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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헤드윅> 유연석 · 정문성 [NO.167]

글 |배경희·박보라 사진 |황혜정 장소 | 로우파이 스튜디오 스타일링 | 김혜미 헤어/메이크업 | 최민정 2017-08-29 6,692

차가운 도시로의 따뜻한 로큰롤 항해 


외로운 세상에서 길 잃은 영혼을 안아줄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그녀, 헤드윅. 열한 번째 시즌 <헤드윅>에 이름을 올린 다섯 캐스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이는 의외의 도전으로 궁금증을 자극하는 유연석, 그리고 지난 시즌에 첫 도전장을 내밀어 뜨거운 박수를 받았던 정문성이다. 지난 2015년 <벽을 뚫는 남자>로 뮤지컬 배우 신고식을 치른 후 무대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는 유연석과 헤드윅이 될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가 된다는 정문성. 그들은 과연 어떤 오묘한 마법으로 우리의 지친 영혼이 차가운 도시를 안전히 건너게 해줄까.





익숙한 표정
뒤에
숨겨진 얼굴
  유연석



변신. 열한 번째 시즌 <헤드윅>에 도전하는 유연석의 선택을 표현할 수 있는 말로 (다소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가 있을까. 2005년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각양각색의 스타들이 <헤드윅>을 거쳐갔지만, 유연석처럼 캐스팅 소식에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 배우는 또 없었으니 말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어울리는 배우와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한 배우. <헤드윅>의 역대 출연진을 두 그룹으로 나눴을 때, 유연석은 후자에서도 아마 맨 끝에 위치할 것이다. 의외의 캐스팅에 놀란 것은 유연석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헤드윅>은 예전에 뮤지컬로 처음 봤어요. 한 5~6년 전쯤? 그땐 순수한 관객의 입장이었으니까 감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못했죠. 그러다 작년에 (조)승우 형이 하는 걸로 다시 봤는데, 뮤지컬을 한 편 해봐서 그런지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더라고요. 근데 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싶었죠.”


이왕이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도전하자는 마음으로 각오를 다졌지만, 출연을 결정하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선뜻 하겠단 말이 안 나왔어요. 그런데 몇 달 동안 문득문득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내가 <헤드윅>을 하면 어떨 거 같은지 주위 사람들한테 계속 물어봤죠. 여러모로 큰 도전이니까 겁이 나서 망설여졌던 거지, 속으론 되게 하고 싶었나 봐요. 근데 한창 고민할 때 누가 그러더라고요. 하고 싶으면 다른 고민하지 말고 하라고. 결국 용기를 냈죠.” 집착의 끝을 보여주는 괴상한 록커나 기구한 운명의 트랜스젠더와는 거리가 먼, ‘밀크맨’이라 불리는 그가 이런 험난한 모험을 자처하는 이유는 뭘까. 대세 훈남 배우 유연석이라면 또래 배우들이 꿈꾸는 왕자님 캐릭터의 꽃길을 걸을 수 있음에도 말이다. “원래 도전 의식이 강한 편이에요. 내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다고 할까. 그런데 점점 그런 의지가 줄어드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제 나름대로는 배우로서 꾸준히 캐릭터 변신을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유연석이라는 배우의 이름만 알고 계시는 분들은 절 한 가지 이미지로만 봐주세요. 그래서 아예 파격적인 변신을 해보자 싶었죠.”



얼마 전 홍보 이미지 촬영을 하느라 태어나서 처음 여장을 해봤다는 유연석. 헤드윅으로 변신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 낯선 자신의 모습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을까? “촬영 전엔 여장한 제 모습이 어떨지 솔직히 상상이 안 됐어요. 치마를 입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한없이 부끄럽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런데 현장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다들 예쁘다고 해주셨는데, 제가 봐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꽤 만족스러웠어요. (웃음)” <헤드윅>이라는 새로운 여정에 성실하게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유연석은 그녀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영화를 찾아보고 있으며, 지난 주말에는 처음으로 드래그퀸 클럽에도 다녀왔다. 그렇다면 지금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뭘까. “첫 리딩을 앞두고 목소리 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더라고요. 아주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내야 할지 아니면 적당히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내야 할지. 혼자 연습할 땐 도무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첫 리딩에서 오랜 시간 <헤드윅>과 함께한 스태프분들이 제가 나름대로 고민한 톤이 괜찮다고 해주셔서 용기를 얻었어요. 뭐든 좀 더 과감하게 해봐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죠. 아마 기본적으론 대본에 충실하려고 하겠지만, 그래도 저라는 헤드윅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려고요.” 모든 뮤지컬을 통틀어 배우에 따라 가장 많이 달라지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닌 <헤드윅>에서 우린 또 어떤 ‘헤드윅’을 보게 될까. 인터뷰의 끝, 유연석의 공연 리뷰 기사에 어떤 제목이 붙길 원하는지 묻자 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가장 새롭고 아름다운 헤드윅. 그런 평가를 얻고 싶어요.”






든든한 내 편        정문성


정문성에게 올해도 헤드윅이 되어보겠냐는 제안이 왔을 때, 고민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처음으로 헤드윅을 연기한 그는 솔직하고 섬세한 헤드윅이라는 평을 받았고, 평소 <헤드윅>의 팬으로 켜켜이 쌓아 올린 애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 이쯤 되면 정문성에게 이 작품은 어쩌면 ‘찰떡’ 같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헤드윅>을 함께 만들어가는 관객에 대한 애틋함이다. 정문성은 “내가 몇 번이나 <헤드윅> 무대에 올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 관객은 꼭 필요한 존재이고, 관객에 따라 매번 엄청나게 변할 수 있는 공연”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관객의 뜨거운 열정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오른 <헤드윅>의 공연 중 한 번도 같은 공연은 없었다”고 자신할 만큼 매 순간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작품에 해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또한 <헤드윅>의 엄청난 팬이니까요.”


사실 정문성이 처음 <헤드윅>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부담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품은 10년 이상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고, 그만큼의 두터운 마니아층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드윅이 된 그가 관객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풀렸다. 관객들이 헤드윅을 진심으로, 엄청나게 사랑한다는 것. “모든 사람이 무대에 서 있는 한 사람, 헤드윅을 사랑하고 응원해요. 이런 감정을 받는 순간엔 어떤 부담을 느끼기보다는 정말 행복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너무 좋았죠. 그래서 헤드윅을 향해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관객들에게 고마움이 커요.” 사실 헤드윅은 우리가 완벽하게 이해하긴 어렵고 복잡한 인물이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 그 혹은 그녀가 겪어온 기구한 에피소드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뱉어내는 모습. “우리가 용기 있게 삶을 헤쳐 나가거나 바꾸려고 할 때, 내가 믿는 어떤 가치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헤드윅은 자신의 슬픔을 감수해 내고,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는 굉장히 멋있고 행복한 사람이죠. 그래서 헤드윅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는 복잡하고 사연 많은 헤드윅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과거에 계획했던 깜짝 이벤트(?)를 풀어놨다. 작은 바를 빌려 친한 친구들을 모아놓고 공연을 하려 했던 것. 정식 공연처럼 헤드윅으로 분장하거나 의상을 입지 않아도 괜찮았다. 무대 바로 앞에 사람들이 앉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바에서 공연하는 헤드윅이 된 것처럼, 그도 ‘완벽하게’ 헤드윅이 되고 싶었단다. 안타깝게도 이 계획이 현실로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본인의 계획을 조곤조곤 설명하는 정문성의 모습에서는 어쩌면 헤드윅이 홍대의 어느 바에 앉아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정문성은 헤드윅의 감정을 그대로 객석에 전달해 주고 싶은 강한 열망을 비췄다. 그가 헤드윅으로 합류했던 지난 시즌부터 기존보다 조금 더 규모가 큰 공연장으로 무대를 옮긴 것도 한몫했다. “만약에 극장이 작았더라면 전 공연을 상당히 오래했을 것 같아요.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견했을 거거든요. 다 신경 써야 하니까. (웃음) 그런데 지금과 같은 큰 공연장에서 헤드윅이 되다 보니까, 절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이 마치 한 사람 같아요. 이렇게 한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하는 거죠.” 특히나 <헤드윅>은 헤드윅의 곁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 이츠학과 앵그리 인치 밴드와의 호흡도 상당히 중요하다. 정문성은 인터뷰 내내 이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감사함을 전했다. 그가 <헤드윅>의 무대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도 이들 때문이란다. “이츠학과 앵그리 인치 밴드는 헤드윅이 관객을 향해 무슨 말을 하든 ‘어휴’라며 무심하게 바라봐야만 해요. 그런데 제가 우연히 작은 애드리브를 던질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어느 순간 이츠학과 앵그리 인치 밴드가 참지 못하고 ‘팍’ 터질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전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이들은 헤드윅의 예기치 못한 행동이나 발언 덕택에 이를 꽉 깨물거나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을 정도다. 정문성은 “이츠학, 앵그리 인치 밴드와 헤드윅이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 없다면 쉽사리 연출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정문성은 지난해 열린 ‘자라섬 뮤지컬페스티벌’에서 헤드윅으로 화끈한 무대를 선보였다. 석양을 배경 삼아 탁 트인 야외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언니’라는 호칭에 천연덕스럽게 웃던 그에게서 상큼한 미소를 엿본 순간이었다. “진짜 신기한 건 뭐냐면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쓰고 예쁜 옷을 입으면 ‘언니’라는 말을 듣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사실 그는 좀처럼 살이 찌지 않는 체형이라 말랐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그런데 헤드윅이 되면, 그 이야기는 마치 다른 별의 이야기가 된다. ‘몸매가 좋아요, 예뻐요’라는 칭찬에 저도 모르게 뿌듯하게 미소가 지어질 정도. 자신에게 건네지는 애정 어린 말을 들을 때마다 ‘든든한 언니’가 되어주겠다는 다짐까지 든다고 말했다. 비록 힘은 약해도, 마음이 강해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그런 멋진 언니 말이다. 그럼 이렇게 화끈하고 예쁘고 든든한 언니가 행복할 때는 언제일까. “제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대답을 잘 안 하더라고요. 일부러 그러시는 건지. (웃음) 그런데 커튼콜이 시작되면 딱 정신을 놓아버리세요. 신 나게 같이 놀 때면 사랑받는 느낌이 피부로 확 와 닿죠. 이번에도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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