끊으면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 공연을 한번 올려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0호 2017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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