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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정연, 마르지 않는 샘 [No.179]

글 |김나볏 뉴스토마토 기자 사진 |양광수 2018-08-28 5,600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정연, 마르지 않는 샘 

 

대학로에서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를 한창 준비 중인 정연은 마치 작품 제목처럼 기묘한 매력을 풍기며 다가왔다. 무대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스스로를 비울 줄 아는 배우, 비웠을 때에야 비로소 무언가가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런 그녀가 이번 작품에서 연기할 배역은 60대 여자 엠마다. 세대를 한참 뛰어넘은 캐스팅에 대한 노파심은 대화 중 눈 녹듯 사라지고 도리어 궁금증이 생겼다. 무대에서 정연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을 보여줄까. 

 


 

<스모크>를 공연하는 동시에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연습에 돌입한 상황인데요. 사뭇 다른 느낌의 두 작품이에요. <스모크>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참여한 소감이 어때요?

제가 사실 재연을 잘 안 해요. 초연 스나이퍼인데(웃음), 대본을 낱낱이 들여다보면서 하나하나 창작하는 즐거움이 크거든요. 그렇다고 재연은 시시하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저는 재연에 대한 중압감이 조금 심해서 ‘했던 거 하는 건데 쉽지’라는 생각이 잘 안 들더라고요. 훨씬 더 깊어져야 되고, 훨씬 더 풍성해져야 한다는, 막강한 책임 의식을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재연에 대해 정확히 말하면 부담 반, 재미 반이라고 할까요. 예전에 몰랐던 걸 찾아낸다는 것 자체는 재미있는 일이니까요. 미처 다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더 이해하면서 작품에 좀 더 가까워지게 되죠. 이번 <스모크>는 어렵긴 했지만 제 캐릭터 홍이 이 <스모크>라고 하는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야만 하는지에 대한 해답들이 조금씩 쌓인 결과물이었어요.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연초에 작품 제안이 들어왔는데, 원래는 연극 <더 헬멧>을 하고 나서 쉬려고 했어요. 그때 제가 액션 연기를 심하게 하다 좀 다쳤거든요. 그래서 몸을 좀 쉬게 하려고 했죠. 그동안 너무 달렸나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엔 안 할 생각이었죠. (웃음) 그러다 독회 공연 영상을 보게 됐는데, 안 할 생각으로 보고 있는데도 희한하게 눈물이 네 갈래로 나는 거예요. 그래서 하게 됐어요. 이런 마음으로 보는데도 이 정도 감동을 주는 작품이구나 싶었어요. 노래가 주는 힘이 있으니 다 같이 드라마를 열심히 완성해 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죠. 프로덕션에 들어와 보니 다른 배우들도 다 그런 생각으로 왔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제목만 보고 달달한 뮤지컬인가 싶었는데, 시놉시스를 읽다보니 예상치 않게 이야기가 흘러갈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예상하기 힘든, 어떤 감정을 툭툭 건드리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노인이에요. 디바도 아닌 여자 노인,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캐릭터예요. 아주 약체인 한 인간이 주인공이라는 것도 굉장히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작품은 올리려고도 안 하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이 올라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라고 하면 뭔가 복작복작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오실지도 모르겠는데 최대한 그렇게 되지 않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은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어떤 작품이라고 말하긴 힘들어요. 오늘내일 사이 작품의 색깔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근데 이 작품을 하겠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기대한 부분은 있어요. 60대면 사실 완전히 노인이라고도 볼 수 없지만 또 한편으론 더 이상 바라는 게 뭐가 있겠냐 싶은 나이이기도 하죠. ‘성장할 게 더 이상 뭐가 있겠어’ 싶은 나이잖아요. 근데 그 약체 노인이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요. 녹록지 않은 삶을 살면서 자존감을 잃은 사람이 사실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깨달아가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이걸 저는 엠마의 성장기라고 생각해요. 
 

요즘 시기적으로 봐도 그런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여자들의 이야기가 주목받는 시대가 이제 오나 싶은. 

그런 이야기들을 이제 무대에서 보고 싶어들 하셔요. 



 

로봇을 연기하는 배우와 함께 합을 맞추잖아요. 어떤 느낌인가요? 

아직은 로봇을 로봇처럼 연기할까, 아니면 로봇이 아닌 것처럼 연기할까 고민하는 단계에요. 이 로봇을 통해 엠마가 변하지만 저는 엠마가 로봇 때문에 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엠마가 변화하고 싶은 의지가 너무 투철해서, 심지어 책상을 보고도 변화의 의지가 점점 생기는 상태 아니었을까 상상해 보고 있어요. 내가 이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 내가 의미를 부여했을 때 이 사물이 나에게 어떤 존재가 되느냐에 대해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서 로봇은 엠마의 성장에 자극이 되는 존재고, 결국 전체적으로는 엠마 스스로의 극복기라고 생각해요. 
 

뮤지컬 넘버는 어떤가요. 

노래가 너무 좋아요. 사실 저한테 들어오는 역할들을 보면 고음을 올려야 하는 게 많아요. 배에 힘주고 노래해야 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죠. 근데 저는 원래 저음을 좋아해요. 툭툭 이야기하듯 부르는 노래가 삭 스며드는 것 있잖아요. 노래의 분위기가 내 캐릭터를 말해 주는 그런 거요. 독회 영상을 보면서 설득이 된 부분도 그런 점인 것 같아요. 이야기 외에 노래만으로도 캐릭터의 심상을 너무나 잘 녹여냈더라고요. 박윤솔 작곡가는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너무 좋았어요. 노래 자체로 굉장한 완성체랄까요. 거기에다 저음을 부른다는 게 너무 좋아요. 여자들에겐 저음 파트가 잘 주어지지 않아서 더욱 그런가 봐요. 노래할 때 우리끼리 ‘음을 더 내리자, 더 내리자’ 하고 있는데 이러다 땅을 파게 생겼어요. (웃음)


 

관객들에게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의 매력을 설명한다면요?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기대하고 오시는 분도 계실 거고, 아니면 뭔가 그 정반대의 후크가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오시는 분도 계실 거예요. 그 두 가지가 다 충족되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창작 팀에도 제가 생각하는 엠마에 대해 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배우는 자기가 맡은 캐릭터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되니까 상상의 폭이 되게 커져요. 저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이 아무도 모르는 어떤 작은 극장에서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상상까지도 해요. 엠마의 머릿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그런 작품이요. 아무튼 상상하지 못한 것까지 더 해보자고 피력을 하고는 있어요, 그냥 단순히 마음이 따뜻해지는 뮤지컬 그 이상을 해보자고 얘기를 나누는 중이죠. 상상치도 못할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에 대해 확실히 그런 기대가 있어요. 결국 마지막에는 ‘따뜻함으로 갈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드는 뮤지컬이죠. 관객들과 더불어 쉴 수 있겠구나 싶은 작품이에요. 관객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극장을 찾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정글’이라는 이름의 제 팬클럽이 있는데요. 팬클럽이 만들어질 때 이 친구들한테 ‘나 칸 영화제 갈 거다, 우리 나중에 같이 손잡고 가자’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어요. ‘뮤지컬 대상 시상식에 오르겠다’ 이런 얘기는 안 하고, ‘꼭 지켜봐 줘, 우리 같이 성장해서 칸으로 놀러 가자’ 이런 얘기를 하죠. 그렇게 자유롭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의 팬클럽이에요. (웃음) 사실 제가 뭐가 될지 어떻게 알아요. 저는 그냥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아주 많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잘 해왔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그 점이에요. 언제는 화려했다가, 또 언제는 60대 노인을 했다가, 또 언제는 실체가 없는 역할을 했다가. (웃음) 연출가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들 달라요. 섹시하게도, 청순하게도, 바보처럼도, 할머니처럼도 봐요. 다양한 시선으로 보는 거죠. 저는 ‘공주 역만 해야 돼, 주인공만 해야 돼’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다양하게 여러 모양으로 표현하고 싶죠. 의상 입혀주시고 화장 해주시니 변신할 수 있는 거지만, 여러 캐릭터를 과감히 맡겨주신다는 것은 저를 믿어주신다는 건데 감사하죠. 사람들이 저더러 욕심이 많아 보인다고들 해요. 근데 사실은 그렇게 욕심 있는 편은 아니에요. 심지어 저는 어느 날 갑자기 ‘나 주부할래’ 하며 홀연히 사라질 수도 있어요. 예전에 학생 때 최형인 교수님이 저한테 해주신 말씀 중 아직도 붙잡고 있는 게 있는데요, ‘기회는 찾는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다. 기회가 올 때 하나씩 잡는 거다’라고 하셨던 조언이에요. 오는 것에 감사하고 또 잘 해내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기니까요. 
 

그럼 지금 배우 정연에게 중요한 건 뭔가요?

지금은 건강히 사는 삶이 제일 중요해요. 작년에 결혼을 해서 좋은 가정을 만드는 데도 관심이 많아요. 가화만사성, 이게 또 제 연기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죠. 가족이 많아졌으니까 그러면서 경험하는 것들이 뭔가 나한테 영향을 미치고 스며들어 무대에서 더 여유가 있어지길 기대하고 있어요. 2007년에 연극 <여름과 연기>에서 연기할 때 무대 디자인하던 친구가 “정연아, 무대 위에서 연기할 때 나를 채워야 하는 것 같아, 버려야 하는 것 같아?”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때는 어렸으니까 “나를 채워야지”라고 답했는데 그때 그 친구가 “버려야 한다”고 했거든요. 계속 연기를 하면서 알게 됐어요. 버려야 한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제 아집이 하나씩 버려지더라고요. 비운 자리에 스며드는 작업들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러면서 여유도 더 생기고요. 작업은 하면 할수록 재밌는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9호 2018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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