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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차지연과 함께한 <어둠 속의 대화> [No.78]

사진 |심주호 정리 | 김유리 2010-04-06 6,158


찬란한 빛은 깊은 어둠 속에서 더 빛난다

 

지난 1월, 뮤지컬 <선덕여왕>에서 천하를 얻고자 하는 여장부 미실을 연기했던 ‘무대 위의 카리스마’ 차지연이 데뷔 후 4년 만에 모처럼 휴가를 다녀왔다. 인생의 첫 여행을 다녀왔다고 씽긋 웃는 모습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전시를 체험하며 진행하는 인터뷰라 하니 바로 ‘와, 재미있겠는데요?’라고 답하는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도 지닌 차지연과 <어둠 속의 대화>가 열리고 있는 신촌 버티고 타워를 찾았다.   

 

 

전시에 들어가기에 앞서 모든 짐을 내려놓아야 했다. 소지품이 담긴 백은 물론, 안경까지. 하긴, 어둠인데 안경이 무슨 소용이겠어.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맨손으로 맨눈으로 맨몸으로 부딪쳐 보는 것엔 어린 시절부터 단련되어 있잖아. 모든 짐을 맡기고 1미터 남짓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어둠을 마주하니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정말 칠흙 같은 어둠이다.

어디가 벽인지, 당장 어떤 사물에 부딪쳐 넘어질까 두렵고 어디로 가야할지 도통 모르겠다.

희미한 빛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나를 인도해주지 않고, 오로지 내 힘으로 이 어둠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온몸으로 이 어둠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처음 이 어둠의 공간으로 들어왔을 때 난 내 인생의 한 시기가 떠올라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 바로 이런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라이온 킹>이란 작품을 하기 전까지 난 내 삶이 빛이 없는 검은 방이라 생각했다. 한 줄기 빛을 찾고 싶은데, 나를 위한 한 줄기 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벗어나기 위해 울기도 하고, 화도 냈었다. 연기를 제대로 하고 싶어 들어간 학교도 그만두고, 평범한 은행원으로 살 생각이었다. 그때 우연찮게 후배가 알려준 <라이온 킹> 오디션. 뮤지컬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내가 은행에서 버는 월급을 무대에서 벌 수 있다는 얘기에 무작정 도전했었다. 

 

근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 더듬으니 조그마한 몸집의 어둠 가이드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여자다.

자신도 앞이 보이지 않으니 서로 소리를 주고받으며 함께 가자 한다.

누군가 함께한다는 생각에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찾는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한 채 나아가고 있다.

몰라서 더 용감할 수 있었던 그때, 나는 <라이온 킹> 한국 공연을 위한 레퍼토리 단원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앙상블로 뽑혔지만, 우연히 시키 대표님 앞에서 라피키의 노래를 부를 기회를 얻으며, 역할 공부 기간인 ‘벤쿄’를 거쳐 라피키 역을 맡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뜨거운지 차가운지도 모르고 달렸던 용기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지만, 한편으로 부족함을 더욱 느끼게 했다. 그때 그런 나를 정확히 꿰뚫어본 사람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언니와 이야기할 때면 내 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를 알고 언제나 정확한 조언을 해주기에 ,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어둠 가이드와 함께 떠나는 여행.

나는 나무 벤치가 있는 숲속 공원에서 나무를 만져보고,

연못에서 차가운 물도 만지면서 그간 잊고 있던 손과 귀의 감각을 느껴보았다.

조금 자신감이 생긴 나는 청각에 의지해 8차선 도로도 건넜고,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고 사기도 했다.

바다에 가서 바람을 맞으며 보트를 탔고,

뉴욕이라 생각하는 어딘가에 내려 헤이즐넛 커피향이 인상적이었던 카페에서 레모네이드 맛의 음료도 마셨다.

세상을 눈으로만 본다?

오랜만에 내 안에 많은 감각을 열어주는 여행을 경험했다는 기쁨에 어둠 속에서도 줄곧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점점 더 어둠 속에서 강인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던 <마리아 마리아>, (김)선영 언니, (박)준면 언니, (임)문희 언니로부터 여배우로서의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던 <씨 왓 아이 워너 씨>, 그리고 처음으로 이름 석 자를 알리며 자기 자신과 무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드림걸즈>, 그리고 내 사람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선덕여왕>까지 차근차근 끊임없이 달려왔다. 10년 전 검은 방을 부정하고 싶었던 나는 이렇게 배우라는 직업 안에서 내가 얼마나 단단해져 왔는지, 그렇게도 부정하고 싶었던 어둠이, 이제는 관객의 기대에 찬 눈을 숨기고 있는, 설레고 짜릿한 공간으로 변했음을 잘 알고 있다. 거기에 책임감을 느끼며 감사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게 된 것 같다.

 

여정이 끝나간다는 것을 직감한다.

내가 어둠 속에서 이렇게 호기심 많고, 적극적인 사람일 줄은 들어갈 때만 해도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이런 대담함은 곧 밝은 곳으로 나갈 것임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것임을 안다.

빛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나는 이 어둠을 잠시 더 누리고 싶다.

나란 사람이 더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나의 지금을 이 전시의 단계에 비추어 생각해보자면, 빛으로 나가기 바로 전이라 생각한다. 그럼 바로 빛으로 걸어 나가면 되지 않냐고? 아니, 잠시 멈추어 서서 나 스스로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아직 여배우라는 호칭을 듣기엔 선머슴 같고, 장난꾸러기 같은 성격, 다른 이들에게 큰 오해를 빚는 직선적인 성격 등 나 스스로 깨닫고 다듬어야 할 것들이 많다. ‘아름다운 여배우’가 되기 위해서 지금은 많은 생각을 하고 다듬어 가는, 아름다운 빛을 보기 위한 마지막 코스라 생각한다.

 

어슴푸레한 빛이 보인다...

내가 뮤지컬 배우가 된 것엔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곳에서 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평생을 함께할 사람들도 만났고, 나 자신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10년 후엔 나 역시 또 다른 검은 방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힘을 줄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하고 싶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8호 2010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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