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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SPIRATION] 김성수 작곡가의 영감 창고 [NO.169]

글 |김성수(작곡가·음악감독) 정리 | 안세영 2017-10-26 5,422

<꾿빠이, 이상> 김성수 작곡가의 영감 창고




데이빗 린치 <로스트 하이웨이>

데이빗 린치의 영화는 때때로 악몽 그 자체를 묘사한 것처럼 보입니다.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내러티브와 끝없이 몰입을 방해하는 장치들. 그렇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구조의 <로스트 하이웨이>에는 흥미로운 단서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금씩 변형되며 반복되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음악적으로는 오히려 확실한 규칙과 기승전결을 보여주거든요. 결국 텍스트에만 집중할 때 혼란스러울 뿐, 해법을 찾아가는 방법이 다른 거죠. 어차피 풀리는 미스터리도 있고,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도 있는 법!



윌리엄 버로스『벌거벗은 점심』
비트 세대 작가인 윌리엄 버로스와 다다 아티스트 트리스탄 자라의 ‘컷업 폴드인(Cut-Up Fold-In)’ 기법은 현대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밥 딜런부터 너바나, 라디오헤드, 톰 웨이츠, 카바레 볼테르, 히피 문화, 심지어는 상업 잡지 편집, 광고, 반복되는 리듬 악절이 주요소가 되는 일렉트로닉 음악까지…. 텍스트 해체에 그치지 않고 결과물의 레이아웃까지 재배치한 당시의 시도는 이상의 시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13년 전, 로버트 윌슨이 연출하고 버로스의 글과 톰 웨이츠의 곡으로 만든 연극 <블랙 라이더>를 보고 그와 같은 작업을 꼭 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언젠가는 시도해 볼 수 있겠죠. 참고로 제 닉네임인 23은 버로스가 발견한 불운한 숫자의 법칙에서 따온 것입니다.




필립 글래스 <해변의 아인슈타인>
필립 글래스의 ‘초상 오페라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 1976년 작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몇몇 내레이션, 시 낭송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가사가 계명창 또는 숫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다섯 시간짜리 오페라의 비선형적 내러티브를 조화롭게 뒷받침하는 (또는 이끌어가는) 필립 글래스의 음악은 미니멀리즘의 가치를 잘 보여주죠. 여기에 모든 스태프, 출연자를 동일한 비중으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닌 로버트 윌슨과 안무가 루신다 차일까지, 각자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유기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임에 더 감탄하게 됩니다.





비요크 <구속의 드로잉 9번>
비요크의 작품은 제게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2005년 비요크가 매튜 바니와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영화 <구속의 드로잉 9번>은 성(性)의 미분화 상태를 주제로 한 이전의 ‘구속의 드로잉’ 연작과 달리 남녀가 분화된 후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런 주제와 이미지, 복잡한 컨텍스트를 뒷받침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선택한 미니멀한 구성과 낯선 악기 편성은 다시 한 번 비요크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만듭니다.




죄르지 리게티 <르 그랑 마카브레>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배경음악으로 쓰인 ‘아트모스페르(Atmosphere)’를 통해 처음 접한 작곡가 리게티. 1978년 초연한 그의 유일한 오페라 <르 그랑 마카브레(Le Grand Macabre, 대종말)>는 리게티가 초창기 아방가르드한 작법에서 살짝 벗어나 어느 정도 전통적인 구성 요소를 반영하기 시작한 작품입니다. 역시 제게 너무도 많은 영향을 준 작품이죠. 더불어 묵시록적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던 리게티와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던 연출가의 충돌은 창작 시스템이나 비전의 공유, 협업에서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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