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SPOTLIGHT] <파가니니> 콘, 누구도 가지 않은 길 [No.185]

글 |안세영 사진 |김호근 의상협찬 | Kimseoryong 2019-02-15 6,503

<파가니니> 콘, 누구도 가지 않은 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절 기교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을 얻은 파가니니. 그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파가니니>는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 실력을 갖춘 동시에 연기와 노래까지 소화 가능한 액터 뮤지션을 필요로 했다. 이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통과해 뮤지컬 <파가니니>를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든 이가 집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가수, 연기자로 다방면에서 재능을 뽐내온 콘(KoN)이다. <모비딕>, <페임>, <오필리어>에 이어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콘. <파가니니> 대전 공연을 마치고 서울 공연을 앞둔 그를 만나 새로운 도전에 나선 소감을 들어보았다.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일

2014년 <오필리어> 이후 오랜만에 뮤지컬로 돌아왔어요. <파가니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오디션 공고가 뜨자마자 주변 뮤지컬 관계자들로부터 일제히 연락이 왔어요. 파가니니 역할을 맡을 바이올리니스트를 찾고 있으니 지원해 보라고요. 파가니니의 이름을 듣자마자 마음이 끌렸어요. 바이올린 전공자 사이에서 파가니니는 애증의 대상이에요. 파가니니가 온갖 기교를 만들어낸 덕분에 바이올린이 당당한 솔리스트 악기의 반열에 올랐지만, 동시에 파가니니 때문에 바이올린 연주법이 두 배 이상 어려워졌거든요. 만약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제일 먼저 만나고 싶은 인물이 파가니니예요. 뮤지컬을 통해 그처럼 존경스런 인물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죠. 파가니니처럼 관객을 홀리는 광기 어린 연주를 들려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오랜만에 무대 연기를 하려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낯설었죠. 저를 뺀 나머지 출연자는 모두 전문 뮤지컬배우이니까 혼자 다른 세계에 떨어진 듯 생경한 느낌을 받았어요. 예전에 뮤지컬을 했을 때 기억은 다 어디로 갔는지! 특히 신체 연기는 아직도 숙제예요. 연습하면서 많이 들은 얘기가 무대 위에 내면 연기란 없다는 거예요. 손동작이든 걸음걸이든 감정이 몸 밖으로 드러나야 관객이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슬픈 장면에서 배우가 아무리 눈물을 흘려봤자 대극장 객석에 앉은 관객 눈에는 안 보일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오버 액션을 취해도 안 되겠죠. 한번은 제가 아픈 장면에서 열심히 겔겔거렸더니 그럴 필요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아프다는 신호만 보여주면 관객이 충분히 이해한다고요. 동료 배우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어요.  
 

2012년 파가니니의 삶과 죽음을 소재로 한 클래식 콘서트 <페이탈 인비테이션>에 음악감독 겸 파가니니 역할로 참여한 적이 있죠. 그 공연과 비교했을 때 <파가니니>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두 공연은 파가니니의 아들이 등장하고 파가니니 시신 안장을 둘러싼 재판 장면으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차이점은 <페이탈 인비테이션>이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공연이었다면 <파가니니>는 픽션이 가미된 이야기라는 거죠. 또 <페이탈 인비테이션>에는 파가니니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이 없었지만, <파가니니>에는 젊고 잘나가던 시절부터 아프고 고통받던 시절까지 파가니니의 다양한 생애가 담겨 있어요. 


 

초상화 속 파가니니는 매부리코에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다소 기괴한 인상이에요. 그런데 뮤지컬에서는 밝게 염색한 머리에 현대적인 외양으로 등장하더군요. 

그건 파가니니라는 사람을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장치라고 생각해요. 생전에 파가니니는 수많은 소문에 시달렸는데, 뮤지컬 속 파가니니도 마찬가지예요. 파가니니의 주변 인물들은 저마다 파가니니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게 있어요. 콜랭은 돈을 벌려고 하고, 샬롯은 무대에 서려고 하고, 루치오는 신앙을 증명하려고 하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헛소문을 퍼뜨리거나 쉽게 믿어버려요. 요즘도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잖아요.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현대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파가니니를 둘러싸고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당신은 파가니니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제가 보여주는 파가니니도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 캐릭터가 돼야 할 것 같아요. 
 

파가니니가 죽기 직전 사제 앞에서 ‘이 바이올린 안에 악마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유명하죠. 뮤지컬 속 파가니니도 루치오 앞에서 ‘나는 악마입니다’라고 고백하는데, 어떤 심정에서 이런 말을 꺼내는 건가요?

실제로는 아파 죽겠는데 사제가 죄를 고백하라며 귀찮게 구니까 짜증이 나서 ‘나 악마야, 됐냐?’ 하고 툭 던진 말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이 말이 지닌 무게감이 다르죠. 뮤지컬 속 파가니니는 내 음악이 자유롭게 살아 숨 쉴 수 없다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만 한다면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말끝에 ‘나는 악마입니다’라고 말해요. 그는 악마로 몰리는 것보다 자신의 음악이 사라지는 걸 두려워하죠. 하지만 루치오는 악마라는 파가니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요. 그가 앞서 한 말은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마지막까지 파가니니를 제멋대로 판단하는 거죠. 이어서 피날레인 ‘악마의 콘서트’가 시작되는데, 관객들에게 이 연주를 듣고 파가니니가 악마인지 아닌지 직접 판단해 보라는 것 같아요. 
 

파가니니를 연기하며 이건 마치 내 이야기 같다고 느낀 부분이 있나요?

작품 후반부에 죽음을 앞둔 파가니니가 사실 나도 너무 힘들다, 다 내려놓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대전 공연 때 이 장면을 연기하다가 그만 오열하고 말았어요. 원래 프로 뮤지션은 무대 위에서 늘 완벽해야 해요. 아무리 컨디션이 나빠도 무대에서 약한 소리를 하거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되죠. 그런데 파가니니를 연기하며 무대 위에서 그동안 절대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려니 둑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나오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더라고요. 파가니니가 루치오 앞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찬사를 쏟아내든 저주를 퍼붓든 나는 연주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울컥해요. 파가니니의 입을 빌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느낌이거든요. 이런 경험은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사라지지 않을 음악

평소 콘의 연주와 뮤지컬에서 파가니니로서 선보이는 연주는 어떻게 다른가요?

평소에는 집시풍으로 연주하지만 뮤지컬에서는 파가니니로 관객 앞에 서는 거니까 클래식 바이올린 주법을 다시 연습했어요. 특히 파가니니가 즐겨 썼다는 테크닉을 열심히 연습했죠. 기록에 따르면 파가니니는 한 줄만 사용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하고 피치카토(활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현을 퉁겨 연주하는 주법), 하모닉스(현 위에 손가락을 가볍게 대서 피리 같은 음색을 얻는 주법) 등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했다고 해요.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서는 그와 비슷한 사람을 찾기 어렵죠. 재미난 건 그런 희한한 기교를 동시대 집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즐겨 썼다는 거예요. 파가니니가 활동하던 시기에 집시 음악계에서도 뛰어난 비르투오소가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집시 음악이 클래식 음악에까지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작년에 이런 내용으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피날레를 장식하는 ‘악마의 콘서트’에서는 어떤 곡을 연주하나요? 

처음에는 파가니니의 곡이 아니라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을 연주해요. 타르티니가 꿈속에서 악마의 연주를 듣고 썼다는 곡인데, 파가니니도 이 곡을 즐겨 연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거든요. 이어서 파가니니의 명곡 ‘라 캄파넬라’를 연주하고, 카프리스 24번으로 끝을 맺죠. 카프리스 24번은 이 작품 전체의 테마라고 할 수 있는 곡으로, 공연의 시작과 끝에 연주돼요. 오프닝의 연주가 맛보기라면 엔딩에서는 다 때려 부술 기세로 연주하죠. ‘보아라, 이것이 악마의 콘서트다!’라는 마음으로. (웃음) ‘악마의 콘서트’를 마치고 나면 오른팔 굵기가 달라져 있어요. 속주가 하도 많으니까 팔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거죠. 
 

바이올린 연주 장면을 위해 직접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면서요?  

바이올린 연주가 중요한 작품인데 프로덕션 안에서 제가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작곡가님, 음악감독님이 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셨어요. 1막 선술집 장면에서 연주하는 곡은 제가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모아 믹스해서 만들었어요. 또 1막 마지막에 바이올린 줄 하나로 연주하는 곡은 파가니니라면 어떻게 연주했을까 추측하면서 작곡했죠. 2막 마지막의 ‘악마의 콘서트’에는 아예 즉흥으로 연주하는 부분도 있어요. 실제로 파가니니가 즉흥 연주를 잘했대요. 그 시절에는 즉흥 연주를 잘해야 비르투오소로 인정받았거든요. 뮤지컬에서도 최대한 파가니니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즉흥 연주를 넣었어요. 그 순간의 즉흥적인 느낌으로 연주하는 거라 매회 다른 연주를 만나실 수 있어요. 
 

대전 공연을 마치고 서울 공연에 임하는 각오를 들려준다면요?

우선 대전 관객분들이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시는 분위기라 기뻤어요. 물론 보완해야 할 점이 있겠지만 시도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 제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어요. 클래식 바이올린을 전공하다가 집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고 했을 때 핀잔을 많이 들었죠. 그래서 몇 년이나 가겠냐는 둥, 한심하다는 둥. 하지만 시도가 없으면 변화도 없어요.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선 모험을 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서울 공연을 앞둔 지금 저의 바람은 <파가니니>가 평소 뮤지컬을 안 보던 클래식 애호가도 관심을 갖고 보러 오는 공연이 되는 거예요. ‘파가니니 곡을 연주한다니 한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오셨다가 ‘뮤지컬도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마음으로 돌아가실 수 있게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저처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도 늘어날 테니까요.
 

<모비딕>으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을 때, 인터뷰를 통해 음악가와 배우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기억나요? 

그랬죠. 첫 뮤지컬인 데다 초연부터 재연까지 3년에 가까운 시간을 <모비딕>과 함께했거든요. 그만큼 오롯이 바이올린 연습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또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연주할 때 소리에 도움이 되는 동작만 써야 하는데, 뮤지컬에서는 그게 아닌 거예요. 연주를 하면서 무릎을 꿇으라고 하는데, 그러면 소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제 연주가 무뎌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스스로 바이올리니스트도 뮤지컬배우도 아닌 애매한 존재가 된 것 같아 혼란스러웠어요. 
 

지금은 어때요? 여전히 혼란스러운가요?

아니요. 더는 그런 걸로 고민하지 않아요. 바이올리니스트냐 뮤지컬배우냐 그런 명목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냥 콘이지. 전부 콘이 하는 음악, 콘이 하는 공연이죠. <모비딕> 이후로도 저는 계속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전형적이지 않은 길을 걸어왔어요. 방송도 하고, 패션쇼도 하고, 헝가리에서 집시들과 콘서트도 했죠. 누군가는 이것저것 기웃거려서 하나라도 제대로 하겠냐고 말하지만, 그런 특이한 경험이 모여서 지금의 저와 제 음악이 된 거예요. 그렇게 10여 년을 활동하다 보니 이제는 ‘콘’이라는 이름만으로 제가 누구인지 조금은 설명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데뷔 초에는 저 자신을 ‘한국 최초의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콘입니다’ 하고 소개했는데 요새는 그렇게 안 해요. ‘안녕하세요, 콘입니다’라고 하죠. 


 

데뷔 10주년을 맞는 올해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나요?

뮤지컬을 마친 뒤에 헝가리 집시들과 녹음한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에요. 사실 녹음한 지는 꽤 됐는데 집시들의 연주가 워낙 자유분방해서 편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가을 즈음에는 음반 발매 겸 데뷔 10주년 기념 단독 콘서트도 열 생각이에요. 
 

2018년 발표한 곡 ‘The Farthest Way’는 예술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이를 응원하는 마음에서 작곡했다고 들었어요. 콘은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계속 걷고 있나요?

언제부턴가 주위 예술가들이 용기를 잃고 예술을 포기하거나 하늘나라로 떠나는 일이 많아졌어요. 함께 걷던 이들이 하나둘 사라지니까 이러다가 나도 사라지는 게 아닌가 불안해지더라고요. 요즘은 제가 이 길을 걷는 동안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음악을 왜 하는가라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줄곧 해왔어요. 바이올린은 최소 10년은 익혀야 연주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그 이유는 몸이 바이올린에 맞춰지기 때문이에요. 아주 어릴 때부터 하루에 몇 시간씩 10년 넘게 바이올린을 켜면 등은 굽고, 어깨는 짝짝이가 되고, 턱은 비뚤어져요. 그제야 비로소 바이올린이 내 몸처럼 편안해지죠. 이렇게까지 해서 바이올린을 계속하는 이유가 뭘까. 제가 내린 답은 세상에 저의 음악을 남기기 위해서예요. 파가니니는 자신의 음악을 남기기 위해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저 역시 그래요. 제가 정말 좋은 음악을 만든다면 그 음악은 제가 사라진 뒤에도 세상에 남아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주겠죠. 실제로 제가 만든 곡을 듣고 우울증을 극복했다거나, 부부 관계가 회복됐다는 감사 인사를 받곤 하거든요. 내가 만든 음악이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의미를 가지는 것, 그게 정말 콘이라는 사람이 살아서 음악을 하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