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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더 밴즈 비지트> [NO.171]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Matthew Murphy 2017-12-19 4,568

스쳐지나가는 인연들, 그리고 기다림에 대한 뮤지컬

<더 밴즈 비지트>

The Band’s Visit




다른 결의 뮤지컬


뮤지컬 <더 밴즈 비지트>는 지금껏 브로드웨이에 올라왔던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작품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경찰 음악단이 계획에 없던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에 도착해 마을 사람들과 하룻밤을 지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그린다. 기존 작품과 확연하게 다른 점은 바로 무대 위의 배우들이 백인이 아닌 중동계 배우들이라는 것.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인물들이 히브리어와 아랍어, 그리고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우드와 다르부카 같은 중동의 악기로 해당 지역의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이 ‘다름’은 데이비드 크로머의 연출을 만나 ‘아름다움’으로 탄생한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조용한 마을의 주민들과 음악을 하는 이방인들의 만남은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또 어떤 순간에는 애잔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특별할 것 없는 사각형의 모래 빛 건물들이 무대 위에 자리잡고 있고, 그 앞으로 얇은 막 스크림이 내려와 있다. 스크림 위로는 핸드폰을 꺼달라는 말이 영어와 아랍어, 히브리어로 각각 적혀서 투영된다. 중동 지역의 음악이 흐르면서 암전이 되었다가 이 음악이 멈추면 조명이 들어오고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된다. 무대 위에는 이집트의 경찰 음악단이 이스라엘의 공항처럼 보이는 공간에 일렬로 서 있다. 처음에는 그들끼리 아랍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한두 마디 대화 후에는, 음악단의 단장인 토우픽이 점잖지만 누가 들어도 외국인이 하는 영어로 단원들에게 이야기한다. 이곳에서는 영어로 얘기를 나눠야 하며, 초청을 받아온 것이니만큼 이곳에 있는 동안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즉, 초청 공연 동안 예산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나 비평가들에게 괜한 트집 잡힐 일은 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다. 이 짧은 장면에서 관객들은 겸손하지만 책임감 강하고 진중한 토우픽의 성품과 이 초청 공연의 중요성, 그리고 전체적인 단원들의 분위기 등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바로 초청 공연의 지역으로 가기 위해 안내 데스크를 방문하면서부터다. 안내 데스크 직원은 그들이 가는 곳이 페타 티크바인지 벳 하티크바인지 되묻는다. 둘 다 이스라엘에 실제 존재하는데, 페타 티크바는 꽤 발달한 도시에 아랍문화센터가 자리한 곳이고, 벳 하티크바는 별다른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는 곳이다.


물론 이들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착한 음악단은 음식점 주인인 디나의 호의로 마을에서 하룻밤 지내게 된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디나를 비롯, 디나와 함께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는 이츠힉, 여자를 만날 때마다 얼어버리는 파피, 공중전화 앞에 서서 하염없이 여자친구의 전화를 기다리는 이름 없는 전화기 남자 등 언뜻 보기에 평범한 인물들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의 아빠인 이츠힉은 현재 마땅한 직업이 없고, 그런 가정을 실질적으로 꾸려나가는 것은 그의 부인이다. 그래서 이츠힉과 부인 사이에 지속적인 갈등이 존재한다. 파피는 숫기가 없어 여자를 소개받아도 말 한 번 건네는 걸 힘들어하고, 공중전화 남자는 하염없이 전화기 앞에 서서 전화를 기다린다. 그리고 디나는 단순한 외로움이라기보다는 마을 전체적인 분위기인 무료함과 무기력함을 체화하고 있다. 사실 무기력함과 무료함은 음악단이 우연히 도착하기 전, 마을 사람들이 공통으로 지닌 심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잔잔하고 변화 없는 심리가 음악단의 방문과 함께 일시적인 동시에 지속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디나는 토우픽을 만나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되고, 파피는 할레드의 도움으로 데이트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츠힉은 사이먼의 음악을 통해 아내와의 갈등을 조금 해소하는 데 물꼬를 튼 듯 보인다. 이렇게 하룻밤을 마을 사람들과 지낸 후 음악단은 다행히도 원래 목적지였던 페타 티크바에 무사히 도착하고, 문화센터에서 초청 공연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지만 음악단이 왔다 간 흔적은 분명 단원들과 마을 사람들의 삶 속에 남아 있다.




식상함의 탈피


이방인의 방문으로 인해 야기되는 상황들과 변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방식이라 한편으로는 식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은 음악과 연출, 그리고 배우의 연기로 이런 식상함을 탈피했다. 앞서 적었듯이 <더 밴즈 비지트>의 기본적인 사운드는 큰 젬베처럼 생긴 중동식 타악기 다르부카와 중동식 비파인 우드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여덟 명의 단원 중 네 명은 무대 위에서 연주를 주로 하고 나머지 네 명은 악기 연주보다는 대사 전달과 노래, 그리고 연기를 좀 더 중심적으로 하는 포지션으로 나뉘어 있다. 장면과 분위기 전환 그리고 시간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데에 조명과 무대 장치의 변화뿐만 아니라 자신의 악기로 연습을 하는 듯 무심하게 만들어내는 음악은 훨씬 더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풀 몬티>와 <나쁜 녀석들>의 작곡가로 이름을 알린 데이빗 야즈벡의 음악은 때로는 휘몰아치면서,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야즈벡의 재능을 잘 드러내는 넘버는 특히 첫 곡 ‘Waiting’과 음악 자체에 유머가 내재한 넘버 ‘Sea’ 등이다. ‘Waiting’의 경우 똑딱 시계를 연상시키는 4/4 박자에 멜로디는 어딘가 엇박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박자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노래를 부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으로 이 마을과 사람들의 성격을 재치 있게 보여준다. ‘Sea’는 여자와 대화를 하려고 하면 뇌가 멎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바닷소리와 비슷한 잡음이 귀에 들린다고 말하는 파피의 노래로, 내림차순의 음계를 연속적으로 사용해서 그의 절망적인 마음을 유머러스하게 음악으로 풀어냈다. 그 외에도 작품의 마지막 곡으로 전화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공중전화 남자가 부르는 ‘Answer Me’ 역시 멜로디의 유려함 속에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잘 담아내었다.


위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 작품을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는 데에 음악만큼 중요했던 것은 연출인 데이비드 크로머의 조율 능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몇 년 전 뉴욕 다운타운의 배로 스트리트 시어터 (현재 <스위니 토드>가 공연 중인 공연장)에서 손튼 와일더의 명작 <우리 읍내>의 디테일함을 잘 살려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프로덕션을 선보이며 그의 능력을 확인시켰던 크로머는 이타마 모세스(뮤지컬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몇 년 전 퍼블릭 시어터에서 올랐던 마이클 프리드먼의 유작 <고독의 요새>의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의 드라이하고 소소한 유머가 넘치는 이번 작품을 만나 다시 한 번 디테일에 강한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평범한 삶 속의 이야기들과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잘 살려낸 것이 이 마을과 사람들 그리고 작품 전체에 담겨 있는 사랑스러움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아까도 말했듯 ‘Waiting’에서 한자리에 서 있는 채 회전무대에 의지하며 “때로는 그냥 제자리를 빙빙 도는 것 같아”라고 노래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고, 음악도 중요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낚시라고 주저 없이 얘기하는 토우픽도, 기회가 날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쳇 베이커, 쳇 베이커-를 좋아하냐”고 물으며 작업을 거는 할레드도, 부인과의 갈등 속에서도 아이를 위해 자장가를 불러주는 이츠힉의 모습도, 등장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소소한 사랑스러움과 진정성에 한몫한다.





짧은 순간 휘몰아치는 진정성


물론, 이 작품을 만드는 데에 크게 기여한 것은 두 문화의 만남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 배우들이다. 특히 토우픽을 맡은 토니 샬룹은 우리에게는 미국 드라마 <몽크>의 탐정으로 가장 잘 알려진 배우다. 그는 이번 작품의 오프브로드웨이 공연부터 토우픽을 맡아 아들과 아내를 잃은 상처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따뜻한 캐릭터를 호소력 있게 창조해 냈다. 레스토랑 주인인 디나를 맡은 카트리나 렌크는 지난 시즌 토니상을 받은 폴라 보겔의 신작 연극 <인디센트>에서 종교적 억압을 뛰어넘어 신념과 사랑을 구하는 멘케 역할을 맡아서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노래와 춤, 그리고 악기 연주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연기자로 미래가 기대되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과거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안은 채 답답하고 지루한 마을에서 살아가지만(처음에 음악단이 잘못된 마을에 왔다는 것을 알려줄 때, 페타 티크바가 아닌 벳 하티크바는 ‘b’로 시작하는 ‘boring, bland, blah blah blah’라는 노래를 이츠힉, 파피와 함께 부른다), 토우픽을 만나 아주 짧은 순간, 묘한 경험을 하는 디나 역을 맡아 복잡한 감정들을 노래와 움직임, 아주 사소한 몸짓으로 꼼꼼하게 표현해 주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와 벳 하티크바라는 특별하지 않은 동네라는 특징은 무대와 의상을 의도적으로 단조롭게 만들고, 원형 무대를 사용해서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 사막의 모래 빛 사각형 건물이 선 공간에 오아시스 혹은 파란 하늘을 연상시키는 베이비 블루 색의 음악단 제복은 꽤 인상적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음악단의 등장은 분명히 이 마을에 꽤 새로운 것들을 가져다주긴 했으니 말이다. 하룻밤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현실적이지만 순간순간 아스라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조명도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디나가 토우픽과 길에 앉아 공원에 있다고 상상하며 낚시 등 여러 얘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조명의 역할이 돋보였다.



공연 시작 전 무대 위 스크림에 ‘휴대폰을 꺼주세요’라는 메시지가 사라지고 나면 짧은 설명이 나온다. 언젠가, 이집트 경찰의 음악단이 이스라엘에 왔는데 잘못해서 다른 마을에 갔다고. 아마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여러분들은 모를 거라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공연이 시작되고 이야기가 진행된 후 악단이 떠나고 나면, 디나는 관객들에게 한 번 더 이 이야기를 건넨다. 음악단이 한 번 왔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여러분들은 모를 거라고. 그렇게 디나가 퇴장하면 장면이 바뀌어 음악단이 문화센터에서 연주를 시작하고, 그 연주가 끝나면 공연도 막을 내린다. 앞서 말했듯이 음악단의 방문은 그들의 삶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다른 길을 걸어왔던 사람들이 하룻밤 엮이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삶에 아주 작은 흔적을 남기고 갔다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아주 사소한 한때를 놓치지 않고 중요하게 담아냈다는 것이 어쩌면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 그리고 우리들의 기다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공중전화의 남자가 마을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앙상블과 함께 부르는 마지막 노래 ‘Answer Me’는 이런 의미에서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벳 하티크바가 아니더라도 뉴욕 혹은 서울에 사는 우리 모두 나의 부름에 응답해 줄 누군가를 늘 갈망하고 있지 않을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1호 2017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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