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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최현주와 함께 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No.80]

사진 |박진환 정리 | 김유리 2010-05-11 5,830


블랑쉬는 결국 낙원에 다다랐을까?

 

지난해 9월부터 7개월 동안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으로 살고 있는 최현주. 오디션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녀에게 잠깐의 휴식을 선사하고자 청한 데이트,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공연 관람 자체가 정말 오랜만이라는 그녀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기 위해 대학로 동숭홀을 찾았다.


미국의 희곡 작가 테네시 윌리암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작가와 제목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포스터 같은 주홍빛 실사 포스터에 굉장히 오랫동안 시선을 빼앗겼던 것 같다. 억센 남자의 손아귀에 붙잡힌 여인, 약간은 신경질적인 표정을 띤 채 소극적으로 반항하며 허공을 응시한 여인의 허망한  그 눈빛이 마음에 남아, 공연 볼 날을 손꼽아 기대하고 있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세 캐릭터와 이들의 관계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은유적 장치들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는 가문의 저택과 농장인 ‘벨 레브(아름다운 꿈)’를 잃고 잘 모르는 이들에게 몸과 맘을 의지하며 살다 쫓겨나 동생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블랑쉬 뒤 부아(하얀 숲), 거칠고 다혈질이면서 현실의 욕망에 충실한 스탠리(다듬어지지 않은 돌), 그리고 언니처럼 꿈도 가지고 있기에 언니를 동정하면서도 주어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 살고자 하는 욕망의 스텔라(별) 등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세 캐릭터가 등장한다.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는 것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을 쥐고 있는 듯 위태롭고 불안한 일이다. 이 중에서도 완전히 현실에 발을 뿌리내리고 있는 스탠리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이 꿈꾸는 현실 속으로 도피해 부유하고 있는 듯한 블랑쉬는 첫 만남부터 사사건건 부딪치며 점점 예민하게 대립의 각을 세워간다.


극에서 블랑쉬는 밝은 빛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고 어렴풋한 어둠 속에서 지내며 아무도 자신을 똑바로 보기를 원치 않는다. 그리고 스탠리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발언이나 행동을 할 때 순간적으로 그간에 지키고 있던 품위나 예의는 사라지고 히스테릭한 모습을 드러낸다. 어렸을 때 이 작품을 봤다면, 어쩌면 블랑쉬를 단순히 현실 부적응자나 신경이 쇠약해진 사람쯤으로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나도 나이테가 쌓인 걸까.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기 두려워하고, 그걸 잊기 위해 스스로를 꿈속으로 도피시키고자 했던 블랑쉬의 마음이 이해도 가고 안쓰러워 다가가 안아주고도 싶었다.


블랑쉬가 또 하나의 현실의 짐을 얹은, 아니 어쩌면 확실히 현실을 잊게 해줬을지도 모르는 스탠리와의 사건 이후 정신병원으로 보내지면서, “바다 냄새가 느껴져… 죽을 때도 바다에서 죽어야지.”라고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난 처음 블랑쉬가 스텔라의 ‘낙원’에 도착해서 처음 했던 “사람들이 그랬어요. 먼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라는 이름의 전차로 갈아탄 다음에 여섯 정거장 더 가서 낙원에 내리라고요.”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을 잊고자 늘 새로운 삶을 욕망하던 블랑쉬는 결국 죽음으로 낙원에 다다랐을까.


이 작품은 나 개인에게는 ‘배우’란 숙제를 던져준 것 같다. 일본에서 2년, 한국에서 7개월 동안 무대에 서고 있지만, 여전히 배우라는 이름은 낯설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로 나를 표현하는 것엔 익숙했지만, 연기는 뮤지컬 배우가 되면서 경험하게 된 새로운 영역이었다. 블랑쉬를 연기하는 배종옥 선배님이 이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다가 한순간 신경을 놓아버린 듯한 예민함의 극단을 보여주는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는 이승비 선배님의 블랑쉬도 궁금하다. 이렇게 연기로만 온전히 극을 끌고 가는 연극은 뮤지컬과는 또 다른 떨림을 주는 동시에 꿈도 갖게 한다. 앞으로 하고 싶고, 해야 할 작품이 많다. 앞으로 나와 인연이 닿는 작품들을 충실히 하다보면, 나도 나중엔 이런 작품을 감히 욕심낼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나도 블랑쉬를 연기해보고 싶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0호 2010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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