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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스모크> 연출 추정화 [No.163]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7-04-28 5,419

이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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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거울없는室內에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外出中이다. 나는至今거울속의나를 무서워하며떨고있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 陰謀를하는中일까.  (오감도 시제15호 중, 이승훈 엮음,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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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문장은 매력적이다. 그의 글에서는 일상 용어도 낯설게 다가오고, 만나지 않았을 것 같은 주어와 술어가 늘상 만나왔던 것인 양 어울린다. 낯선 인식과 낯선 표현, 기존 관념을 넘어선 도약은 기존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그래서 그의 세계를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불만과 불평을 받는다. 사실 그의 세계를 온전히 공유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그의 세계에 온전히 도달했다기보다는 그가 또 다른 차원으로 도약했음을 인정하고 그 가치를 존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에 대한 찬사를 잠시 멈추고 정신을 차리자면 이 글은 <스모크>의 추정화 연출가의 인터뷰이다. <스모크>가 이상의 시 중 「오감도 시제15호」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라고는 하나, 도입부를 이상의 찬사로 시작해서 10여 줄이 지나도록 인터뷰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의 사정을 변호하려고 한다.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짐짓 이상의 몸짓을 꾸미고 있다. 그러나 의식적인 행위는 아니다. 이상과 연관된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의 몸짓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보통은 이를 자제하고 의식적으로 배제하려고 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이 글을 읽을 독자인 나가 토론을 벌이는 자아분열을 노출하려 한다. 이상도 아니고, 그의 작품을 쓴 추정화도 아닌, 이상의 시에서 모티프를 얻어 작품을 쓴 추정화를 인터뷰한 기자의 자의식에 누가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기사의 첫 문장으로 이상의 시 「오감도 시제15호」의 첫 단락을 인용하면서 애초 계획했던 기사의 구조는 무너졌고, 달콤한 일탈로 빠지고 말았다. 본인이 주인공이어야 할 글에서 조연으로 바뀌어버린 추정화 연출은 이런 전개가 어이없겠지만 이상의 매력적인 문장이 호출되면서 모든 것이 겉잡을 수 없게 되어 버린 상황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전개의 일부 책임은 그녀에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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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크>는 지난해 말 트라이아웃 공연을 했고 이번 공연이 본 공연이다. 이상의 시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트라이아웃 공연을 보지는 못했다. 일단 보도자료만으로는 어떤 작품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상의 시를 모티프로 뮤지컬을 만든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추정화를 만나기로 했다. 3월 18일 저녁 첫 공연을 보고 19일 오전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추정화 연출은 알다시피 배우 출신으로 지금도 간간이 무대에 서고 있다. 올해 첫 회를 맞은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신인연출상을 받으며 새로운 도전에 힘을 얻었다. 실제 인터뷰는 그런 내용으로 시작했다.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한가득이었지만 배우였던 그녀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고, 연출가가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작가나 연출에 대해서는 1도 관심이 없었어요.” 보통 ‘전혀’, ‘하나도’가 있어야 하는 문장에 ‘1도’라는 숫자의 개입이 신선했다. 대답의 내용보다 ‘1도’라는 단어에 관심이 쏠렸지만 대답의 요지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의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추정화는 좋은 인연을 만나며 배우가 됐고, 그것이 천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른에 임신을 해서 일을 쉬었다. 임신 중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더란다.  “글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할 일이 없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40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다. 배우의 자의식에 작가의 자의식이 생기는 것을 미처 몰랐듯이 연출의 자의식이 자리 잡게 되리라 생각지 못했다. 자신이 쓴 <달을 품은 슈퍼맨>이 연출을 구하지 못하자 연출까지 맡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 모아서 두 달 동안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열심히 공연을 만들었어요. 첫 공연을 잊을 수 없어요. 전체 대사와 노래, 수백 개의 조명이나 연출 큐까지 전체를 다 알잖아요. 장면마다 배우와 스태프에게 끊임없이 감사하고 감동했어요. 이상한 감동이 오더라고요. 이게 진짜 내가 할 일이구나. 저 배우들을 데리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것이 추정화 연출이 배우에서 연출의 이름을 갖게 된 전말이다. 일요일 오전 인터뷰는 1시간 10분가량 이루어졌다. 여기까지 내용은 인터뷰 초반 10분 정도의 내용이다. 이후 1시간은 애초 궁금했던 <스모크>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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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크>에 대한 인터뷰는 진지하게 진행됐다. 전날 본 공연의 인상이 아직 마르지 않았고, 답을 기다리는 질문을 다량 보유하고 있었다. 묻고 질문하는 그런 식의 인터뷰는 아니었다. 인터뷰라기보다는 대담에서 할 것 같은 말들이 오고갔다. 주로 궁금한 것을 질문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때때로 논평했다.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매우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그중 80% 이상은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 작품은 마지막 반전이 중요하다.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그 자리에 없던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반전을 공개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추정화 연출은 그것을 걱정했고, 나는 그 걱정에 동의했다.


동의는 했으나 나에게는 숙제가 남았다. 인터뷰 내용을 싣지 않는다면 어떤 인터뷰 기사를 써야 하는가. 내가 찾은 답은 따로 있었으나, 작품의 소재가 된 시를 옮겨 적으면서 기사에 대한 주도권을 포기했다. 이 기사의 주체는 실종되고 스모크처럼 아련한 실체 없는 존재가 이 기사를 지배하게 됐다.


<스모크>의 본 공연은 트라이아웃 공연과 상당히 달라졌다는 것은 공개해도 좋을 것이다. 트라이아웃 공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추정화 연출의 이야기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매우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불친절한 공연이었던 것 같다. 트라이아웃 공연이 추정화 연출 혼자만의 상상을 풀어낸 것이라면 본 공연은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 결과다. 극의 구조는 심플해졌고, 극을 따라갈 수 있도록 흥미를 주려고 했다. 무엇보다도 배우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함께 만들었다. 대사 세 줄을 쓰기 위해 7시간을 토론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완전히 재탄생했다. <스모크> 트라이아웃 공연이 이상의 덕후로 그의 몸짓을 극 속에서 욕심껏 차용한 결과라면, 본 공연은 그런 것들을 모두 털어내고 오직 전하려고 하는 한 가지 목소리를 놓지 않은 작가이자 연출가의 자의식이 반영된 타협점이다.


애초 <스모크>를 구상하게 된 것은 뮤지컬 <인터뷰>의 거울 같은 작품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인터뷰>가 있어 <스모크>가 만들어졌지만 모티프가 되었던 이상과 그의 작품들은 추정화의 삶에 깊이 닿아 있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쓸 때보다 더 힘들고 더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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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크>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상의 삶과 그의 작품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다. 추정화 연출은 이상의 시를 줄줄 읊었고, 이야기를 나누다 이상에 얽힌 일화를 적절한 순간마다 제시했다. 그녀가 얼마나 이상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은 끊임없이 죽고자 하면서도 살려는 자였고, 스스로를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견주며 자신의 문학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분노하며 한편으로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자였으며, 조선에서는 더이상 읽을 책이 없어 프랑스나 유럽의 어디로 떠날 거라는 허세에 전 인물이었다. 현실을 망각하고 망상 속에 사는 건지, 초월한 건지 모를 이상에게서 추정화는 죽음보다도 삶의 에너지를 봤다. 추정화가 <스모크>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딱 그것이다. “비참함에 대해 1시간 30분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승화시키는 이야기를 10분 한다고 비난한다면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잖아요. 번데기로 긴 시간을 견뎌야 나비가 될 수 있잖아요. 나비 한 마리 날리려고 1시간 30분을 달려간 거예요.” <스모크>의 모티프는 「오감도 시제15호」지만 작품의 메시지는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마지막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라고 한 대목이다. 추정화 연출은 여기에서 삶의 힘을 얻었고 그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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