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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더픽션> 임준혁 [No.175]

글 |박보라 사진 |황혜정 장소협찬 | ALOCASIA IN THE TERRACE(알로카시아 인더테라스) 2018-04-17 7,490
새롭게 흩날리는 봄




카페의 테이블에 앉자마자 임준혁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첫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른 <베어 더 뮤지컬>의 마지막 공연을 끝낸 직후 모습이었다. 영상엔 성 세실리아의 졸업식에서 다른 친구들이 쓴 똑같은 학사모를 머리 위로 던지는 청량한 그의 얼굴과 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제이슨, 졸업 축하해!’라고 외치는 소리가 담겨 있었다. “정말 감사했어요. 제이슨은 졸업식 전에 죽기 때문에, 졸업하지 못했으니까요. 팬들이 제이슨을 졸업시켜줬거든요.”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한 임준혁을 바라보니, 그에게 <베어 더 뮤지컬>이 여러모로 마음에 콕 박히는 행복한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작품과 첫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뮤지컬 데뷔작 <몬테크리스토>부터 시작한다. 8년 전, 아이돌 연습생을 거쳐 보컬 그룹의 멤버로 데뷔한 이력을 지닌 임준혁은 놀랍게도 일본 유명 기획사 에이벡스에 소속됐던 루키기도 했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온 후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눈앞에 요즘 들어 흔치 않은 공개 오디션 공고가 보였다. 바로 뮤지컬 배우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 순간이었다. 임준혁은 ‘신인 등용문’이라는 별명을 얻은 <몬테크리스토>의 알버트 역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첫 데뷔작에다 하필이면 쟁쟁한 배우들이 함께 캐스팅된 탓에 부담감이 컸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던 와중 동료 배우들이 임준혁에게 ‘오디션을 꼭 보라’면서 추천해 준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베어 더 뮤지컬>이었다. 운명은 운명이었는지 심지어 이번 시즌 <베어 더 뮤지컬>은 공개 오디션으로 주요 배역을 선발했다. 사실 ‘쌩신인’이었던 그에게 공개 오디션은 임준혁이란 존재감을 드러낼 유일한 기회였던 셈. 오랜 오디션 기간 끝에 그에게 주어진 건, 동성 친구와 비밀스러운 사랑을 이어 나가다 결국엔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제이슨이었다.

 <베어 더 뮤지컬>은 내로라하는 인기 절정의 배우들이 거쳐 갔고, 뜨거운 사랑도 받았다. 심지어 이번 시즌에는 졸업생을 포함해 다섯 명의 제이슨이 이름을 올렸다. 데뷔작과 마찬가지로 부담이 없을 순 없었겠지만 임준혁에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건, ‘임준혁의 제이슨’을 만드는 일이었다. 엄격했던 집안에서 자란 어른인 척하는 소년, 스스로 비극적인 결정을 내리는 제이슨을 잘 표현해야 한다는 고민이 이어졌다. 그는 매 공연이 마지막인 것처럼 감정을 쏟아냈고, 공연이 끝날 때면 코끝이 빨개질 정도로 모든 감정을 토해낸 제이슨을 빚어냈다. 심지어 제이슨이 죽은 후에 무대에서 전해 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대에서 펑펑 울기도 했단다. 길었던 오디션과 연습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했던 공연 기간이 지나니, 뮤지컬 배우로 한 뼘 자란 그가 있었다.



 <베어 더 뮤지컬>이 끝난 직후 임준혁이 만난 새로운 인연은 <더픽션>의 열혈 형사 휴 대커다. 작품은 소설 속 살인마가 현실에 나타나, 소설과 똑같은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휴 대커를 바라보면, 열정 넘치는 임준혁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처음 참여한 창작 초연이라는 점도 작품을 향한 흥미를 자극했다. 무엇보다 <더픽션>은 작가 그레이와 기자 와이트의 팽팽한 관계가 강점인 작품. 임준혁은 “휴 대커를 그레이와 와이트의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 가줄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들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유심히 작품을 보다 보면 휴 대커가 이야기의 해설자로 존재한다는 느낌도 받는다. 사실 그는 휴 대커뿐 아니라 평론가로, 연쇄 살인마 블랙으로도 다양하게 무대에 선다. 어쩌면 휴 대커를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로 무대에 선다는 건, 그에게 색다른 도전일 수도 있었다. 자칫하면 그의 존재감에 대한 의문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임준혁이 조심스럽게 내놓은 고민의 결과물은 노래다. “제가 존재감이 보이지 않으면 그저 ‘의심 많은 시민1’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뮤지컬 넘버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이고 있어요. 그레이나 와이트의 노래와는 다른 느낌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죠.”

임준혁은 무대에 많은 감정을 쏟아내고 싶다고 했다. 작품을 만나고 무대에 설 때마다, 생각과 고민을 거듭하다 스스로가 내린 열정의 답은 ‘배우로서의 갈증’이다. “제가 지닌 감정을 무대 위에 다 쏟아내고 싶어요. 제 안에 있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해소하고 싶거든요. 무대 위에서 여러 인물로 변하고 또 그런 인물을 만드는 일에 대한 고민이 배우로서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진심은 전해지는 것. 최근 임준혁을 향한 애정과 기대의 눈길이 많아졌다. 또 미리 밝힐 순 없지만 벌써 차기작도 정해졌을 정도로 뮤지컬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중이다. “아직 걱정도 많이 돼요.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죠. 저의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사라질 것 같기도 해요. 전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에게 확신을 드렸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이런 마음을 가득 안고 무대에 올라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5호 2018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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