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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미스 사이공>의 김보경·임혜영 [No.78]

글 |정세원 사진 |김호근 2010-03-09 7,127

 

My New Challenge Is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미스 사이공>은 스물아홉 동갑내기 배우 김보경과 임혜영을 비운의 여주인공 킴으로 택했다. 초연 당시 킴 역을 거머쥐며 ‘뮤지컬계 신데렐라’로 등극했던 실력파 배우 김보경과, 2008년 <마이 페어 레이디>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새로운 뮤지컬계 신데렐라’로 떠오른 후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신예 임혜영. 연습과 동시에 룸메이트가 된 후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이들 사이에는 여배우 특유의 미묘한 경쟁심이나 날 선 시기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스 사이공>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이십대 마지막 불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뿐.

 


스스로를 믿는 힘, 김보경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김보경은 주인공으로 처음 서는 무대를 앞두고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지만 <미스 사이공>이라는 새로운 작품에 ‘킴’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은 것일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어떤 배역, 어떤 무대에서든 가진 것 모두를 쏟아냈던 것처럼, 킴의 옷을 입은 그녀 역시 매 공연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는 열일곱 소녀의 사랑과 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성애를 열정적으로 그려내며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객석에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가 커질수록, 무대 위에서 그녀가 쏟아낸 눈물도 늘어났다. 기진맥진해져서 극장을 나서는 일조차 힘들었던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킴의 옷을 내려놓기도 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댄싱 섀도우>의 나쉬탈라를 늘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무대에 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김보경은 어두운 작품의 무게에 짓눌려 점차 기운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맘마미아>의 소피에 이어 <캣츠>의 장난꾸러기 도둑고양이 럼플티저 역에 도전한 것은 ‘무조건 밝은 작품을 할 것’이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처음으로 객석에 앉아 즐겼던 공연에 직접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드미터 역을 하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럼플티저만을 고집했다. 하지만 모든 장면에 등장해 누구보다 많이 움직여야 했던 아기고양이 럼플티저는 무대에 대한 책임감이 누구보다 강했던 김보경을 결국 녹아웃시키고 말았다. 데뷔 이후 제대로 된 휴식기를 갖지 않고 계속 무대에 서온 데다, 2004년 <렌트> 이후로는 참여한 작품 대부분이 장기공연이었다. 자신의 모든 체력을 소진한 김보경은 내일을 기약하며 6개월여의 재정비 시간을 가졌고,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김보경은 <미스 사이공>의 오디션을 앞두고 한참을 망설였다. 초연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부담과, 몸과 마음 모두를 탈진시켰던 역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자신의 첫 주연작에 대한 애정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킴을 다시 만날 설렘과 떨림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시험대에 올랐다.

“원래 오디션 때 잘 안 떠는데 이번엔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이미 했던 작품이니까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를 다시 시험해보기를 잘한 것 같아요.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도 많이 성숙해졌고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됐거든요. 아무것도 모른 채 디렉션을 흡수하고 그대로 표현하는 데 급급했던 초연 때보다 킴의 감정에 좀 더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돼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킴의 무대를 위해 김보경은 전보다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는 그녀의 수줍은 자신감이 무대 위에서 또다시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시험하는 무대 앞에서, 임혜영
2008년 뮤지컬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TV 공개 오디션에서 1,183대1의 경쟁률을 뚫고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인공을 거머쥔 후로, 임혜영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로미오 앤 줄리엣>, <지킬 앤 하이드>, <브로드웨이 42번가>, <오즈의 마법사>의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 스스로 “작품의 가치를 다 알아내지 못한 상태로 공연한 적도 있었다”고 얘기할 정도로 단기간에 많은 작품에 캐스팅된 그녀는‘뮤지컬계 신데렐라’라는 수식어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어느 한 작품도 오디션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실력보다는 미모 때문에, 그저 운이 좋아서 벼락스타가 된 배우라 쉽게 말했다. 몇 차례의 오디션에서 떨어진 후에야 합격한 <드라큘라>로 뮤지컬에 데뷔했고 이후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 네 편에 출연하면서 스스로를 단련시켰던 지난날의 임혜영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오해도 많았고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던 것도 알아요. 어쩌면 그래서 더 오디션에 참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킴이 되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냥 외국 스태프들 앞에서 객관적으로 저를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거든요. 만약 제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실제로 가진 것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있다면 다시 내려올 용기도 있었고요.”
임혜영은 김보경이 연기하는 킴을 통해 <미스 사이공>을 처음 만났다. 뮤지컬에 대해, 연기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던 때였지만 공연을 보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혀질 것 같지 않던 <미스 사이공>이 새로운 킴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도 ‘설마 나한테까지 기회가 올까’ 하는 생각에  도전을 망설였다는 그녀.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게 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큰 욕심 없이 도전했지만 <브로드웨이 42번가> 연습 기간과 맞물리는 바람에 꽤나 고생을 해야 했다. 신나게 탭 댄스를 연습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오디션장에 들어가서는 감정을 다잡고 ‘I`d Give My Life For You’를 부르기도 했다.

 “마치 연습처럼 진행된 오디션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떨리지가 않았어요. 노래를 부를 때도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죠.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호흡을 놓았는데 그 후로 한참이나 조용하다가 박수가 나오는 거예요. 최선을 다했고 박수까지 받았으니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여한이 없었어요. 그러고 나서요? 쿨하게 다시 탭 연습을 하러 갔어요.”


‘신데렐라’라는 수식어를 버리고 오롯이 배우로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임혜영. 얼마 전부터는 노래를 잊어버릴 정도로 연기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연기에 늘 부족함을 느꼈던 지난 공연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성악과 출신의 배우에게 갖는 편견을 깨고 싶어 더욱 도전하고 싶었던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자신의 인내력을 시험한 그녀는 <미스 사이공>을 통해 노래보다는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연기를 시험해보고 있는 중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킴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임혜영. 킴이 얼마나 아팠을까 이해해 가는 동안 야윈 몸이 더 약해졌지만 조금씩 킴을 닮아가고 있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8호 2010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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