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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REVIEWER'S TALK] <아랑가>, 재연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No.186]

글 |안세영 사진제공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2019-03-26 4,661

<아랑가>, 재연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도미 설화를 모티프로 한 뮤지컬 <아랑가>가 3년 만에 새로운 연출로 돌아왔다. <더뮤지컬>이 운영하는 뮤지컬 리뷰어 양성 프로그램이 배출한 ‘더뮤지컬 리뷰어’ 다섯 명이 <아랑가>를 관람하고 초연과 재연의 변화된 지점을 짚어보았다. 익명성을 위해 참여자의 이름은 각자가 좋아하는 뮤지컬 주인공 이름으로 기재하였다. 

 

여백을 채운 무대

스위니_ 초연 무대는 텅 비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두 가지 컨셉의 의자가 생겼어. 세트를 활용하는 연기가 늘어나니까 덜 지루하더라. 커다란 왕의 의자는 개로가 느끼는 왕위에 대한 압박감을 표현한 것 같아. 

클레어_ 도창이 쓰러진 나무 모양 의자에 앉아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는데, 그 시선이 공연에 긴장감을 부여했어. 

나타샤_ 바닥의 단을 오르내리는 동선에 의미를 부여한 연출도 괜찮았어.

마틸다_ 바닥이 수면처럼 비치는 재질이라 조명과 만났을 때 서정적인 분위기가 살았어. 

롤라_ 난 무대를 채우려고 한 시도가 성공적인지 모르겠어. 초연 때는 무대가 비어 있는 대신 조명으로 바닥에 선을 그어서 인물 관계를 표현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조명과 영상이 너무 화려해서 이 작품만의 특색이었던 여백의 미가 사라졌어. 

스위니_ 소품 얘기도 해볼까? 초연 때 모든 인물이 갖고 있던 부채를 지금은 도창과 개로만 사용해. 개로도 눈을 찌를 때만 사용하고. 애초에 다른 인물에겐 활용도가 낮았던 소품이라 지금이 더 깔끔했어.

앤_ 도미는 눈이 먼 뒤에 흰 분을 눈에 바르더라. 초연 때는 천을 눈에 둘렀는데. 

스위니_ 또 아랑이 들고 나오는 조명이나 도미를 싣고 가는 배가 새로운 소품으로 등장했어. 이때 조명은 달을, 배는 저승으로 향하는 배를 상징한다는 느낌도 들어. 

 

세 인물의 엇갈린 사랑

스위니_ 초연은 다소 개로의 사이코드라마 같았어. 근데 재연을 보니 아랑과 도미의 비중이 크게 다가오더라. 오히려 아랑과 도미의 사랑 이야기에 개로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느낌마저 들었어. 이렇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클레어_ 세 사람의 관계가 미묘하게 바뀌었어. 초연 때는 도미가 자원해서 변방으로 떠나. 그런데 재연에서는 아랑이 도미의 부인인 걸 안 개로가 일부러 도미를 변방으로 보내버리지. 또 초연처럼 도림이 고구려의 첩자라는 게 초반에 밝혀지지 않아. 도림의 비중이 축소되면서 세 인물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졌어. 재연에 새로 생긴 대사도 있어. ‘한 번도 사랑에 빠져보지 않은 자만이 나를 책할 수 있으리’. 이 대사가 세 번이나 나와. 결국 재연이 보여주려는 건 ‘이 죽일 놈의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마틸다_ 개로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치명적인 사랑을 강조한 건 알겠어. 근데 아랑과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거 아냐? 어릴 때 한 번 보고 그렇게 뇌리에 박히는 게 말이 돼?

롤라_ 우릴 봐. 초연의 다른 건 다 잊어도 아랑 아랑 노래는 기억하잖아. (일동 웃음) 초연 때는 초반에 도창이 개로의 저주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굉장히 길었어. 저주의 트라우마가 아랑을 만나 치유된다는 건데, 지금은 저주가 극을 휘어잡는 힘이 줄어서 평범한 사랑 이야기처럼 보여. 

클레어_ 초연 때는 개로가 왕으로서 흔들리는 모습이 많이 나왔어. 그러다가 아랑을 만난 뒤 갑자기 자신감이 생겨서, 그에게 아랑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더 잘 보였지. 하지만 나는 개로의 괴로운 개인사가 아닌 개로, 아랑, 도미의 엇갈린 사랑에 초점을 맞춘 지금이 더 재밌어. 초연 때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벌려놓기만 한 느낌이었거든. 

마틸다_ 재연만 본 나로서는 의아한 점이 개로의 욕망이 별로 안 드러난다는 거야. 가지지 못할 것을 욕망하는 이야기인데, 개로는 하는 게 없고 도림이 죄다 도와주잖아. 

나타샤_ 초연 때는 개로의 욕망이 너무 빨리 드러나서 관객이 오히려 거부감을 느꼈어. 그래서 표현을 주저하는 캐릭터로 바꾼 것 같아. 

스위니_ 아랑의 캐릭터도 좀 바뀌었지?

클레어_ 초연에서는 아랑이 ‘꿈처럼 민들레 꽃씨가 되어 날아가버릴까 두렵다’고 말하면 도미가 ‘그럼 내가 나비가 되어 찾아가겠다’고 답했어. 반면 재연에서는 도미가 민들레 꽃씨가 되는 꿈을 꾸고, 아랑이 나비가 되어 찾아가겠다고 말해. 구원자와 피구원자가 바뀐 거지.

스위니_ 바뀐 대사를 통해 도미에게 아랑은 위로와 구원을 주는 존재가 됐어. 근데 개로가 아랑을 대하는 감정도 이것과 똑같거든. 이 대칭 구조를 통해 셋의 관계가 구체화됐어. 재연에 추가된 ‘어둠 속의 빛’이라는 곡도 비슷한 역할을 해. 여기서 말하는 ‘어둠 속의 빛’이 개로와 도미한테는 아랑이고, 아랑에게는 도미인 거지. 이 ‘어둠 속의 빛’은 달이라는 상징물로 이어져. 대사, 가사, 영상에 달이 자꾸 등장해. 아랑이 드는 조명도 달 모양이고.

클레어_ 그러고 보니 개로와 아랑이 나누는 대화도 바뀌었네. 초연 때는 개로가 꽃을 꺾어 가려고 하자, 아랑이 ‘꽃은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고 말렸어. 아랑이 꽃에 비유되는 거지. 반면 지금은 개로가 ‘달이 구름 뒤에 숨어 어둠이 올까 두렵다’고 말하면, 아랑이 ‘어두운 밤하늘에도 달은 빛나듯, 폐하의 마음속에도 빛은 존재할 것’이라고 답해. 

스위니_ 아랑이 어둠 속의 빛 같은 존재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나 봐. 

 

줄어든 도창의 비중

클레어_ <아랑가>의 특징은 뮤지컬에 판소리적 요소를 더했다는 건데, 지금은 도창의 비중이 많이 줄었더라. 초연 때는 후반부에 도미와 아랑이 재회하는 장면, 전쟁 장면, 도림이 개로를 쫓는 장면을 도창이 한참 설명했거든. 지금은 그 부분이 짧아져서 덜 지루해. 

나타샤_ 도창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전달이 안 됐고, 한국적인 판소리와 서양식 뮤지컬 음악도 잘 어울리지 않았어. 그런데 도창이 나오는 장면이 길게 이어지니 답답했지.

롤라_ 나는 초연 때 도창이 전쟁 장면을 속도감 있게 판소리로 표현한 게 좋았어. 느린 드라마를 도창의 휘몰아치는 에너지로 상쇄하는 느낌이었거든. 그런데 재연에서는 도창이 내용 전달을 잘하려고 또박또박 말하는 느낌이야. 또 전쟁 장면에 서양 악기인 피아노와 현악기가 들어온 게 더 어색하게 느껴져. 

클레어_ 나는 도창의 말이 잘 들려서 좋던데. 그리고 초연 때는 도창이 완전히 이야기 밖에 있는 해설자였는데, 지금은 배우들과 어우러져 연기하는 느낌이 좋았어. 

마틸다_ 도림과 사한이 싸우는 장면의 경우, 두 사람이 직접 노래를 부르며 싸웠다면 우스워질 뻔했는데 도창이 있어서 장면이 살았다고 생각해.

스위니_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 죽음이자 운명을 의인화한 캐릭터가 있는데, 지금 <아랑가>에서 도창이 맡은 역할이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어. 

 

꿈처럼 모호한 결말

스위니_ 재연의 이대웅 연출은 꿈과 현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표류하는 인물들을 그리고 싶었대. 꿈인지 현실인지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게 열어 두었다는 거야. 실제로 도미와 아랑의 재회 장면 연출을 보면 도미는 이미 죽었는데 아랑이 그의 환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더라. 도미와 아랑이 엇갈리는 연출이 죽은 사한과 아랑이 엇갈리는 연출과 비슷하거든. 그리고 이때 도미가 눈을 제대로 뜨고 있단 말이야. 아랑이 죽는 장면에서도 개로는 아랑 옆의 도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해. 

앤_ 도미를 따라 배를 들고 걸어갈 때 아랑 역시 이미 죽었다고 볼 수도 있지. 

스위니_ 마지막에 도창은 개로에게 ‘이제 꿈에서 깨실 시간입니다’라고 말해. 마치 이 극 전체가 개로가 죽기 직전에 삶을 돌아본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근데 이런 모호한 연출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뭔지 모르겠어.

클레어_ 작품의 시작과 끝에 세 개의 질문이 반복돼. ‘시간이 무엇이냐. 인생이 무엇이냐, 사랑이 무엇이냐.’ 다만 결말에는 ‘아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하나 추가되지. 그에 대한 답이 ‘시간과 인생과 사랑’이라는 거야. 얼핏 심오하게 들리지만 명확한 의미는 와닿지 않아. 

스위니_ 개로가 자기 눈을 찌른 뒤 이제야 앞이 보인다고 하잖아. 집착에서 벗어나 혜안을 얻었다는 듯이. 그 뒤에 내린 답이 ‘아랑은 결국 사라져버릴 것’인데, 결국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건 ‘인생무상’인가? 눈을 뜨면 사라져버릴 꿈 같은 삶?

마틸다_ 마지막 장면에 큰 의미는 없어 보여. 단지 관객을 슬프고 먹먹하게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 느낌이야. 일단 종이가 날리고 대금 소리가 들리면 왠지 울컥하

잖아.

나타샤_ 설화에서 소재를 가져오고, 도창을 활용한 시도는 좋았지만 뻔한 이야기를 좀 더 획기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순 없었을까? 창극이나 판소리에서 고전 소설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처럼 말이야.

롤라_ 재연은 전체적으로 관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바뀌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 작품이 신선한 시도에 그치지 않으려면 좀 더 고민해서 <아랑가>만의 무엇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6호 2019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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