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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킹 앤 아이>, 서로 다름을 배우다 [No.180]

글 |남윤호 배우 사진 |Matthew Murphy 2018-09-06 5,418

<킹 앤 아이>  King and I , 서로 다름을 배우다 

 


 

고전 뮤지컬의 귀환

이상 기온 현상으로 인한 엄청난 더위가 영국까지 손을 뻗은 것인지 영국 역사상 400년 만의 더위라는 기사를 접하면서(물론 한국의 폭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더위였지만), 어떤 작품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지난 7월 4일 런던 팔라디움 극장에서 막을 올린 이 공연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암(현재의 태국) 뭉꿋 왕이 왕실의 영어 가정교사로 고용된 영국인 안나에게 배운 ‘기타 등등’을 뜻하는 라틴어 ‘Et cetera(약자 etc.)’의 태국식 발음 ‘익-세테라, 익-세테라, 익-세테라’가 반복되는 공연, 평생 모든 것을 마음대로 누리며 살았던 시암 왕과, 남편과 일찍 사별한 젊은 영국인 선생 안나 레오노웬즈가 문화적 차이로 부딪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고전 뮤지컬 <킹 앤 아이> 말이다.
 

<킹 앤 아이>는 올 초부터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작품이다. 반세기 넘는 역사를 가진 클래식 뮤지컬의 귀환이라는 점, 지난 2015년 뉴욕 링컨 센터에 올라 호평받은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프로덕션 공연이라는 점, 그리고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으로 나란히 토니상 후보에 올랐던 켈리 오하라와 켄 와타나베가 출연한다는 점(켈리 오하라는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에서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런던의 많은 관객들 역시 <킹 앤 아이>를 기대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양 문화가 중심을 이루는 작품인 만큼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인 켄 와타나베를 비롯한 다양한 동양 배우들을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흥미를 느꼈다. 



 

<킹 앤 아이>의 탄생

‘킹 앤 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데보라 카, 율 브리너 주연의 1956년 영화 버전과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의 음악일 것이다. <킹 앤 아이>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Shall We Dance?’와 ‘Getting to Know You’는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같이 흥얼거리게 될 정도로 대중적으로 친숙한 곡이니 말이다. 
 

뮤지컬 <킹 앤 아이>의 첫 시작은 1944년 발표된 마가렛 랜든의 소설 『안나와 시암의 왕』에서 출발한다. 소설을 무대화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다름 아닌 연극계 변호사 겸 비즈니스 매니저 패니 홀츠만이었는데, 1950년 자신의 클라이언트였던 영국의 베테랑 배우 거트루드 로렌스(근현대사 연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노엘 카워드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이기도 했던)에게 이 작품이 좋은 기회가 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로렌스는 1943년 이후 뮤지컬에 출연하지 않았지만, 홀츠만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향할 로렌스의 커리어에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남편과 사별한 후 아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로 떠나는 안나라는 역할이 로렌스와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한 그는 소설의 판권을 사고 제작에 들어간다. 애초에 홀츠만이 작곡을 의뢰했던 사람은 <키스 미 케이트>와 <애니씽 고즈> 등으로 유명한 콜 포터였지만 거절당하고, 로렌스의 절친한 동료이자 작가, 배우, 연출이었던 노엘 카워드에게 맡기려다 우연히 오스카 해머스타인의 아내인 도로시 해머스타인을 만나면서 적임자를 찾게 된다. 사실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두 사람은 처음에 원작 소설에 담긴 시암 왕국과 캐릭터들이 너무 단순하다고 뮤지컬로 만들기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킹 앤 아이>의 영화 버전 중 가장 잘 알려진 1956년 영화 이전에 만들어진 1946년 영화를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고 하는데, 영화가 흩어져 있는 스토리 라인을 하나로 구축한 것을 보고 가능성을 본 게 아닐까 싶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19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이 오만하게도 동아시아권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고 있던 시기다. 당시 영국은 싱가포르, 페낭, 말레이 반도의 일부분, 그리고 반이 넘는 버마(지금의 미얀마)를 차지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공격적으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일부를 식민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리상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던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던 시암은 자칫 잘못하면 식민지가 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세계로부터 문을 닫고 나라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공격받지 않고 순순히 나라 문을 열어 서양 문화가 유입되는 위험을 감수할지 고민하는 왕과, 서양 문화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캐릭터인 안나 사이에서 생기는 마찰은 창작진이 이 작품을 만드는 동기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오늘날의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인 서양에서 동양 문화를 다룰 때 주 관객층에 따라 문화적 표현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도 했던 것 같다. 더욱이 1950년대 미국인들에게 동양의 문화가 주가 되는 작품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동양인 배우가 흔하지 않았을 시기에 동양인 캐릭터에 맞게 대사를 쓰고 동양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뮤지컬 넘버를 작곡해 주요 관객층인 미국인 관객들의 취향에 맞게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얼핏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서 두 사람이 선택한 방식은 미국 관객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태국의 전통 음악을 그대로 차용하기보단 변형된 코드에 이국적인 사운드를 섞어 곡을 쓰는 것이었다. 뮤지컬 넘버보다는 대사의 분량이 많은 왕의 경우, 강압적으로 들릴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서양인들의 귀에 들리는 동양 언어는 다소 강압적인 인상을 주는가 보다. 아무래도 작품 자체가 안나라는 영국인 캐릭터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데다 주 관객층이 영어권 나라들인 미국과 영국이었기 때문에 동양의 문화가 서양의 시각에서 그려지는 면이 없지 않다. 어쩌면 서양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셰익스피어나 체호프, 입센 등 외국 작가의 작품을 공연하는 것을 볼 때 이와 비슷한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서구의 우월주의가 담긴 이 작품은 요즘 같은 글로벌한 세상에서는 논란이 될 부분들을 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관련된 이야기는 차차 해보도록 하겠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이라는 고유명사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사가 오스카 해머스타인은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이들이다. 둘은 같이 작업하기 이전에 각자 작곡가와 작가로서 이미 어느 정도 성공해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하지만 1940년대 초, 당시 로저스의 작사 파트너였던 로렌즈 하트가 알코올중독에 빠져 작업이 어려워지자 로저스는 해머스타인과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고 협업을 시작한다. 1943년 두 사람의 첫 작품 <오클라호마!>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데, 이후 뛰어난 파트너십을 자랑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콤비가 남긴 작품들은 미국인들에게 아직까지도 큰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곳에서 공연이 올려지고, 또 음악이 불리고 있다. <캐러셀>, <남태평양>, <킹 앤 아이>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까지 뮤지컬 황금기의 대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작품들이 두 사람이 탄생시킨 작품들이다. 당시는 뮤지컬 영화가 많이 제작되던 시절이라 위의 네 작품 모두 영화로 만들어져 그 파급력이 미국을 넘어 세계에 퍼지게 된다. 때문에 정식 공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뿐 아니라, 싱어롱 콘서트 같은 행사에서도 단골 뮤지컬 넘버로 소개되곤 한다. 나 또한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야외 음악당인 할리우드 볼에서 열린 ‘로저스 & 해머스타인 싱어롱 콘서트’에 가본 적이 있다. 싱어롱 콘서트는 스크린 속 영화 장면에 맞게 라이브 오케스트라 연주가 더해지고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기는 공연인데,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점은 관객층의 연령대가 다양했다는 것과 연세가 많은 관객들 역시 가사를 전부 다 따라 부른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음악이 한 번 들으면 쉽게 기억되는 대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받으며 명곡으로 인정받는 게 아닌가 싶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오클라호마!>의 ‘Oh, What a Beautiful Morning’, ‘People Will Say We’re in Love’ <캐러셀>의 ‘If I Loved You’, ‘You’ll Never Walk Alone’, <남태평양>의 ‘Younger Than Springtime’, <킹 앤 아이>의 ‘Getting to Know You’, ‘I Have Dreamed’, ‘Shall We Dance?’를 들어보길 권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노래 또한 들어보면 두 사람의 곡이 어떤 분위기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웨스트엔드의 <킹 앤 아이>

런던의 옥스포드 서커스 역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팔라디움 극장은 1910년에 완공된 약 2,300석 규모의 대극장으로, 2000년부터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설립한 ‘Really Useful Group’이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팔라디움 극장에서 <킹 앤 아이>가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브로드웨이 초연의 오리지널 캐스트 율 브리너가 출연했던 1979년 웨스트엔드 리바이벌 프로덕션 공연이고, 두 번째는 일레인 페이지가 안나로, 미국 배우 제이슨 스콧 리가 왕으로 출연한 지난 2000년 리바이벌 프로덕션 공연이다. 
 

브로드웨이 초연 때 뭉쿳 왕 역할을 맡았던 율 브리너는 작품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어 죽기 몇 달 전까지 이 역할로 무대에 섰는데, 초연부터 34년 동안 무려 4,625회의 공연을 소화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율 브리너의 공연을 직접 볼 순 없지만, 영화 버전 속 그를 보고 있자면 러시아 출신임에도 동양인 왕에 어울리는 카리스마와 존재감, 그리고 그만이 풍길 수 있는 품위가 여전히 멋있게 느껴진다. 직접 오디션에 참여했던 로저스는 오디션 당시의 율 브리너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첫 번째 배우의 이름이 호명되자 그가 나왔죠. 그는 대머리에 다리를 꼬고 안짱다리로 무대에 앉아 기타를 한 번 튕기더니 기이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곤 이교도적인 노래를 불렀죠. 오스카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고 말했어요. 바로 이 사람이라고.” 이렇듯 율 브리너는 오디션에 참여할 때부터 나름 캐릭터를 연구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공연에서 왕을 맡고 있는 켄 와타나베의 얼굴에서 언뜻 율 브리너가 보이는 듯해 이 역에 켄 와타나베를 캐스팅한 것은 영리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언어적인 한계 때문에 가끔 대사가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과 풍부한 성량, 그리고 카리스마를 자랑해 멋있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뛰어난 노래 실력에 깜짝 놀랐다(많은 노래를 부르지 않아서 노래 실력이 기막히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역할에 딱 맞아떨어지는 실력이었다). 
 

인종 차별 문제에 예민한 요즘 같은 때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인 켄 와타나베를 캐스팅했다는 점이 신선했지만, 동양인의 입장에서 보기에 불편한 요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서양에서 생각하는 신비로운 동양 이미지에 맞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는 식의 표현에서 동양에 대한 고정 관념이 느껴져 공연 내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이는 동양을 사실이 아닌 픽션에 가깝게 표현한 공연이라는 점, 그리고 작품 자체가 영국인 안나의 시각에서 그려지기 때문에 이러한 설정이 어쩔 수 없다는 게 나의 타협점이었다. 어찌 되었든 2,000석이 넘는 극장을 채우는 주요 관객층은 영국인 관객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작품에 담긴 서구의 우월주의를 조금씩 없애려는 시도 자체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 외 두 배우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면, 먼저 언급할 사람은 주인공 안나 역할의 켈리 오하라이다. 영국인이 아닌 미국 배우인 켈리 오하라는 이 역할로 토니상을 거머쥐기도 하였다. 그만큼 완벽한 영국 발음과 안나에 어울리는 우아한 몸짓과 기품을 보여주며 훌륭한 노래 실력으로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 낸다. 두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이는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기도 부럽기도 했던 텁팀 역의 전나영 배우다. 국내 뮤지컬 무대에도 출연한 바 있는 전나영 배우가 웨스트엔드 무대에서 당당히 노래한 후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은 묘한 희열감을 가져다 줬다. 공연 자체는 클래식이 주는 힘과 좋은 음악들로 심플한 디자인의 무대를 채워준다. 배우들 간의 호흡 또한 조화로워서 거리감 없이 이야기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한다. 무대는 생각보다 심플해 마치 시암의 궁 자체가 거대해 보이고 의상 또한 이 작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다름을 향한 다음 발걸음

한 명의 동양인 배우로서 고민이 많은 시기에 공연을 봐서 그런지, 동양인이란 인종에 대한 표현이 전보다 더 불편하게 다가오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동양 문화를 다루는 작품이 많아져야 동양 배우들이 무대에 설 기회가 조금이라도 더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 속도가 더디지만 뮤지컬에서 다양한 인종의 배우가 무대에 서는 현상을 보면서, 앞으로는 연극 무대에서도 동양 배우들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려본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 때문에 간과했던 점이 있다면, 역시나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특히 안나와 왕이 ‘Shall We Dance?’를 부른 뒤 왈츠를 추는 장면에서는 마치 같이 왈츠를 추듯 몸을 들썩이며 눈을 반짝거리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나 무대라는 곳이 지닌 힘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무대 위 배우들과 무대 아래 관객들이 서로 다른 두 개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공간에 있다는 일체감을 느끼게 될 때, 가장 좋은 공연이 완성되는 게 아닐까. 정답을 얻기보단 함께 질문을 던지며 즐길 수 있는 공연 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0호 2018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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