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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베르나르다 알바> 정영주․황석정,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힘찬 한 걸음 [No.182]

글 |편집팀 사진 |김호근 2018-11-30 5,584

<베르나르다 알바> 정영주?황석정,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힘찬 한 걸음 

 

2018년 하반기의 최고 화제작 자리에 오른 <베르나르다 알바>. 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을 각색한 낯선 초연 작품이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 석 매진을 기록한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한 기획력에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욕망을 욕망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비극적인 삶을 오직 여배우들의 말과 몸짓을 통해 보여준다는 것. 이 근사한 시도의 첫출발을 기록하기 위해 <베르나르다 알바>의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정영주

작품에 참여한 계기는? 

박천휘 작곡가가 이 작품을 번역할 때 옆에서 읽어봤다. “여배우만 열 명 나오는 작품? 이걸 한국에서 한다고? 그럼 나 할래!” 그렇게 말한 게 벌써 4년 전 일이다. 이제야 비로소 공연된다는 소식에 앞뒤 안 재고 참여했다. 이 작품을 위해 6개월짜리 다른 작품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안 아깝다. 우리 공연 티켓 오픈 2분 만에 전 석 매진된 거 봤나? 우린 BTS다. 베르나르다 알바(B) 티켓(T) 솔드 아웃(S)!
 

이야기에서 특별히 공감하는 지점이 있다면?  

오래전 타국에서 쓰였지만, 지금 대한민국 여성이 처한 현실과 딱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불편하다.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느낌이랄까. 보는 관객도 불편할 거다. 그럼에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여성의 고통을 남성 배우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작품은 많았다. 솔직히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정말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너희가 알아?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해야 한다.
 

내 캐릭터의 가장 큰 비극은? 

베르나르다는 계속 외면하고 있다. 자신이 딸들에게 주는 고통을,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딸들을 보며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베르나르다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건 딸들에게 독재자처럼 구는 그도 실은 가부장제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가족 앞에서 그 사실을 감추고 있을 뿐, 공포를 제일 예민하게 느끼는 인물이다.
 

앞으로 무대에서 보고 싶은 여성 서사가 있다면? 

극작과 학생일 때 쓴 시놉시스가 있다. 유관순, 잔 다르크, 레이디 맥베스, 거트루드, 시고니 위버가 모여 여성으로 살기가 얼마나 고달픈지 수다 떠는 내용이다. 여전사 잔 다르크와 유관순은 서로 너희 나라는 말이 좀 통하느냐 묻고, 왕비 레이디 맥베스와 거트루드는 왜 우리가 남자를 왕으로 만드느라 이렇게 고생해야 하느냐 한탄한다. 여배우 시고니 위버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출연료에 분통을 터트린다. <여배우는 똥이다>라는 작품도 구상해 봤다. 다섯 여배우가 겉보기만 화려하지 실제로는 남성 배우보다 한참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자신들의 삶을 보여준 뒤 ‘여배우는 똥이야!’라고 외치며 끝나는 블랙 코미디다. 20년 전에 썼지만 지금도 통할 거다. 왜냐, 현실이 그대로니까! 

 

황석정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정영주 배우가 추천했다. 정영주 씨랑은 술자리에서 만나 친구가 된 사이인데, 어느 날 우리 집 ‘황 Bar’에서 술 한잔하는 중에 작품 이야기를 꺼내면서 같이했으면 좋겠다더라. 자세한 조건은 몰랐지만, 내가 언제 또 영주처럼 훌륭한 배우하고 비상업적인 뮤지컬을 해보겠나 싶어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다. 원래 이것저것 따져보는 성격이 아니다.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은?

역사는 항상 강자에 의해 쓰여 오지 않았나. 특히 폭력의 역사에서 약자는 언제나 권력의 횡포에 휘둘려 왔는데, 오늘날까지도 대표적인 약자의 한 부류가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자유를 억압당하는 여성들의 비극적인 삶을 남성의 등장 없이 여성 캐릭터들의 이야기로만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미가 크다. 여성이 여성에게 갖는 편견은 또 다른 폭력이 된다는 것을 상기하는 점도 좋다.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음악 또한 무척 매력적이다.
 

이야기에서 특별히 공감하는 지점이 있다면? 

주인공 베르나르다 알바를 보면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떠오른다. 젊은 시절에는 욕망에 가장 솔직한 딸 아델라처럼 자유를 쟁취하고 싶어 했지만, 자유로운 삶을 획득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에는 제 자신이 딸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군이 되어버린 내 세대의 어머니들 말이다. 알바는 딸의 죽음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인데, 그 이후 그가 또 어떤 고통 속에 살아갈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작품에 뜨거운 지지를 보낸 여성 관객들에게 한마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너무 불쾌하고 힘들었다. 이 작품은 결코 행복한 작품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는 모두에게 평등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억압과 편견에 맞서야 하지 않나. <베르나르다 알바>는 우리가 지금 고통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하는 작품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2호 2018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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