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맨 오브 라만차>의 류정한·이혜경 [No.76]

글 |정세원 사진 |이맹호 2010-02-02 7,981


5년 만에 만난 돈키호테와 알돈자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오직 믿음과 진심으로 정진하는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의 이야기가 2010년 1월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2005년 정식 라이선스 초연 이후 네 번째로 무대에 오르는 <맨 오브 라만차>에는 그동안 참여했던 배우들이 상당수 합류해 눈길을 끈다. 특히 초연에서 돈키호테와 그의 레이디로 호흡을 맞췄던 류정한과 이혜경이 5년 만에 같은 작품, 같은 배역으로 출연한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두 배우는 이후 <킹 앤 아이>, <아가씨와 건달들>, <돈키호테>, <지킬 앤 하이드>에서 연인으로 출연하며 두터운 신뢰와 우정을 쌓아왔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2년 반 만에 뮤지컬 무대에 복귀하는 이혜경과, 다시 돌아온 그녀를 응원하는 류정한이 함께 나눈 유쾌한 대화를 공개한다. 

 

 

무대로 돌아온 ‘워킹맘’에게 희망을


기자 : 오랜만에 연습실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기분이 어떠세요?
류정한 : 특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웃음) 아직 신 별로 연습이 진행되고 있어서 혜경이를 만날 일이 적었어요. 오늘이 두 번짼가 세 번짼가.
이혜경 : 우린 늘 한결같지. 오랜만에 봤다고 어색하거나 달라지는 건 없잖아.
류정한 : 그러게. 처음부터 너와는 거리감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알다시피 내가 친하게 지내는 여배우들이 별로 없잖아. <오페라의 유령>에서 처음 봤을 때는 공주 캐릭터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털털해서 신기하게도 금방 친해진 것 같아. 너처럼 오랫동안 통화하고 반갑게 만나는 여배우도 없을 거야 아마. 무엇보다 이번에 네가 다시 무대로 돌아온 건 정말 축하할 일이야. 나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우 이혜경을 기다렸겠어. 오늘 너 응원해주려고 집에 안 가고 기다린 거야. 

이혜경 : 게다가 좋은 작품으로 복귀하니 얼마나 좋아.
류정한 : 사실 너 임신했다는 소식 듣고 조금 안타까웠어. 그때도 얘기했지만 너를 아끼는 동료 배우로서는 그냥 애 하나에 만족하고 힘이 더 빠지기 전에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는 게 더 좋을 거라 생각했거든. 네 나이대의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배역이 얼마나 많아. <스핏파이어 그릴>을 보면서 네가 나이에 맞는 배역을 자연스럽게 찾아가는 훌륭한 선배가 될 거라고 기대했는데 덜컥 아이를 가졌다니까 동료 입장에서는 안타까웠어. 결혼을 안 해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게 너 복귀 후 첫 번째 인터뷰 아냐? 내가 다 영광스러운 것 같아. 넌 기분이 어때?

이혜경 : 글쎄, 2년 반 동안 정말 잘 놀았어. 공연을 등진 사람마냥 거의 칩거하면서 지냈거든. 너무 오래, 열심히 놀다 와서 그런지 연기하기가 쉽지가 않네.
류정한 : 너무 오래 쉬어서 그래. 하지만 요즘처럼 바쁘게 활동하는 배우들을 보면 한 1년 정도는 휴식 기간을 가져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 쉬면서 에너지도 충전하고 관객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작품을 보면서 연기에 대한 고민도 해보고 말야.

이혜경 : 아무리 배우가 다른 작품, 다른 배역을 통해 변신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으니까. 무대에서 열심히 나를 발전시키는 시간만큼 휴식을 통해 나를 비우는 일도 필요한 것 같아. 그래도 난 너무 많이 쉬었어. <맨 오브 라만차>는 이미 경험한 작품인데도 두려운 마음이 더 큰 것 같아. 집중하는 데에도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고 연습을 해도 금방 잊어버리고….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작품을 다시 하게 됐다는 거야. 마음 잘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고.

기자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마치고 휴식기에 들어가신 건가요? 그러고 보니 이혜경 씨가 출산 후 복귀할 때마다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아가씨와 건달들>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혜경 : 그러네요. 사실 <맨 오브 라만차>는 2007년 공연을 계약한 지 20일 만에 빠졌어요. 임신 초기였지만 작품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계약도 한 상태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작팀이 집까지 찾아와서 말리더라고요. 알돈자가 몸도 힘들지만 마음의 상처도 큰 인물이다 보니 걱정됐나 봐요. 덕분에 언젠가 이 작품으로 복귀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음 편하게 쉬긴 했는데, 사람들이 날 몰라볼 것 같아요. 내가 다작 배우가 아니어서 출연작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누구나 알 만한 작품들을 했잖아요. 근데 중요한 건 내 공연을 안 본 사람들이 많다는 거야. <스핏파이어 그릴> 할 때도 어떤 신문기자가 어떤 작품 했냐고 물어봐서 정은이랑 나래가 흥분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더 오래 쉬었으니 아예 ‘늦깎이 신인 배우’로 소개되지나 않을지 모르겠어요.(웃음)

 

추억은 방울방울


기자 :
두 분이 파트너로 출연한 작품이 꽤 많은 것 같아요.
류정한 : <오페라의 유령> 때 처음 만나서 <아가씨와 건달들>도 했고, <킹 앤 아이>도 했고….
이혜경 : <킹 앤 아이> 때는 우리 류 배우님 상반신 노출도 했었잖아. 그때 오빠 매일 운동하고 그랬는데.
류정한 : 난 주인공인 줄 알고 계약했던 거잖아. 그때부터 신춘수 대표님한테 낚였던 거야.
이혜경 : 그래도 우리 정말 재밌지 않았어? 듀엣곡 끝나고 무대 뒤로 들어오면 석훈이가 애들을 복도에 불러놓고 텁팀과 룬타 환송회를 해줬잖아. 매일 오빠 이겨보겠다고 노래 흉내 내고….

류정한 : 그때는 역할이 작아도 재미있었던 것 같아.
이혜경 : <돈키호테> 처음 할 때가 여름이었는데 오빠 눈만 빼고 다 갑옷으로 가렸던 게 기억나. 땀과 열에 젖어서 절대 혼자서는 못한다고 했잖아. 나도 내가 내지 않는 스타일로 독하게 소리를 내느라 부담스럽고 힘들었지만 알돈자가 ‘공주과’ 캐릭터가 아니어서 오히려 재밌었던 것 같아.
류정한 : 알돈자가 결코 쉬운 캐릭터가 아니야. 예상하지 못했던 너의 알돈자는 파격적이면서도 신선했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봐서 더 그랬던 것 같아. 거친 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정말 순수한 경우가 많잖아. 나는 알돈자가 행동이나 말은 거칠어도 눈빛에서는 순수함이 보여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너한테서 그걸 봤어.

이혜경 : 다들 그때 처음 그런 역할을 한줄 아는데 1999년에 <포기와 베스>에서도 거친 인물을 연기한 적이 있었어. 알돈자는 연기하기 힘든 인물이었지만 <오페라의 유령> 경험이 있어서 체력적으로는 그리 힘들지는 않았어. 크리스틴을 연기할 때는 무대에서 내려오면 내장이 다 조여드는 것처럼 기운이 빠졌어. 오빠도 봐서 알지? 공연 중에 12번이나 의상 갈아입은 데다 2시간 정도는 무대에 나와 있었던 것 같아. 19.8킬로그램이나 되는 흰 드레스 입고는 뛰고 넘어지기까지 하니 허리가 얼마나 아팠겠어. 공연하면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는데 7개월 공연하고 나니까 두려운 게 별로 없더라고. 내가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게 힘들었지 체력적으로는 걱정 없었는데 지금은 체력도 보강해야 할 것 같아.
류정한 : 그러고 보니까 <돈키호테> 마지막 공연 생각난다. ‘말씀만 해주십시오. 제가 다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알돈자를 발견하고 ‘오 나의 레이디’ 해야 하는데 네가 없는 거야. 그래서 ‘왜 제 말을 안 믿습니까, 제가 도와드린다니까요’ 하면서 애드리브로 2분여를 혼자 떠들었잖아.
이혜경 : 무대 위에서 애드리브를 치거나 장난을 칠 줄 모르는 사람이 ‘오늘 무대가 왜 이렇게 썰렁하오’ 하길래 막 웃다

가 갑자기 머리에 별이 뜨는 거야. 분장 수정하고 바로 무대로 나가야 했는데 다음 신 준비하러 반대편으로 갔잖아. 신기한 건 내 곁에 예닐곱 명의 스태프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날 붙잡지 않았다는 거야. 마지막 공연이라 작품을 다 꿰고 있는 관객들이 많아서 그대로 들통 났지, 관객들은 웃지, 나중에는 내가 무대에 나온 것만으로도 기뻤는지 박수를 보내줘서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어.
류정한 : 그래도 그것만 빼면, 꽤 여러 작품을 같이 했는데도 너랑은 큰 사고 없이 공연을 했던 것 같아. 나는 진짜 사고가 많이 나는 배우거든.
기자 : <지킬 앤 하이드> 공연 중에는 팔이 빠진 적도 있었죠. 
류정한 : 그 상태로 한 신을 다 채우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해서 정말 혼났죠. 팔이 처음 빠졌던 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제트파와 샤크파의 싸움 장면할 때였어요. 2~3미터 높이의 철장을 넘어오는 장면에서 곧게 몸을 뻗어 넘는 배우들이 멋져 보이는 거야. 춘길이 형 팔이 빠져서 다들 조심하자고 한 다음날 그들을 따라하다가 팔이 빠지는 바람에 결국 철장 높이가 2/3 낮아졌어. <스위니 토드> 때도 빠지고….

이혜경 : 난 <아가씨와 건달들> 때 따귀 때리다가 팔이 빠져서 거의 한 달을 못 썼던 것 같아.
류정한 : 그래도 음향 문제로 <지킬 앤 하이드> 2막을 처음부터 다시 했던 나만 했겠어. 그때도 마지막 공연이었어. 더블 캐스트인데도 사고는 늘 내가 출연하는 공연에서 일어나더라.
이혜경 : 지방 공연 때 무대가 안 돌아가서 술집 레드렛에서 ‘This is the Moment’를 부른 우형이도 있어. <오페라의 유령> 때 장섭 오빠도 대박이었잖아. ‘날 시험하지 말고 선택해’라는 대사 장면에서 ‘날 선택하지 말고…’ 하는 바람에 말이야.
류정한 : 기억난다 기억나. 밧줄에 목 매달려 있다가 ‘엥?’ 했어 그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류정한 :
초연 때 네 공연을 좋게 본 관객들은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가 클 거야. 차라리 초연작이면 기대치라도 없을 텐데 부담될 것 같다.
이혜경 : 난 아무 생각이 없는데…. 오빠는 이제 갑옷이 익숙해진 것 같더라.

류정한 : 갑옷을 입으면 이제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더라. 세 번째 출연을 놓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정말 많이 고민했어. 차라리 몇 년 더 지나서 나이든 류정한의 액기스를 모두 쏟아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이게 또 지금 안 하면 언제 다시 공연할지를 모르다보니 욕심을 내게 되더라고. 작품 앞에서 느끼는 부담의 크기만큼 갑옷의 무게도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아.

이혜경 : 관객들은 끊임없이 배우의 변화된 모습, 좀더 나은 모습을 요구하니까. 배우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공연을 하는데 다음 작품에서 그 이상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것 아니겠어. 나는 작년 LG아트센터 공연에서 오빠의 변화된 모습을 많이 느꼈어. 이번에도 분명히 더 나아진 ‘돈키호테’를 보여줄 거라 믿어.
류정한 : 너만 그렇게 본 거지 안 좋은 얘기 많이 들었어. 반응은 초연 때가 정말 좋았지. 명작을 알아본 사람들이 그 가능성에 대해 높이 평가해준 덕분에 나도 덩달아 좋은 평을 받았던 것 같아. 그땐 사람들이 칭찬하니까 내가 진짜 잘하는 줄 알았잖아.(웃음) 나중에 원작 소설을 읽고 나서 ‘내가 이 나이에 이런 대사들을 해도 되나’ 하는 생각에 빠져서는 한 일주일 정도 공연을 망쳤어. 나중에 승우와 성화 공연을 보면서 그제야 차분해지더라. 물론 두려움은 아직도 있지만 나이를 그냥 먹는 게 아니니 조금 더 나아지겠지.
이혜경 : 한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라 볼 때마다 와 닿는 느낌이 다른 것 같아.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새해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말야.
류정한 : 성화랑 <영웅> 공연하면서도 ‘<맨 오브 라만차> 전용극장 지어놓고 365일 동안 공연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곤 해. 전국민이 힘들 때 공연을 보고 돈키호테의 주옥같은 대사들에 위로받고 꿈과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야.
이혜경 : 국민 배우 류정한이 탄생하는 거야?(웃음) 난 오빠 연습하는 거 보면 자꾸 웃음이 나서 큰일이야.
류정한 : 나한테 그렇게 대하는 사람은 너랑 선영이 뿐일 거야.
이혜경 : 오빠가 친해지기 쉬운 스타일은 아니지. 자기 관리가 워낙 철저하잖아. 그래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많이 여유로워졌지만 여전히 오빠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거야.
류정한 : 처음 만난 <영웅> 분장팀이 내가 무지 까칠한 사람이라고 얘기 들었다고 그러더라. 왜 그렇게 소문이 났을까 고민이 돼서 농담을 진짜 많이 했어. 옛날에는 그런 얘기를 들어도 단점인지도 몰랐고 인정도 안 했는데 요즘 들어 사람이 변하려는 노력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관객들에게 박수 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냥 다 고맙고 감사해. 사실 40대 정도까지만 뮤지컬 하고 다른 일 하려고 했는데 같이 작업하는 배우들과 동료들, 관객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면서 내가 정말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 오랫동안 뮤지컬 무대에 서고 싶어졌어.

이혜경 : 이제는 선배의 위치가 됐으니까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내가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 감사해야 하고. 근데 난 말이야, 오빠의 그런 변화들이 갑작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아. 기억나? <오페라의 유령> 공연 후반에 공연 시스템에 익숙해진 배우들이 불평하는 것을 보고 오빠가 그랬잖아.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우리처럼 대접받고 공연하는 배우가 또 어디 있냐고, 왜 그 고마움을 모르냐고. 예상치 못한 얘기에 놀라긴 했지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오빠를 다시 봤어. 나도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를 되돌아보게 됐던 것 같고.
류정한 : 내가 그랬나? 그걸 여태껏 기억하고 있는 거야? 어쨌거나 이번 공연도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고, 좋은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게 돼서 기뻐. 그 어떤 팬보다 배우 이혜경을 기대하는 동료이자 관객으로서 네 복귀 무대가 반갑고. 그동안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자. 넌 나한테 준비해 놓은 덕담은 없어?
이혜경 : 꼭 말로 해야 아나? 우린 서로가 마음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잖아. 그저 배우로뿐만 아니라 인간 류정한의 곁도 풍성해져서 오빠가 더 행복하길 바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재능이 우리한테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면서 말이야.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6호 2010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