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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ALON] <틱틱붐> 이석준·이건명·배해선 [NO.168]

글 |배경희 사진 |양광수 2017-09-22 6,132

함께 버틴
시간을 위한 축제



지난 2010년 이후 한동안 볼 수 없었던 <틱틱붐>이 오랜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렌트>라는 역사적인 작품을 남긴 조나단 라슨의 초기작인 <틱틱붐>은 불안한 미래를 고민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모처럼의 재공연 소식만으로도 반가운데, 공연계의 대들보 같은 배우 이석준, 이건명, 배해선, 세 사람이 의기투합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서울예대 출신으로 각별한 우정을 자랑하는 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축제를 준비하게 됐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자리에 다시 모인 이유


이번 <틱틱붐>은 세 분이 의기투합해 꾸리게 된 프로젝트라죠.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됐나요?
이석준  저희 셋이 같은 예대 출신이잖아요. 저하고 건명이는 91학번 동기이고, 해선이는 저희보다 세 학번 늦지만 같은 해에 졸업해서 데뷔 연도가 같아요. 건명이도 그다음 해 바로 데뷔했고요. 어렸을 때 우리 나중에 정상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농담 삼아 자주 했는데, 어느새 20주년이 됐다니까 우리끼리 자축하고 싶더라고요. 이번 공연이 저희 20주년 기념이라고 홍보되고 있는데, 사실 정확히 말하면 재작년이 20주년이었고 그때 공연 얘기가 나왔어요. 처음엔 콘서트를 해볼까 하다 좀 더 의미 있는 걸 하자 싶어 <틱틱붐>을 떠올리게 된 거죠. 저희 셋 다 이 작품을 정말 사랑하거든요. 다행히 공연권을 가지고 있는 신시컴퍼니가 흔쾌히 공연을 허락해 줬는데, 셋이 시간 맞추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저희 셋이 다른 영역에서 살아남았잖아요. 건명이는 뮤지컬배우로, 저는 연극배우로, 해선이는 드라마배우로. (웃음) 셋 다 되는 날을 찾으려다간 영영 못하겠다 싶어, 작년에 아예 올해 이맘때 스케줄을 비우기로 했죠.


배해선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가 뭔가를 얻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20주년 기념이라는 것도 사실은 핑계예요. 저희 셋 다 활동 기간에 큰 의미를 두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나중에 50주년 정도 되면 모를까, 데뷔 10주년, 20주년을 따진다는 게 좀 창피하더라고요. 근데 셋이 공연으로 뭉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서 억지로 구실을 만든 거죠. 저희가 나서서 준비하는 거라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이 있지만, 한 살이라도 어려서 좀 더 무모할 수 있을 때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일을 벌여보겠나 싶더라고요. 다행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전원이 노 개런티로 참여하고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좀 새로운 시도 아닌가 싶어요.

이석준  저도 이런 공연이 이뤄졌다는 게 놀랍긴 한데, 사실 어떤 의도가 있었다기보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어요. 저희 주도로 시작된 공연이라 제작비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사전 제작비가 없다 보니 공연 수익으로 개런티를 정산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었죠. 처음에는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그래도 저희가 잘 살았나 봐요. 다들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하지 않고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각자 수고만큼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긴 힘들어도 너무 큰 피해를 입히진 않아야 할 텐데, 지금 마음의 부담이 좀 심각해요. (웃음)



이건명  스태프와 배우 섭외는 물론이고 공연의 기본 세팅을 저희가 직접 하면서 주위에 많은 빚을 지게 됐죠. 물론 알아서 제작에 나서줄 제작사를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의 이십 주년을 기념하는 거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 힘으로 해보는 게 의미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비록 승률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끼리 지지고 볶고 하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아서요. 그런데 생각보다 큰일이 돼서 함께해 준 사람들한테 정말 고맙죠. 나중에 이 사람들이 저한테 역으로 꼭 한 번 도움을 요청했으면 좋겠어요. 언제 어디로 와달라고 하든 무조건 달려갈 마음의 준비가 돼 있거든요.



어떤 작품을 공연할지 의논할 때 후보에 다른 작품은 없었나요? <틱틱붐>의 어떤 점이 그렇게 특별할까요?
배해선  <틱틱붐>이 셋 다 해본 작품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남아 있어서 고민할 이유가 없었어요. 뭐랄까, <틱틱붐>은 인생의 한 컷(Cut) 같은 작품이거든요. 우리 젊은 날의 한 컷. 고민의 모양과 크기는 각자 조금씩 다르겠지만, 누구나 자기 앞날에 대해 불안해하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기가 있잖아요. 특히 작품의 주인공이 가난한 예술가이다 보니까 더 크게 공감됐고요. 그리고 좀 거창한 비유일지 몰라도 저한테 <틱틱붐>은 비틀스나 비지스 음악 같은 느낌이에요. 예를 들어 ‘Let It Be’ 같은 곡은 지금 들어도 정말 세련됐다 싶은데, 그게 완벽하게 짜인 노래가 아니라 어딘가 여백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거든요. 빈 공간에 자기만의 목소리를 더할 수 있는 느낌이랄까. 조나단 라슨의 대표작인 <렌트>에 비해 <틱틱붐>은 거칠고 빈틈이 많지만 바로 그게 이 작품의 매력 같아요.



이석준  제가 개인적으로 <틱틱붐>이 좋은 작품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1990년대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아픈 청춘들이 여전히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어느 시대에서나 청춘은 사회에서 난도질당하는 세대인데, 그들에게 “파이팅 해! 일어나!”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괜찮아, 세상에 난도질 좀 당하면 어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돼” 하고 다독거려주는 작품이죠. 제가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가 스물아홉이었는데,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거든요. 그때 객석에 앉아 펑펑 울면서 얼마나 큰 위로를 얻었는지 몰라요. 제가 느꼈던 위로를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꼭 스물아홉 아니더라도 각자 불안한 시기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지금까지 살면서 언제 가장 <틱틱붐>이 생각나던가요?

이건명  전 오늘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도 그런 고민을 했어요. 지금 하는 인터뷰가 끝나면 <틱틱붐> 연습하러 갔다 저녁 시간을 쪼개 <인터뷰> 팀 특별 공연 연습에 들르고 다시 <틱틱붐> 연습실로 복귀해야 한단 말이죠. 그런데 오늘 문득 ‘왜 이렇게 바쁘게 살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내가 원하던 삶은 다른 거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나이가 벌써 마흔여섯인데, 여전히 스물아홉 존처럼 인생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거죠. 석준이도, 해선이도, 각자 다른 고민을 안고 살고 있을 거고요. <틱틱붐>은 연령대와는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같아요.


배해선  어렸을 땐 이십 대가 지나면 더 이상 인생을 불안해할 일이 없을 줄 알았어요. 앞날에 대한 고민은 이십 대에 끝날 줄 알았죠. 그런데 같은 고민을 삼십 대에도 하고, 사십 대에도 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저의 가장 큰 고민이에요. (웃음) 엊그제 연습실에서 (문)성일이가 이런 얘길 하더라고요. 자기는 누나나 형들 나이가 되면 모든 게 다 안정권에 들어서서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저희가 여전히 고민하며 사는 걸 보니까 눈앞이 깜깜해진대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살면서 고민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좀 더 힘든 길을 택한 건 우리 자신이라고. 그리고 지금 당장은 좀 더 나이 먹으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살라고요. 그래야 희망이 있으니까 벌써부터 미리 나중에 걱정할 생각 하지 말라고 했죠. 사실 나이를 먹을수록 고민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민이 더 세지고 무거워져요. 하지만 다행인 건, 그걸 견뎌낼 수 있는 굳은살도 생긴다는 거죠.





인생의 한 페이지를 나눈다는 것


<틱틱붐>과 얽힌 추억담으론 뭐가 있을까요?
이건명  2001년에 처음 <틱틱붐>을 했을 때, 실제 제 나이가 존하고 같은 스물아홉이었어요. 나이뿐 아니라 상황도 존하고 비슷했고요. 그때가 데뷔한 지 오 년 정도 됐을 때라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한창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저와 비슷한 고민을 담은 이 작품을 통해서 많은 용기를 얻었던 것 같아요. 이건 다른 인터뷰에서도 종종 한 얘기인데, 그해 마지막 날 12월 31일에 함박눈이 펑펑 내렸거든요. 술 마시다 밖에 나가 하늘에 대고 미친놈처럼 소리쳤던 기억이 나요. 조나단 라슨한테 이 작품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요. (웃음) 이따금 하늘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그 눈 내리던 밤이 기억이 나는데, 인생에 그런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줬다는 게 정말 감사하죠.


이석준  아까 잠깐 얘기했지만, 스물아홉에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거든요. 때로는 힘든 걸 주위 사람들하고 나눠서 털어버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전 힘들 때 마음을 닫아버리는 스타일이에요. 당시 거의 칩거 생활을 하다시피 하다 한창 잘나가던 동갑내기 친구 건명이가 하는 <틱틱붐>을 보러 가게 됐죠.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얻었어요. 제가 세상에 하고 싶었던 얘기를 친구가 무대 위에서 마구 퍼부어 주는데, 공연을 보는 내내 계속 울었던 것 같아요. 이런 작품이 존재한다는 게, 그리고 이 작품을 하고 있는 게 제 친구라서 정말 감사했어요. 나도 언젠간 이 작품을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오랜만에 다시 연습해 본 소감은 어때요?
배해선  예전에 건명 오빠나 석준 오빠랑 <틱틱붐>을 할 때 뭐가 좋았냐면, 두 사람 다 이 작품을 할 때 굉장히 살아 있었어요. 단순히 연기나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대사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인상을 받았죠. 이젠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때도 많이 묻어서 치기 어리던 시절의 그 느낌이 날까 싶었는데, 연습을 해보니 옛날하고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자기 모습이 많이 투영되는 캐릭터라 그런지 어쩔 수 없이 진실해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이건명  해선이가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전 수잔이 해선이한테 최적화된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해선이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인데, <틱틱붐>의 수잔은 다양한 색깔을 적재적소에 꺼내놔야 하는 역할이거든요. 그리고 얘가 보기보다 되게 뻔뻔해요. (웃음) 좋게 말하면 집중력이 좋고, 조금 안 좋게 얘기하면 자아도취가 심한데(웃음) 때론 가볍고 때론 깊이를 보여줘야 하는 역할을 기막히게 연기하죠.



서로에게 앞으로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는 게 있을까요?

이석준  어렸을 때라면, 배우로서 각자 어떤 길을 가길 바라는 바가 있었을 거예요. 넌 어떤 배우가 되렴, 또는 우린 어떤 배우가 되자, 이런 다짐을 나눴겠죠. 그런데 이젠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꼭 어떤 ‘무엇’이 돼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이효리가 방송에 나와서 한 말 있잖아요. 훌륭한 사람 될 필요 없다고, 그냥 아무나 되면 된다고. 그 말이 맞는 말 같아요. 그리고 두 사람은 저한테 이미 ‘어떤’ 사람이에요. 건명이나 해선이 둘 다 가장 잘나가던 시기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더라도 저를 보면 항상 달려 와줬던 친구들이죠. 만약 제가 갑작스레 배우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말없이 와서 조용히 응원해 주고 갈 친구. 두 사람은 저한테 그런 존재에요.


이건명  지금까지 살아 보니 인생에서 의미 없는 허튼 시간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석준이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스물아홉 그때가 죽기보다 싫었겠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석준이도 없었을 거예요. 자기가 겪을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했던 그 시간이 지금의 연기에 작은 원동력이 됐을 거거든요. 인생 그래프의 곡선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좀 더 단단한 배우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저희 세 사람 모두 각자 힘든 시기를 거쳐 여전히 같은 배우로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해요. 그 자체가 제 인생의 응원이죠. 비록 예전처럼 자주 볼 순 없더라도, 두 사람이 어디선가 배우로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나도 내 무대를 굳건히 지키겠다고 다짐하게 되거든요.



배해선  전 그냥 각자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을 벌써부터 하긴 좀 그렇지만, 우리 셋 다 언젠간 죽을 거잖아요. (웃음) 하지만 갈 때 가더라도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될 수 있는 한 오랜 시간을 함께하길 바라니까. 그것 말곤 특별히 바라는 거 없어요. 동시대에 같은 고민을 가지고 한길을 걸어가는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힘이 되거든요. 서로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저희가 언제 또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함께 배우 인생에 꼭짓점을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오랫동안 이 추억을 간직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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