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기대작 중 하나는 EMK뮤지컬컴퍼니의 두 번째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다. 2013년을 시작으로 5년간 공을 들여 완성한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 오랜 준비 기간만큼 창작진들이 자신 있게 공개한 <웃는 남자>의 예고편을 들어보았다.
지금 필요한 이야기
2012년 <더 라스트 키스(황태자 루돌프)> 초연 개막 후 로버트 요한슨 연출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장 피에르 아메리 감독의 영화 <웃는 남자>를 보았다. 단번에 이 작품에 사로잡힌 요한슨은 EMK뮤지컬컴퍼니에 뮤지컬화를 제안했고, 극작과 연출을 맡아 이를 실현하였다. 뮤지컬은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어린이 인신 매매단인 콤프라치코스가 기형의 모습을 한 소년을 내버리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버림받은 그윈플렌은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어린 데아를 만나고,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이 시작된다. 작품은 괴물 같은 얼굴을 갖고 있지만 순수한 영혼을 지닌 그윈플렌의 여정을 따라 사회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한다. 요한슨은 “인류가 존재한 이래 부유한 자들은 늘 가지지 못한 사람을 착취해 왔으며 우리는 아직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며 작품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의 장을 펼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두 세계가 공존하는 무대
<웃는 남자>의 무대 디자인은 EMK뮤지컬컴퍼니와 <마타하리>로 협업한 바 있는 오필영 디자이너가 맡았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첫 페이지에 쓰여 있던 문장에 큰 감명을 받았다. ‘부유한 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지은 것이다.’ 이 말은 이 작품의 가장 큰 축이자, 무대 디자인의 가장 큰 축이 되었다. 부유한 자들의 세계와 가난한 자들의 세계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리고 두 세계의 축을 어떻게 공존하게 할 것인가. 이러한 고민으로 작품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오필영 디자이너는 ‘상처’와 ‘터널’에 착안해 무대를 만들었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이 두 사회적 부류가 상처 가득한 터널의 반대 끝에서 서로 연결되어 존재한다고 가정한 것. 그윈플렌, 우르수스, 데아는 외적인 상처가 크고, 또 그로 인해 생긴 마음의 상처도 큰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처는 드러나 있기에, 그 내면은 더욱 순수하고 서로의 아픔을 감싸며 이해해 준다. 반면 부유한 자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화려하게 치장하고, 상처를 완벽하게 감추려고 애쓴다. 그야말로 가식적이고, 인공적인 세계인 것이다. 오필영 디자이너는 이렇듯 서로 대비되는 두 세계의 특징을 반영해 상징적인 메타포를 무대 곳곳에 숨겨두었다.
무대에는 기본적으로 상처를 형상화한 터널이 존재한다. 오프닝 무대에는 그윈플렌의 가장 큰 상처를 상징하는 빨간 입꼬리 모양의 디자인이 눈에 띈다. 그리고 그 주변을 상처가 가득한 부정적인 공간으로 표현했다. 가난한 자들이 만들어내는 카니발 장면의 경우 따듯함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난한 자들의 세계는 부유한 자들과 비교했을 때는 상처가 되지만, 상처가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그 상처도 아름다울 수 있을 거란 것이 오필영 디자이너의 생각. 때문에 카니발 장면은 따뜻함이 묻어나는 세계로 표현되었다. 반면 부유한 자들은 상처를 철저히 가리기 위해 더욱 과장되게 스스로를 가꾼다. 가든 파티 장면이 바로 귀족들의 이러한 특성을 담아내고 있다. 엔딩 장면의 경우 두 세계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품의 메시지를 담아낸다. 아래쪽은 상처가 철저히 가려진 세계, 위쪽은 상처가 드러난 세계로,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세계가 공존하는 무대 디자인을 만들었다.
도전이 담긴 음악
<웃는 남자>가 기대를 모으는 요소 중 하나는 <지킬 앤 하이드>, <몬테크리스토>등으로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이다. 요한슨 연출의 추천으로 비행기에서 영화를 보게 된 와일드혼 역시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영화를 세 번이나 돌려보며, 바로 작곡을 시작했을 정도니 말이다. 무엇보다 와일드혼에게 영감을 준 것은 <웃는 남자>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었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그윈플렌의 운명,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감각들로 세상을 상상해야 하는 데아의 삶, 부유하고 아름답지만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갈증으로 목말라하는 조시아나,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테비처럼 유머러스하면서도 거친 우르수스 등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것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었단다.
<웃는 남자>의 음악은 부유와 가난, 정직과 사악, 열정과 로맨스를 조화롭게 그려낸다. 와일드혼은 우르수스, 그윈플렌, 데아가 사는 켈트족과 집시들의 세상, 그리고 궁정에서의 부유하고 화려한 삶은 어땠을까 생각하며, 그 장소의 느낌과 분위기를 음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중 ‘Opening’은 와일드혼이 처음 작곡한 곡이자, 작품을 관통하는 첫 번째 모티프가 된 곡. 와일드혼은 “이 곡에는 그윈플렌의 여정과 그의 사연이 잘 녹아 있다. 조용하고 평온한 느낌이면서도 그윈플렌의 열정과 격한 감정, 분노까지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관객들의 주목을 받을 곡으로 ‘Can it Be?’를 꼽았는데, 작업 당시 그윈플렌의 색깔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 결정해 준 중요한 곡이란다.
한편 김문정 음악감독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직접 무대에 출연하는 것이 이 작품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한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에 올라 주인공들의 정서와 처절한 삶, 사랑과 분노, 그리고 희화적인 모습들을 바이올린 선율로 그려낼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음악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주인공의 정서를 대변하고 드라마에 깊이 관여해 극을 이끌어갈 예정이다.” 또한 와일드혼은 그간 감미롭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더했다고. 집시 음악에 영향을 받아, 포크 기타, 만돌린 같은 악기를 사용해 이국적인 색채를 표현해 냈다. 반면 영국 왕실의 근엄함을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풀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탄탄하고 장엄한 음악을 선보일 계획이다.
시대에 특별함을 입힌 의상
의상디자이너 그레고리 포플릭이 <팬텀> 이후 다시 EMK뮤지컬컴퍼니와 조우했다. 그는 작품을 특정한 시대극으로 국한하고 싶지 않다는 로버트 요한슨 연출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하나의 시대로 무대를 한정짓지 않는 것은 작업하는 데 큰 장점이 된다. 선택권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17세기 의상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 시대부터 크리스찬 디올, 알렉산더 맥퀸, 비비안 웨스트우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영감을 받았다.” 그에 따라 <웃는 남자>의 의상은 17세기 역사를 담고 있지만, 역사적 고증에 따라 의상을 재현한 것이 아닌 그 시대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만의 특별한 컨셉으로 디자인되었다. 그레고리 포플릭 디자이너는 특히 ‘세계’라는 말에서 작품의 방향성을 찾았다.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도 하고, 또 연결되어 있기도 한 세계들을 표현해 내는 것, 이것이 그의 중요한 과제였다.
그윈플렌 의상의 경우 기형의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용도로 붉은 스카프를 디자인했다. 뮤지컬에서 붉은색은 눈에 너무 띄어 잘 쓰지 않는 컬러지만, 그윈플렌의 기묘한 얼굴을 관객에게 상기시키고 그의 상처를 강조하기 위해 붉은 컬러로 디자인을 완성한 것. 영국 상류층에서 인위적인 세상을 살고 있는 조시아나 여공작의 의상은 라인스톤, 골드, 진주 등으로 귀족의 느낌을 한층 살렸다. 드레스의 어깨 라인을 자세히 보면, 발렌시아가에게서 영감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최상위 계층이라 할 수 있는 앤 여왕의 의상은 그녀의 권력을 감안하여 색상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에 따라 흰색 바탕에 금색, 은색의 장식들이 화려하게 달린 의상이 완성되었다. 콤프라치스코 리더의 경우 톱햇으로 우두머리의 위엄을 더했고, 의상의 색상도 강인함이 느껴지는 짙은 블루 계열로 선택했다. 우르수스는 카니발 조직에서 아버지 같은 존재로, 곰 같은 느낌을 의상에 적용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5호 2018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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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VIEW] <웃는 남자> 미리 보기 [No.175]
글 |나윤정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2018-04-30 7,047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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