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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강타, 사랑은 기억보다 [No.179]

글 |박보라 사진 |표기식 2018-08-29 6,419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강타, 사랑은 기억보다

 

1세대 아이돌 그룹의 메인 보컬이자 솔로 가수, 작곡가로 오랜 시간 가요계를 지켜온 강타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감성적인 음악으로 주목받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로버트로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것. 자신을 쉴 새 없이 채찍질하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그는 지금 뮤지컬 배우의 첫걸음을 차근차근 빚어내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가 스물셋에 발표했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았다던 자신의 이야기에 미소 짓던 모습에서 훨씬 더 부드럽고 단단해진 어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운명적인 사랑이란 탐험에 빠졌다.


어느 날 가슴이 말했다

 

뮤지컬 출연 소식을 듣고 놀랐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감사하게도 전부터 몇몇 작품을 제안받았는데, 중국 활동으로 한동안 한국에 없었어요. 그러다가 라디오 DJ를 맡으면서(강타는 2016년 6월부터 2018년 7월까지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했다) 한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회사에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출연을 적극적으로 권유했어요. 회사 소속 아티스트들이 뮤지컬에 많이 참여하니까 따로 팀이 구성되어 있거든요. 그 팀의 직원들이 ‘이번만큼은 꼭 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더군요. 종종 뮤지컬을 보러 갔지만, 제가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작품을 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그리고 이젠 활발히 뮤지컬 무대에 서는 친구 (이)지훈이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딱 한마디 하더군요. 도전! 그 말을 듣고 결정했어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요?

어떻게 보면 전 이미 많이 늦었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 나이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벌써 20년 넘게 활동해서 오래 굳어진 ‘강타의 색’이 있잖아요. 10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이 도전이 덜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어요. 쉽게 뮤지컬 무대에 서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무엇보다 작품에 폐가 돼서는 안 되거든요. 사실 그동안 정말 뮤지컬을 하고 싶었어요. 뮤지컬이 얼마나 멋있는 장르인데요. 이야기에 감정을 담아서 전달하는 것도 매력적이고, 누군가의 인생을  표현하는 것도 드라마틱해요. 이런 부분에 대한 로망은 늘 가지고 있었죠. 주변 사람들이 많은 용기를 줬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감정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저와 잘 맞을 거라고 했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익숙한 장르를 벗어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지금도 연습실에 갈 때마다 긴장해요. 연습할 때도 주변 사람에게 믿음을 주고 싶어요. 만약 제가 주어진 걸 못 해낸다면 함께하는 스태프나 배우는 ‘강타가 잘해야 우리도 좋고 본인도 좋을 텐데. 강타가 잘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이런 걱정이 나올 수밖에 없을텐데, 이건 정말 싫었어요.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내려놓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어요?

내려놓는다는 건 쉽게 말해서 거의 바닥부터 새로운 걸 채워 넣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돼요. 첫 연습부터 잘하면 좋잖아요. 솔직히 칭찬만 받고 싶죠. 그런데 어느 누군가가 ‘강타 씨, 그거 아니에요’라고 했을 때 받는 실망감은 있어요. 겸손해야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곤조’가 있어요. 속이 좁은 게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했는데 날 이렇게 평가해?’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요. 이런 마음이 있다면, 냉철한 피드백을 받아도 엄청난 실망감에 휩싸여요. 그 마음과 실망감을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거죠. 다시 말하면 ‘여기서도 지금까지 해왔던 나의 색을 인정해 주겠지’라는 생각이요. 또 중요한 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는 강타가 아닌 로버트로 존재해야 해요. 관객이 극장을 나가면서 제가 부르는 로버트의 노래를 듣고 ‘로버트가 잘하네’가 아니라 ‘강타가 노래를 잘하네’가 되면 안 된다는 거죠. 사실 전 연기를 잘 모르니까 백지에 차곡차곡 채울 수 있어요. 그런데 멜로디가 나오는 순간 본연의 제 모습이 나와요. 그동안 해왔던 창법과 사소한 버릇들이요. 그러면 바로 로버트가 사라지고 강타가 나오죠. 그때마다 내려놓으면서 완벽하게 로버트로 빚어질 수 있도록 충고를 받아들여야만 해요. 이 과정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더더욱 내려놓는 작업이 필요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죠.
 

로버트를 어떻게 표현하려고 하나요?

로버트는 이미 정해져 있어요. 물론 저하고 더블 캐스팅된 (박)은태의 로버트는 어쩔 수 없이 다르겠지만, 본질은 그대로 가지고 있어야 해요. 정해 놓은 약속이 있으니까요. 대신 이렇게 구분할 수는 있겠네요. 저의 로버트는 다른 로버트보다 수줍고 조심스러울 거예요. 왜냐면 전 정식 뮤지컬 무대가 처음인 데다 성격도 조심스러워요. 로버트는 프란체스카를 사랑하고, 그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죠. 그래서 프란체스카를 대하는 모든 모습에서 세심함이 묻어나요. 사랑이라는 게 일상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제 평소 성격이나 습관이 더해질 수도 있을 거고요. 
 

그럼 로버트와 비슷한 부분이 있나요?

로버트가 중간중간 실없는 농담을 하곤 해요. 그런데 이게 제 이미지에요. ‘노잼’ 이미지. (웃음) 진지하게 장난을 쳐도 주변 사람들은 못 알아듣고, 혼자 재미있어 하고. 로버트에게도 이런 성격이 있어요. 이런 장면이 나오면 혼자 재미있어 했는데, 연습 때 (김)선영 누나나 (차)지연이가 웃더라고요. 재미는 없지만 어이도 없어 터지는 그런 웃음이요. 이때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로버트는 매너 있고 친절하지만, 거친 느낌도 있어요. 또 섬세하고 엉뚱할 때도 있고요.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심각해질 수도 있는 타이밍을 엉뚱하게 넘길 때가 있죠. 이런 로버트가 제 성격과 조금은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작품에서 마음에 와닿은 장면이 있나요?

로버트하고 프란체스카가 함께 식사하는 장면 ‘또 다른 삶’이요. 로버트의 전처인 마리안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무대 한쪽에서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알콩달콩 저녁 식사를 준비하죠. 그때 로버트에겐 새롭게 다가오는 설렘이 휘몰아쳐요. 그는 낯선 곳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났는데, 몇 시간 만에 사랑을 느끼고 두근거리는 식사를 같이 준비하죠. 개인적으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다 보니 자꾸 연애를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현실에서 살다가 이 장면에서 순식간에 로버트의 마음으로 확 들어가게 됐어요. 아, 나도 이렇게 사랑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더 빨려들더라고요. 부러우니까 로버트가 되는. 그래서 이 장면부터는 마냥 설레요. 프란체스카의 눈을 마주 보고 있으면 정말 사랑스럽고 심장이 두근거려요. 스무 살 때처럼 단지 몇 시간 만에 설렐 수 있는 사랑을 지금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그럼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끌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느낌. 그 느낌이 전부죠. 이유가 없어요. 로버트는 덥고 지친 상태에서 심지어 사진 찍을 장소도 못 찾아요. 그런데 어떤 여자가 문을 열고 나오는 걸 보죠. 그 순간 로버트는 그녀를 보고 말을 잇지 못해요.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한 번만 오는 거예요. 몇 번을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예요. 이런 대사가 있어요. 로버트가 느낀 심장의 울림이 바로 이거예요. 고작 나흘 동안 느낀 감정이지만 그의 인생에서 다시는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 거죠. 결국 로버트는 늙을 때까지 프란체스카의 연락을 기다려요. 로버트는 확실한 감정을 한순간에 느꼈어요. 그 이후부터는 프란체스카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자신의 감정을 확인해 가죠. 그리고 마지막엔 자신의 감정을 확신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그녀를 기다렸던 거예요. 
 

로버트는 고작 나흘간의 사랑을 하고 평생 프란체스카를 기다리죠. 이해할 수 있나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소설로, 영화로, 뮤지컬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격렬하거나 드라마틱한 상황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사랑에 빠져요. 나흘간의 감정을 평생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죠. 만약 저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바로 도망쳤을 거예요. 제가 상처받을 게 뻔하니까. 남자로서 로버트가 참 부러워요. 로버트는 프란체스카를 향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다가가고, 조심스럽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첫눈에 반한 마음을 표현하죠. 또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 소중한 감정을 간직해요. 로버트는 남자들에게도 로망을 줄 수 있는 캐릭터예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노래가 정말 좋기로 유명하죠. 작곡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노래를 듣고 어땠어요?

인물의 감정을 악보에 그대로 옮겨놨어요. 감탄했죠. 굉장히 복잡하지만 섬세해요. 어려운 화성들이나 기술적인 요소가 있는데, 일부러 뽐내려고 한 게 아니에요. 그저 감정을 전달하려고 했을 뿐이죠. 그래서 노래에서 마음이 느껴져요. 들을수록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대단한 ‘감성 천재’ 같아요. 지금까지 팝, 가요, 제3세계 음악을 수없이 들었지만 정말 천재 같다고 계속 말했다니까요! 아마 공연을 보신 분들은 ‘뮤지컬인데 노래가 별로 없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왜냐면 대사를 내뱉듯 노래가 흘러가거든요. 스토리와 인물의 감정, 대사 그리고 음악이 다 함께 포장되어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대한 개인적인 의미가 있나요?

인생의 첫 뮤지컬 작품. 군대에서 참여했던 <마인>과는 성격 자체가 달라요. 그땐 특수한 상황인지라 마치 학생으로 참여한 느낌이었죠. 그런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진짜 저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라요. 함께하는 배우들이 ‘이 작품은 감정적으로 많이 표현해야 해서 까다롭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려운 작품으로 ‘하드’하게 첫 작품을 시작하는 의미도 있고, 뮤지컬 무대에 대한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공연이 더 기대돼요. 

당신이 알고 있던 난

 

군대에서 뮤지컬 <마인>을 할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임무는 전투 임무였는데 상급 부대의 요청으로 차출돼 <마인>에 참여했어요. 갔더니 뮤지컬 공부하다가 입대한 친구들이 있었죠. 이 친구들의 열정이 대단했어요. 연습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받았거든요. 그때는 참여하는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군인 정신으로 에너지를 함께 발산했어요. 다 함께 ‘으쌰으쌰’ 하는 게 있었죠. (웃음) 물론 지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그렇지만요.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무대에 선다는 책임감이 더 커요. 저를 향한 평가나 제가 작품에 미칠 영향으로 어깨가 무거워졌죠. 제 능력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가수로 무대에 서는 것과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은 다르겠죠?

콘서트 무대와 뮤지컬 무대는 정말 달라요. 가수로 콘서트 무대에 설 때는 어떤 노래를 부른다는 약속 정도만 있어요. 무대에서 좋아하는 음악에 제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더해 관객과 함께 공유한다는 게 크죠. 사실 콘서트에서는 그날의 감정에 따라 노래를 부를 때도 많아요. 그런데 뮤지컬 무대엔 많은 약속이 있어요. 이 약속을 절대 어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심지어는 감정까지도 하나의 약속으로 보고 꼭 지켜야만 해요. 뮤지컬 무대엔 강타가 없어요. 오로지 로버트만 있죠. 그렇기 때문에 세세하게 약속을 정하고 감정을 컨트롤해야만 해요. 몇 번이고 재관람을 하는 관객이 있다면, 객석에서 늘 같은 공연을 보셔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팬으로서 공연장을 찾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 때문이 아니라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서 오신 분도 계시니까요. 그래서 작품을 만드는 공동체에는 관객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요. 뮤지컬은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해요.
 

뮤지컬 배우로서 목표는 어떤가요?

전 늦깎이 뮤지컬 신인이잖아요. (웃음) 뮤지컬 배우로 어떤 업적을 쌓거나 특정한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관객에게 강타가 아니라 제가 맡은 역할이 기억됐으면 해요. 강타는 없고 로버트만 있어! 이런 거요. 제 이름도 그렇고 걸어온 길도 그렇고 이미지가 세잖아요. 그래서 제가 잘해야 제 이미지가 완전히 빠질 것 같아요. 물론 오래 걸리겠지만, 이런 시간을 줄이는 게 제 목표죠. 


 

예전에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난 진짜 피땀 흘리며 열심히 노력했고 그래서 성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상에서 내려와 보니 노력의 대가로 성공을 얻은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는 걸 알았다’고. 행운의 여신이 새로운 도전에서 손을 잡아줄 것 같나요? 

글쎄요, 그런데 이건 분명해요.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행운도 와요. 준비가 다 되어 있음에도 행운이 따르지 못하면 원하는 만큼 성과를 못 얻는 경우도 많고요. 그러니까 일단 준비부터 잘해야 해요. 그 후에 고민해 보겠죠. 과연 뮤지컬에서도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주어지는 행운이 찾아올까. 그런데 그런 날이 올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뮤지컬이 워낙 쉽지 않잖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9호 2018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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