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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국립창극단 <시> 박지혜 연출·양종욱·양조아·유태평양·장서윤, 나와 만나는 여행 [No.184]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9-01-21 5,104

국립창극단 <시>  박지혜 연출·양종욱·양조아·유태평양·장서윤, 나와 만나는 여행   


국립창극단이 신창극시리즈의 세 번째로 선택한 연출가는 양손프로젝트의 박지혜이다. 이자람과 판소리 단편선 <추물, 살인>, <이방인의 노래>의 연출을 맡았고, 신창극시리즈1 이자람의 <소녀가>에서는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했다. 박지혜 연출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소재로 양손프로젝트의 배우 양종욱, 양조아와 국립창극단의 배우 유태평양, 장서윤과 공동 작업 형태로 신창극 <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시처럼 모호하지만 오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창극과 시의 만남
                      
신창극 시리즈 세 번째 연출가로 박지혜 연출을 선택했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박지혜_
왜 나를? 창작 판소리 작업을 한 적은 있지만 창극은 장르가 다르다. 내가 창극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신’창극이니까 해도 되겠다 싶었다. 

시라는 컨셉을 가져왔다. 
박지혜_ 양손프로젝트 작업이나 판소리 작업을 했을 때 주로 명확한 텍스트로 했다. 이번에는 다른 서사를 다른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다. 노랫말이 시와 밀접한 연관도 있고 시가 문학의 에센스 같아서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러저러한 고민 끝에 시를 해보자고 정했다.

처음 시를 컨셉으로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유태평양_
판소리는 서사가 있고 드라마틱한 요소가 뚜렷한 장르이다 보니 시를 컨셉으로 한다고 했을 때 시너지가 생길 수도 있지만 판소리의 매력을 잃지 않을까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번에 이 작업을 하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같은 시를 읽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른데 어렸을 때 학교에서 시를 배울 때는 주제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해진 답을 외워야 했다. 그에 대한 반감이었다. 
양종욱_ 창극도 명확한 서사 구조가 있다. 시가 그것을 와해시키고 영역을 확장시키는 좋은 틀이 되지 않을까. 지금 찾아가고 있고 아직은 명확하지 않은 좋은 위태로움의 상태이긴 한데 굉장히 흥미로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양조아_ 시로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도움을 줄지 모르겠지만 대신 뭘 하자고 하든 내 역할만큼은 잘 해내겠다고 했다. 양손프로젝트 작업이라면 반대도 하고 토론도 많이 했을 텐데. 이건 박지혜 연출 이름으로 하는 거니까. (웃음) 그게 마음이 놓이더라. 
장서윤_ 시여서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워크숍에서 네 명의 배우들이 시를 통해 관찰하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면서 되게 자유롭고 마음이 편했다. 

많은 시인들 가운데 파블로 네루다를 선택한 이유라면?
박지혜_
‘시를 하겠다’, ‘네루다로 하겠다’까지는 나의 선택이었다. 고3 때 수능을 앞두고 갑자기 시인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열심히 시를 읽고 열심히 써서 백일장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때 네루다의 시도 읽었다. 그러다 잊혀졌다. 이번에 창극과 만날 기회가 왔는데 나의 활기찼던 무엇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감각들과 폭발적으로 만나기를 갈망하던 시기가 떠올랐다. 네루다의 시를 다 읽었는데 생각보다 방대한 세계였다. 네루다의 문장들과 언어를 탐닉하고픈 욕망이 생겨서 네루다로 정했다. 

연극배우와 창극배우의 워크숍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가?
양종욱_
무대에서 퍼포머로서 가장 잘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신체 감각인 듯싶다. 역할 표현을 하기 이전의 연습들, 서로의 몸 감각을 확인하고 양상들을 확인해서 각자의 개성이나 취향 등이 드러나는 작업들을 많이 한다. 시라는 것도 굉장히 개인적이지 않나. 시를 읽고 사유하고 상상하는 일은 굉장히 내밀한 개인과 만나게 되는 일이다. 개인의 성질을 꺼내서 보여줄 수 있는 워밍업의 워크숍을 했다. 

창극배우로서는 생소한 경험이었을 텐데, 이런 워크숍을 해본 소감이라면?
유태평양_
우리는 창극배우 이전에 소리꾼이잖나. 가장 익숙한 게 고수와의 호흡이다. 소리꾼 혼자만의 호흡으로는 절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어려서부터 고수와의 호흡을 인식하면서 해왔다. 그런데 이번 워크숍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공간이 나에게 주는 영감을 소리로 표현해 달라고 하는데 굉장히 난감했다. 옆 사람의 움직임을 읽고 그 영향을 받아서 움직이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워크숍을 통해 빠르게 배우와 친밀해질 수 있었고 이제는 내가 바뀌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장서윤_ 창극에서 캐릭터가 주어지면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 워크숍은 그 반대였다. 캐릭터가 아니라 시에서 내가 느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약간 부끄러우면서도 너무 통쾌했다. 작품을 하다 보면 나에게 없는 캐릭터를 연기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나를 깨부수거나 다 내려놓아야 한다. 이번엔 나의 날것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역시 나를 깨부수어야 할 일인 것 같다. 나를 드러낸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일 수도 있고, 쉬운 일일 수도 있는데 나 자신에게 믿음을 가지면 그 안에서 굉장히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이 작품으로 나와야 하는데 연습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양종욱_
워크숍을 통해 네 명의 개개인이 발현된 것을 토대로 다양한 소스를 던져주면 그것이 연출에게 영향을 준다. 그런 방식으로 작품을 같이 만들어가고 있다. 
장서윤_ 워크숍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어서 그것이 작품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고 있다. 요즘 작업은 효율을 많이 따지잖나. 이 작업은 오래 다독여서 천천히 다가가는 방법인 것 같다. 
유태평양_ 첫 미팅에서 흔히 주제가 뭔지, 줄거리가 어떻게 되는지, 어떤 캐릭터가 나오는지 묻게 되는데 연출님이 되게 난감해하더라. 그때부터 나의 손 떨림이 시작됐다. 큰일이구나. 첫 미팅에 대본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놉이라도 기대했는데 질문에 대답을 들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박지혜_ 그때 구성 대본은 있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웃음)
유태평양_ 그런데 한 일주일 전부터 우리들의 에너지가 올라가는 것이 보이니까 조금씩 자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의문은 있지만 뭔가가 될 것 같다. 
양조아_ 나는 걱정이 하나도 안 된다. 양손프로젝트 작업이 늘 진흙탕에서 구르는 작업이었는데 이번에는 연습도 체계적으로 착착 진행되는 것도 놀랍고 진행이 잘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안 된다.

양손프로젝트 작업 중에 형식은 다르겠지만 이번과 유사하게 모호한 상태에서 진행된 작품이 있는가?
양조아_
이번이 제일 괜찮지 않나?
박지혜_ 양손프로젝트는 항상 모르고 시작해서….
양종욱_ 이런 불안함은 딱 그려지는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양손프로젝트 작업은 항상 예상되는 상이 없었다. 가능성을 찾고 규정된 상을 최대한 유보하려는 일들이 이전의 작업들과 비슷하다. 




네 명의 배우가 만드는 시
                      
워크숍에서 나오는 다양한 소스 중에 선택된 것들이 작품이 될 텐데, 선택하는 원리나 기준은 무엇인가?
박지혜_
귀납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공연이 뜨겁게 타올랐다가 사라지는 느낌을 좋아한다. 텍스트로 남는 것도 아니고 영상물도 아닌 순간에 피었다가 사라지는 일을 한다는 게 좋다. 극이 그 순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내겐 의미가 있는 일이다. 네루다의 시를 읽을 때 역동적인 힘을 만났다가 확 사라진다. 네루다의 시 세계가 꿈틀거리는 순간이 확 왔다가 사라지는 연속성을 갖고 있다. 이 작품도 피었다가 사라지는 연속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 

네루다의 시는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박지혜_
네루다의 시는 배우들이 소화한 어떤 것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를 위해서 이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네루다의 시를 잘 전달하기 위한 작업도 아니다. 배우들이 각자 시를 쓴다고 생각하는데 배우들이 무대에서 네루다와 컬래버래이션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소리는 어떻게 쓰이는가?
장서윤_
판소리를 작곡이라고 하지 않는다. 음을 노래하는 부분도 있지만 어떤 상태를 표현하거나 소리 자체를 표현하는 일이기 때문에 채보할 수도 없다. 그것이 시의 속성과 잘 어울린다. 판소리 안에서는 어떤 소리를 내도 그 상황과 느낌이 맞으면 용납이 된다. 
유태평양_ 시를 소리화한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판소리 안에서도 시를 읽는 특정 대목이 있다. 그런데 네루다의 시를 소리화하는 게 얼마나 가능할까. 처음에는 워크숍 할 때마다 확신이 떨어졌다. 그런데 사람이 호흡을 하는 데 쓰이는 게 시라고 생각하니까 조금 편해지더라. 워크숍에서 배우들과 새로운 호흡을 하다 보니까 소리꾼으로 접근해야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판소리의 정형적인 멜로디 라인이 아니고 내가 내고 싶은 대로 시를 읽었을 때 연출님이 그 소리에 자극을 받았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소리의 고정관념이 조금씩 사라졌다. 

네루다의 시가 소리의 가사가 되는 것인가?
유태평양_
특정 시 하나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했던 것 중 크게 와 닿았던 아무 시나 발화를 시작해서 내가 읽고 싶은 문장이나 / 양조아_ 단어나 / 양종욱_ 내가 원하는 시어를 덧붙여서 / 유태평양_ 그것을 녹음한 것을 정리했더니 / 장서윤_ 새로운 시가 됐다. / 양조아_ 의식의 흐름대로 한 게. / 양종욱_ 우리의 감각이나 감성이 섞여서 어떤 리듬으로 만들어진 것을 가사로 하는 한 가지 방법을 찾은 것 같다. 
박지혜_ 배우들은 머리보다 몸이 훨씬 똑똑하다. 몸이 감각한 움직임이 무슨 의미인지 왜 했는지는 늦게 추적하는 것 같다. 머리로 알고 움직이려면 그렇게 못 움직였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최대한 이것을 추적하고 머리로 따라잡는 일이다. 

그렇다면 <시>에는 서사와 캐릭터가 없나?
유태평양_
나름 있긴 있다. 유태평양이라는 캐릭터. 왜냐면 자기만의 스토리가 형성되기 때문에.
양종욱_ 관객들이 읽어내게 될 것 같다. 어떤 것을 볼 때 우리는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려고 한다. 우리 텍스트는 명시적으로 관객들과 공유되는 것이 없어서 관객 각자가 캐릭터를 읽어내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마치 시가 각자에게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시>는 어떤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태평양_
연출님이 한번은 이 작품이 전시회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가장 이 작품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작품을 봤을 때 한 편의 전시를 보고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양종욱_ 공연은 어떤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네 명의 배우가 어떤 것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대에서 이 배우들의 세계와 잘 만날 수 있다면 내게 그 경험은 유의미할 것이다. 내게 유의미했다면 관객들에게도 유의미할 거라고 생각한다. 
양조아_ 시를 소재로 워크숍을 할 때 넷이 비슷한 곳에 다녀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떤 알 수 없는 공간에 다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때가 참 짜릿하다. 소리를 하거나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이 사람 안의 우주에 잠깐 들어갔다는 느낌이 들면 굉장히 가깝게 느껴진다. <시>를 본 관객들도 어느 한순간이라도 같은 곳에 갔다 나온다면 엄청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장서윤_ 관객들이 이 공연을 봤을 때 꿈의 한 장면처럼 느꼈으면 좋겠다. 꿈이 다 이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장면은 남아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지 않나. 왜 나에게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박지혜_ 사적인 순간들이 많이 담겨 있는 작품. 배우도, 보는 관객도 굉장히 사적인 순간과 만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처음에는 골라 온 시를 보여주는 것도 부끄러웠다. 이 시를 재밌게 읽었다고 말하면 비밀을 보여주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과 공통분모가 아닌 나의 고유한 것이 많이 드러나는 작업이었으면 좋겠다. 조아 배우가 관객들까지 200~300명이 한곳에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사람들이 각자 개별적인 공간으로 여행을 갔다 왔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4호 2019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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