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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서편제>·<여신님이 보고 계셔> 김재범[NO.168]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2017-09-26 6,586

도전의 깊이


배우의 변신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작품마다 변화하는 모습도 그렇지만, 한 무대 안에서 다채롭게 변신하는 배우를 마주하는 건 관객에게 신기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최근 <인터뷰>에서 보여준 김재범의 변신도 그러했다. 다중 인격에 처음 도전했던 김재범은 역할 속에 내재된 서로 다른 인격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극적 재미를 더해 주었다. 그랬던 그가  변신을 멈추지 않고, <서편제>의 동호,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한영범 역에 차례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의 변신이 만들어낼 존재감이 이들 작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 않을까.




애정을 담은 깊이

다중 인격 캐릭터는 배우에게 특별한 도전이다. 한정된 러닝타임 동안 한 인물에 내재된 다양한 인격을 꺼내 보여주는 것은 그 배우의 스펙트럼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재범은 지난 8월 막을 내린 <인터뷰>에서 다중 인격 캐릭터에 도전했고, 이를 자신만의 매력으로 잘 풀어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배우 스스로에게도 큰 카타르시스를 전해 줬을 듯하다. “표현이 자유로워졌을 때는 만족스럽고 기뻤어요. 그런데 실은 처음 연습을 시작할 당시에는 굉장히 부끄러웠어요. 혼자 이 캐릭터가 되었다가 또 저 캐릭터가 되어야 하잖아요. 연습실에서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이 저를 보고 있는데 부끄럽고 땀이 나더라고요. 정말 창피해서 땀이 흐르는 걸 오랜만에 경험해 봤어요. 내가 확실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야말로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더라고요. 배우로서 난 여기까지인가 보다 한계를 느끼기도 했죠.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나는 할 수 있다는 다짐을 했어요. 그러면서 인물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죠. 배우로서 굉장한 도전이었어요.”


<인터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김재범은 곧 개막을 앞둔 두 편의 차기작 소식을 알려왔다. <서편제>의 동호, 그리고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한영범이다. 겉으로만 봐도 전혀 다른 느낌의 두 캐릭터. 이 역시 김재범이 이어갈 새로운 도전이 되지 않을까? 그중 <서편제>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반해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작품 특유의 매력을 막힘없이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서편제>를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미, 동양의 미,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무대도 굉장히 한국적이고 아름다워요.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다 할까요. 소재 자체만 봐도 우리나라 창작뮤지컬이란 걸 알 수 있잖아요. 그 점이 뿌듯하고 좋아요. 한이라는 정서와 판소리에서 느껴지는 떨림들. 제가 한국 사람이다 보니 이런 정서들에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김재범이 <서편제>에서 맡은 역할은 송화의 의붓동생 동호. 그는 송화 역이 탐났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동호를 맡게 되었다는 재치 있는 농담을 하다가도,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금세 진지한 눈빛으로 생각을 풀어 나갔다. “어떻게 보면 철없고, 어떻게 보면 불쌍한 아이에요. 또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기도 하죠. 동호가 지닌 성향 중 어떤 것을 부각시켜야 할지 생각 중이에요. 어떻게 해야 관객들이 동호라는 인물을 이해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에요. 무대 위에선 어린 동호가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거든요. 단순히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바꾸는 것만으로 그 세월의 흐름이 표현되진 않을 것 같아요. 지난 시간만큼 동호에게 쌓인 깊이와 연륜을 잘 보여줄 수 있다면, 더욱 작품의 뭉클함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편제> 속 동호에게 송화는 그야말로 특별한 존재. 어느새 동호에게 젖어든 김재범은 송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정말 힘들 때 누군가 내 옆에 와서 한마디를 해줘요. 그런데 그 말 때문에 세상이 바뀌어버리는 느낌이랄까요. 송화라는 사람 자체는 동호에게 너무나 큰 위로예요. 힘들었던 어린 시절 동호의 인생에서 한줄기 빛이 되어준 존재. 송화는 동호에게 그런 기억이에요.” 그래서일까? 김재범이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역시 송화가 부르는 ‘살다보면’이다. “극 초반에 어린 송화가 동호에게 이 곡을 불러주거든요. 시작부터 찡해요. 어린아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살다보면 살아진다! 노래도 가사도 참 좋더라고요.”





편안함을 담은 무대

김재범은 오는 9월 개막하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다섯 번째 시즌에도 합류할 예정이다. 작품에서 그가 맡은 역은 처세의 달인이자 딸바보인 국군 대위 한영범이다. “초연 때부터 같이해보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늘 시간이 맞지 않아 출연하지 못했어요. 드디어 <여신님이 보고 계셔>와 함께하게 되었네요!” 그는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순간을 떠올리며, 더할 나위 없이 맑은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어두운 작품들이 많잖아요. 누군가를 죽이거나, 계속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야기들이요. 물론 이 작품도 초반에는 전쟁의 무시무시한 상황을 보여줘요. 하지만 뒤로 갈수록 꿈과 희망을 느낄 수 있어요. 이런 작품이 흔치 않거든요. 전작인 <스모크>, <인터뷰>가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번엔 위로를 받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을 꼭 하고 싶었죠.”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전해 주는 희망. 김재범은 이 에너지를 계속 이어받아 밝고 편안한 역할들에 좀 더 도전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고래고래>의 호빈처럼 편안한 역할들이 좋더라고요. <김종욱 찾기>의 김재범같이 소심하고 예민하면서 찌질한, 그러면서 착하고 편안한 역할이요. 요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캐릭터를 맡고 싶어요.” 때문에 뮤지컬 <고래고래>와 함께 기획돼 올 상반기 개봉한 영화 <마차타고 고래고래> 또한 그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영화관을 찾았는데 영화를 보는 것 같지 않았어요. 친구들끼리 여행하며 버스킹했던 영상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촬영할 때도 정말 즐거웠어요. 경치도, 공기도 좋았고, 촬영 끝나고도 동료들과 함께 놀았죠. 작품과 역할이 편안해서 더욱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실제로 김재범이 지향하는 배우의 모습 또한 편안함과 밀접히 맞닿아 있다. “배우로서 제 매력은 평범함이라고 생각해요. 겉으로 봤을 때 특정 캐릭터가 강하게 보이진 않거든요. 그래서 어떤 역할을 맡아도 저만의 해석을 더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만큼은 완전히 그 캐릭터로 존재하는 것. 이 단순하지만 명확한 목표가 있기에 배우 김재범의 무대가 더 믿음직하지 않을까? “항상 욕심이 생겨요. 무대 위에 있을 때는 작품 속 역할로 보이고 싶고, 그런 모습으로 계속 관객들을 찾아뵙고 싶어요. 무대에 서 있는 순간만은 오롯이 인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그 순간만큼은 관객들이 제 무대에 깊은 공감을 얻으시길 바라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8호 2017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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