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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다크니스 품바> 김재덕·정원영, 두 개의 터닝 포인트 [No.186]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9-03-28 6,171

<다크니스 품바> 김재덕·정원영,  두 개의 터닝 포인트 

배우 정원영이 현대무용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뮤지컬 <신과 함께_저승편> 커튼콜 장면이 뇌리에 남았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_저승편>에서 정원영은 공연 내내 잔뜩 웅크린 위축된 자세로 착하디착한 김자홍을 연기했다. 하지만 커튼콜에서 그는 소심한 김자홍의 옷을 벗고 정원영으로 돌아와 공연 내내 억눌린 움직이고 싶은 욕망을 하드코어 댄스로 풀어냈다. 커튼콜에서라도 풀어내야 살 것만 같은 그의 갈망이 느껴졌다. 정원영이 현대무용에 참여한다는 소식은 신선하면서도 충분히 수긍할 만했다.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모던 테이블의 <다크니스 품바>이다. 김재덕이 이끄는 모던 테이블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더 인정받은 세계적인 현대무용 단체. <다크니스 품바>는 2006년 초연된 이후 모던 테이블의 대표 레퍼토리로 이번엔 현대무용으로는 이례적으로 30회 공연을 시도한다. 



내 몸을 더 잘 아는 것
<신과 함께_저승편> 커튼콜에서 정원영의 움직임에 대한 갈망이 느껴졌다. 일화를 전하자 김재덕 안무가 역시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김재덕 안무가와 정원영 배우가 만난 것은 뮤지컬 <인 더 하이츠>에서 안무가와 배우로서였다. 춤이 많은 공연이었지만 작품의 연출가는 주인공인 정원영이 혼자 마음껏 춤을 출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김재덕 안무가는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원영이 정말 춤추고 싶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12년간 뮤지컬을 했는데 연기와 노래가 있는 배역을 맡으면서 마음껏 춤을 추는 기회가 흔치 않았어요. 무용에 출연해 보겠냐는 제안이 왔을 때 제일 먼저 감사의 마음이 들면서도 나머지는 다 두려웠거든요. 그럼에도 참여를 결정한 이유는 춤을 추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두려웠지만 늦어지면 더 어려워질 것 같더라고요.”정원영은 어려서부터 춤을 좋아했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에 허세가 있었다. 기본도 안 되어 있으면서 보기에 가장 어려운 것을 연습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허세의 정체다. “대학교 때 비보잉을 하나도 못하면서 어려운 한 동작만 죽어라 팠어요. 익히고 나니까 그것만 써먹게 되더라고요. ”
정원영은 춤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이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출연을 결정하고 <다크니스 품바> 영상을 봤다. “큰일났다! 내가 이걸 어떻게 하지.” 현대무용 중에서도 움직임이 많고 격렬한 <다크니스 품바>의 영상을 보고 가까스로 다잡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때 김재덕 안무가가 말했다. “원영아 할 수 있어. 내가 있잖아!” 정원영 배우는 그 말을 하는 김재덕이 신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김재덕은 정원영의 체형, 스트레칭 수준에 맞게 안무를 짜주었다. 그 동작이 익숙해지면 조금씩 다른 동작을 추가하면서 안무를 수정해 갔다. “제가 원영 씨에게 접근했던 방법은 일반적인 제스처에서 접근하는 거예요. 타격을 가하면 웅크려지고 물러나고. 이 손을 치면 돌아가서 되돌아오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내 몸에서 움직임이 발생하는 방법을 찾는 거죠. 무용의 기본은 내 몸을 더 잘 아는 것이에요.  그것에 따라 무용을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보이거든요. 어떤 사람은 발레를 할 몸이 아닌데 그것만 열심히 하다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지난 한 달 동안 원영 씨가 뭘 잘하는 사람인지 탐색하는 작업을 했어요. 본인이 몸 안에서 뭘 움직여야 하는지 파악하는 게 다른 사람보다 빨라요.”




인터뷰 전 <다크니스 품바> 리허설을 지켜봤다. 저렇게 빠르고 많은 움직임을 어떻게 외우는지 궁금했다. 무용의 문외한이라 생기는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배우들이 인물이나 상황에 몰입하면 자연스럽게 대사나 동선이 외워지듯 무용수 역시 움직임에 몰입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정원영은 자신의 경험으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뮤지컬에는 동작이나 움직임에 이유가 있잖아요. <다크니스 품바>도 굳이 이유를 찾으면 설명할 수 있겠지만, 모든 동작에 이유나 연계성이 있지는 않아요. 피아니스트 조카가 있는데 피아노 연주도 음표를 다 외우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전체 그림을 그리지. 12월 처음 시작할 땐 작은 동작에도 쩔쩔맸던 것이 단원들과 트레이닝하다 보니 이젠 몸이 움직여요. 끊임없는 연습으로 춤이 몸 안에 흐르면 자연스럽게 움직이더라고요.” 김재덕 안무가는 다른 인터뷰에서 “몸으로 몸한다”는 말로 동작 하나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춤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무용에서 몸이 언어나 의미로 치환되는 것이 아니라 몸 자체로 느껴지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무용은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는 것이고 현장에서 직접 만나야 그 가치와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정원영은 김재덕의 집중 지도를 받으며 뮤지컬과는 조금 다른 현대무용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그림도 온전히 색감으로만 표현되는 초현실적인 그림이 있잖아요. 현대무용은 손끝 하나로 세련되게 풀어가는 춤이어서 해석하기 전에 눈이 즐거워지는 춤이에요. 뮤지컬 춤을 외울 때는 원투쓰리포로 외웠지만 형이랑 같이 춤출 땐 숨소리로 외워요. 심장 박동수가 비슷하게 맞아 들어갈 때 희열을 느껴요. 무대에서 제대로 구현된다면 제가 느끼는 희열을 관객들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정원영이 지난해 12월부터 세 달 못 미치는 시간 동안 경험하며 느끼는 현대무용의 매력이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품바
<다크니스 품바>는 전통 연희인 품바를 현대무용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남성 무용수들이 격렬하게 움직이며 대립하고 갈구하는 듯하다. 편곡된 품바 음악에 맞게 정겨운 어깨춤을 추지만 구수하기보다는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뿐인가. 판소리와 라이브 연주가 울려 퍼지고 젓가락을 안무 도구이자 악기로 한 퍼포먼스가 펼쳐지는가 하면, 판소리와 무용수의 소리 배틀이 펼쳐지기도 하고 하모니카를 비롯한 무용수의 악기 연주가 결합된다. 춤을 기본으로 하지만 판소리, 록 음악으로 편곡된 품바가 흘러나오고 라이브 연주까지 종합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다크니스 품바>는 2006년 초연 이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객들과 만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왔다. 
작품을 처음 기획할 때 품바를 풀어내는 방식을 어둠(Darkness)에서 찾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반대였다. “세계무용연맹에서 주최하는 ‘컬러 오브 댄스’라는 축제가 있어요. 해마다 컬러가 주어지는데 그해 주제가 ‘블랙’이었던 거죠.  예전부터 한국무용에서 품바를 다룬 작품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블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거지 같은 짓은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그게 저인 것 같고 해서 이 작품은 ‘다크니스 품바’라는 제목을 먼저 정하고 출발했어요.” 김재덕 안무가는 ‘거지 같은’이라고 했지만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고 그 역시 애초 한국무용에서의 품바와는 다른 질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디자인적으로는 슈트를 차려입은 남자들의 멋진 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오래전부터 지녀온 한과 슬픔을 통틀어 어둠이라 보고 우리가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결여의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25세 때 만든 거니까 그때는 작품에 대한 명확한 키워드를 갖지 못하고 막연하게 배고픔, 간지러움 그런 정서였는데 2014년 무용단을 만들고 나서 정확한 키워드를 주어야겠다고 해서 찾아낸 것이 결여예요. 갈구해도 채워지지 않고 웃음과 울음으로 남지만, 웃음조차도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닌 그런 것”을 어둠 속에 담으려고 했다. 




현대무용으로서는 긴 30회 공연을 시도하고 뮤지컬배우를 캐스팅한 이번 <다크니스 품바>는 모던 테이블에게도 정원영에게도 의미 있는 도전이다. 이번 <다크니스 품바>가 어떤 의미로 남길 바랄까. 안무가이자 모던 테이블 대표인 김재덕은 “엄청난 도전이고 이번 공연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서 내년에 다시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저를 포함한 우리 단원들은 미디어에 출연해서 현대무용을 알리는 일을 하지 않거든요. 전적으로 다른 퀄리티의 공연을 통해 저희의 작업이 알려지는 그 순간까지 이런 태도는 유지하려고 해요. 이번 기회를 통해 모던 테이블을 좋아하는 팬층을 더 넓힌다면 다른 순수예술을 했을 때 응원하는 팬들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무용단을 만든 이후 무용계에서는 저희 단체나 단원들의 실력은 인정받고 자리를 잡았어요. 이 작품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터닝 포인트죠.” 정원영에게도 이번 도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저에게만 집중하려고 해요. <다크니스 품바>는 모던 테이블 단원들과 한 배를 탔다는 느낌으로 하고 있어요. 처음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 초심으로 돌아가 보려고 해요. 더 늦기 전에 마지막 도전일 수도 있고 신인 무용수로서 첫 시작일 수도 있는 아티스트로서의 터닝 포인트가 <다크니스 품바>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6호 2019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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