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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지킬 앤 하이드>의 김준현 바로 지금 이 순간 [No.87]

글 |배경희 사진 |심주호 2011-01-03 7,052


김준현이 일본 극단 시키의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아이다>에 ‘출연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이 배우가 각각의 작품에서 맡았던 역할들이 럼 텀 터거, 예수, 라다메스였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2월 개막을 앞두고 있는 <지킬 앤 하이드>가 조승우의 복귀작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도 우리는 김준현이라는 배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예술대학교의 김효경 교수는 실로 많은 배우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김준현도 그런 배우 중의 한 명이다. 보기 좋은 체격, 선 굵은 얼굴. 고전적인 풍모의 옛 배우를 떠오르게 하는 김준현의 어린 시절 꿈은 모델이었다. “모델이라는 일이 수명이 길지 않잖아요.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연기자로 생각을 바꿨죠.” 고3 때, 연기자로 진로를 변경하고 서울예대 연극과 입시를 치렀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나 연극 안 한다, 이렇게 마음먹었는데 네 번째 도전에서 붙었어요.” 당시에 아무리 서울예대가 알아주는 학교였다고 해도, 4수까지 해서 들어가고 싶을 만큼 특별했을까? “김효경 교수님이라는 분을 만나고 싶었어요. TV에 나오신 걸 봤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또 안재욱, 최민수, 허준호 같은 선배님의 스승이잖아요.” 


김준현이 국내 무대가 아닌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하게 된 데도 김효경 교수의 영향이 컸다. 재학생 시절, 김 교수의 권유로 극단 시키에 단체 연수를 갔다 오디션을 보게 됐는데 우연치 않게 합격하게 됐다고 했다. 배우들의 오디션 합격 사례를 듣다보면 “거참 드라마틱하네요!”라고 맞장구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중에서도 김준현의 사연은 ‘극적인 순간’으로 손 꼽힐만  하다. “오디션 곡으로 <레 미제라블> 노래를 준비해 갔는데 시키에서 안 하는 작품이니까 부르지 마라는 거예요.(웃음) 오디션 3일 전인가 ‘This is the Moment’로 바꿔서 연습했어요. 밤새워 가면서 가사 외우고.” 그런데 기회는 엉뚱하게(?) 찾아왔다. 오디션이 끝난 후 학생들 가운데 “나이가 좀 있었던” 김준현이 학생 대표로 감사의 글을 읽게 됐는데, 거기서 극단 대표의 눈에 띄게 됐다는 거다. “제가 연설문을 읽는 중에 아사리 게이타 대표가 한국 제작부 사람한테 저 친구 아까 노래 불렀냐고 물었다는 거예요. 근데 왜 기억이 안 나냐면서.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목소리가 좋다고 그러셨대요.” 그는 자신의 입으로 이렇게 말하는 게 민망했는지 어색하게 웃었지만 부드러운 중저음은 확실히 매력을 느낄 만한 목소리다.

2005년, 김준현은 졸업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첫 배역인 <라이온 킹>의 무파사로 무대에 선 것은 다음 해의 일이다. “제가 일본에 간 날이 2005년 3월 14일, 무파사로 처음 무대에 선 날이 2006년 1월 26일이에요.(그는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10개월이 걸린 거죠.” 안정적인 톤으로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 그랬구나’ 하고 쉽게 넘기게 되는데 ‘외국인 배우’가 대사 많은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일본어를 전혀 못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따라서 무파사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그는 전에 없는 부담을 느껴야 했다. “같이 간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배역을 맡게 된 거였는데 일본어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네가 잘해야 된다고. 네가 잘해 내지 못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기회가 없어진다고.” 그렇다면 결과는? “냉정히 말해, 무대에 올랐을 때도 대사를 정확하게 하진 못했어요. 억양도 좋지 않았고. 그래서 한 달 뒤에 강판 당했어요.” 자신을 잘 포장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보통인 배우에게서 굳이 말하지 않으면 모를 솔직한 대답을 듣는 건 신선하다. “대표님이 보러 오셨어요. 제가 잘하고 있나. 그런데 아직 대사가 부족하다고 해서 바로 내려오게 된 거죠. 좌절은 안 했는데 자존심이 상했어요. 두고 보자, 이를 꽉 물고 연습해서 한 달 뒤에 다시 검사를 받았어요.”


<라이온 킹> 이후 <에비타>의 체, <캣츠>의 럼 텀 터거, <아이다>의 라다메스까지, 남들에게는 순조로워 보였을지 몰라도 그에게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일단, 스물아홉 살에 매일 아침 아홉시에 화장실 청소를 했고요.(웃음) 첫 째는 언어 문제, 두 번째는 외로움. 주연을 계속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거든요. 대사가 엄청 많잖아요. 심리적인 부담이 컸죠.” 김준현은 ‘대사의 감정을 전달했을까, 관객들이 느꼈을까’를 매일 밤 고민했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같이 왔던 친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마다 저도 가고 싶었죠. 하지만, 그저 그런 커리어를 가지고 돌아오고 싶진 않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주목 받는 작품들의 주인공을 다 하고 오고 싶었어요. 내가 없으면 그 많은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데 타격이 갈 정도의 위치에 오르고 싶었죠. 이런 얘기하면 좀 그런데… ‘주연급 배우 다섯 명 누구누구’라고 한다면 그 안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2008년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서 예수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김준현 혼자였다. “원래 시키에 예수 역을 10년 가까이 했던 배우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만두면서 할 만한 사람이 없어진 거죠. 도쿄, 오사카, 나고야… 일년 동안 전국 투어 공연을 했는데 그때 제일 힘들었어요.”


그리고 2010년 봄, 김준현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일본 극단 시키의 주연급 배우였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국에서 자리 잡기가 쉬운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에서 계속 배우 생활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한국에 와서 다시 시작하자 싶었죠.” 한국에 돌아와 <잭 더 리퍼>의 앤더슨 역으로 출연한 후 이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지킬 앤 하이드>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좋아하는 뮤지컬로 꼽히는 작품에, 톱 뮤지컬 배우들(게다가 다른 세 배우 모두 ‘지킬’ 경험자다.)과 서야 하는 그는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말한다. “부담감 있죠. 제가 잘해 낸다면 부담감은 가벼워질 거고, 못해서 비교를 당하면 무거워지겠죠.” 김준현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 거에 연연하면 한도 끝도 없는 거고, 저는 제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지킬과 하이드라는 역을 잘 소화해내는 것.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해야겠죠. 암만 열심히 해도 못하면 아무런 결과가 없는 거잖아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7호 2010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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